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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이세계에서도 김치를 먹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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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23.08.13 11:06
최근연재일 :
2023.08.19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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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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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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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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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01화. 김치가 없었더라면.

DUMMY

“끄아아아아악!!”






남자의 괴성. 그것은 쫓기는 것도 아니요, 힘든 것도 아니리라. 다만 괴로워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용사님은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계신 걸까요?”






소녀. 귀여운 눈을 하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소리 치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남자는 소리치며 난리를 피우고 있다. 마당을 가득 채우는 그의 절규에도, 세상은 아무 대답이 없다. 시골 마을 외딴 집 마당에서 소리쳐봐야, 뭐 어떤 다른 일이 생길 리 없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겠지, 세상 무엇보다 사무치는 게 그리움이거든.”






텁수룩하게 지저분한 수염이 난 중년 남성이 대답한다. 아마 귀여운 소녀의 아버지인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녀에게 말해준다.






“아빠도 젊었을 때 군대에 있었다고 했죠?”


“2차 원정군 시절이었지. 나도 저렇게 소리 지르며 미쳐버리고 싶었단다. 군대라서 그럴 수 없었지만.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고향 땅 맑은 물과 이 바람이 어찌나 그립던지. 안나, 잘 기억하렴. 여기에서의 평범한 하루가, 어떤 때엔 정말 너무나 그리울 수 있다는 걸.”


“네 아빠.”






두 시골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저 아침 일을 하러 간다. 소리 지르는 남자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김치이이이이이~~~!!!”















///















내 이름은 김민준.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는 흔한 남자다. 흔하게 고등학교 때 공기처럼 지내다가, 흔하게 대학교 가고, 흔하게 군대도 갔다오고 흔하게 복학해서 졸업하고 취업 준비 하다가 흔하게 이세계에 다시 태어나게 된, 그런 어디에나 있는 흔한 남자다.







······되게 흔하다 너?







어쨌든, 서두를 길게 하면 지루하니 나는 대충 이세계에 오게 되었다. 전생이라고 하면 진짜 다시 태어나는 거겠지만, 나는 그런 개념보다는 아예 그냥 이쪽 세계로 ‘오게 된' 케이스 같다.




어째서인지 중세 유럽 풍 세계이지만 다들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고, 분명 서양인이지만 유창하게 한국어를 하고 있는 사람들. 뭐 대충 그런 세계관인 듯하니 그럭저럭 넘어가려 한다.






“용사님, 괜찮아지셨어요?”


“어어. 응. 도와주러 왔어.”






아줌마 같은 두건을 살짝 올려 나를 쳐다보며 방긋 웃는 여자아이. 예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평범한 외모. 하지만 그런 수수한 얼굴이 오히려 귀여움을 자아내는 이 아이는 나를 처음 발견한 여자아이, 안나. 너무 착한 시골 처녀애다.






“힘들 때도 있는 법이지. 조금 쉬도록 해.”


“아유, 얻어 먹는 처지인데 열심히 일해야죠.”






옆에서 한 마디 거드는 아저씨는 안나의 아버지, 애그너 씨. 힘 세고 강인한 전형적인 중세 농부 아저씨다. 아주아주 착해서, 식객인 내 처지를 잘 봐주는 좋은 분이다. 지금도 내 개짓거리(?)를 이해해주고 쉬라고 하신다. 하지만 어쨌든, 밥 얻어먹는 처지에 식충이 될 수는 없기에, 열심히 수확을 돕는다.






“그런데 민충. 아까 뭐라고 하면서 소리를 질렀던 거지? 민츈 세계의 말 같았는데. 킴······ 킴취이?”


“아 네 그게······.”






다 좋은데, 어째서인지 이 곳 사람들은 ‘진짜 한국어'를 잘 발음하지 못 한다. 번역 어플(?) 같은 게 실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걸까. 애그너 씨는 내 이름도 ‘민충'이라고 발음하고, ‘김치'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 한다. 그래도 뭐, 알아 들을 수는 있으니 적당히 대답한다.






“먹고 싶은 게 있어서요.”


“허어. 먹고 싶은 거? 무엇인가. 우리집이 시골집이라 손님 대접이 변변찮긴 하다만······.”


“아뇨, 그런 말이 아닙니다. 대접해주시는 건 정말정말 감사히 먹고 있습니다.”






얻어 먹는 처지에 어찌 감히 싫다 나쁘다 할 말이 있겠는가. 거둬줘서 먹을 걸 주는 것만으로 감사히 먹어야지. 애그너 씨는 착한 분이라, 그 와중에 내가 먹고 싶다는 걸 눈을 빛내며 묻는다. 진짜 궁금해하는 눈치. 뭔지 알게 되면 사다라도 줄 것 같은 분위기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저희 고향 음식이······ 먹고 싶어서요.”


“아아. 그렇지. 나도 2차 원정군 시절 고향 음식이 어찌나 먹고 싶었는지. 군대에서는 늘 거친 음식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그나마도 없어서 못 먹었지만.”






애그너 씨는 다 좋은데, 무슨 얘기를 해도 다 군대 얘기로 빠지는 단점이 있다. 뭐 그건 우리네 아저씨들이랑 비슷해서 좀 공감하는 바가 있긴 하지만. 그걸로 친해지기도 했다. 내가 군대 갔다왔다는 말에 굉장히 좋아했거든, 애그너 씨.






“그래서, 자네 고향 음식은 어떤 것인가? 고기 요리인가? 아니면 채소?”


“채소죠. 아~ 말하니까 더 먹고 싶은데요.”


“호오. 엄청 맛있는 것인가보군.”






원래 못 먹을 때 더 먹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간사한 마음이 아니던가. 애그너 씨도 일하면서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는지 계속 물어본다.






“저도 궁금해요 민츙 씨! 제가 만들어 드릴까요?!”


“그······ 안나는 못 만들어.”


“왜, 왜요! 저도 시집 가려고 요리 열심히 배우고 있다구요!”






안나는 귀엽게 끼어든다. 나는 체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나는 볼을 부풀리며 귀엽게 말한다. 만들어 준다는 그 마음은 참 고맙지만. 안 되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김치'라고 합니다.”


“킴취이?”


“김치. 약하게. 김. 치. KIm-Chi.”


“긤, 추이.”






아니 왜 잘 말하다가 김치만 말하라고 하면 잘 못 말하는데. 뭔가 자존심이 상해서 애그너 씨와 안나에게 김치 발음 강의를 한동안 계속했다.







뭔가 김치맨이 된 기분인데.











사실 나는, 원래 한국에 살 때엔 그다지 김치를 먹지 않는 흔한 젊은 세대였다. 김치보다는 코울슬로, 샐러드, 버*킹, 서*웨이 이런 게 더 좋은 애였지. Young한데요? 완전 MZ한데요?




뭐 그렇다고 아주 안 먹는 건 아니고. 어쨌든 급식이나 식당이나 이런 데에서 항상 나오는 게 김치니까. 그래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있으니까 있는 느낌. 특히 난 라면이나 국수 등과 김치를 함께 먹지 않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순수한 면의 맛을 즐기고 싶어서. 김치랑 먹으면 김치 맛만 난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경우도 있긴 했는데 어쨌든.







근데 이게, 이세계에 와서 못 먹으니까 미치도록 생각난다. 김치가.







이세계 음식을 다 먹어본 건 아니지만, 뭐 그럭저럭 맛있다. 시골 음식이라 조금 소박하긴 하지만 충분히 맛있다. 서양 느낌이라 다소 채소가 모자란 느낌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 좋은데, 다 좋은데······! 김치가 없잖아!!







“김치는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오오.”


“물에 씻은 다음.”


“오?!”


“고춧가루와 마늘, 생강, 새우젓, 소금 등등등 여러 재료를 섞은 양념에 버무려서.”


“오우······.”


“그거를 3~6개월 정도 발효시킨 뒤 먹는 절임 요리예요.”


“오오······ 무척 어려운 요리군. 그렇게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고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드는 요리라면 분명 산해진미일 게 분명해.”






사실 나도 잘 모른다. 그냥 대충 알고 있는 상식으로 말한 건데. 한국인이라고 모두 김치 만드는 법을 아는 건 아니니까. 애그너 씨와 안나는 무척 흥미가 있는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듣는다. 아, 말하다보니까 더 먹고 싶어졌다.






“집에 가서 만들어볼까.”


“비슷한 재료가 있나요?!”


“민충이 말한 어려운 재료들은 꽤 비싼 것들이라 없지만, 대체할만한 것으로 만들어볼 수 있지. 이래봬도 내가 귀족 요리 베껴서 만드는 걸 꽤 잘 하거든.”


“저도 요리 잘 해요!!”






이곳은 중세 배경의 이세계. 현대 한국에서 당연하게 먹을 수 있던 값싼 물건들이, 여기서는 무척 비싼 것이 된다. 특히나 마늘, 생강, 고춧가루 이런 향신료들은 더더욱. 대항해시대 있잖아. 후추 하나로 세계가 결단나는 그런 시대. 그런 시대인 거다, 여기는. 아. 내가 그래서 김치를 더 먹고 싶어했구나. 자극적인 게 없어서. 작업이나 마저 열심히 한다.











//











“자, 그럼.”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까지 먹고난 뒤. 나는 애그너 씨와, 안나와 함께 김치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여기는 그······ 뭐가 있나요.”


“킴-취는 채소로 만든다고 했나? 우리 텃밭에 가보세.”


“네.”






애그너 씨 집 앞의 텃밭에 간다. 물론 배추는 없다. 예전에 밥 먹으면서 킹무위키에서 봤는데, 애초에 배추김치가 김치의 대표가 된 건 얼마 안 된 일이래. 갓갓 우장춘 박사님께서 지금의 배추를 만들어서, 지금 우리가 먹는 배추김치는 100년도 체 안 된 김치라고 하던데. 어쨌든! 배추김치가 사무치게 먹고 싶지만, 배추는 없으니.






“이건 어떤가?”


“아, 그렇게 얇은 채소로는 못 해요. 절일 수가 없기도 하고······ 그런 김치가 없었어요, 저희 고향엔.”


“아 그렇군.”






부추 비슷하게 생긴 채소를 가리키는 애그너 씨.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 뭐, 부추김치 같은 것도 있지만. 사실 어떤 채소로도 김치는 만들 수 있지. 뻑킹 두리안 김치(???) 같은 것도 있다고 하던데. 절대 먹고 싶지 않지만. 그런 건.






“이 라파누스는 어떤가요?”


“오. 이거면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네요.”






안나는 익숙하게 생긴 채소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세계에서 꽤 흔하다는 채소. ‘라파누스'라고 부르는데, 내가 볼 땐 그냥 무처럼 생겼다. 무김치······ 좋지. 돼지국밥에 흰 쌀밥 말아가 총각김치 아그작 씹으면 크아아앜!! 아 ㅅ발 무발1기사2정 할 거 같애······. 시1발 김치 내 놔!!






“이거라네.”


“아······ 어떻게든 해볼게요.”






근데 우리가 아는 그 길고 굵고 새하얀 무가 아니다. 색깔도······ 약간 불그스름한 기운이 있는데다 짧다. 소ㅊ······가 아니라. 짧고 굵다. 어쨌든 이거라도 있는 게 어디야. 다른 재료도 찾아보자. 근데 그······ 다 좋은데. 내가 김치 레시피를 모르는데 어떡해야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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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1화 - 3 23.08.18 20 0 11쪽
2 01화 - 2 23.08.15 32 0 12쪽
» 01화. 김치가 없었더라면. 23.08.13 56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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