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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0 12:00
연재수 :
370 회
조회수 :
222,370
추천수 :
6,929
글자수 :
2,024,521

작성
20.06.15 10:00
조회
2,328
추천
46
글자
7쪽

지역대가 7

DUMMY

이미 군장을 거의 안 쓰기에 3명 당 하나 정도 밖에 없다. 그러나 몰아줄 무게가 아니었고, 특전조끼 등 주머니와 군복 건빵주머니, 상의 포켓에도 쑤셔 넣고 실탄과 수류탄과 필요한 것을 챙겼다. 어깨에도 얹고 손에도 들었다.


순간, 모든 지역대원들은 엄청난 무게를 감당하는 급속행군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비로 인해 땅이 미끌거리고, 동 트기 전에 근처까지 가야 한다. 숨이 턱에 차고 순간순간 뭐가 막 떨어진다. 서대위 판단으로 도로 근처 낮은 능선으로 올라섰다. 밀어주고 당겨주고 쓰러지기 직전 대원의 물건을 다시 나누어 들고 걷고 뛰고를 섞어 이동했다. 하루에 무장구보 세 번을 하면 그 정도 무리가 따르려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중간에 적 조우 상황이 있었으나 지역대는 쏘면서 멈추지 않았고 화기들이 뒤에 남아 엄청나게 갈기고 나서 다시 좇아왔다. 적이 쐈을 때 지역대원들은 욕을 퍼부었다. 적에 대한 증오심이 아니라, 힘들어 죽겠는데 귀찮게 한다는 욕설이었다.

'그만 해 이놈들아!...

우리가 가던 길 멈추고 그쪽으로 가면 니들은 세상서 지워진다.' 후위가 쏘는 적에게 응사하고 뛰었지만, 놀랍게도 본대를 놓친 사람이 없었다. 이들에게 행군은 거리가 아니라 속도로 적응되어 있었다. 수평이 나오면 뛰었고 오르막이 나타나면 손으로 무릎을 밀면서 올랐고 내려오면 다리가 풀려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평소처럼 말은 하나였다. 영어. GO! GO GO!!! 멈추지 마 GO! 가! GO! 비행기서 뛰어내릴 때도 GO! 신나게 GO!도 있었고 고통스런 GO!도 있었다.


몸이 한계를 맞이하면 때려죽어도 못가는 체력적인 한계가 온다. 사지가 통제에서 벗어나 파트별로 따로 놀면서 술 취한 사람처럼 헛발이 공중에 춤추고, 일명 퍼진다. 그럴 때는 허리를 잡아 끌어도 다리가 안 따라간다. 어쩔 수 없다. 1분이라도 쉬었다가 끌고 가는 것. 물이라도 먹이고, 건빵 하나라도 씹게 하고, 잠깐 쉬면 어느 틈에 낼름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 이 난삽한 인간이다. 체력의 한계 ‘퍼지는’ 것은 정신만 차리면 약간의 조절로 연장이 가능하다. 그게 짬밥이다.


그렇게 그렇게 야밤에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시커먼 사람들이 도망도 그런 도망이 없을 정도로 야산 능선을 가고 있었다. 미끄러지고 진흙으로 범벅이 되고, 군화 속은 완전히 젖어 무거웠고, 젖은 하의는 다리에 착 달라붙어 걸음을 막아선다. 진흙 속에 폭약이 떨어지고 이어 젖은 손이 줏어 뛴다. 내딛는 한발 한발이 고비였다.

훈련은 훈련이다. 탄입대에 실제 실탄 무게 넣고 수류탄 세 개만 탄띠에 걸쳐도 평시훈련이 나이롱뽕이라는 걸 알게 된다. 수통을 한쪽 허리에 차는 부대는 장거리행군하는 부대가 아니다. 행군 많이 하면 모든 것을 군장에 넣거나 외부에 달고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결속해 무게 수직 중심점 딱 하나만 만든다.

총도 묶어 버린다. 아예 수통에 물을 채우지도 않는다. 허리가 출렁여서 체력 빼느니 갈증을 참는 것이 낫다. 물은 안 먹기 나름으로, 습관을 들일 수 있다. 가을이면 수통을 쓰지도 않는다. 속보로 걷다가 냇가나 물가를 만나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위장모로 언더핸드 투수처럼 물을 긁어 들어올려 마신다. 충분하다. 천리행군 중 밤새 물 한 모급 안 먹어도 갈 수 있다. 만땅 수통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면 갈증도 참는다. 그딴 걸 왜 지고 가나. 쇄골이 으스러지는 기분으로 오직 10분 간 휴식! 구령. 그것만 기다린다.


지역대도 전시를 냉혹하게 겪었다. 아무 필요도 없는 걸 가져왔다는 것도 알았고, 도피탈출하다 많은 장비를 손망실했다. 최소한의 장비로도 전투가 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고, 긴장하면 체력소모가 갑절은 된다는 것도. 그리고 어느 순간 적응의 시간이 왔다. 체중이 빠지고 땀이 나지 않는다. 장비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이동이 중점이 되었다. 그러므로 정 상황이 심각하면 묻고 튀는 것도 여러 번 반복했고, 수풀에 던져놔도 나중에 회수하는 것이 어렵지도 않았다. 은거지를 잡았거나 좀 쉬고 있을 때, 무언가 이상하면 무조건 이동해야 한다. 말만 들었지, 어느 순간 벌레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는 경험도 겪었다. 바로 튀어야 한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전장 위험 중 하나다. [벌레들이 하나도 울지 않으면 거기 매복이 있다.] 몇 천 년 전에 쓴 글이다.


이제 마지막 전투가 될지는 모르나 최고의 전술기동을 하고 있었다. 달리고, 땅에 떨어진 것을 주어서 또 뛰고, 오르막길에서 앞 사람을 밀고 위에서 끌었다. 박소령도 K1을 각개로 걸치고 폭약 15파운드 넘게 특전조끼에 쑤셔넣고 뛰고 있었고 양손에는 RPG 두 발을 들었다. 입에서 뜨거운 김과 침이 튀어 발산된다.


박소령 앞에 뛰는 대원도 뒤에 뛰는 대원도 그가 지역대장인지 몰랐다. 앞에서 뛰는 서대위는 그러면서도 계속 주변을 보며 기동간 지도정치를 하고 있었다. 산에서만 봤던 지형들이 꼬이면서 순간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했다. 그러다 자기가 기억했던 참고점이 보이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달렸다. 첨병과 독도법은 아무리 그래도 약간 빨리 달려서 상황판단할 시간이 여유로 있어야 한다. 8중대장 이대위는 후위경계 2명과 함께 뛰다가 적어도 15분 정도 흐르면, 잠시 정지해서 모든 동작을 멈추고 눈 감고 빗소리 속의 무언가 귀로 한번 들어보고 다시 뛰고를 반복했다.


조용한 가운데 야밤에 수십 개의 저벅저벅 군화 소리가 들린다. 또한 포성과 함께 야간임무를 받았는지 전폭기들도 지나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쪽의 포성은 점차 늘어나는 듯하다. 선두의 서대위는 계산했다.


‘도상 거리가 아마도 25킬로미터 정도, 그냥 뛰고 속보하면 세 시간 반에서 네 시간. 아무리 그래도 중간에 한번 쉬어야 한다. 만약 적과 조우하면 무척 길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빼야 한다. 그리고 진입하는 방법. 목표는 가까이 가본 적 없고 2킬로미터 거리에서 본 게 전부다.


'내가 적 지휘관이라고 생각해서 방어를 구성해보고, 그걸 토대로 진입로를 열어본다. 어차피 성하게 진입은 못할 거다. 일단 나부터 체력 신경 쓰자. 내가 퍼지면 여파는 순간 전파된다. 지친 기색 보이면 안 되고. 마지막 브리핑 때는 강하고 확실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지시는 내가 무엇을 강조하고 - 어디를 대충 말하는가에 따라 대원들이 기억하는 것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기억하자. 그게 얼마나 큰 실수가 될 수 있는지. 그래 숨을 고르며 규칙적으로 호흡. 내가 퍼지면 절대로 안 된다. 더 빼서 30초라도 쉬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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