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_D급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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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쪽 사람 아니지? 어디서 왔어?”
“···네?”
순간 심장이 요동쳤지만, 이호선 이사의 표정만 봐서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저 서울 사람인데요?”
“···서울 사람 맞아? 약간 사투리가 섞여 있는 거 같은데?”
“전혀요.”
이호선 이사는 피식 웃으며 일어났지만, 가슴이 철렁한 건 티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또 보자고.”
종잡기가 힘들다고 해야할지 자유롭다고 해야할지. 분명 뭔가 알고 물어본 느낌이 있었는데, 실없는 소리나 하고는 그냥 돌아가버리다니.
***
며칠간 진행했던 시나리오와 보상들을 정리해보니 대충 돌아가는 흐름이 눈에 보였다.
‘시나리오’를 완료하면 레벨업과 코인 보상, 추가능력치 +1.
‘퀘스트’는 의뢰인이 걸어둔 보상에 추가능력치 +1.
그 외에 보스급은 잡기만 해도 추가 능력치 +1.
신도림 역의 그 오타쿠도 약해서 그렇지 보스는 보스였다. 미끼를 풀어둔 장본인이었으니까.
[시나리오 : 재주는 곰이 넘고]
: 서울숲에 서식하는 ‘자이언트 흑곰’ 처치
[보상]
: 500 코인
: 추가 능력치 +1
[실패 시]
: ‘화신의 자격’ 회수
‘왔구나!’
자이언트 흑곰은 ‘저렙 분쇄기’라 불릴 정도로 악명이 높은 몬스터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된 F급이나, 이제 막 성장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E급에게도.
‘이걸 내가 직접 잡게 될 줄이야.’
서무과에서 근무할 때야 귀가 닳도록 듣던 몬스터였지만 우습게도 이제는 내가 더 상위 포식자다.
+
“쿠오오-”
서울숲 입구에서 고작 몇 발짝 안으로 걸어들어왔을 뿐인데 우거진 나무숲 안쪽으로 거대한 형체들이 눈에 띄었다. 수북하고 새까만 털에 얼굴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인.
“쿠오오오!”
냄새를 맡았는지 가까운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흑곰 한 마리가 두 다리로 일어선 채 몸을 흔들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본 사이즈가 커서인지 얼굴만한 발톱의 크기도 무시무시했지만, 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니에 물리면 절대 아프다 정도로 끝나지는 않겠다. 팔다리 한 두개 내어주고 목숨이라도 건지면 다행.
“쿠워어어어!”
두두두두-
흑곰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땅을 박차며 내 쪽으로 빠르게 질주해 왔다.
‘누가 곰이 느리다고 했냐.’
탕-
타앙!
퍼석.
그래도 총 앞엔 장사 없다고 징표와 함께 미간에 총탄을 박아 넣으니 순식간에 머리통이 터져나가며 그 거대한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런 게 무리 지어 덤벼든다고 생각하면···.’
곰이 늑대처럼 무리 짓는 동물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빠르게 자이언트 흑곰만 잡고 나갔으면 좋겠는데.
쿠쿠쿠쿠-
‘이 정도 흔들림은···, 혹시 자이언트 흑곰인가?’
지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흔들림. 단순히 뛰어오는 것만으로 이 정도의 진동이라면 대체 얼마나 큰 놈일지.
“쿠워어어어어-!”
숲에서 빠르게 튀어나온 흑곰은 조금 전의 상황을 리플레이 하듯 두발로 서서 일어나 몸을 흔들더니, 무시무시한 몸짓으로 위협했다.
탕! 탕-!
털썩.
‘···아까 그놈인 줄 알았네.’
처음 죽인 놈보다 조금 더 크긴 했지만 ‘자이언트’라는 이름이 붙을만큼 큰 차이는 아니었다.
‘자이언트는 얼마나 크다는 거야?’
이름대로라면 분명 보이고도 남았을 텐데 이상하게 눈에 띄질 않는다. 상태창의 내비게이션은 목표지점만 알려줄 뿐, 도착해서 특정 개체를 찾는 건 순전히 개인의 몫이니까.
정신을 집중한 채 주변에 느껴지는 큰 마력을 찾아다녔다. 아직 마력을 정확하게 느낀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다르다고 느껴지는 마력이 하나.
‘···이건가?'
아까 사냥을 하면서도 몇 번 시야에 들어왔던 ‘검은 동산’이었다. 검은 풀이 무성해서 주변의 푸릇푸릇한 나무들과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깨워야 되나? 도망쳐?’
꿈틀.
‘지금 분명 움직였는데···.’
단순히 잠에 빠져있다 꿈틀한 걸지도 모르지만, 이 검은 동산이 자이언트 흑곰이 맞는지 확인을 해야한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위험하다.
쉬이익-
“쿠오오오-!”
앞발을 휘두르는 속도를 보니 일반 헌터라면 이미 죽고도 남았다.
‘무의식적으로 뛰어오르긴 했는데.’
가볍게 점프해 흑곰의 앞발을 피하려 했지만, 높아진 신체능력 덕분인지 흑곰이 작은 점으로 보일만큼 높게 뛰어버렸다.
‘이래서 고층 아파트가 더 비싸구나.’
공중에서 내려다본 서울숲의 전경은 그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도시의 숲’ 그 자체로의 절제된 세련미를 노출하고 있었다.
철컥.
공중에서의 사격은 처음이어서인지 총구가 심하게 흔들린다. 그렇다고 그냥 착지하자니 저 거대한 놈이 가만히 기다려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래도 견제 한발 정도는 넣어줘야겠지?’
타앙-!
“쿠워어어어-“
별다른 대미지는 주지 못하고 주둥이 부근에 스치긴 했지만 징표는 제대로 박혔다. 무사히 발이 땅에 닿자마자 시작된 사냥의 시간.
탕-
탕-!
징표가 박힌 건 좋았지만, 사격장의 더미와는 전혀 다른 움직임에 헤드샷을 시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크기가 있다보니 몇 발 더 맞는다고 쓰러질 것 같지도 않고.
“쿠어어어-”
쉬이익-
퍽!
반격 없이 피하기만 하는 더미와는 다르게, 눈앞의 자이언트 흑곰은 광폭하게 달려들며 나를 죽이려 한다.
두두두-
퍽-
거칠게 달려들어 내 배를 후려갈기고 넘어진 몸 위에 올라탄 자이언트 흑곰은 사냥에 성공한 맹수처럼 발톱을 세운 앞발을 쾅쾅거리며 바닥에 깔린 내 가슴팍을 거세게 내리쳤다.
퍼억-
쾅! 쾅! 쾅!
“쿨럭!”
생명이 위급해질 정도의 대미지는 아니었지만 충격은 그대로 전해져 왔다.
‘오래 끌면 위험하다.’
탕!
타앙-
머리통이 안되면 거대한 몸뚱이라도 맞춰 데미지를 줘야한다.
타다당-
탕! 탕!
자이언트 흑곰은 총탄이 박힌 자리에서 푸른 연기와 함께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고통은 전혀 없어보였다.
‘차라리···.’
조용히 검지에 끼고 있던 반지를 중지로 옮겨 끼웠다. 이런 밀착 상태에서 총을 쏘다가 떨어뜨리거나 빼앗긴다면 그 뒤는 답도 없고, 차라리 신체 능력치와 반지를 믿고 육탄전으로 가는게 현명할지도.
“쿠오오오?”
다 잡은 줄 알았던 먹잇감이 일어서니 놈은 더 다가오지 않고 마주선 채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쉬이익-
총이 안 먹힌다면 차라리 직접 간다. 반지를 낀 오른손 중지를 둥글게 말아쥔 채 빠르게 자이언트 흑곰의 얼굴 바로 앞까지 대시.
‘···영점 잡고.’
코 앞에 있는 흑곰의 미간에 손가락을 내밀었다.
‘조준.’
정확히 눈 사이 미간을 노린 채,
‘격발!’
온 힘을 중지로 터뜨렸다.
딱!
“쿠어어어어-”
고통스런 얼굴로 포효하는 걸 보니 이번 딱밤은 확실히 대미지가 들어갔다. 99(-1)의 근력과 징표로 인한 대미지 2배, 거기다 손가락 근력이 대폭 상승되는 반지까지.
‘이거 괜찮은데? 근딜로 전향해 봐?’
쉬이익-
퍽! 퍽!
딱밤을 경계하듯 두 발로 일어선 자이언트 흑곰은 쥐새끼를 잡듯 양 손으로 내리쳤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좀처럼 딱밤을 날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잡지···?’
더 이상의 딱밤은 힘들어 보이고 머리통을 맞추기엔 아직 사격 실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쏴도 맞는 저 거대한 몸뚱이는 맞혀봤자 의미도 없고.
‘···아!’
[능력치]
: 체력 Lv.99, 근력 Lv.99(-1), 민첩 Lv.99, 마력 Lv.54
[추가 능력치 : 10]
‘이럴 때 쓰려고 모아둔거지.’
후우우웅-
전신을 휘몰아치는 마력이 강해지며 숨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연이어 밀려오는 현기증이 아무래도 마력을 한번에 올리면 몸에 무리가 가는 모양.
[능력치]
: 체력 Lv.99, 근력 Lv.99(-1), 민첩 Lv.99, 마력 Lv.64
[추가 능력치 : 0]
모아둔 10개의 능력치를 지체 없이 마력에 때려넣었다. 순식간에 올라선 D급 마력.
탕! 탕!
“쿠어어어-!”
효과가 있다. 맞은 부위에 피만 흘리던 놈이었는데, 한발 한발이 샷건에 맞은 것처럼 들어가는 대미지가 눈에 보일 정도였고 빗맞은 곳은 빗맞은대로 살점이 뜯겨나갔다.
타앙-
“그어어어···.”
털썩.
‘후···.’
[추가 능력치 +1을 획득합니다.]
확실히 대미지가 들어가니. 움직임이 둔해져 머리통을 맞히기가 훨씬 수월하다.
<시나리오 : 재주는 곰이 넘고>
: 서울숲에 서식하는 ‘자이언트 흑곰’ 처치
: [완료]
[보상]
: 500 코인
: 추가 능력치+1
[레벨이 올랐습니다. Lv.6 > Lv.7]
[마력이 상승합니다. Lv.53 > Lv.64]
[50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전용 특성 : 돈이 최고! Lv.1 효과가 발동됩니다.]
[500 코인을 추가 획득했습니다.]
[추가 능력치 +1을 획득했습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마력을 올리지 않고 남겨뒀었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강한 적도 없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반대였어.’
하지만 능력치를 올리지 않아 효율성이 더 떨어진 느낌이다. 어차피 올릴 수 있는 능력치도 마력밖에 안남은 이상 여분은 최대 한 두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마력에 올인.
[개인 정보]
이름 : 임시원
나이 : 28세
등급 : F
레벨 : Lv.7
전용 특성 : [돈이 최고! Lv.1]
전용 스킬 : [차원 상점 Lv.1]
권능 : [탈태 Lv.1], [감각 Lv.1]
[능력치]
: 체력 Lv.99, 근력 Lv.99(-1), 민첩 Lv.99, 마력 Lv.66
[추가 능력치 : 0]
[보유 코인 : 2,000]
‘고작 D급인데 이 정도라니. A급들은 얼마나 강한거야?’
어차피 S급은 불가, 일반 헌터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은 A급이다. 주변 사람 중 A급에 위치한 헌터는 이호선 이사 뿐. 협회장과 함께 1세대 헌터 시대를 열었다는 최고의 길드이자 공격대인 ‘개벽’의 주축 멤버라 생각하니.
‘비벼볼 수 있는 급이 아니었구나.’
친밀도가 좀 생겨서 그런지 특별히 강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비교해보니 아직 까마득한 윗 등급이었네.
***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보낸분 : 채성훈 중위]
잠시 잊고 있었다. 테러범을 잡은 보상. 당연히 인벤토리가 없을거라 생각하고 택배로 보낸 모양인데, 택배도 상태창과 연동이 되어 있을 줄이야. 빠르게 상자를 깐 뒤 언박싱을 시작했다.
[705 명예훈장을 획득했습니다.]
[705 명예훈장]
: 군경들의 평판이 대폭 증가합니다.
: 군경용 아이템의 효과가 2배 상승합니다.
등급 : A
분류 : 장식품
효과 : X
[특수 효과]
: 자동으로 효과가 적용됩니다.
‘평판은 뭐 굳이···.’
군경과 마주칠 일도 없고, 군경에게 잘 보여서 득 될 것도 없다. 권총을 군경템으로 봐준다면 모를까.
‘하나가 더 있네?’
훈장을 받아 들뜬 기분도 잠시. 미비한 효과에 이내 마음이 식어버렸고, 훈장과 함께 들어있는 작은 상자를 오픈했다.
[‘용감한 남자의 속옷’을 획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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