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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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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범
작품등록일 :
2020.05.1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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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4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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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모험가 콰리안 (3)

DUMMY

마지막 남은 왕도마뱀을 무찌른 수비대는 마을 공터로 집합했다. 공터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수비대원들은 각자 장비를 점검하고 전투로 더러워진 검을 닦았다.


수비대장이었던 콰리안은 수비대원을 비롯해 전투에 끌려온 마을 사람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다들 험난한 전투로 상태는 말이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이번 전투로 죽은 사람은 없었다. 수비대원들은 모두 경미한 자상이나 열상 이외에는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일반인들의 경우 호밀밭 페이든과 감자밭 윈셀, 나무꾼 안펠손이 꽤 다쳐 응급처치를 위해 약방으로 이송되었고 나머지도 크고 작은 부상들이 있었지만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사망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콰리안은 안도했다. 부상자들이 많긴 했지만 생명이나 생산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으며 그나마 심한 셋도 약방에서 치료를 받고 두어 주 휴식을 취하면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망망대해 외딴 곳에 위치해 대륙 사람들은 존재조차 모를 이 조그만 섬의 그나마 좋은 점이라 한다면 희귀하고도 신기한 약초들이 많다는 것이다. 때문에 비명횡사할 정도의 심각한 부상이 아니라면 약초와 휴식으로 대부분 회복할 수 있었다.


한 예로 두 달쯤 전에 트롤의 공격으로 정강이가 끊어진 아인펠트는 약방에서 새파란 약초가루와 함께 잘린 정강이를 봉합하고 치료를 받더니 일주일 뒤에는 옆 마을까지 뛰어서 갔다올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린 콰리안은 착잡한 웃음을 지었다. 병 주고 약 주기인가. 평범한 동네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거품 물고 까무러칠 괴물들을 만들어내 - 사람이 괴물을 토벌하는지 괴물이 사람을 토벌하는지 모를 - 토벌을 시켜놓고는 신비한 약초들로 다친 사람을 치료한다. 굳이 따지자면 병이 좀 더 크다. 적어도 어지간한 마을이라면 약초가 없다 해도 괴물과 싸우다 비명횡사할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이 섬이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사람에게 악의 넘치는 환경임은 틀림이 없었다.


콰리안은 사람들을 한명씩 쳐다보았다. 대부분의 인원이 출혈이 있었고 부상으로 거동이 쉽지 않아 보이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 그 사실에 대해 별다른 우려를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치료 좀 받으면 금세 나으니까.


워낙 이런 상황에 익숙한 탓에 어지간한 부상 정도로는 길 가다 넘어지거나 낫질하다 슬쩍 베이는 것 이상의 심각성을 주지 못했다. 그 역시 이런 상황에 익숙하였으나 그런 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이번 전투를 무사(無死)히 끝내면서 다섯 번 연속으로 사망자 없이 습격을 물리쳤다. 당연히 그것은 호사이며 자축할 일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것뿐인가. 반복되는 재난에 순응한 채 그저 괴물들이 쳐들어오면 막아낼 뿐인가. 그저 죽지 않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할 뿐인가.


어쩌면 이런 것이 지겨워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루가 멀다하고 침략해오는 맹수들. 그들의 침략이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물론 놈들이 흉악하기는 하다만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놈들을 찌르고 베고 부수는 것이 귀찮고 힘들기는 했지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은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지는 않았다. 제아무리 이곳 사람들이 단련되어 있다 한들 거듭된 침략에 맞서다 결국 죽어나가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 역시 그런 식으로 몇 번의 장례를 치른 적이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며 인사하던 사람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차가운 땅속에 묻히고, 그를 지켜보는 남겨진 자들의 지독한 고통과 슬픔은 결코 무뎌질 수가 없다. 이 마을이 그토록이나 유대 깊고 쾌활한 것도 그런 지독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떨쳐내려는 몸부림이리라.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리도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콰리안은 손바닥으로 머리를 가볍게 두들겼다. 지겹다지만 정든 고향이다. 떠날 때가 되니 쓸데없는 상념들이 뇌리를 흔들고 지나간다. 그는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과거의 기억을 흩뿌렸다. 구태여 그런 것들을 헤집어 봐야 좋을 것이 없다.

이번 전투는 죽은 사람이 없다. 지금은 그것에 안도하고 오늘의 일을 마무리해야 할 때다.


체력을 보충한 마을 사람들은 다시 일어났다. 상처가 꽤 깊은 사람들은 치료를 위해 약방으로 갔고 거동에 문제없는 사람들은 뒷처리를 하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갔다.

식량을 보충할 시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이 동네의 특기할 만한 점 중 하나였다. 드레이크와 미노타우로스의 살점은 잘 손질하면 꽤 먹을 만한 고기가 되었다. 저 흩어진 물건들의 반의 반만 가져가도 여름이 끝날 때까지 고기 걱정은 없을 터였다.


콰리안은 몬스터의 시체를 치우는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시체가 워낙 많았기에 어린아이와 노인, 환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시체들을 처리하고 식량으로 쓸 만한 고기들을 추려내었다. 그렇게 해서 잘 손질한 고기는 각 집마다 일정량씩 배분한 후 남은 양은 마을회관 창고에 저장했다. 이것들은 나중에 잔치할 때 사용하거나 푸줏간에 팔아넘길 것이다.


작업이 모두 끝날 때쯤엔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드디어 모든 상황이 마무리된 사람들은 전투와 작업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저마다의 집으로 돌아가 뒤늦은 잠을 청했다. 콰리안 역시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 * *




이튿날 우체부로부터 여행증이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떠나지 않았다. 습격으로 인한 전후 처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이 마을 내부로 진입하진 않아 건축물의 피해는 없었으나 경작지의 경우 피해가 작지 않았다. 거기에다 한창 농사일이 바쁜 철에 부상자가 여럿 생겼으므로 일손이 부족해 콰리안은 수비대장으로서 다친 사람들이 모두 회복할 때까지 마을 이곳저곳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작업을 도와주며 피해 복구를 도왔다. 수비대원은 적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원활한 생산 활동을 도울 책임도 있었으므로.


그렇게 당초 떠나기로 했던 날짜보다 보름이 조금 넘는 시간이 더 흘렀다.




* * *




마을 뒷산 정상인 말머리봉은 이름 그대로 말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콰리안은 이곳에 열댓 번 오르면서 이 봉우리와 말의 머리가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오늘도 능선을 오르며 그 사실에 대해 조심스럽게 고찰해 보았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어떤 품종의 말도 이것과 비슷한 머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물론 세상은 넓으니 어딘가에는 저것과 닮은 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아는 말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저런 머리를 가진 것을 말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 봉우리가 이름붙여질 적엔 말의 머리를 닮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천 년이나 수만 년쯤 전의 어느 누군가가 보았을 때에는 그랬을 것이다. 이 커다란 암봉을 정체불명의 형태로 바뀌는 데 그 정도 세월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콰리안은 말머리봉의 정상에 섰다. 한여름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흔히들 아는 마을 뒷산을 올랐을 때 불어오는 그 포근한 바람 따위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말이 좋아 마을 뒷산이지 사실 이곳은 3천 미터는 가뿐히 넘어가는 고봉이었다. 이 험준한 산악지대는 1년 내내 녹을 일이 없는 만년설로 뒤덮인 땅이었다. 그래서 바람이 스친 뺨엔 얼얼함이 느껴졌다.


깎아지른 산봉우리에 몰아치는 특유의 칼바람은 만년설이 뒤덮인 겨울땅과 뒤섞여 상당한 추위를 선사했다. 옷을 한껏 껴입고 왔음에도 강렬한 바람에 살갗 속을 파고드는 한기가 여지없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매서운 냉풍마저도 반가웠다.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맞아보는 산바람일 테니까.


"여기 경치는 언제 봐도 어마어마하네."


그는 주위의 풍경을 감상했다. 북동쪽 한켠에는 그가 서 있는 말머리봉과 함께 섬 양대 봉우리로 손꼽히는 왕관봉이 눈에 들어왔다.

말머리봉과 달리 왕관봉은 그래도 왕관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깎아지른 암봉과 새하얀 만년설, 그리고 아래의 빼곡한 숲이 조화를 이루어 실로 절경이었다.


아래쪽에는 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서면 섬 전체가 마치 지도를 보듯 한 눈에 들어왔다. 북부를 뒤덮은 새하얀 산악지대의 암봉들 사이를 휘젓고 날아다니는 비룡(飛龍)들과 그 아래 협곡을 누비는 괴조(怪鳥) 무리들이 미세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남서쪽을 뒤덮은 황량한 고원. 비록 여기서 보이지는 않지만 드레이크나 트롤, 오거 같은 흉흉한 놈들이 우글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남쪽. 섬 주민들의 북방 한계선이나 다름없는 조그만 마을 몇 개. 저곳이 바로 그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이었다.


거기서 눈을 더더욱 남쪽으로 돌리면 확 바뀐 풍경이 나타난다. 온통 산으로 뒤덮인 북부와 달리 평평한 섬 남부. 밀밭으로 가득한 평원과 수십 미터는 너끈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나무들이 우거진 울창한 숲. 소와 말들이 뛰노는 목초지와 홀로 우뚝 솟은 화산 하나. 그리고 그 끝. 이곳에서부터 백여 킬로미터쯤 떨어진 섬 최대의 도시 사우스헤른.


아름다운 자태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이 조그만 섬에 어떻게 이런 다양한 환경이 공존할 수 가 있는지. 그는 아무 말 없이 사방을 둘러보며 풍경을 눈동자에 담았다. 바위 하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심히 뇌리에 새겨넣었다.


그리고 이곳이 망망대해 한켠에 위치한 외딴 섬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듯 시야를 가득 메운 푸르른 바다. 그 망망대해를 넘어 저 멀리, 공활한 창공과 맞닿은 곳에 펼처진 커다란 땅떵어리. 저곳이 새로운 이야기의 서막이 될 터였다. 지금껏 막연히 상상만 해왔던 곳. 이제 두 발로 직접 딛게 될 것이다.


그는 잠시 넋을 잃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의식이 육신에서 분리되어 홀로 저 짙푸른 대양을 넘어 수천 킬로미터 너머의 세상으로 항해하려 했다.

그의 의식을 붙잡아준 것은 뒤따라 올라온 페르시온의 한마디였다.


"아주 넋을 잃고 보고 계시는구먼."


정신을 차린 콰리안은 멋쩍게 웃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레온이 그의 어깨를 팡 치며 말했다.


"이럴 때 실컷 봐 둬야지. 언제 또 여기 올라 보겠어."


그의 농담 섞인 말에 콰리안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이제 한동안 못 볼 풍경이지."


어쩌면 영영 못 볼 수도 있고.

그들은 조용히 앉아서 주변 경치를 감상했다.


"이제 사람들도 거의 다 회복해가는 모양이더라."


콰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가 끝난지도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마을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제 습격으로 인한 피해도 거의 다 복구되었고 부상당한 사람들도 대부분 생업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가장 심하게 다쳤던 페이든, 윈셀, 안펠손도 약방에서 치료를 받고 난 후 많이 괜찮아졌다. 아직까지는 거동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열흘 정도만 지나도 일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제 진짜로 떠나는 거냐."


페르시온이 짧게 말했다.

콰리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마을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졌다. 그가 더 이상 머물 필요는 없었다. 얼마 뒤에 다시 몬스터들이 쳐들어올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가 상관할 영역이 아니었다. 아직 조금 할 일이 남아있지만 그것만 끝나면 지체 없이 떠날 것이다.


정적이 흘렀다.


아무 말 없이 전방의 풍경만 바라보는 넷의 주위로 날카로운 바람이 휘감아 돌았다.

콰리안은 상념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푸른 하늘이 비추인 눈동자 속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입을 열었다.


"얘들아."


그의 말에 셋 모두 일제히 콰리안에게 집중했다. 그들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의 표정이 요동쳤다.


"너희도 같이 갈 생각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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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019. 창공을 가르는 배 (4) +2 20.05.24 130 3 13쪽
19 018. 창공을 가르는 배 (3) +4 20.05.23 133 7 14쪽
18 017. 창공을 가르는 배 (2) +8 20.05.22 138 3 15쪽
17 016. 창공을 가르는 배 (1) +7 20.05.21 150 3 15쪽
16 015. 하얀 도시 (6) +4 20.05.20 152 9 15쪽
15 014. 하얀 도시 (5) +6 20.05.19 152 6 14쪽
14 013. 하얀 도시 (4) +2 20.05.19 150 5 13쪽
13 012. 하얀 도시 (3) +2 20.05.18 153 4 14쪽
12 011. 하얀 도시 (2) +1 20.05.18 160 8 14쪽
11 010. 하얀 도시 (1) +2 20.05.17 182 5 14쪽
10 009. 뜻밖의 동행 (4) +2 20.05.16 188 8 11쪽
9 008. 뜻밖의 동행 (3) +2 20.05.16 193 10 10쪽
8 007. 뜻밖의 동행 (2) +1 20.05.15 217 9 12쪽
7 006. 뜻밖의 동행 (1) +4 20.05.15 258 6 12쪽
6 005. 모험가 콰리안 (5) +2 20.05.14 272 11 12쪽
5 004. 모험가 콰리안 (4) +2 20.05.14 291 13 11쪽
» 003. 모험가 콰리안 (3) +4 20.05.14 361 13 13쪽
3 002. 모험가 콰리안 (2) +5 20.05.14 446 26 10쪽
2 001. 모험가 콰리안 (1) +1 20.05.14 721 35 12쪽
1 000. 프롤로그 +8 20.05.14 1,021 11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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