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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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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범
작품등록일 :
2020.05.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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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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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5. 모험가 콰리안 (5)

DUMMY

촌장은 잠시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차 두 잔을 내 오며 앉았다.


"차 한 잔 들게."


"감사합니다."


콰리안은 조심스럽게 찻잔을 받아 들었다.

촌장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오늘 가는가?"


"예. 이제 곧 출발해야죠.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인사 한번 드리러 왔습니다."


"허허. 인사라면 얼마 전에도 했지 않나. 뭘 또 새삼스럽게."


"저도 그땐 금방 갈 줄 알았죠. 갑자기 몬스터들이 쳐들어올 줄이야 알았겠습니까. 벌써 3주가 지났으니 다시 인사드리러 오는 게 도리죠."


콰리안이 차를 홀짝 마시며 말했다. 촌장은 허허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나무 막대기 하나 들고 모험가가 되겠다며 여기저기로 쏘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진짜 가는 날이 올 줄이야. 세월 참 빠르구먼."


"하하. 저도 그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촌장은 찻잔을 만지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자네가 떠나고 나면 마을이 한동안 허전하겠구만 그래."


콰리안은 말없이 웃었다.


"그래도 자네 덕분에 이 험한 마을이 조금 평안해졌지. 그간 숱한 몬스터들의 습격에도 희생자들이 이렇게 적었던 것은 자네의 공이 크네."


"그게 어찌 제 공이겠습니까.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싸워서 지켜낸 거죠."


"아닐세. 자네가 수비대원이 되고 난 후부터 사망자들이 크게 줄었네. 뿐만 아니라 자네가 마을 이곳저곳에 많이 신경써 준 덕에 마을이 좀더 편해지고 활기가 넘치네. 자네의 공이 적지 않아."


"과찬이십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웃음이 멈추고 난 후, 콰리안의 얼굴에서 미소가 조금씩 옅어졌다.

차를 두어 모금 마신 후, 그는 천천히 운을 뗐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촌장은 수염을 만지던 손을 멈추었다.

그는 콰리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오갈 데 없는 저를 촌장님께서 손주처럼 돌봐 주신 덕에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리고 자네는 스스로 잘 커주었어. 나는 그저 옆에서 거들어 주기만 했을 뿐."


"아닙니다. 제가 평생을 이곳에서 살면서 촌장님과 이웃 분들께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 빚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촌장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빚진 것이 없어. 오히려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갚아주었지. 나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이웃으로서도, 마을을 지키는 수비대원으로서도. 그러니 괘념치 말고 떠나게나. 자네가 어디로 갈 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자네의 꿈을 이루길 바라네."


"감사합니다."


콰리안은 숨을 가볍게 들이마쉰 후 덧붙였다.


"언젠가 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촌장은 말없이 온화한 미소로 화답했다.

콰리안은 촌장과 마주보며 웃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려는 찰나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레온은 어디 갔습니까? 아까부터 안 보이네요."


"좀 전에 밖으로 나갔네. 어제 밤부터 생각이 많아 보이더군."


콰리안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레온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닌 그는 마을 변두리의 개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콰리안은 조심스럽게 걸어가 그의 옆에 섰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만."


그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움찔한 레온은 고개를 돌렸다.


"깜짝이야. 언제부터 거기 있었냐?"


피식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안색은 약간 어두워 보였다. 그들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레온은 몸을 숙여 조그만 돌멩이를 하나 집어든 다음 개울을 향해 가볍게 던졌다. 퐁당 소리를 내며 물속에 빠진 돌멩이는 수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둘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개울물을 쳐다보았다.

레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난 힘들 것 같다."


콰리안은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레온은 콰리안의 시선을 회피한 채 계속 정면을 바라보았다.


"말머리봉을 내려온 후 지금까지 네 제안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봤어."


콰리안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레온은 계속해서 말했다.


"산 넘고 물 건너. 얼어붙은 빙판과 한없이 펼쳐진 초원, 작열하는 사막을 넘어 숨막힐 정도로 우거진 밀림. 대륙 구석배기의 조그만 촌동네부터 온 세상의 물자가 모여드는 저 신시(神市)까지. 상상만 했던 것들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겠지. 하지만......."


레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떠나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 같아."


콰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 너는 지켜야 할 것이 있으니까."


그는 말을 멈추었다.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 그는 고개를 내린 후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약혼녀를 버리고 떠날 수는 없지."


"맞아. 물론 너를 따라 세상을 떠도는 모험가가 되는 것도 재미있을거야. 하지만 나는 지켜야 할 것들이 있지. 나와 미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고......할아버지인 촌장님도 계시지. 그들을 남겨둔 채로 떠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다."


콰리안은 쓰게 웃었다.


"그래. 그게 네 선택이라면 어쩔 수 없지."


"이해해줘서 고맙네."


"고맙기는. 내가 아무렇게나 던진 말에 고민해 준 것 만으로도 충분해."


레온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그리고?"


"하나는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어?"


콰리안은 의아한 표정으로 레온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는 눈을 깜빡거렸다. 하나는? 그는 레온의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입을 조금 벌린 채 멍하니 바라보는 그를 향해 레온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잘 가라."


그 말을 끝으로 콰리안은 개울가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책상 위에 놓아둔 여행증을 집어 고이 접은 다음 품속에 넣었다. 그런 다음 곳곳을 살핀 후 놓친 것이 없음을 확인한 그는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밖을 나선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초가집이 눈에 들어왔다. 작지만 아늑했던 그의 집.


그는 다시 뒤돌아 천천히 걸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울퉁불퉁한 자갈길. 불규칙하게 흩어진,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집들과 그들을 연결하는 좁은 돌담길. 마을 안팎 넓다란 밭에 심어진 각양각색의 농작물들.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개울물. 인근의 숲으로 이어지는 조그마한 오솔길.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눈동자에 새겨넣었다.


그가 떠나는 것을 알아차린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마주치는 사람들과 살갑게 인사했다. 마을 어귀에 도착한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오고 있었다.

그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마을 청년 하나 떠나는 걸 지켜본답시고 죄다 집 밖으로 나와 몰려드는 이 못말리는 사람들.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죄다 정다운 사람 투성이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머리를 만지며 애써 평온함을 유지했다 .


그리고는 더없이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아쉬운 마음을 감추려 더욱 환하게 웃어 보였다.


훗날 다시 이곳을 밟을 땐, 지금과 많이 달라져 있겠지. 개울가에서 뛰노는 소년 소녀들은 훅훅 자라 의젓한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고, 혈기왕성한 마을 장정들은 가정을 꾸려 자기를 꼭 닮은 아이를 키우겠지. 그 청년들의 어버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질 것이고.

그리고....어쩌면 다시는 못 볼 사람들도 있겠지.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고하고 등을 돌렸다.


발을 떼려던 그는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 녀석들은 어디 갔지?'


페르시온. 그륜. 레온. 이곳에 가장 와 있어야 할 놈들이 없었다. 코빼기도 안 비추고 있었다. 레온은 아까 개울가에서 만났긴 했지만 그래도 진짜 가는데 배웅도 안 해준다고? 그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페르시온과 그륜 녀석은 어째 하루종일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지? 이 떨떠름한 상황에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마을 사람들의 반응도 뭔가 좀 찝찝했다. 항상 붙어 다니던 놈들이 정작 떠날 때 자리에 없는데 어째 그걸 의아해 하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뭔가 이상한데......'


그때였다. 뒤에서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렸다.


"야! 기다려!"


움찔한 그는 다시 등을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마을 이곳저곳을 뚫어져라 보던 그는 저편에서 달려오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문제의 주인공 페르시온, 그륜, 레온이었다. 잔뜩 모인 마을 사람들을 헤치고 마을 어귀로 달려온 그들은 콰리안 앞에 멈춰 섰다.

페르시온이 숨을 고른 후 말했다.


"치사하게 우리 빼놓고 혼자 가려고 했냐?"


콰리안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 소리야?"


"갈 거면 같이 가야지!"


콰리안은 잠시 넋이 나갔다.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 전개에 어안이 벙벙했다. 흐리멍텅한 눈길로 페르시온과 그륜, 레온을 번갈아 쳐다보던 콰리안은 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너희 남아있기로 한 거 아니었냐?"


떠나는 순간까지 답을 주지 않았기에 결국 남기로 결정한 줄만 알았다.


"사실 네가 말머리봉에서 그 말을 했을 때부터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었어. 너 없을 때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많이 했지. 그런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너를 따라가야겠다는 확신이 강해지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륜이 말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콰리안은 아직 어리둥절했다.


"근데 여행증은? 그거 하루아침에 나오는 게 아니잖아."


"얼마 전에 신청했지. 아직 발급이 안 돼서 받으러 가야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떠난다고? 마을 사람들한테 인사도 안 하고?"


"무슨 소리야. 마을 사람들 찾아다니면서 인사 이미 다 했는데. 그리고 어차피 여기 다 모여 있잖아?"


콰리안은 어리둥절했다.


"그게 하루아침에 다 끝났다고?"


그의 말에 셋은 갑자기 킥킥거리며 웃었다. 콰리안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자식들은 왜 갑자기 웃는 거지? 여전히 의문을 지우지 못한 콰리안을 위해 그륜은 친절히 부가 설명을 해 주었다.


"사실 결정 내린 지는 좀 됐어.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니까 금방 결론이 나오더라고. 그래서 곧바로 여행증 신청하러 간 다음에 떠날 채비를 갖췄지. 일부러 너한텐 안 알리고 몰래 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양해 좀 구하고."


"그럼 어제 도서관에서는? 그때는 한참 고민 중인 것 같았는데?"


"아, 그거? 너 놀래키려고 그런 거야."


그는 입을 쩍 벌렸다.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 뒤통수를 후리고 지나갔다. 이 상상도 못한 전개에 콰리안은 넋이 두 배로 날아갔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 놀라운 기만의 주인공들은 매우 흡족해하며 그의 반응을 감상했다.


"그래도 고민 많이 했던 건 사실이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었잖아?"


콰리안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레온도? 오늘 아침 개울가에서 봤던 그 착잡한 얼굴 역시 연기였단 말인가? 그는 벙찐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럼 너도?"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그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아쉽지만 아니야. 그륜과 페르시온은 널 따라가기로 결정했지만. 난 남기로 했어."

그는 장난스럽게 한마디 덧붙였다.

"거짓말로 치부하기엔 내 상황은 너무 명확하잖아?"


콰리안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를 향해 레온은 손을 내밀었다. 콰리안은 손을 힘껏 마주 잡았다.


"잘 있어라."


"그래. 너도 잘 지내고."


"다음에 봤을 땐 훌륭한 촌장이 되어 있어라."


"물론이지. 꼭 살아서 다시 오도록 해."


힘차게 악수한 레온은 한 걸음 물러났다.

콰리안과 그륜, 페르시온은 마을 사람들을 향해 힘차게 손을 휘저었다.


"다들 잘 있어요!"


그 외침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등을 돌렸다.

바야흐로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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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19. 창공을 가르는 배 (4) +2 20.05.24 130 3 13쪽
19 018. 창공을 가르는 배 (3) +4 20.05.23 133 7 14쪽
18 017. 창공을 가르는 배 (2) +8 20.05.22 139 3 15쪽
17 016. 창공을 가르는 배 (1) +7 20.05.21 151 3 15쪽
16 015. 하얀 도시 (6) +4 20.05.20 152 9 15쪽
15 014. 하얀 도시 (5) +6 20.05.19 153 6 14쪽
14 013. 하얀 도시 (4) +2 20.05.19 150 5 13쪽
13 012. 하얀 도시 (3) +2 20.05.18 153 4 14쪽
12 011. 하얀 도시 (2) +1 20.05.18 161 8 14쪽
11 010. 하얀 도시 (1) +2 20.05.17 182 5 14쪽
10 009. 뜻밖의 동행 (4) +2 20.05.16 188 8 11쪽
9 008. 뜻밖의 동행 (3) +2 20.05.16 193 10 10쪽
8 007. 뜻밖의 동행 (2) +1 20.05.15 217 9 12쪽
7 006. 뜻밖의 동행 (1) +4 20.05.15 258 6 12쪽
» 005. 모험가 콰리안 (5) +2 20.05.14 273 11 12쪽
5 004. 모험가 콰리안 (4) +2 20.05.14 291 13 11쪽
4 003. 모험가 콰리안 (3) +4 20.05.14 361 13 13쪽
3 002. 모험가 콰리안 (2) +5 20.05.14 446 26 10쪽
2 001. 모험가 콰리안 (1) +1 20.05.14 721 35 12쪽
1 000. 프롤로그 +8 20.05.14 1,022 11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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