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24 12:00
연재수 :
372 회
조회수 :
223,642
추천수 :
6,935
글자수 :
2,036,187

작성
22.03.21 12:00
조회
351
추천
13
글자
12쪽

Haeju Burning 10

DUMMY

남은 AK 실탄들을 아래층 방에 옮기고 불 싸지를 걸 모은다. 탁자 의자 벽장을 부숴 모으고 거기에 서류들 뿌리고 그 중간에 남은 실탄들을 모았다. 불 지르기 전, 물어물어와 화기싸수와 나는 모여서 조용히 포옹한다. 남들은 진짜 친할 거라고 생각하는 우리 셋, 부후생 때는 정말 몰랐다.


이렇게, 성격이 서로, 전혀, 다른 줄. 같은 중대에 들어와 남들 안 볼 때 정말 미치도록 싸웠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감정이 쌓이고 원터치 쪼갰다. 특히 화기 이놈아는 0.5초 만에 판을 뒤집는 불같은 성격이 문제다. 화기담당관이란 말도 싫어한다. ‘싸수’가 좋단다. 남들은 운 좋게 같은 팀 떨어져 좋겠다던 우리 따블백 셋... 우연히 세 주특기 중사들이 동시에 제대한 팀에 우리가 들어왔다. 내 나이 스물다섯, 계급 중사. 역시나 화기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아이 씨 쪽팔리게 껴안고 지랄이야. 떨어져 떨어져...”


이 싸이코패스 화기새끼 눈가가 촉촉했고 우리도 촉촉하다. 한두 방울 흐른 눈물은 전사한 전우 때문도 아니오, 지금까지 성공했다는 이유도 아니오,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한 슬픔도 아니었다. 말로 설명이 안 되는 눈물은 아무 스트레스가 없다.


존이에 불을 붙이고, 불이 오르자 다른 방에 불 지르러 간다. 3중대는 아래층에 지르고 있다. 복도와 계단으로 뜨거운 열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한참 지르는데 저 아래 중대장이 부른다. 부르지 않았어도 더 있다가는 질식하거나 타죽을 것 같았다. 전원 꺼진 북한 스마트폰을 불에 던졌다.


‘LG 삼성 좋은 거 있다 새끼들아... 남조선으로 번호이동해. 꽁짜폰.’


1층. 어제 들어왔다가 죽은 북한군들이 널브러져 있다. 우리 지역대 이제 20명, 종이를 태워 얼굴을 검게 위장한다. 4중대가 잡아온 북한군은 소좌였다. 천으로 재갈을 물리고 손을 뒤로 묶은 상태, 데려갈 것 같다. 우린 그 소좌를 구경했다. 그 역시 남조선 항공륙전의 문화를 처음으로 목도한 북한군 소좌다. 놀리는 말 없었다. 죽여버리고 싶다 그런 거 없다. 우린 잠시 후 관심을 끄는 게 특기다.


저 위에서 불에 실탄이 구어 터지기 시작한다. 탁! 타다닥! 텅텅! 소총에 넣고 쏘는 것보다는 소리가 약하지만 방 안에서 울린다. 다른 건물 사방에서 따쿵따쿵 소리가 가득 찬다.



새벽 기도회처럼 지역대장을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지역대장은 골똘히 죽음을 기다린다. 머리와 가슴에 결속한 압박붕대는 흠뻑 젖어 검은색으로 보인다. 지역대장은 우리 중대장에게 골프 지휘권을 인계했다. 우리 중대장이 옆에 양반자세로 옆에 앉았다. 할 말이 없다.


얼굴과 손과 몸에 붕대를 감고 AK를 움켜쥔 지역대원들. 서 있기는 하나 누워야할 상태다. 쓰러지면 이틀은 못 일어날 것 같다. 돌파 퇴출! 어둠 속에 빛나는 AK에 착검한 날창. 3일 동안 뜨겁게 빛났던 태양, 눈을 가늘게 뜬 채로 표정들이 굳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다. 힘을 빼도 안 풀린다. 조용히 서 있다 보니 대원 중 하나가 앞으로 뒤로 흔들흔들하자 옆 사람이 잡아준다.


‘아, 온다...’


손이 떨리고 시야가 흐트러진다.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어 오른손으로 상박을 누른다. 이가 다다닥 떨린다. 앞이 안 보인다. 옆에서 누가 날 잡아준다. 침묵 가운데 우리 중대장이 지역대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역댐. 왜 우리가 도시로 온 거죠?”


지역대장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더욱 더 침묵이 가중된다.


“이 이북 땅 지하에... 너무 많은 게 있으니까...”

“폭격으로 하면 되잖습니까!”

“그게 안 되니까 우리에게 시킨 거야.”

“우리가 하면 얼마나 한다고요!”

“지하에 것을 끌어내려고 여기 온 거야.”

“......”

“우리가 끌어냈고 폭격이 기다리고 있었어.”


지역대장은 12시간 넘게 사경을 헤맸다.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그런데 지금 말이 너무 명료하다. 옛말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사람이 죽을 때, 죽기 직전에 한번 저런다는데... 어떻게 저렇게 차분할 수가 있지?


“와서 보병이 진압하면 되잖습니까?”

“대신... 피해가 엄청나지. 시가잖아.”

”이거 정말 너무합니다."

“여기 우리 밖에 없는 걸 어떻게 해.”


3중대장이 나섰다.

“지역대장님, 어떻게든 이동을 해보시죠?”


“... 나 때문에 더 죽으라고?”

“그냥 들어보죠. 뭐.”

“폐. 위장. 머리... 안 돼.”


“신임 골프장... 줘!”


생존자들도 부상 무척 많고, 들고 갈 부상자 세 명도 사실 벅차다. 권총 탄창 만땅을 확인하고 지역대장 가슴에 놓는 소리...


그때 내 시각이 돌아온다. 반쯤 보이는 시야에서 지역대장은 손으로 권총을 만진다. 그래, 군인은 총 없으면 기가 안 선다. 구 지역대장이 대리 지역대장 눈을 본다.


“수류탄 하나... 안전핀 반만 빼서.”


아무도 안 나서려고 한다.


행보관이 하나 쥐어주자, 오른손을 안녕!...처럼 들었다.


“개 같은 이별하지 말고, 함포 소리 들리면 바로 가라. 뒤돌아보지 말고...”


행보관이 끼어들었다.


“내가 같이 있을까?”


지역대장은 단호했다.


“불허합니다. 명령입니다.”



중대장이 뒷굽을 강하게 때리며 차렷. 나머지도 가슴을 펴고 뒷굽 퍽퍽퍽 차렷했다. 조용히 대리 지역대장의 구령.


“10! 지역대장님께 대하여... 받들어~~~ 총!!!”


적성화기로 국군 제식. 나도 왼손으로 총을 잡고 오른손으로 개머리판에 엄지와 검지 골을 댄다. AK 개머리판을 앞으로 밀었다. 모두 속삭이듯이 입만 벌려 단...... 결...... AK 총열덮개를 잡은 손이 시야에 윤곽을 드러낸다. 허... 허... 풀린다...


“건제 순...”


떠나기 전, 나는 이 건물 가장 윗대가리 방 책상 위에 올라가 똥을 싸질렀다. 퇴출을 준비하는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위장에서 신호가 왔다. 철근 같은 놈을 털자, 말할 수 없이 시원했다. 이 행동을 왜 했냐고? 원사들 때문이다. 아주 옛날 독수리훈련 때 어느 사단본부 사단장 책상에다 똥을 싸고 나왔다는 원사들의 구라. 내가 보기에 자기들도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다. 실제로 한 건 나다. 이제.


‘왜 이렇게 한숨? 왜 이렇게 가기가 싫어?’


빨간 담뱃불 열 개가 빛난다. 담뱃불 조명이 커질 때 고개 숙여 숙연한 얼굴들이 여기저기 드러났다 사라진다. 저기서 얼굴이 보였다 사라지고... 헛기침도 참기 힘든 침묵. 그때... 고개를 열차역 쪽으로 돌렸다.


먼 바다의 포성. 창으로...


저 멀리 바다 쪽 배경이 번쩍번쩍하더니 폭발이 연이어 항구 쪽에서 들리기 시작하자, 남은 사람들은 굳게 악수해 흔들었다. 지역대를 인수한 우리 중대장은 휘파람을 불었고, 모두 주목하자 손가락으로 장대산 오른쪽을 지시했다.


방향은 장대산과 학우고개 중간. 입이 벌어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우린 장대상 왼쪽으로 갈 줄 알았다. 북쪽 우리 섹터로 복귀하는 줄 알았다. 오른족으로 넘어간다는 건 방향 남동이다. 아군을 향해 간다는 뜻이다. 우리 작계는 끝났고 이제 아군합류란 의미다. 4중대장이 우리 중대장에게 다가선다.


“작계 끝?”


“일단. 끝.”



... 3일간 그렇게 기다리던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싶다. 빗방울이 건물과 포도를 때리는 소리는 우리의 안도였다. 소음이 나는 기상이 좋다. 가벼운 비라도 기도비닉에 얼마나 차이가 큰지 우린 안다. 빗줄기 속에 첨병조가 야투경을 쓰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후미경계를 제외하고 자연스레 중대 건제순으로 열을 따른다. 뒤에서 포성이 우리를 민다.


나도 따라 걷기 시작했고, 걷다가 몇 번 정지해 K-7 따닥 따닥 소리를 듣고 다시 이동하길 반복, 20분도 되지 않아 곧 산길로 들어섰다. 빗물이 몸을 식혀준다. 그렇다. 이건 복권이다. 내가 잘나서 생존하지 않았다. 우린 아직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 말할 나이가 아닌 젊은이들이다. 죽고 싶을 정도로 인생이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하지만... 저 멀리 뒤에... 멀어진다. 노인처럼 뒤에 둔 것에 마음이 매달린다.


순간 망각의 자책이 내 명치를 비수처럼 찌른다.


‘아, 담당관님 찾는 걸 까먹었어...’


고바위를 오르기 시작하면서 대열이 벌어지고 좁히고를 반복, 밀릴 때 지역대원들이 멈춰 뒤를 돌아본다. 해주. 염병에 걸러 땀을 내가 죽을 해주. 빗방울 속에서 화염이 펄럭이고 연기가 하늘로 올라간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니들도 인간이면 누워 있는 우리 지역대원들 잘 모셔라. 아니면 돌아와서 다 죽여 버린다. 우리 지역대는 지역대장 포함 19명 살아남았다. 우린 1개 팀 병력도 못 살아남을 거라 생각했고, 3일이 오기 전에 자기 순번 올 거라고 생각했다. 전우의 시신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가 메스껍지 않고 향기로웠다. 어차피 사람은 죽어 부패하는데 그 사람의 기억이 중요하지 물리적으로 부패한 몸이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식어간 자와 나눈 추억이다.


능선을 넘어가기 직전, 한 명이 멈춰 시가지를 본다. 빗물이 그 사람 얼굴에 주르륵 주르륵 흘러내리나 눈은 저 멀리 고정. 아무도 툭 치며 가시죠! 하지 못하겠다. 동상 같다.


차라리 난 그 옆에서 똑같은 곳을 바라본다. 우리가 지른 불.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회색 연기들. 3일간의 우리 역사.


“창렬아. 너희 옥상에 누구냐?”


“네? 옥상에 뭐요.”


“포격 때 누구 떨어졌잖아...”


“폭격요?”


“박격포!”


“......”


“첫날, 첫 포격!”


“보셨습니까?”


“내가 2번 5층에서 봤어...”


묻어두기로 하자. 말하지 않기로 하자. 다른 팀 선임담당관에게 괜히 마음 무겁게 하고 싶지 않다. 나중에 말하면 된다.


“잘 모르겠습니다......”


상사가 의아한 눈빛으로 날 보다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대열이 멀어지기 전에 그만 가야겠다는 것이 상사와 나 사이에 공감으로 흐른다. 가야지 이제... 동상처럼 서로 얼굴을 본다. 눈꺼풀에서 물방울이 뚝뚝뚝. 눈가에도 흘러 마치 눈물 같다.


거울. 저건 나의 얼굴일 것이다. 날 보는 그의 얼굴. 설명할 수 없는 도플갱어의 눈. 사람이 표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얼굴 근육이 100개라면, 한 6개 정도? 담당관이 험악한 미소를 짓더니 AK-74를 거꾸로 들어 수직으로 털며 총구에 물을 뺀다. 그러더니 말없이 푹 돌아서 오르기 시작한다. 상사가 올라가는 장대산의 크고 넓은 그림자를 올려다본다.


생존자들은 그렇게 해주를 빠져나왔다. 나중에 알았다. 원래 아군은 해주를 공격할 생각이었으나, 너무 큰 피해가 있을 것으로 가정해 작전계획을 변경했다. 서쪽 해주를 공격하지 않고 위도 상 해주를 지나쳐 북상해 사리원까지 먼저 도달하기로. 해주를 고립시키고 조속하게 북진하는 전략이었다. 평양이 함락되면 왼쪽 삼각형 모양의 황해남도와 해주는 자연스레 고립된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아군은 우리를 구하러 해주로 올 계획이 없었고 이미 북상했다. 멀리 보였던 아군의 기갑은 일부 제대를 이용한 위장작전이었다. 탱크가 나타난 자리에는 주력이 아닌 아군 예비사단이 들어왔다. 우리 역시 양동작전의 일환이었고, 우리는 아군의 북진 측선에서 북한군을 해주로 집중시켰으며, 우린 작전 실패라고 보았고, 상부는 우리를 임무 성공으로 보았다.


나는 불타는 도시를 힐끗 본 뒤에 침을 뱉고 돌아섰다.


“좆도(ちょっと) 오겡끼데스까,..


다음에 보자 씹새끼들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함경도의 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73 울프팩 메모리즈 5 22.05.23 337 14 11쪽
272 울프팩 메모리즈 4 22.05.16 356 12 11쪽
271 울프팩 메모리즈 3 22.05.09 355 13 11쪽
270 울프팩 메모리즈 2 22.05.02 377 11 11쪽
269 울프팩 메모리즈 1 +2 22.04.25 423 11 11쪽
268 22.04.18 343 13 12쪽
267 馬場洞 2 22.04.11 519 8 12쪽
266 馬場洞 1 22.04.04 354 10 11쪽
265 성 바르톨로뮤 축일의 학살 +2 22.03.28 380 16 14쪽
» Haeju Burning 10 22.03.21 352 13 12쪽
263 Haeju Burning 9 22.03.14 306 12 13쪽
262 Haeju Burning 8 22.03.07 305 12 12쪽
261 Haeju Burning 7 +2 22.02.28 327 10 12쪽
260 Haeju Burning 6 +2 22.02.21 308 8 13쪽
259 Haeju Burning 5 +1 22.02.14 322 8 17쪽
258 Haeju Burning 4 22.02.07 327 9 12쪽
257 Haeju Burning 3 22.01.24 350 9 11쪽
256 Haeju Burning 2 22.01.17 322 10 12쪽
255 Haeju Burning 1 22.01.10 384 15 11쪽
254 물 좀 주소 22.01.03 301 8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