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치는 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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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
근데 이 새끼가 깔보는 눈으로 날 훑었다.
“ 뭐! ”
“ 아니. 그냥 길마가 광질하는 건 처음 본 거 같아서 좀 놀랐다! ”
나도 네 얼굴 보고 많이 놀랐어. 놀란 정도만 치면 내가 한 수 위야!
“ 우리 길드원들 용캐로 만들어 주려고 그런다, 왜! ”
“ 너 무적 길드라며. 그럼 다 용캐 아니야? ”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건 다 지나간 옛말이었다. 지금 우리 길드원들을 스팩으로만 보자면 1등은커녕 30위 안에도 들기 힘들 거다.
“ 아니야..! 거의 헐벗다시피 한 길드원들이 둘이나 들어와서 좀 바빠. 근데 우리 길드에 지금 광부가 없어서 내가 직접 뛰는 거다. 왜, 꼽냐?! ”
말하다 보니 우리 길드가 보릿고개를 겪는 중인 거 같아서 우울해졌다.
남들은 이 또한 지나갈 거라 말하지만 도대체 이 힘듦이 언제쯤 사라질까.
그냥 이 게임이 다시 부활에서 떠났던 우리 길드원들이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도 편하게 1등 길드의 길마 생활을 누리고 싶었다.
“ 거짓말. ”
“ 진짜거든! 아니면 우리 성에 와볼래? 거긴 길드원 아니면 함부로 못 들어오는 곳이잖아! ”
“ 그래, 함 가보자. ”
이 나쁜새끼가 끝까지 안 믿는 거 보소.
예전에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다들 고개를 수그렸던 나의 위엄이 이제는 사라진 거 같아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를 게 없는데, 말세가 되니 내가 만만해졌나 보다. 그러니까 꿍스타 같은 뭐도 아닌 아이돌이 날 그렇게 모욕한 거다.
내가 기필코 더 강해져서 보여주고 만다.
***
결국 난 광물 도둑을 성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얘가 여기서 또 뭘 훔쳐갈지 몰라 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녀석을 감시했다.
“ 봐! 내가 여기 널 데리고 들어올 수 있는 게 내가 여기 주인이라는 증거야! ”
알면 엎드려서 형님한테 인사 올려라. 나도 이렇게 확인시켜주느라 석 나갔으니까.
“ 너.. 무적 길드 길드원이구나?! ”
“ X새끼야! 길마라고! 너 딱 기다려! ”
난 내가 길마임을 증명하기 위해 파밍 중인 길드원들을 급하게 호출했다.
잠시 후, 지하실에 있던 빙빙이가 해맑은 얼굴로 달려왔다.
“ 대장님! 왜 부르셨습니까! ”
“ 글쎄, 이 자식이 자꾸 내가 길마가 아니라고 하잖아! ”
“ 예? 대장님은 우리 대장님이신데요? ”
들었지?
난 고개를 치켜들며 녀석을 내려다 봤다.
“ 어디서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 데려가 세뇌시켰나 본데, 안 통해! ”
근데 이 자식은 불신이 거의 지옥 끝까지 붉어져 있었다. 이걸 또 그런 식으로 해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미쳤다고 순진한 우리 빙빙이를 세뇌시켰겠냐!
이걸 또 어떻게 증명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질 때쯤, 사냥에 갔던 필모 아재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 헥헥.. 무슨 일이십니까..! ”
아재의 숨소리를 들으니 괜히 미안해졌다. 앞으론 '미리론'에 따라 미리 말하지 않으면 급하게 길드원들을 소집하는 일은 없애야겠다.
“ 이 자식이 자꾸 내가 길마가 아니라고 하잖아요! ”
“ 이 X만한 새끼가 감히 우리 길마님한테요?! 이 망할 자식은 뭐 하는 놈인데요! ”
나한텐 항상 공손했던 필모 아재가 눈을 부라리고 비속어를 섞어가며 소리쳤다. 이 아재도 성깔이 좀 있으신 거 같았다.
내가 이래서 우리 아재를 신뢰하는 거다. 참 든든하다, 든든해.
“ 광산에서 내 광물 훔쳐간 도둑놈이요! 이제 내가 여기 길마라는 거 알았지? 알았으면 훔쳐간 광물이랑 일 안 해서 손해본 광물까지 싹 다 내놔! ”
난 필모 아재만 믿고 크게 소리쳤다.
“ 거 몇 개 캐지도 않았구만. ”
“ 이 자식이! 그럼 넌 한 시간에 몇 개 캐는데! ”
“ 나? 너의 10배. ”
“ 지랄하고 있네. 남의 광물이나 훔치고 다니는 자식이 퍽도 그러겠다! ”
“ 나 5성급 광부거든! 너랑은 효율 자체가 달라! ”
“ 네가 5성급 광부라고? ”
“ 내가 그런 걸로 거짓말 할까! ”
“ 그럼 다른 직업은? ”
“ 궁수! 내가 왕년에 활 좀 쐈다 아이가! ”
“ 네가..? ”
미안하지만 얘가 아까 날 왜 못 믿었는지 이제 알 거 같았다. 색안경 때문인지 이 자식이 말하는 스팩이 전부 허풍으로만 들렸다.
네가 좀 치는 궁수일 리가!
“ 그래, 나! 속고만 살았나! ”
“ 나도 길마인 거 증명했으니까 너도 증명해. ”
“ 어떻게 하면 되는데! ”
“ 실력 한 번 봐야지. 사냥터로 가자. ”
우린 도둑놈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사냥터로 이동했다.
“ 그렇게 대단한 궁수라면 곰 정도는 후딱 해치울 수 있겠지? 한 번 보여줘봐. ”
활을 들었다고 다 궁수가 아니었다. 그 활로 곰 한 마리도 못 잡는다면 그저 패션으로 들고 다니는 패션 궁수라 할 수 있었다.
“ 풉. ”
분명 비웃는 소리였는데 얼굴이 오크처럼 일그러져서 인상을 쓰고 있는 거처럼 보였다. 저 허세도 진짜 깨부시고 싶었다. 제발 녀석이 곰에게 찢겨 죽어서 개망신 제대로 당했면 좋겠다.
곰아, 해줘!!!!
“ 잘 봐라. 내가 궁수가 뭔지 보여줄게. ”
녀석은 끝까지 허세를 부리며 활을 들고 곰에게 다가갔다. 외관만 봤을 때 8강 정도 되는 거 같았다. 그럼 대충 사람 구실은 할 수 있을 거다.
그 순간 녀석이 활을 발사하며 어그로를 끌었다. 그 따끔한 공격에 곰은 눈이 붉게 달아올라 거대한 몸을 끌고 미친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넌 이제 뒤졌다.
난 속으로 미리 고소해하며 곰을 열렬히 응원했다.
그런데 곰이 덮치려는 순간 녀석이 갑자기 하늘 높이 점프하더니 나무 위로 올라가 계속 화살을 발사했다. 저 자식이 생긴 거와 다르게 겁나 민첩했다.
그 공격에 화가 잔뜩 난 곰은 몸통박치기로 나무를 공격했다.
원래 곰은 사람도 찢고 나무도 부시는 엄청난 종족이었다. 난 그들의 힘을 믿는다.
“ 힘내라, 곰아! 부셔버려!! “
내가 곰을 응원하자 광물 도둑놈이 작은 새우눈으로 날 찌릿 노려봤다.
네가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그런데 이 자식이 이번엔 옆에 있는 돌산의 암벽을 타기 시작했다. 그런 후에 요리 조리 점프하며 화살을 겁나 쏘아댔는데 기가막히게도 쏘는 족족 곰에게 명중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유명한 해외 서커스 묘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결국 강력한 앞발로 우릴 찢어 죽였던 곰은 녀셕에게 한 발도 다가가지 못하고 허무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저 자식이 정말 재수 없긴 한데 싸움 하나는 겁나게 잘했다. 신이 녀석에게 얼굴을 앗아간 대신에 실력에 몰빵해 주신 거 같았다.
“ 우리 길드원 찾은 거 같은데요? ”
필모 아재가 옆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 저 싸가지를요? ”
난 질색하며 대답했다.
“ 5성급 광부에 궁수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컨트롤도 상타치고요. 저런 인재는 일단 영입하고 봐야죠. ”
“ 그렇긴 한데··· 저 자식이 우리 길드에 들어오려고 할까요? ”
꿍스타 때 이미 고배를 마신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난 거절 PTSD가 왔다.
내가 바라는 인재상은 적당한 스팩에 우리 길드를 들어오고 싶어하는 간절한 열망을 갖춘 사람이었다. 근데 모두가 스팩업에 손 놓고 있는 이 말세엔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은 찾기 힘들 거다.
“ 봤지? 내가 이래 보여도 총 좀 쏘던 놈이었어! ”
그때 놈이 잔뜩 뻐기는 얼굴로 돌아왔다.
그래서 어쩌라고. 궁수가 총 잘 쏘면 회피가 1이라도 올라?! 적중이 1이라도 오르냐고!
하여간 뭐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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