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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별의 서재.

내가 어떻게 로맨스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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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밝은스텔라
작품등록일 :
2015.03.18 10:32
최근연재일 :
2015.08.07 17:2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0,073
추천수 :
235
글자수 :
86,352

작성
15.08.03 19:25
조회
610
추천
3
글자
17쪽

3화. 출생의 비밀? 하! 그게 뭐? 어쩌라고?

DUMMY

“아까 약속 있다고 나가더니?”

“어 고모. 날이 너무 추워서, 조금 몸 좀 녹이려고. 약속 깨졌….”


나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가볍게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갑자기 목이 매여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나래야??”

“아,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들어와. 들어와서 저기 좀 누워. 언니 너 좀 비켜봐. 애 좀 눕게. 얘… 그러게 이 추운 날에 옷이 그게 뭐니? 너 그러다 치질걸려~.”

“어….”

“뜨거운 코코아 타 줄까?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지?”

“어…. 고마워요.”


나래는 눈물이 차오르는 눈을 슥슥 닦고는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유나 고모를 지나 뜨끈뜨끈한 전기장판 아랫목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하아…….’


갑자기 몸이 따뜻해지니 저도 모르게 노곤노곤.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나래는 헛! 하고 정신이 들어 몸을 일으켰다.


시간은 8시 10분. 아직까지 두 노처녀는 머리를 맞대고 소곤거리며 스토리 회의 중인 모양이었다. 하여튼 소설 문제만 되면 둘 다 정신을 못 차린다.


“그래서, 그 회장아들은 살려? 죽여?”

“음…. 일단 그만큼까지 분량이라도 써 보고, 살리나 죽이나는 나중에 생각해 봐도 되지 않을까?”

“그럼 일단 보스의 아들이 옥탑 방 아가씨랑 이어지는 거다?”

“그리고 갱생하는 거야. 빛의 세상으로 나오는 거지.”


이야기가 거기서 엔딩이 나는 모양이었다. 두 노처녀는 치열한 논스톱 회의를 마치고, 이제 막 계약서에 서명을 한 대기업 사장단들처럼 악수를 하고 앉았다.


그런 모습을 빤히 보던 나래는 어쩐지 속이 상했다. 자신의 미래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라는 막연한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모. 왜 안 깨웠어요.”

“어, 일어났니? 좀 잤어? 너무 곤해보여서…. 이제 몸 좀 녹았겠지?”

“어. 잘 쉬었어요.”

“그래. 이제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아, 우짜노. 춥겠다. 고모가 택시 불러다 줄게.”

“아니, 괜찮아. 나 오늘은 좀 걷고 싶거든.”

“그래도 그 차림으로 밤 길 걷기엔 세상이 워낙 험해서….”


당시 나래의 솔직한 심정은 차라리 정말 험한 세상의 호된 맛을 봐 버렸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절망을 안고 생존해 왔을 저 못생긴(하지만 착한) 고모에게 그런 티는 내고 싶지 않았다. 현이의 앞에서 눈물을 보여 버린 것을 죽도록 후회하는 마당에, 저 대책 없는 고모들에게까지 또 약한 모습을 보이곤 싶지 않았다.


“괜찮아. 그 험악한 세상, 오늘만 괜찮을 거니까. 너무 걱정 하지마세요.”

“고모는 안 괜찮…….”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야!!”


세상에……. 그렇게 갑자기 고함을 빽 질러버린 나래는 자신의 그 싸가지 없는 태도에 스스로 놀라면서 부랴부랴 도망치듯 신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나래야!”

“미안해요 고모! 나 오늘 좀 그래…. 마법 하려나봐. 오늘은 걷고 싶어. 뛰고 싶어요.”


- 쾅!


원룸의 현관문이 험악하게 닫히는 걸 보며 두 고모인 한글고은과 정유나는 멍하니 입을 뻐끔거렸다.


“애가 요즘 사춘기 타나봐?”


유나가 먼저 입을 열자 글고은도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시집을 안 갔고, 애도 안 낳아봐서 요즘 애들이 몇 살 쯤 사춘기를 겪는지 알지도 못 하고, 자기들은 그 시절에 어땠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싶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글고은은 오빠에게 전화를 해 보지만, 오빠도 올케언니도 어째 이 시간에 전화 받는 사람이 없냐.


***


밤 9시.

다시 싸늘하게 식은 육신을 힘겹게 끌며 자신의 집인 초등학교 앞 아파트 12층까지 계단을 올라간 한나래. 오늘만큼은 그 몸을 어떻게든 혹사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무사히 집에 도착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그런데 집을 향한 계단 복도부터 뭔가 와장창 소리가 들리고 고래고래 고함소리가 들리고….


‘어느 집에서 부부싸움하나?’


하며 현관문 앞에 서니, 어쩐지 그 싸움의 소음이 자신의 집에서 나는 소리 같다? 한 번도 부모님이 그리 큰 싸움을 하신 적이 없기에 나래는 추위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하지만 확인하고 안심하고 싶었다.


‘에이…. 다른 집이겠지.’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나래가 닮기는 누굴 닮아! 어려서부터 까져서 훌러덩 낳고 버린 지 애미를 닮았겠지! 안 그러면 저 어린것이 누굴 닮아서 저렇게 야하게 입고 다녀! 당신! 엄마라면서! 옷장에 치마들 봤어?! 완전 손수건만한 천 쪼가리들 말이야! 이건 뭐 술집여자나 몸 파는 여자가 따로 없잖아! 당신! 나래를 도대체 언제까지 입양아 취급할거야! 진짜 배 아파 낳은 애가 저렇게 다녀도 당신은 오냐오냐만 할 거냐!?”

“아! 하지만 나도 바빴잖아요! 내가 그냥 집에서 노는 사람도 아니잖아! 게다가 애가 저렇게 다니는 것도 한 때야! 사춘기잖아! 저 또래 애들이 한 번씩 저런 차림 해 보는 것도 그 때 아니면 언제 저래 봐. 여자 평생 딱 한 번, 잠깐 지나가는 불량한 시기일 뿐이야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그 잠깐 지나는 동안 어디 발정난 놈이랑 비벼대고, 결국 또 지 같은 새끼 낳고 버리게 놔 둘 거냐고! 당신 정말 경고야!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나래는 이제 우리 애라는 인식 좀 하고 살아! 지 애미 닮아서 생김새까지 그럴 듯 해! 거기다 한창 물오를 나이지! 애 단속 좀 잘 하라고! 온갖 수컷들이 다 침 발라놓게 손 놓고 있지 말고!”

“어우! 당신은 말을 해도 어쩜 그렇게 더럽게 하는 거예요! 오만 정 다 떨어지게!”

“그 더러운 경우를 대물림 할까 무섭다고! 나래는 지 애미같이 못 된 여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야!”

“아유!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좀 해요! 살림 남아나지 않겠어! 아니 화가 나면 난 거지. 왜 집안 물건들을 집어 던지고 그래! 그 전화기는 내 월급으로 산거잖아!”

“XX! 내 돈으로 새거 사! XX! 차라리 좋네! 이제 오늘은 더 이상 전화 안 오겠지! 그 미친 애미X!”


‘…….’


뭐, 뭐지.


나래는 현관에 우두커니 서서 온 몸과 영혼이 마비 된 것 같았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있었다. 싸우고… 있었다.


“…….”


그, 그런데….


나래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고, 저도 모르게 다시 현관문을 열었고, 저도 모르게 푹푹 꺾이는 무릎으로 다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뭐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방금 나, 뭘 들은 거지? 뭘????’


***


밤 10시.

글고은과 유나는 식탁 겸 책상인 테이블 위에 어질러 둔 ‘온갖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유나가 가져온 케이크는 나중엔 숟가락으로 퍼 먹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래가 가져온 케이크는 냉장고에 자리가 없어 베란다 밖 화분 거치대에 놓아두었다. 뒹구는 맥주 캔들을 현관 옆에 줄 세우고, 일부분은 안주로 쓰인 글고은이 아르바이트 하는 편의점의 폐기들은 정말 폐기 되었다.


그렇게 정리를 해 두고 둘은 내일의 일상을 준비하기 위해 각자의 꿈나라로 헤어질 참이었다. 유나는 자전거를 타고 왔으므로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가면 되었다.


“그럼, 또 한 주 열심히 살기.”

“이번 주엔 새로운 역사가 쓰이겠지.”

“로맨스 소설. 사실은 쉬운 거 아니었을까? 그 시대 시대의 유행에 맞는 코드들을 대충 모아놓고 조립만 하면 되는?”

“모르지. 막상 써 보면 머리 뜯을지도.”


글고은은 그렇게 말 하며 유나에게 이미 열린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리는 문에, 밖에 서 있던 누군가가 꺅! 하고 부딪히는 것이었다.


“어! 나래야!!”

“뭐야? 나래가 왜 여기 있어? 아까 집에 간다더니!”

“너 왜 그래? 어머! 얘 몸 찬 것 봐! 너! 무슨 일 있구나!”


버틸 수 없는 충격들로 하루가 온통 얼룩진 나래가 추위와 슬픔으로 파르르 떨며 현관 밖에 서 있었다. 아빠 엄마의 싸우는 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그 밤에 뾰족이 갈 곳이 없었던 것이었다. 이미 추위로 나래의 온 몸은 얼어 있었고 얼굴 전체에 범벅된 눈물콧물은 감각도 없는지, 그대로 각자의 위치에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들어와! 일단 들어와 얘!”


결국 귀가하려던 유나까지 같이 다시 들어와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래에게 서둘러 자신이 입고 있던 패딩점퍼를 입혀 주었다. 그리고 부랴부랴 글고은과 함께 이불장에서 무거운 담요며 오리털 침구들을 마구 끌어내려 나래를 꽁꽁 감쌌다.


나래의 그런 모습에 글고은은 몰라도 유나는 뭔가 기묘한 ‘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래가 사실은 불임부부인 글고은 오빠부부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옛날에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래가 막 입양되어 와서 꼬물거리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들이밀며 글고은이 얼마나 자랑하고 혼자 뿌듯해 했던가.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아 왔던 유나였기에, 사춘기의 그 소녀가 지금 이 밤에 저런 모습으로 오갈 곳 없어 고모 집에 찾아왔다는 것은 뭔가 일이 있어도 큰 일이 난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나래의 경우. 그 또래의 최악의 수를 떠올려 보면 꽤 많았다.

또래 친구의 자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남자친구와의 결별? 혹은 원치 않은 임신? 갑자기 생모가 찾아왔다? 귀가 길에 일진들에게 삥을 뜯겼다든지, 최악의 최악으로는 성폭행을 당했다?


“나래야. 무슨 일이니. 집에 안 갔던 거야? 계속 거기 서 있었니?”

“…….”


나래는 아무 말도 없이 고개만 흔들다 푹- 자리에 누워 버렸다.


그러더니 이제야 가슴속에 꾹꾹 뭉쳐두었던 응어리가 터진 듯.

끅끅 대며 울기 시작했다. 글고은은 어쩔 바를 몰라 했고, 유나는 몹시 걱정되고 궁금하지만 혈육이 아닌(글고은도 혈육은 아니었지만)자신이 지금 그 자리에 계속 있으면 나래의 마음이 편치 않겠다는 마음에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날 글고은이 해 주겠지.


“애 잘 다독거리고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해. 야. 나 그럼 간다. 나오지 마.”


유나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래에게 패딩을 벗어 주었기에 자신은 죽도록 추웠지만, 그 나이에 맞지 않게 늘씬하고 길쭉한 나래에게 짜리몽땅한 고모가 입으라고 옷장을 열어 빌려줄 옷은 없을 것이다. 영하 7도. 얼어 죽지 않으려면 집까지 죽어라 페달을 밟아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결국 콧물을 훌쩍대며 구정에 쓰일 한과 박스를 싸게 된 유나가 글고은에게 전화를 받게 된 것은, 한창 바쁜 작업이 끝나고 점심 식사를 앞 둔 11시 58분이었다.


“언니야. 너 괜찮냐? 어제 패딩도 놓고….”

“훌쩍. 나이는 못 속이나 보더라고. 나도 나래 나이 때였으면 벗고 뛰었어도 감기 따위 안 걸렸을 거야. 그나저나 나래. 걘 무슨 일이래? 영 궁금해서 잠도 안 오더라.”

“하아~ 큰 일 났어.”

“맞춰볼까?”

“하지 마. 이거 장난 아니야. 머저리 같은 오라비 부부가 동네방네 아주 광고를 해 대듯이 싸워댔대. 아주 그냥 대자보를 붙이지 미친X들. 암튼 애가 그걸 들었어. 자기가 입양된 아이라는 걸.”

“으허….”

“게다가 어제 걔, 낮에 남자친구한테 차였대.”

“으어어!!! 늑대한테 물리고 병원 갔는데 호랑이한테 물려 죽은 날이구나.”

“아 몰라. 애 밤새도록 울고 토하고….”

“세상에, 어떡하냐…. 지금은 어쩌고 있어?”

“나올 때 보니 조용히 뻗어 있더라고. 울 기운도 없을 거야 이젠.”


유나는 한숨을 푹 쉬며 목장갑을 벗었다.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마음이 어떨까? 게다가 첫사랑에 차이기까지 한 날. 한창 감수성 예민할 나이에…. 죽고 싶겠다 정말…….


“그래서 오빠한테는 연락했고?”

“내가 연락 할 때는 싸우고 볶느라고 못 받고, 새벽 1시 되니까 지가 나한테 연락을 하더라고. 혹시 나래 거기 있냐고. 이 시간에 집에 들어오질 않는다고 말이야. 그래서 내 세치 혀로 그 영혼 반쯤 죽여 줬어.”

“잘했어. 그래서 나래는, 오빠네가 데리러 온대? 애는 싫어할 텐데.”

“지금은 여기에 그냥 놔두기로 했어. 아직 새로 배정받은 고등학교 입학식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학원도 쉬고, 다 쉬게. 그냥 가만히 놔두기로 했어.”

“그래도 너 아침 알바 뛰는 동안엔 애 돌 볼 사람이 없네?”

“일단 대충 차려놓고 나오긴 했는데, 뭐가 먹힐 상황이 아니긴 하지. 아무튼 애 정신 좀 추스르면 오빠네가 와서 이야기를 좀 하겠다는데, 혼자 놔두니 그것도 좀 걱정이기는 해. 무서운 짓 할까봐.”

“하아…….”


조카 딸 아이 문제로도 이렇게 걱정이 되는데, 제 부모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유나는 자기 또래 다른 친구들의 삶. 결혼하고 애 낳고…. 그 삶이 정말 쉽지 않은 삶이겠다. 새삼 절절히 느꼈다.


“그래서 로맨스 소설은커녕. 밤 새 아무것도 못 했네.”

“글고은. 지금 로맨스가 문제냐.”


하지만 고모들의 걱정과 달리, 오후 1시에 잠에서 깨어난 나래는 오히려 말짱해졌다. 나래는 이를 드드득 갈면서 고모가 덮어준 이불들을 개켰다. 이럴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머리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비관? 비뚤어져? 자살을 생각해? 이딴 일로! 이 내가!?’


한나래는 사실 선천적으로 몹시 강한 아이였다.

생모는 난잡한 여자였을지 모르지만, 생부가 되는 사람이 보통이 아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래는 생김새는 생모를 빼다 박았지만 그 외의 모든 면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더 많이 받은 아이였기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현실로 닥치자 제 피 속에 숨어있던 진정한 힘에 눈을 뜬 것이었다. 그것을 본인은 모르지만….


나래는 당장에 세수부터 하고, 고모가 차려둔 밥을 한 톨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그리고 깨끗하게 설거지도 하고, 고모의 어질러진 원룸을 제 마음을 정리하듯 깨끗이 청소를 해 두고 집을 나섰다. 유나가 빌려준 옷은 잘 개켜 고모의 침대 위에 예쁘게 올려 두었다.


그리곤 당당한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겨울 공기보다 더 차가워진 머릿속으로 다시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생모가 있든 생부가 있든 상관없다. 분명 자신을 키워준 사람은 지금의 부모님이다. 그런 부모님이 간밤에 딸의 야한 옷차림 문제로 심하게 다투었다. 지금부터 집에 가거든 옷장 안에서 끈 나시티와 똥꼬치마들을 모두 꺼내서 모조리 가위로 다 잘라 버릴 참이다.


그리고 건전한 옷차림으로 부모님께 당당하게 요구할 것이다. 생모를 한 번 만나게 해 달라고. 울고 매달리고 그런 짓 할 생각 없다고. 그냥 그 면짝이나 한 번 보고 싶다고. 또 가능하면 아주 그냥 따끔하게 혼찌검을 내 줄 것이라고.


‘출생의 비밀? 하! 그게 뭐? 뭐 어쩌라고?’


집에 돌아온 나래.

부모님은 두 분 다 일터로 나가시고 안계시다.

텅 빈 집에서 나래는 우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야한 옷. 야한 책. 한 번도 피워본 적은 없지만 그냥 신기해서 몰래 숨겨 두었던 담배. 그 모든 걸 다 꺼내놓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왔다.


그리곤 야한 옷들은 큰 가위로 썩둑썩둑 잘라서 버렸고, 야한 소설과 만화책들은 모두 좍좍 찢고 뜯어서 버렸다. 담배도 모두 가위로 잘라서 버렸다. 마지막으로 지난날부터 계속 입고 있었던 똥꼬 치마도 벗어서 찢어 버렸다. 그것이 그동안 모아왔던 용돈들의 말로였다. 하지만 속상하거나 아깝지 않았다. 거꾸로 속이 다 후련했다.


그리곤 곧장 욕실에 가서 뜨거운 물을 틀고 몸을 씻었다. 머리도 박박 감았다. 그러면서 욕실 거울이 비친 자신의 모습,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 한 번도 의심해 볼 생각을 못 했을까. 아빠엄마와 난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도저히 아빠 가문에서 나올 얼굴이 아닌데.


나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사실이지. 자신은 너무나 예뻤다. 오죽이 미스 코리아 뺨친다는 그 고모의 선배 미모가 덤덤하게 보일정도였으니까. 매일 보는 자신의 모습이 익숙해져 있으니, 어지간한 사람들은 모두 오징어로 보일 밖에. 그렇다면 생모도 그렇게 예뻤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모는 그 외모로 기껏……. 재미나 보고, 생겨버린 자신은 그냥 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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