퀵바

밝은 별의 서재.

내가 어떻게 로맨스를 써

웹소설 > 작가연재 > 일반소설, 드라마

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3.18 10:32
최근연재일 :
2015.08.07 17:2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0,072
추천수 :
235
글자수 :
86,352

작성
15.08.05 11:34
조회
486
추천
3
글자
19쪽

6화.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DUMMY

그렇다. 정유나는 4층 세미나 홀에서 되도록 눈에 잘 띌 수 있도록 집에서 알록달록한 옷들을 준비해 왔다. 동생 예나가 작년 여름에 하와이에 다녀오면서 사 온 것들인데 유나에게 맞으니 나래에게도 맞을 것이다.


알록달록한 하와이안 티셔츠에 반바지. 밖은 아직 추웠지만 호텔 내부는 따뜻하니 그렇게 입고 다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눈 앞에서 변신하는 그녀들을 보니 글고은은 다시금 유나와 나래의 용기에 감탄사가 나온다. 자신은 도저히…, 대기업 임원들이라는 노인네들 앞에서 그런 꼴로 쇼를 할 자신이 없다.


그렇게 어영부영 지나간 시간을 뒤로 하고, 3시 45분.

정유나와 한나래는 하와이안 패션에 머리에는 싸구려 선글라스를 끼고 초조함에 달달 떨며 4층 비상구 문 밖 계단참에 서 있었다. 말이


“작전대로만 하면 다 돼!”

지, 솔직히….


‘아 솔직히 자신 없다. 어떤 드라마에서는 웃다가도 죽던데, 난 쪽팔려 죽을지도 몰라….’


용감한 17살 나래 앞에서 티는 못 내고 유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괜한 짓을 했다.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좀 더 두뇌를 썼어야 했다! 으덜덜덜…. 고등학생 때 지하철에서 람보 놀이 하던 때 보다 더 긴장이 되었다. 이 나라와 온 세상 지구인들의 지갑을 쥐락펴락하는 노인네들이 지금 유나와 나래가 바라보고 선 저 철문 너머에 가득 모여 있다는 것이다.


나래가 설사를 만난다는 연기를 할 참이었는데, 정작 유나의 아랫배가 신경성 대장증후군 분위기로 싸르르 아파온다.


“자, 나래야! 할 수 있지?”(‘난 못 하겠어!’)

“네! 고모!”


역시 나래는 씩씩했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신의 생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에잇 모르겠다! 시간이다! 무-브! 무-브!”


그 시각,

블루 다이아몬드 홀에는 유성 건설과 유성 정유 임원진 외에는 모두 도착해서 홀 내부에 지정된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모두들 나이 지긋한 분들이라 엄숙한 분위기로 앉아 있었고, 그들의 수행원들 중 가장 짬이 딸리는 이들은 블루 다이아몬드 홀 동쪽에 자리 잡은 작은 홀. 핑크 펄 홀에 옹기종기 모여 조용조용히 가벼운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복도에는 행사 진행요원 몇 명과 수행 경호원 몇 명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이었다. 모두들 정해진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들 사이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황석모 총지배인과 서민용 사장이 있었다.


누가 보면 비밀결사대의 엄숙한 행사장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치 사방은 조용했다.


그런 공간에서 끼익- 쾅! 하고, 비상구 문이 요란하게 열렸다가 닫혔다.


자연 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유나와 나래에게 집중이 되었다. 그러자 지금부터 ‘혼신의 연기’를 해야 할 두 처녀는 그 엄청난 시선의 압박감에 놀라 그 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그러자 차분히 여성 진행요원 하나가 다가와 그 둘을 정중히 안내하려고….


“으아! 고모! 변소!!! 나올 것 같아!”


그제야 당황한 나래가 발을 동동 굴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그래. 쇼는 시작됐다!!


“그래 잠깐만! 고모가 화장실 찾아줄게. 조금만 참아봐~!”

“저… 고객님…….”

“고객이고 뭐고! 언니! 여기 화장실 어딨죠!?”


이봐이봐…….


유나는 머릿속이 엉켜들기 시작했다.

사실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었다. 워낙에 조용한 분위기라 그냥 말 해도 울릴 지경인데! 아 창피해! 쩌렁쩌렁한 발성 탓에 검은 양복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진행요원 둘이 더 다가온다. 그런데 그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두 처녀에게 화장실을 찾아 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

“…….”


그런 그녀들의 ‘화려한’ 모습을 좀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선 황석모 총지배인은 ‘이런이런….’ 하는 표정이 되어 옆에 선 서민용 사장을 흘끔 보았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인지 목을 쭉 빼고 그 상황을 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표정도 없는 사람이고 어지간한 소동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는 서민용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몹시 이채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총지배인이 나섰다.

그는 행사요원들이 유나의 손목을 꽉 움켜잡고 힘을 쓰려는 찰나에 그들에게 끼어들었다.


“고객님들을 어서 화장실로 정중히 모시고 가세요.”


라고, 총지배인이 엄격한 눈빛으로 요원들에게 한 마디 하는 것만으로 모든 상황은 정리가 되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고객에게 힘을 쓰는 건 용납할 수 없다. 화장실을 원하면 모셔다 드리면 된다. 어째서 힘으로 밀어내려 하는 것이냐!’


라는 꾸중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행사요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진땀을 흘렸다. 그래서 유나와 나래는 여성 요원들에게 정중히 안내되어 ‘어떻게 저런데서 똥을 싸!’ 싶은 호화로운 화장실에 다 달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궁극 목적이 화장실은 아니기에, 일단 나래는 작전상 들어가긴 했지만 유나는 화장실 밖 복도에서 다시 사장에게 돌아가는 총지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알았다! 사장이 자신을 보고 있었음을! ‘저 사람’이 사장이었음을!! 너무 긴장해 있었던지라 보는 게 보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인터넷상으로 본 서민용 사장의 실물을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었으면서도 지금껏 뇌가 그 사람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 하지만!!! 그 각도라면 그는 지금껏 나래의 뒷모습만을 봤을 것이다! 게다가 나래는 지금 화장실 안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총지배인이 그에게 가서 허리를 굽히며 뭔가 보고를 하고 나니 고개를 끄덕. 하곤 곧 뒤돌아서서 가 버리… 면 안 돼!!! 가지 마!


‘안 돼!! 그대로 가지마! 당신은 정작 당신 딸을 못 봤어! 나래도 당신을 못 봤고! 아! 하지만 어쩌지? 저렇게 멀어지는 사람을 어떻게 붙들지!?’


당황해서 심장이 목에서 뛰는 듯 하는 유나의 눈앞에, 순간 어째서인지. 엄기영 앵커의 리즈시절 모습이 떠오르고, 문화방송 로고가 떠오르고……. 아, 안돼. 안돼! 안 돼에에에!!!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야이 미친!!!’


모험가 유나는 제 입에 손을 둥글게 모아 그리 외치면서도 스스로 놀랐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사장. 당신을 그냥 보낼 순 없어!’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아아아~~~!!!!!!!!!!!!!!!!!!”

“으악~!!! 고모! 미쳤어???!!!!”


***


4시 20분.


“하아아…….”

“하아아…….”


한씨 집안 두 처녀는 테이블에 앉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고비’를 넘긴 모험가 유나는 '이번 모험은 성공이었어!' 라며 신나게 바에서 이것저것을 주워 담고 있었다.


런치와 디너 사이에 즐기는 런너(런치+디너) 바 코스는 본래 이벤트 당첨 스파 이용권에는 없는 코스였는데…, 그 ‘지랄’ 이후에 총지배인 아저씨에게 쿠폰을 받았다.


뭔가 어깨들에게 잡혀서 끌려 갈 것만 같았는데, 사장이 직접 그녀들을 ‘모시고’ 밖으로 나왔던 것이다.


당시, 유나의 '도청기' 사자후 때문에 걱정스러워 계속 계단참에 서 있었던 글고은까지 튀어나와 그들이 모시고 나가야 할 여자들은 세 명 이었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한씨 여자 둘이 유나의 짧은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갔겠지….


그리곤 이런저런 서비스 쿠폰이 쥐어졌다.

미친년들은 매 보다 밥이 약이다. 이런 의미였을까?

하지만 한나래는 다른 의미로 한숨을 내 쉰 것이었다.


분명 사장과 눈이 마주쳤고 또 그가 한참을 굳어져 있었던 걸 봤다.

하지만 그가 홀 밖으로 그들을 몰아 나올 때 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나래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적은 없다. 그냥 정중히 대했을 뿐이고, 그러고 돌아서고는 끝이었다. 나래도 뭐라 진지하게 말을 걸어 볼 수가 없었다. 저 미친 유나고모 때문에…. 죽도록 창피해서 정신이 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것이 생부와의 첫 만남이었다.


‘하아…….’


테이블에 돌아온 유나의 접시에는 당당히 받은 디너 정찬 쿠폰을 포기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태산처럼 쌓여 있는 것 같았다.


“어이 도청기.(어쩌다 별명이 되어 버릴 것 같다) 그러다 나중에 저녁 못 먹어. 원래 뷔페코스가 니 덕에 일류정찬으로 바뀐 건 좋은데, 지금 그렇게 먹으면 정작 (언)니가 못 먹는다고.”


글고은은 정말 딱 한 번 뿐 이라면 나래와 생부의 대면을 잘 성사시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무료 쿠폰 패키지가 어마어마하게 화려해진 걸로 만족해야 하는 현실. 뭐, 이것도 이렇게 꼬여야 할 운명이었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쩝.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입맛이 쓴 건 어쩔 수 없으리라 여겼다.


***


그 시각,

황석모 총지배인도 사무실에서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50 중반인 그가 그 자리에 오르기 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별의 별 일들을 다 겪어 왔는데, 그런 그 또한 존경을 금치 못 하는 41세의 침착한 사장 서민용.


과연, 그는 당시 그 자리에 호랑이나 악어 떼가 풀렸어도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소니 홉킨스가 집사로 나왔던 영화. ‘남아있는 나날’을 본 적 있는가? 서민용은 마치 그 영화 속의 안소니 홉킨스와 같은 침착함과 완숙함을 지닌 남자였다.


그 여자 손님이 “내 귀에 도…” 때 이미 그는 총지배인이 들고 있던 무전기를 뺐었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4층 홀의 각 에리어 담당들에게 전체 지시를 넣었다.


“직원 일동은 각 홀의 모든 출입구를 닫고, 1팀은 내부에서. 2팀은 외부에서 다음 지시를 기다리도록.”


과연 사장의 지시에 빛의 속도로 반응한 직원들 덕에 블루 다이아몬드 홀과 핑크 펄 홀의 모든 출입문이 닫혔고 더 이상의 소동은 없었다. 그룹의 각 계열사 임원진들 또한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온갖 풍파를 다 겪은 이들이라 가볍게 부화뇌동 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호텔의 사장과 총지배인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기에 누구도 문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얼음 심장을 가진 것만 같은 남자. 서민용의 재빠른 판단과 지시 덕에 일이 조용히 정리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무전기를 돌려주고 문제의 손님들에게 직접 가서 연유를 물으려고 몇 걸음 떼다가 어느 순간 복도 한 가운데에서 멈칫. 하고 굳어지고 만 것이었다. 그 어떤 일에도 당황하지 않던 사장이, 그 어떤 일에도 이렇다 할 표정변화를 보이는 법 없던 사장이….


총지배인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서류를 심을 넣어둔 몽블랑 볼펜 끝으로 톡톡 치면서 다시 고개를 저었다.


‘순간, 다른 사람 같았다.’


사장의 굳어진 눈과 커지는 동공은 도청장치 아가씨(유나)가 아니라 그 옆에서 홍당무가 되어 날뛰는 어린 아가씨에게 멈춰져 있었다. 사실 다른 누가 봤더라면 사장의 그런 엄청난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사장이 된 순간부터 이 날까지 곁에서 보좌해 온 총지배인은 달랐다. 그의 사람을 보는 눈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차원이었으니까.


‘뭔가 있다….’


이후, 총지배인은 그녀들 몰래 체크인 정보를 살폈다.

그 신기한 정보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 명은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왔고 어린 손님은 부모님이 상품을 구입해 주셨다. 그런데 신기한 건 문제의 도청기 아가씨는 진짜 고모가 아니라는 것. 아무리 봐도 피가 섞이지 않았을 것 같은 작은 아가씨가 진짜 고모라는 점….


그런 그녀들에 관한 정보는 지금도 계속 그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보고로 올라오고 있다. ‘특별 관심 손님’으로 체크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정도의 일에도 사장이 직접 한 마디를 할 줄은 몰랐다.


“감시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정중히 모시도록 하십시오.”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총지배인이 알아서 잘 할 것을 모르지 않는 남자다. 그런데 왜 그런 한 마디를 덧붙였을까?

그래서 총지배인이 그녀들의 객실로 일부로 찾아가 갖은 선물을 다 주었다. 런너 이용쿠폰에 특식 디너 정찬 쿠폰에 스카이라운지 이용쿠폰…. 그녀들이 기묘한 문제를 일으켜서가 아니다.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사장의 뜻이었다.


호텔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손님은 많다. 하지만 보통은 그런 손님 모두에게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뭔가 있다….’


하지만 뭔가 있다 한 들, 행여 그것이 사장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일이라 하여도 이 점 만큼은 손님이나 상관이나 똑같다. 사람의 개인사에 대해서는 일절 아는 척 하지 않는 것. 그것이 철칙이니까.


그럼에도 총지배인은 아직도 큰 경악에 흔들리던 사장의 동공과 손 끝 떨림이 눈에 선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인 건 정말 처음이었으니까….


***


“나래야. 기운 내. 또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도청기 고모. 좀 더 납득할 수 있는 모습으로 말씀 해 주실래요?”


유나가 입 안 가득 음식을 우물거리며 그리 말하는 모습에, 나래는 미워 죽겠다는 얼굴로 틱 쏘아 붙였다.


“잘 한다 내 조카! 저 언니는 좀 뒤져봐야 돼. 더 해 더 해.”

“어우야~! 미안해 미안~. 하지만 그래라도 안 했으면 그 양반은 그대로 뒤도 안 보고 가 버렸을 거야. 그래도 내 덕분에 두 사람. 서로 얼굴은 봤잖아.”

“저, 잠시…….”

“어?”


그 때였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유나의 등 뒤로 나타난 인물이 운을 때는 것에 글고은과 나래는 순간 흐압! 하고 숨을 들이키며 놀라서 굳어졌다. 그러자 유나는 뭔데?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서민용. 그의 외모는 키는 180가량이었고 몸은 호리호리하지도 그렇다고 떡 벌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심심할 정도로 평범한 몸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다운 세련된 포마드 덩어리 헤어스타일도 아니다. 수수한 곱슬머리를 살짝 뒤로 넘겼는데, 몇 가닥이 앞으로 내려와 우수 어린 눈빛을 한 섬세한 예술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구김살 하나 없는 검은 정장을 입고 유나의 등 뒤에 단정하게 서 서 복잡한 심경으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얼떨떨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세 여자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다가 역시나 나래의 얼굴을 보면서는 눈썹이 살짝 떨리는 것이, 미안하지만 누구의 눈에도 보였다.


“죄송합니다. 아까 전엔 저희 직원들이 고객님께 너무 무례를 끼친 게 아닌가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유나를 보면서 꺼냈다. 누가 봐도 그 이야기를 하러 온 것 같지는 않았지만 유나는 미처 못 넘긴 음식을 우물우물 거리면서 동그래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아, 아니. 끄덕거리다가 이내 절래절래 저었다.


(꿀꺽!)


“아니요. 죄송해요. 뭔가 중요한 행사가 있는 줄 몰랐어요. 전 그냥 게임벌칙을 수행하느라….”

“아니요. 그건 벌칙이 아니었어요.”


적당히 두루 뭉실 넘어가려는 유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돌한 17살 나래가 나섰다. 그러자 ‘엄마야….’하는 얼굴이 된 두 고모는 슬금슬금. 저도 모르게 제 접시들을 들고 다른 테이블로 옮겨갈(도망갈) 준비를 했다.


“고모들. 어디 가지 마세요. 제 보호자잖아요.”

“…….”


글고은과 유나는 제 생부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렇게 말하는 나래와, 나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침묵에 빠진 사장 서민용을 번갈아 바라보며 어쩔 줄을 몰랐다.


‘피, 피해줘야 할 거 같은데…??’


“네. 게임의 벌칙이 아니었군요. 상관은 없습니다. 직원들이 고객님을 붙들고 무례를 범한 점에 대해 사죄를 드리러 온 것뿐이니까요. 그럼 실례가 많았군요. 좋은 시간 되시….”

“전 오늘 어떤 일본 아줌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온 거에요. 그 소원을 들어주려면 제가 아저씨를 봐야 했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행사 일정을 조사해서 그 시간에 일부로 그런 소란을 피운 거고요.”

“으악!! 나래야!”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돌아서면 호텔의 블랙리스트에 올라버리고 앞으로는 무슨 수로도 사장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래는 더는 망설일 것도 없고, 자신은 삶이 복잡한 어른들과는 달리 잃어야 할 것이 많지 않기에 강한 직구를 던졌다.


“…….”


과연, 당황스러움에 서둘러 돌아서려던 서민용의 발걸음이 다시 우뚝. 하고 멈춰졌다.


“그 사람은 야마베 유키에라는 일본 아줌마가 되었어요. 하지만 한국사람 일 땐 송진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대요. 아저씨한테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 아줌마가 저더러 아저씨가 이 세상에 홀로 떨어진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고 알려 드리라고 부탁 했어요.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이죠.”

“…….”


뒤로 돌아서다가 멈춰서 측면으로 서 있던 서민용은 나래의 그 말을 듣자 미미하게 온 몸을 바르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의 표정은 침착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정지화면’으로 얼마나 있었을까? 저 멀리에 직원 몇 명이 서 있는 것 외에는 일찍 온 여자 셋 뿐이던 런너 바에 하나 둘, 손님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제야 주박에서 풀린 듯. 서민용은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곤 나래와 글고은, 그리고 유나에게 크게 고개를 숙이며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하곤 제 갈 길로 사라져 갔다.


“…….”


또로록-

할 일을 마친 나래의 부릅뜬 눈에서는 한 줄기 눈물을 흘렀고, 고모들은 아직도 뜨어!!! 하는 얼굴로 접시를 든 채 기마자세로 굳어 있었다.


또 얼마나 흘렀을까.


“고모들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이제는 속이 다 후련해요. 내 할 일은 다 끝났어. 그러니까 마음 편히 정말 신나게 스파 즐길 거예요. 살면서 언제 또 이런데 와 보겠어요? 맛있는 거 잔뜩 먹고 바깥 정원도 신나게 돌아다니고. 고급 디너도 먹고 오일 마사지도 받고…….”

“나래야. 있잖아…….”


글고은은 이를 악물면서 억지로 웃어 보이는 나래의 어깨에 제 손을 얹었다. 그리곤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억지로 안 아픈 척 할 필요 없어. 그건 아픈 일이야…. 우린 상상도 못 할 아픔을, 그렇게 억지로 묻어 두면 나중에 더 큰 병이 돼. 너무 힘들 땐, 일부로 씩씩한 척 안 해도 돼.”

“…… 아니야. 씩씩한 ‘척’이 아니야. 고모, 난 씩씩해요.”

“그래. 나래는 씩씩해. 하지만, 씩씩한 사람도 너무 아플 땐 있는 거야. 우린 다 사람이니까….”


그러곤 고모와 조카는 따뜻하게 포옹을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가 어떻게 로맨스를 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 ㅅ*) 유료화 안내와 공지와 잡담 +2 15.08.03 590 0 -
10 10화. 조율자 윤건우 15.08.07 648 5 19쪽
9 9화. 조폭(?). 그리고 호텔 사장님의 짬짜면 15.08.06 491 4 20쪽
8 8화. 서민용의 눈물 15.08.06 549 3 18쪽
7 7화. 필요하다면 흐트러지세요 15.08.05 507 3 21쪽
» 6화.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15.08.05 487 3 19쪽
5 5화. 가자~! 사고치러~!! 15.08.04 540 3 19쪽
4 4화. 국제전화 15.08.04 441 2 20쪽
3 3화. 출생의 비밀? 하! 그게 뭐? 어쩌라고? 15.08.03 610 3 17쪽
2 2화. 하늘이 내린 루저들 15.08.03 844 3 19쪽
1 1화. 일란성 쌍둥이 15.08.03 1,268 14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