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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창이 살아있다.

[전용 특성 : 돈이 최고!]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이루오
작품등록일 :
2024.06.02 10:23
최근연재일 :
2024.06.29 19:00
연재수 :
3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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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47
추천수 :
562
글자수 :
202,156

작성
24.06.0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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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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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글자
13쪽

1화_헌터 세계

DUMMY

[눈을 뜬 곳은 헌터 세계였다.]



촉촉한 밤공기를 적시며 코 끝에 스며드는 초록색 풀 내음, 고요한 적막을 거부하듯 가로등 뒤의 어둑진 숲에서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한창이었고, 산속인지 도심인지도 모를 그 도로 한복판에 나는 앉아있었다.


‘여기가···, 집은 아닌 것 같은데.’


한번씩 만취해 필름이 끊기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길바닥에서 눈을 뜬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부스럭-



“크르르르···.”


하지만 원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인지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늑대···?’


분명 생김새는 늑대였지만 어릴 적 사파리에서 봤던 호랑이나 사자보다도 몸집은 훨씬 컸다. 진득한 푸른색의 갈기는 목 주변을 풍성하게 뒤덮고 있었고, 벌어진 주둥이 사이로 침 한방울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놈은 먹잇감을 노려보듯 연신 코를 씰룩거리며 조금씩 거리를 좁혀왔다.


“컹컹!”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드는 놈에게 도망치긴 이미 글렀다. 살아남으려면···, 어쩌지?



쉬익-


챙-!



“이봐요! 몬스터가 달려오는 데 죽은 척한다고 됩니까? 진짜 죽고 싶어요?”

“누구···?”


타이밍 좋게 등장해 늑대를 막아선 남자는 단칼에 거대한 늑대의 머리를 분리시켰다.


“깽-!”


목이 잘린 늑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남자는 무덤덤하게 칼을 넣은 뒤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 통제구역인 거 몰라요? 일반인이 여긴 왜 들어온 겁니까?”

“통제구역이요?”


주변에 카메라가 한 대도 없는 걸 보면 영화 촬영은 아닌 모양인데.


“잠옷 입고 여기까지 나왔어요? 수상한데? 신분증 좀 봅시다.”


영화 촬영도 아니면서 칼을 들고 동물을 살해하는 게 더 수상하다.


“제 신분증요? ···누구신데요?”

“헌터 협회 지원팀 ‘차승진’입니다.”


···혹시 헌터 협회의 다른 뜻이 있는지 머릿속을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양손은 신분증을 찾기 위해 온몸을 뒤적거렸다.


“신분증을 안 가지고 나왔는데요.”


자다 깨보니 길바닥 위. 잠옷까지 갈아입고 잠들었는데 신분증을 가지고 있을리가 없지.


“수상한데? 부랑자치고는 옷도 깨끗하고.”


···잠시간의 정적.


“네, 치안대죠? 헌터 협회 차승진 주임이라고 합니다.”


허공에 대고 통화를 시작하는 차승진은 핸드폰을 들고 있기는 커녕 귓구멍도 비어있었다.


“남산 2구역 부랑자 발견, 출동 부탁드립니다. 네, 여기 위치가···.”


잠시 더 이어지던 통화가 끝났는지 차승진의 시선이 다시 내 쪽으로 향했고,


“치안대 금방 올 테니 좀 기다리세요.”

“···혹시 전화기 좀 쓸 수 있을까요?”


엄마든 아빠든 일단 전화를 해봐야 될 것 같은데.


“전화기? 헌터라는 말 못 들었습니까? 헌터가 전화기를 왜 들고 다녀요?”


역시 불안하다, 무기도 들고 있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빠르게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던 차.


“실례합니다. 부랑자 신고 받고 왔는데요.”

“수고 많으십니다. 여기 이분입니다.”


치안대에서 왔다는 두 거구의 시선은 차승진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향했고, 도주를 우려한건지 앞뒤를 포위하며 천천히 내쪽으로 다가섰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네! 수고 하십시오!”


차승진은 볼 일이 끝났는지 위 쪽에 보이는 서울타워 방향으로 이동했고, 치안대원들은 신분확인이 안되는 나를 빠르게 붙잡아 연행했다.




+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온 이곳, ‘쉼터’는 몬스터에게 가족이나 재산을 잃고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나, 뭔가에 큰 충격을 받고 기억을 잃은 사람들, 혹은 스스로 부랑자가 되길 희망한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부랑자 쉼터’.


자의로, 혹은 타의로 들어오는 국가 지원 시설이었지만 최대 거주 가능 기간은 정확히 2년.


쉼터에서 2년을 의미 없이 보내는 것도, 열심히 돈을 모아두는 것도 각자의 자유지만 2년 뒤에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


“임시원 님, 이번 달에 쉼터 이용 종료되는 거 알고 계시죠?”

“네.”


방문이 열리고 들려오는 통보. 이모뻘 되시는 분이지만 얼굴만 몇 번 봤을 뿐 이름도 모른다. 어차피 또 금세 바뀔 테니까.


‘자원봉사가 다 그렇지.’


그래도 2년간 쉼터에 살면서 직장도 구해 꽤 열심히 살았고, 모아둔 잔액은 십만 단위를 빼고도 3,200만원.


처음 이쪽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땐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지만 적응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꿈도 아니고 몰래카메라도 아니라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는 자연스레 순응하며 살게 됐다고 해야 하나.


특히 헌터 세계에 관해서는 고3 때 이상으로 열심히 파고들었는데,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깊게 빠져든 건 사실이라 각성이니 마력이니 하는 소리는 항상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보스 레이드 영상이라도 보고 나면 벅차오른 감정을 애써 진정시켜야했다.


‘···나도 각성하고 싶다.’



[누구나 헌터를 꿈꾸지만 아무나 될 수는 없다.]



헌터 협회의 슬로건을 떠올리니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은 더 깊어졌지만, 간절함만으로 할 수 있는 각성이었다면 헌터의 숫자가 지금보다 몇 배는 많았을거다.


“2천에 50? 그 정도면 요새 단칸방도 힘들어. 보증금을 4~5천까지 올리시든가, 월세를 7~80까지는 봐야지.”


모아둔 예산과 빡빡한 급여를 생각하면 쉼터 종료 전에 집을 구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좀 올려서 찾아봐 줘?”

“아뇨, 생각 좀 해볼게요.”


인상 고약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는 씁쓸한 미소를 흘려보냈다. 적당히 웃어보이면 눈치껏 더는 귀찮게 하지 않으니까.


“총각, 잠깐만!”


간혹 예외의 경우가 있기도 한데.


“다른 사람이랑 같이 쓰는 곳은 어때? 2인실이긴 한데 40에 40이야, 보증금 40에 월세 40.”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도 좋겠지만 쉼터를 나와서까지 모르는 사람과 한 방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이용 종료까지 몇 주 남았으니 못 구하면 그 때 들어가도 늦지 않고.


“생각해보고 연락 드릴게요.”

“이 정도 조건이 어딨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니까 그러네.”

“연락 드릴게요.”


요즘것들은 어떻다는 잔소리를 뒤로한 채 터덜터덜 돌아온 곳은 결국 쉼터. 이러니저러니 해도 갈 곳은 결국 여기뿐이다.


“집은 좀 찾아봤어요?”

“아, 원장님.”


이 곳 사람들은 마주쳐도 서로 인사조차 없다보니 그나마 대화라도 하는 건 원장님뿐.


“시원씨는 매사에 에너지가 넘쳐서 좋았는데. 아쉽네, 벌써 2년이라니.”


쉼터에서는 거의 누워있거나 잠만 잤는데 에너지가 넘치다니, 인사치레가 과하다.


“처음 오셨을 때 겁에 질려있던 그 표정이 아직도 생생한데.”

“제가요? 잘못 보셨겠죠, 전 겁이 없는 사람인데요?”

“우후후, 그런가? 엄마를 잃어버려 울기 직전의 아이 같은 표정이었죠.”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엉켜버린 첫 날의 기억.


“그래도 다행이에요, 빠르게 적응하셔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살아남으려면 적응해야죠.”


하지만 머릿속 혼란이 가라앉기도 전 알게 된 헌터들의 존재. 충격은 또 다른 충격으로 상쇄한다던가, 게임 속 보스 공략인 줄 알았던 영상이 실제라는 걸 알았을 때는, 다른 세계로 넘어와버렸다는 충격을 잠시나마 잊고 영상에 몰입할 수 있었다.


“요즘도 헌터들 영상 찾아봐요?”


헌터의 존재를 알게 된 후로는 관련 정보와 영상들을 찾아보며 현실을 잊어갔고, 자는 것도 잊을 만큼 열심히 덕질을 한 덕에, 아마 어지간한 헌터들보다 이론은 훨씬 빠삭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네, 가끔요.”


난 헌터 세계를 동경했고,


“직장은? 계속 협회로?”

“그래야죠.”


성공한 덕후였다.




***




“시원아, 올해 전반기 각성자 리스트 정리 해뒀지?”

“네, 뽑아 뒀습니다. 이쪽은 분기별로 따로 정리해 둔거구요.”

“오, 역시 우리 임시원이 일처리 하나는 깔끔해! 그 머리도 좀 깔끔하게 다듬으면 안되겠냐?”


귀를 덮는 길이의 장발이긴 하지만 웨이브도 하고 나름대로 신경 쓰는 건데.


“묶을까요?”

“자르라고, 인마! 나 다니는 미용실 소개해줘?”

“···거기 아직 안 망했어요?”


사수를 잘 만나야 회사 생활이 편해진다는데 원하는 곳에서 유쾌한 사수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이래 봬도 꽤나 즐거운 일이다. 다행히 김재우 과장이 바로 그런 사수였고, 부하직원과 격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2년이나 얘기했으면 자를 때 안됐냐?”

“2년은 더 하셔야죠.”

“2달로 하자.”

“···1년?”


쉼터에 정착한 뒤, 부랑자 채용 정책인 ‘파민 전형’으로 운 좋게 헌터 협회에 취직을 한 지 올해로 2년째다. 협회라고는 해도 서무과에서 하는 일은 온갖 허드렛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협회 내에서 비각성자가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곳.


“김과장님, 신규 던전 업데이트 하셨어요?”

“아, 차주임님. 이틀 전에 추가된 곳이 있어서 그거까지 추가해서 정리하는 중입니다.”

“거 말씀드린 지가 언젠데 아직도, 빨리빨리 좀 합시다.”

“예, 죄송합니다.”


지원팀 차승진 주임. 이 세계로 넘어 온 첫날 마주친 쌀쌀맞은 그 헌터였다.


24살의 젊은 나이에 D급을 달성. 등급을 한 단계 올리는데는 평균 3~4년 정도 걸린다는 걸 감안하면 꽤나 가파른 속도의 성장이다. 아마 길드에 들어갔다면 더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쩐 일인지 본인은 협회를 고수하는 모양.


“임시원씨.”

“네.”


24살이면서 28살인 나를 보는 시선은 명백한 하대였지만 그 또한 대부분의 헌터들이 비각성자들을 대하는 그것의 연장선이었다.


“사람을 보면 인사 좀 합시다.”

“네, 차주임님. 안녕히 가십시오.”


차승진의 안경 너머 보이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응시하며 감정 없는 대답을 던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이었고, 얼굴에 스쳐가는 미세한 경련을 보는 것이 내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승리감이었다.


“큭큭큭.”


차승진의 모습이 사라지기 무섭게 김재우 과장이 다가와 헤드락을 걸었다.


“은근히 사람 약 올리는 재주가 있지?”

“과장님 부사수가 어디 가겠습니까?”


김재우 과장은 꽤나 통쾌한 모양인지,


“아까 눈 밑에 경련 이는 거 봤냐? 큭큭.”

“마그네슘 부족 아닐까요?”

“으하하, 하여간 말은. 내려가자, 커피 한잔하게.”


아무리 헌터들이 목숨 걸고 몬스터를 처리한다지만 그렇다고 비각성자를 무시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전 세계에 마력이 퍼진 건 이제 고작 10년 남짓, 아직 그들의 우월감을 억제할 방법이 없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어디는 돈, 어디는 힘.’


원래 세계에서는 돈도, 이쪽 세계에서는 힘도 없는 일개 하층민은 누군가 이 현실을 대신 해결해주길 바라는 것 뿐 직접적인 해결책은 없었다.




+




‘부모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려나···?’


이따금씩 마음이 답답할 때면 처음 눈을 떴던 남산을 찾곤 한다. 산책이라도 한번 하고 나면 또 며칠을 살아갈 힘이 생기니까.


‘빨간색이네. 근처에 게이트라도 열리는 건 아니겠지?’


서울타워의 색깔은 서울 시내 마력의 농도를 나타낸다. 파랑-초록-노랑-빨강 순으로 빨강이면 마력의 농도가 가장 짙어져 시내 어딘가에 던전이 열릴 확률이 높아지는 것.


‘내가 왔을 땐 무슨 색이었더라···?’


그땐 타워 색깔의 의미도 몰랐지만, 가끔 의미 없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띠링-!



갑작스레 귓가를 울리는 알림음에 당황한 것도 잠시, 이어서 눈에 보이는 상태창에 정신을 빼앗겼다.



[‘화신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동기화’를 진행하시겠습니까?]

[YES / NO]



‘···상태창?’


눈 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확인할수록 점점 빨라지는 심장 소리.


‘진짜 각성인건가?’


차오르는 흥분을 억누르며 천천히 [YES]로 손을 뻗었다.


“······.”


갈 곳 잃은 손은 춤을 추듯 허공을 통과했고, 민망함에 주변을 살폈지만 다행히 주변에 사람은 없었다.


“크흠, 예···, 예스.”


괜히 목을 한 번 가다듬은 뒤, 동의의 뜻을 알렸다.



[‘동기화’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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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_각성 +1 24.06.02 1,806 27 12쪽
» 1화_헌터 세계 +2 24.06.02 2,049 2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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