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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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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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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Haeju Burning 7

DUMMY

그나마 시원한 총열을 잡는다.


AK 총열과 개스관이 만나는 총열덮개, 그 부분이 초콜릿 웨하스를 쥐 듯 차악 감긴다. AK는 웨하스와 개머리판 목이 촉감 예술이다. 쏘기 시작하면 이 시원한 총열도 끝. 대체 옥상에 안 뜨거운 것이 없다.


단 하루 옥상에 있었는데 얼굴들이 토치로 지진 것처럼 시뻘겋다. 불판 돼지고기처럼 달아오른 얼굴 목 팔뚝이 따끔거린다. 땀이 계속 흐르니 살에 얼룩이 들고, 땀방울이 태양에 돋보기 역할을 한다. 해상훈련처럼 살 꺼풀이 한번 벗겨져야 적응이 되겠지만, 그때까지 여기 있다면 우린 산 몸이 아닐 거다. 목이 뜨거워 만지지도 못하고 쑤신다. 맥박과 같은 템포로 후끈거리는 살.


버프를 물에 적셔 목에 거니 그나마 낫다. 사격하면 나무 개머리판이 후끈거리는 목의 화상부위를 쥐어짠다. 응달에서 두 시간만 쓰러져 자고 싶다. 차디찬 서해... ‘B조, 4페어, 입수!...’


간밤...


폭격과 정밀사격에 피해를 입자 오후부터 뜸해지더니 적은 야간을 노렸다. 야간돌격은 북한이 강할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몰라도 너무 모른다. 우리가 야투경에 적외선으로 보고 있다는 걸 모른다. 레이저 포인터가 자기들 몸을 더듬고 있는 걸 모른다.


북한군 장성들은 인터넷 검색 상식도 없는 것 같다. 우리가 그냥 잘 쏘는 걸로 착각할 거다. 하지만 배터리를 연속으로 쓸 경우 3일이 한계다. 레이저조준기 리튬배터리는 5시간이기에 항상 꺼두어야 한다. 해주에서 배터리를 어떻게 구해.


상대는 목숨 거는 전투, 우리에겐 저급한 말로 전자오락. 이쯤 되면 눈치를 챌 법 한데도 그냥 반복한다. 무지식이 전사(병사)들을 헌납한다. 컴컴하니 안 보일 거라고 기동시키는 군관들에게 욕이 나온다. 저들의 무지는 정보의 완전한 차단에서 왔다. 바닥에 뒹어켜 엎어진 저 그림자들도 기쁨으로 태어나고 부모가 있고 사람?


저들에게 병사가 사람이 아니다. 풀 옵션 미군보병과 붙으면 특히 야간전투는 안 봐도 처참하다. 콘크리트 벽이 없는 야전은 몰살이다. 해상저격 항공륙전 경보병여단이고 같은 섹터에서 3배수로 공격해도 다 죽는다. 24시간 열상에 드론 조기경보기가 관측해 움직이는 탱크 한 대 바로 아작난다. 우린, 북한군과 미군의 중간이다.


낮에 갑자기 박격포탄이 떨어졌을 때, 그래도 눈은 떠졌고 난 다시 세상을 보았다. 태양을 등지고 날 내려다보는 중대장과 물어물어. 사물이 다시 돌아왔고, 의무주특기로써 날 진단했다. 왼쪽 눈이 잘 안 보인다. 내가 내 머리에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는다. 두통이 토할 만큼 왔지만 모르핀을 꺼내려는 내 손을, 결국 막았다. 아직도 다섯 명을 보살펴야 하는 의무.


주기적으로 손이 떨리다 사라진다. 증상이 오면 손을 감추고 중대원들이 못 보게 한다. 타악기 같은 환청이 들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불랙아웃이 온다. 목과 얼굴을 마사지하고 호흡을 깊게 늘인다. 그러면 잠시 후 검은 창문 가장자리부터 조각이 깨지고 번지면서 빛이 들어온다. 뇌진탕 컸다. 쓰러지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뒤통수를 찧었나? 말하지 않기로 했고 말할 사람도 없다. 내가 의무다. 전투원을 하나 줄일 수 없다. 눕고 싶다. 거총하고 잠시 잠시 얼굴을 바닥에 묻어 증상을 참으며 졸린 척 한다. 항균진통제를 먹어봤지만 차이가 없다.


밤. 저들은 또 온다. 쏴야 한다. 막아야 한다. 백기 들고 양손을 올리고 싶지 않다. 호흡을 늘여 마음이 편해져야 블랙아웃과 전율이 짧다. 문득 문득 생각이 과거로 달려가 움켜쥔다. 나와도 또 거기 들어가 있다. 기억은 거대하고 두렵다. 오, 어머니... 내가 다시 태아가 되어 아무 것도 못하는 바보가 되지 않게 하소서...



어두워지자 RPG와 비반충포를 쏜다. 우리 옥상조는 박격포가 더 무섭다. 해 지고 뻥렁! 뻥렁! 소리가 나면 불안에 떨며 건물 후면이나 방으로 뛰고, 폭격을 부르면 잠잠하다 또 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적이 이 도시를 포기하고 우리를 그냥 다 죽이려고 할 때다. 진짜 북한포병이 쏠 거다. 우리 숫자는 적은데 자기들 도시를 파괴하는 이상한 공식에 도달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고 싶으면 태워... 전선으로 갈 포탄을 여기 터트려. 우린 손해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를 진짜 누르는 것... 불과 일주일 전에 남쪽에 있었다는 이질적인 격리감. 포위되었고 아군이 안 오면 죽는다. 남에서 올라와 일주일... 10kg은 빠졌다. 불시에 나타나는 놈을 쏘기 위해 촉이 24시간 날 말린다. 코너에 몰리니 욕망이란 무서운 악마가 담을 넘어온다. 추억이 고통스럽고, 구차한 상상을 하기 전에 적이 왔으면 좋겠다. 치밀어 오르는 격노. 왜 여자 때문에 탈영하는지 알겠다...


‘생각 좆같네.’


곧 수의가 될 소매를 눈가로, 이놈의 디지털 픽셀이 잘 스며들지도 않는다.


[장대 OP!]


[상황?]


[몇 번 탈환시도, 우리 둘레로 항폭 때렸음.]


[... 몇 명인가 물어도 되는가?]


[전투가능 생존은 여단 마지막 골프 더하기 넷. 부상은 5대대 첫 골프. 중상 셋. 나머지는...]


[... 자네는?]


[본 골프장 말인가?]


[완료.]


[걱정 없다. 전투가능!]


[이틀 남았다.]


[브라보장. 감청 조심!!!]


중대장은 돌팔이라는 이유로 날 2선에 세우려는 경향이 있다. 의무장비 물품이 없는데 뭐. 우리 팀 다수가 다쳤을 때, 넉넉잡아 군장 두 개 정도 물품은 있어야 목숨 살린다. 중상자의 항균-지혈-봉합이 우선이지만 혈장이나 나트륨 전해질 수액 링거가 있어야 산다. 출혈은 막지만 혈장이나 수액으로 보충해야 한다. 그 다음 복잡한 것도 살아야 가능하다. 페트 병 두 개 출혈하면 요단강 건넌 거다. 과다출혈 쇼크사는 절대로 다시 보고 싶지 않다.


3중대 의무가 실종됐기에 내려갔다. 낮에 저격에 맞아 전사한 중사는 어쩔 수 없지만, 비반충포 폭발로 쓰러진 하사는 충격을 정면으로 받았다. ‘이걸 어떻게 살려.’ 내장을 안으로 정리해 몇 군데 봉합했고, 하사 마음을 위해 머리에 응급처치를 해줬다. 이미 끝난 사람. 어둠 속 빨간 필터 플래시로 본 하사의 초점 없는 눈. 팀원 누가 조용히 흐느꼈다. 모르핀을 줬고,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하사는 아기가 되어 떠났다.


우리가 죽으면 통곡하고... 또 적을 쏜다. 우리 부대에서 총 잘 쏘는 건 주특기와 관계없다. 화기가 사격 1등이라는 망상은 모르는 사람이나. 난 사람 치료하고 사람 몸통에 총알 날린다. 저쪽 통곡은 그들 것이고 남 생각할 틈 없다. 서로 같다. 어디서 센티멘탈이냐. 하나라도 더 보내고 이 비극을 빨리 끝내는 거다. 전쟁 빼면 인류 역사는 맥락이 증발한다. 전쟁은 정치 역사적 퍼즐 맞추기이며, 일어날 것은 일어나고 빨리 끝내는 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쏜다. 끝.


3중대원를 모이라 하고 대표기도를 했다. 3중대에 기독교 환자가 아무도 없다. 마음이 겉도는 3중대원들이 침착해지길 바랐고, 우리 2중대와 3중대가 하나되어 이 건물을 버텨야 한다. A자로 솟아 찌그러진 미간의 3중대원들. 특수 특별이란 이름의 거품뿐인 디지털픽셀 군복 - 하얀 망자의 식은 몸. 어둠 속 낭송. 어깨에 얹은 손. 자기 위치로 돌아가는 발소리. 올라오자마자 양동이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내가 너무 있는 척 바보 같았다. ‘아니다. 좋게 말하면서 나도 좋아지는 거다.’


우리 대대 몇 명이 여기 들어와 얼마나 쓰러졌는지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수태로 모자란다. 곧 아군 온다. 곧 하루 세끼 그 따뜻한 전투식량을 먹을 수 있다! 아군 탱크 궤도가 해주 포장도로를 울린다. 전진? 백마? 수기사?... 어느 종교에선 그런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면 그 똑같은 방법으로 1억년이나 고통을 받게 된다고. 난 생각한다. 영혼이라지만 1억년이나 살려줘? 안 지겨울까?


밤새, 우리 중대가 미쳤다. 자정 공격이 우리 건물로 집중되었고 적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 우리 지본과 뒤엉켰다. 엄청 몰린다는 무전이 사방에서. 우리 건물에 붙으면 다른 건물이 쏴줘야 하고 우린 수류탄이 1순위가 된다. 안으로 들어오면 확률 반반으로 뚝 떨어진다. AK 총구를 수직 밑에 갈겨도 적을 막기 역부족 같다.


물어물어와 내가, 똘폭이 유산으로 남기고 간 폭약에 비전기식 뇌관 꼽고 도화선을 짧게 잘라서 점화해 투하하기 시작했다. 도화선 거의 끝까지 타는 거 바라보다 투하! 요즘 도화선은 방염방수이 좋아 어디까지 탔는지 겉에서 잘 안 보인다. 터질까봐 손이 떨린다. 하지만 적성 대전차수류탄이든 이런 폭약이든 지상과 충돌했을 때 분해되어 폭약은 날아가고 뇌관만 터질까봐 더 불안하다.


폭약을 여러 개 묶었는데, 그렇게 우리 팀이 가진 TNT와 C4를 거의 다 썼을 무렵, 분노조절 잘 안 되는 화기사수가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을 짱돌처럼 밑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대가리 빵꾸나라!" 고래고래 욕하며 밑으로 던진다. 허황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아래서 골통에 맞으면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 엄마야, 저 아래서 덩어리에 맞은 숨넘어가는 비명이 들린다... 우리 팀은 옥상에 널린 콘크리트 조각과 무거운 것들을 싸그리 밑으로 던졌다. 그냥 투하가 아니라 밑을 향해 풀 스윙 팔매질.


"올라와! 개새끼들 다 죽여버린다!"


함락 직전 길로틴에 목을 대고 있는 기분, 저 아래서 대가리가 터져 죽던 말든 뭐 어쩌라고. 내가 처음 콘크리트 짱돌을 던질 때 그림자가 소대는 넘었다. 지본팀 다 죽는다는 생각이 들어 분주히 뛰었다. 수류탄이 없다. 그 좋은 게...


그때 우리 중대장이 박스에 불을 활활 붙여 밑으로 투하했다.


[3번 옥상! 3번! 계속 태워서 던져! 잘 보여!]


[3번, 더 던져! 불! 불!]


밝아지자 다른 건물들이 이때다 쏘기 시작했다. 적외선이나 표적지시기 없는 사람들이 그 빛으로 닌겐 그림자를 걸어 쏜다. 밑의 3중대도 종이를 태워 묶음으로 던졌다. 당황한 북한군 고함이 들리고, 이어 퇴각하는 기운이 돌자 우린 또 고함을 질렀다.


“어디 가! 일루 와~~~!”


“이 개애~새끼들아~~~!”


확실히 욕은 남조선이 잘한다.


새벽에 대대본부 보급조가 올라왔고 AK도 몇 정 더 가져왔다. 탄약 빼고 먹을 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집어왔다. 화기는 또 RPG 탄 갔다달라고 대대본부 진원사에게 대든다. 원사가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내려갔다. 씨발놈들 이딴 식으로 하면 다신 안 갔다준다고.


물마시고, 알코올 들어 있는 북한 맥주도 돌려 마시고, 북한 과자 포장도 안 보고 뜯어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봉지를 보는 순간 이미 뜯겨 있고 짐승처럼 내가 숨도 안 쉬고 씹고 있다. 무릎 꿇고 한 손을 바닥에 댄 채 입에서 구운 밀가루 분말이 떨어진다. 골에서 마른 풀을 작두로 자르는 소리가 우걱우걱 울린다.



새벽이 깊어지자 거리를 뛰는 발소리와 단발 저격. 난 중대장 쌍안경을 빼앗고 잠시 앉으라고 눌렀다. ‘누워요 누워!’ 중대장 쓰러질 거 같다. 억지에 못 이겨 벽에 등을 대고 눈을 감는다. 쌍안경을 들었다. 항구에 불, 장대산 옆 학우고개에도 불이 났다.


무전기 보고가 뒤섞인다. 나도 3번 옥상 이상 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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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40 명원연참
    작성일
    22.03.02 21:57
    No. 1

    5시간? 혼란이 오네요 배터리 수명이 5~8 년이라고 했지 용량도 그정도되진않긴하겠지만 5시간? 어캐된게 핸드폰보다 짧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2.03.03 12:40
    No. 2

    레이저 조준기는 소총에 다는 악세사리 중에서 배터리 소모가 가장 클 겁니다. 광선을 쏘는 장비니까요. 문제는 회사 별로 다른데, 더 좋은 것들은 있습니다. 문제는 가격이죠. 가격은 성능. 그래서 이라크와 아프간으로 갔던 미군들이 고가 사제를 많이 샀습니다. 자기 목숨이니까요. 관급을 비싼 장비를 사주면 됩니다.

    이러한 야시장비 배터리가 이라크 아프간에서 문제가 되어, 실탄보다 배터리를 보급 우선순위로 요청하는 일이 꽤 있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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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Haeju Burning 3 22.01.24 350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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