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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내가 어떻게 로맨스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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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3.18 10:32
최근연재일 :
2015.08.07 17:27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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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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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6,352

작성
15.08.03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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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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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7쪽

1화. 일란성 쌍둥이

DUMMY

정씨인 유나와 예나는 일란성 쌍둥이였다.

일란성 쌍둥이는 구분하기 힘든 생김새와 성격까지 꼭 닮았다고, 사람들은 이야기 하.더.라.


하지만 유나와 예나는 똑같은 생김새에, 그러나 같은 혈통이라고 보기 힘들만치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닌 쌍둥이였다. 유나가 언니, 예나가 동생. 둘 다 늘씬하고 예쁘장한 여고생으로 잘 자라났을 때가 1992년의 이야기다. 그녀들은 한 학교에 배정받지 못했다.


동생 예나는 172cm로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 해서 집에서 가까운 명문 여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언니 유나는 똑같은 키에 얼굴도 예뻤지만 공부에는 영 인연이 없어서 어찌저찌 사바사바. 그 나름 명문이지만 집에서 거리가 먼 여상에 들어갔다.


동생 예나는 여시처럼 눈웃음도 잘 쳤고, 남녀노소 그녀를 보며 가슴 설레지 않는 이가 없으리만치 인기도 끌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사람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인기를 이용해 용돈 한 푼 없어도 어디서 굶고 다니지는 않았다. 어디서나 상냥했고, 살랑살랑. 여자도 그런 여자가 없었다.


하지만 언니인 유나는…….

방과 후, 유나는 청소중인 교실 창밖으로 보이는 학교 앞 주산부기타자(줄여서 주부타) 학원을 바라보며 주먹을 쥐고 어퍼컷!


‘오예! 오늘부터 해방이다!’


입학하고 6개월이 넘도록 다닌 학원이다. 하지만 그런 학원을 아무리 다녀도 성적향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므로, 어머니께서 그냥 등록을 끊어버리셨다.


유나는 여상에서도 하위권 5명과 엎치락뒤치락 하는 성적이었다. 부모님의 걱정은 날이 갈수록 커졌다. 하지만 유나 본인은 어째서인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먹고 살만한 중산층 가정에서, 그 시절엔 그래도 됐던 나이였다.


부모님의 유나를 향한 걱정은 비단 성적에만 국한 된 것도 아니었다. 동생 예나의 방은 그야말로 핑크 돋는 공주님의 방으로, 원목 피아노 한 대. 그 위로 예쁘장한 곰 인형과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바비 인형. 미미 인형. 그 외 예쁘장한 꽃바구니며 뭐며. 게다가 정리정돈도 너무 깔끔하게 해 놓은 아가씨 방이었던데 반해,


유나의 방은 이건 뭐 아들 방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렇게나 벗어서 바닥에 던져놓은 청바지는 안 부분 반, 바깥 부분 반. 뫼비우스의 띠 형태로 늘어져 있었고, 방 구석구석에는 짝을 잃고 뭉쳐진 반쪽 양말들이 쾌쾌한 냄새를 풍기며 쳐 박혀 있었다. 달력은 두 달 전에서 멈춰 버렸고, 책상 위에는 격 주간 소년 만화잡지와 500원짜리 해적판 드래곤볼과 공작왕 만화책이 뒹굴고 있었다. 옷장에는 몰래 먹다 숨겨놓은 네모난 블랙로즈 초콜릿. 침대 밑에는 신호등 사탕이 먼지 덩어리와 함께 뒹굴고 있었다.

이것이 일란성 쌍둥이 자매의 차이였다.


그런 유나와 예나는 빠른 77년생이었다. 동급생 친구들과 나이로는 한 살 아래였지만, 같은 반이었고 말도 놓고 지냈다. 지금 2015년의 나이는…,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들의 엄마 또래인 것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원치 않아도 그렇게 되었다.

뭐 하다가? 어영부영 하다가.


정유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유나는 친한 친구 둘과 [노벨클럽]을 결성했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인가가 난 부 활동은 아니지만, 그녀들은 방과 후 빈 교실에 모여 앉아 셋이서 이런저런 소설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각자가 수업시간 동안 연습장에 몰래 써 둔 ‘이야기’를 서로 돌아가면서 읽고, 비판과 비난을 아낌없이 투척하는 장엄한 의식이 치러졌다.


그 시절의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주로 [할리 퀸]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유나와 마음이 맞는 아이들은 유나처럼 인간별종들만 모인 탓에. [노벨클럽]의 주 종목은 당시 한국 무협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도 있었던 김용의 [영웅문]과 한국 장르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도 있었던 이우혁의 [퇴마록]이 주 종목이 되었다. 아니, 작품만이 아니라 그런 장르. 그런 분위기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간판은 [노벨클럽]인데, 나누는 이야기는 기경팔맥이 어쩌니, 혈도가 어쩌니. 흑마법과 저주에 관해서, 밀교의 주문과 수인을 꼬는 법 따위의 이야기가 주로 나왔다. 오컬트와 밀교가 버무려졌다. 당시에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인터넷이라는 것을 이용할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셋은 방과 후에 도서관이나 신촌문구 같은 장소에서 각각의 이야기. 즉,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에 도움이 될?인생에는 도움이 안 될?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해 몰려다니기도 잘 했다. 어째서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로맨스 소설을 탐닉해 볼 생각은 못했을까?


그러던 어느 날,

유나는 예나의 방. 피아노 옆 구석에 소심하게 숨겨져 있던 할리퀸 소설을 무심코 발견하고 촤라라 펼쳐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 페이지나 가서 멈추었다.


- 소피아의 비단 같은 머릿결에서 고운 비누향기가 났다. 나는 그녀의 곱게 빗어 내린 머리카락에 코를 대고, 이제 막 피어난 처녀의 향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그러자 수줍은 얼굴로 소피아가 어깨를 살짝 움츠린다. 순간 나는 가슴이 쿵! 하고 뛰었다. 이런 느낌 전에는 느껴 본 적 없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놀란 듯 서로를 마주보았다. 찬연한 햇살 속에서 서로의 가슴 뜀을 확인이라도 하는 걸까? 경이로운 설렘에 얼굴 붉어지는 소년과 소녀. 그래. 이것은 우리들의 첫사랑이었다.


우웩…….

유나는 순간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어 책을 덮었다. 유나는 고작 그 몇 줄에 심한 느글느글함을 느껴 부엌에서 고추장을 한 스푼 퍼서 물었다. 아마 예나와 천성적으로 맞지 않는 성격 때문에 그런 글이 더 큰 쇼크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자신의 방에서 다시 공작왕과 북두신권 해적판 만화를 펼쳤다.


‘그래! 이그야! 스토리가 이 정도는 돼야지!’


그 당시 유나는 햇살 아래서 버터향 가득 풍기며 미지근하게 식은 스프 같은 느끼한 스토리 보다는, 폭풍우 속에서 후루룩 들이키는 칼칼한 짬뽕국물 같은 스토리를 선택했다.


***


고 2가 되자, 예나의 미모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는 듯 아름답고 다채로운 모습을 보였다.

어느 각도로 보아도 예뻤고, 그녀의 긴 생머리는 명문 여고의 너무나 세련되고 예쁜?그 시절에는 사실 ‘예쁜’교복이란 것이 없었다?교복 위에서 경쾌하게 찰랑대며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전교 3등의 성적이 흠이라며 부모님은 한숨을 쉬셨지만, 전교 최하위권에서 노닥대는 유나를 보면서 그래도 만족하셨다.


그런 어느 날 부터인가 예나의 방은 잠겼다.

등교 할 때부터 잠가두고, 학원과 독서실을 다녀온 후에 열쇠로 따고 들어갔다. 예나는 방에 들어가서도 문을 잠갔다. 그래도 어머니는 걱정하지 않으셨다. 워낙에 자기관리를 잘 하고 방도 청결하게 잘 쓰는 예나가 사춘기가 되어 자신만의 공간에 대한 애착이 커졌나보다. 그렇게 여길 뿐이었다. 사춘기임에도 부모에게 반항도 안 하고 큰 소리도 안 내는 게 그저 신기하고 고맙다 할 정도로, 부모님은 예나를 온전히 믿으셨다.


하지만 유나는 예나의 방문을 따는 특수한 기술을 학교의 껌 좀 씹는 친구들에게 돈돈쵸코 한 개씩을 돌려 사사받은 후, 시시때때로 문을 따고 들어가서 이것저것 뒤져 보는 재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유나는 동생과 자신이 다른 게 그냥 다른게 아니라는 것을 극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예나의 침대 밑에는 온갖 남학생들에게 받은 선물과 러브레터들이 쌓여 있었다.

어머니도 가질 수 없었던 비싼 향수도 있었고, 명품 선글라스도 있었다. 하지만 유나가 정말 놀란 점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여성 청결제, 피임약, 콘돔, 성인용품…….


그리고, 뭐지 이건? 하고 주웠던 꼬깃꼬깃 구겨진 종이.

하지만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 그 때 멈췄어야 했다. 그것은 펼쳐보지 말았어야 했다!


‘흐어어억!!’


- 미안해 예나야. 하지만 난 정말 자신 있어. 우리엄마 아빤 정말 널 좋아 하실 거야. 사람들 시선은 좀 힘들겠지만, 내가 널 사랑해. 난 세상과 싸울 자신 있어. 그러니까 제발 예나야. 우리 아이…….


‘으어어어어!!!’


그 날 이후로, 유나는 거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쌍둥이 동생이, 임… 임신……??!


발랑 까져서, 온갖 남자 온갖 여자의 러브레터를 받고 살다가…. 하지만, 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예나는 여전히 늘씬하고 예쁜 명문여고생일 뿐이었다.


유나는 같은 피붙이라는 의리로 그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거울을 보며 끊임없이 생각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은 문득, 거울 속 자신의 긴 생머리와 예나의 긴 생머리가 똑같다는 생각에 역겨움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겉으로는 온갖 잘난 척 다 하고, 예쁜 척 다 하지만 발랑 까진 더러운 정예나! 너와 쌍둥이라는 것이 이젠 화가 나고 짜증나! 나는 너보다 공부도 못하고 명문 여고도 아니야. 하지만 난 적어도 너처럼 뒤로 호박씨까지는 않아! 그런데도 엄마아빠는 언제나 너만 자식 취급하지. 아마 네가 놀아나다 임신했어도, 역시 꽃이 예쁘니 자연 벌들이 꼬이는구나. 하고 한숨 한 번 쉬고는 이해하실걸?! 그런데 내가 그랬어봐. 시발 존나 다진 고기 돼서 쫓겨났겠지. 돌대가리가 이젠 몸까지 굴리냐고. 왜 내가 너랑 쌍둥인데! 난 한 번도 원한 적 없어 너와 같은 얼굴!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아빠가 재미 보다가 이렇게 된 우연일 뿐이라고! 하지만 난 이게 일생일대의 트라우마라고! 정예나! 이 걸레 같은 년아! 난 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게 싫어!’


그 날, 유나는 예나와 같은 길이로 자라 있던 긴 생머리를 제 멋대로 상고머리로 깎고 와서는 어머니께 귀싸대기를 맞았다.


그리고 동생의 임신. 유나는 예나에 대해서 언니로서,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자매로서 한 번도 진지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없는데, 이제 와서 여상에서 배운 뒷 지식으로 방문을 따고 들어가 모든 걸 다 훔쳐봤더니 너가 그렇고 그런 년이라매!? 라고, 어떻게 말 할 수 있겠는가.


결국 5대 5 가름마의 병신 같은 상고머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소심한 주장과 부모에의 반항을 할 뿐이었다.


그 충격적인 일 이후, 유나가 쓰는 글에는 어두움과 깊이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벨클럽의 친구들은 유나의 달라진 작품 분위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들 모르게 이상한 마법 의식을 행한 건 아닌가? 라고 의심할 정도였다. 악마와 영혼의 계약을 했다던가 그런….


그 때가 약 5월 중순 즘이었나? 그랬다. 방과 후, 텅 빈 유나의 교실에 노벨클럽 삼인방이 모여 각자가 쓴 글을 돌려 보고 있을 때. 처음 보는 한 학생이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이 시간에 여기 오면 정유나 선배님이 계시다고…….”

“어?”


선배님이라 부르는 걸 봐서는 1학년 후배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지?


“저……. 제 친구 언니가 선배님이랑 같은 반인데요….”

“어….”


각자의 글에서 비난할 거리를 찾느라 매의 눈을 치켜뜨고 있었던 친구들도 모두 멍하니 그 학생을 바라보았다.


“이 시간에, 노벨클럽이라는 활동을 하신다고 들었거든요.”


그렇게, 정유나와 한 글고은과의 인연(악연)이 시작 되었다.


***


2015년.

한 글고은은(줄여서 글고은) 솔직히 말해 못 생겼다. 여자로 태어난 것을 저주하지만, 그 외모면 남자로 태어났어도 상황은 똑같았을 것이다.


짧은 팔다리. 키는 153cm. 피부는 화산지대. 눈 코 입은 각자 따로 놀고 날씬하지도 않다. 정말 모든 남성의 동물적 번식 본능도 일순 잠재울 수 있는 외모인 것이다.


그 외모 때문에 38 생일을 맞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미팅시즌이 되면 또래 친구들에게는 나름 인기가 있었다. 친구들이 긴장되는 첫 미팅을 앞두었을 때, 글고은의 몸값은 제법 치솟곤 했다. 자신의 외모를 보다 돋보이기 위한 비교 효과용 장식품으로 꽤 능력 있는 인재였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은 자기 옆에 앉아 있어주는 대가로 글고은에게 시간당 2만원을 수고비로 쥐어 주었다. 한 글고은은 외모도 딸렸고, 자존심도 없었다.


“와 놔…….”

“진짜 징글징글하다. 하지만 넌 양반이야. 난 하나 더 꽂아야 했거든.”


그런 그녀는 사실상 동성 친구도 없어서, 지금 38을 맞이한 그녀의 슬픈 생일을 챙겨주는 건 고등학교 선배인 정유나 뿐이었다. 케이크에 초를 꽂으면서 충격을 먹는 글고은을 달래주는 것도 그녀뿐이었다. 친구 또래들은 모두 아이들 학원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을 시기에, 유나는 글고은이 혼자 독립해서 사는 작은 원 룸 방에 앉아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처량하기론 서로 피차일반인 날이다.


“올해는 꼭 로맨스 작가로 거듭나기를 빌면서 후! 불어.”

“지랄이다. 일단 아무거나 라도 통과나 했으면 좋겄다!”


로맨스와 인연이 닿지 않았던 둘은, 여기저기서 모으기는 했지만 속 느글거림으로 인해 끝까지 읽어보지 못 한 할리퀸들을 쌓아놓고 그 위에 케이크를 올리는 숙연한 의식을 치렀다.


외모 때문에 번듯한 회사도 들어가지 못 한 한 글고은. 방구석에서 글을 읽고 쓰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부디 로맨스의 기운이 스며들기를, 죽기 전에 한 번은 빛을 받기를. 유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글고은이나 유나나, 그 둘에게 로맨스란, SF 공상장르나 첩보장르, 판타지 장르보다 더 비현실적이며 초현실적인 장르인 것을…. 초에 불도 껐겠다, 둘은 케이크를 잘라 접시에 담으면서 각자의 캔 맥주를 땄다.


“언니야. 내 생일을 맞아서 내가 니 볼 때 마다 하는 소린데 또 들어. 오늘의 덕담이자 복음이야.”

“왜 나는 남자 안 사귀었냐고? 더 삭기 전에 빨리 사귀어 보라고?”

“어. 나는 이 꼬라지라서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언니 니는 진짜 미스코리아 뺨 치잖냐. 니 동생 얘기를 감안해도. 그래도 그렇지. 니 미모는 정말 아깝다고. 니가 아무리 그 때부터 한 번도 머리 기른 적도 없고, 교복을 벗은 이후로는 치마도 걸쳐 본 적 없고, 너 평생 화장도 해 본 적 없고…. 하지만 니 동생 때문에 받은 충격가지고 여자의 평생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거. 너무 병신 같지 않냐? 나 봐. 난 이 꼴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날 봐 주지도 않는데 이렇게 귀걸이도 하고 싸구려 은반지도 하고. 손톱에 까져서 뒤집히는 색칠 놀이도 하고. 나 자신, 조금이라도 더 예뻐지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는데. 아무리 최선을 다 해도 아무 짓 안 한 니 발끝에도 못 미쳐. 이런 내 앞에서, 언니 넌 언제까지 그렇게 모든 걸 놓고 있을래. 그건 차라리 나 같은 사람에게 대 못 박고 약 올리는 거야.”

“으음…….”


늘 반복되는 이야기다 이건.

39세가 된 유나는 사실 예쁘기도 예뻤지만 타고난 피부 덕에 동안이기도 하고, 머리까지 숏컷을 하고 있어서 도저히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는다. 키도 훌쩍하고 몸매도 균형이 잘 잡혀 있는 그 완벽한 미모의 여성이 어째서, 한 번도 로맨스에 영혼을 맡긴 적이 없단 말인가. 글고은처럼 아예 로맨스가 다가올 수도 없는 게 아닌데. 오는 로맨스 모두 걷어차면서 누구 염장 질러 죽일 일 있나….


한글고은은 부모님과 신을 원망했다.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엉망진창 불량품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했던 로맨스를, 유나는 가만 있어도 여신이라 온 남자들이 다 들이대는대도 자신이 거부했다. 글고은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잔인한 교만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난 그냥 무성애자 인가봐. 동생 년이 내게서 남자도 여자도 다 뺐어가 버려서, 나한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그랬다. 유나의 말은 사실 맞는지도 모른다. 늘 같은 이야기에 같은 납득으로 머리를 끄덕이는 글고은이었다. 글고은은 맥주를 마시면서 크림케이크를 찍어 먹었다. 오묘한 안주였다.


“정말 나쁜 년이지. 예나 년이, 뱃속에서부터 모든 걸 다 가져간 거야. 니 지능도, 니 로맨스도. 니 인생도.”

“히유…….”


작가의말

문장 정리하고 오타 잡고, 회차 분량 불리고,

이래저래 만져서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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