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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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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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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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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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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지역대가 2

DUMMY

마치 일상처럼 떠들고는 있으나 넷 모두 속 마음은 감추고 있다. 표현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팀원 두 명을 매장했고, 세 명은 전사하는 것을 목격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으며, 나머지는 DZ와 작전 중 행불이 되었다. 넷 모두 마음은 내려가고 싶으나 두려움도 앞선다. 마지막 지역대 작전은 5일 전이었다.


전쟁에서 하루는 너무나도 길다. 지역대 작전은 이제 지역대장 결심에 따른다. 작전을 결심하면 100% 야간 매복 혹은 습격이다. 그러나 무조건 한다고 전술은 아니다. 도로 근처 산에서 팀들이 교대로 정찰감시는 하는데, 무슨 재래식 게릴라도 아니고 지나가면 무조건 쏘고 어쩌고 해봤자 아무 것도 아니다. 이미 작계 작전은 모두 끝났다.


중요한 것은 이 일대에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적이 가장 무겁게 피해를 입는가의 문제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것이 아군을 위한 길이다. 이렇게 생각보다 길어진 것은 저 남쪽에서 일정한 대치전이 전개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보급차량들을 습격하는 것도 임무이기는 하나, 그냥 소총 실탄 적재한 트럭 습격해봤자 결국 지역대 피해만 늘어나고 그저 그런 효과다.


하다못해 저격을 해도 별자리는 되어야 적에게 중압감을 주는 것이고, 지역대의 주 목표가 된 대형 도로는 적이 우글거리는 형편에, 하다못해 탱크라도 주저앉혀야 작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지역대 섹터는 거의 모른다. 산에서 발포 안 하고 우연히 만나는 수밖에 없다. 저 큰 산 너머가 다른 지역대라는 것만 안다.



지역대장은 하루 24시간 교대로 감시하는 도로의 적 이동상황 특징을 간파하면서 나설 때를 기다리고 있다. 대전차지뢰도 없고 대인지뢰도 없고 이제 가진 것이라고는 80%를 무장시킨 AK와 적성수류탄 정도다. 지역대 본부에는 적성 기관총도 하나 있으나, 이동에 무척 걸리적거린다.


기관총반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어서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실탑수급까지. RPG도 노획한 것이 있으나 로켓탄을 모두 소모해서 일단 탄을 노획해야 하는데, RPG가 들린 적 제대는 규모도 클뿐더러 후방이라 그런지 탄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도 않는다. 그래도 본부중대 화기주특기가 노획한 RPG로 적 탱크에 두 방 적중시킨 경험은 최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서대위 팀에서 서대위만이 K1을 쓰는 것은 팀원들이 실탄을 몰아준 까닭이고, 그마저도 떨어지면 당연히 AK를 잡아야 한다. 팀에서 중대장인 대위도 소총사수의 역할을 해야 하며, 보병처럼 권총만 들면 안 된다. 서대위는 여전히 권총과 실탄 몇 십 발을 가지고 있지만 사용을 거의 안 했다. 이렇게 실탄 몰아주기가 끝나자 안 쓰는 원래 화기는 천이나 비닐로 최대한 싸서 특정 장소에 모아 묻었다. 실전을 겪으면서 400발이 넘는 소총탄 1기수가 얼마나 빠르게 소모되는지 몸으로 깨달았다.


AK 실탄을 노획했다고 박스 채로 산에 들고 올 수도 없다. 그냥 탄포로 걸치거나 모든 포켓에 순간 마구 집어넣는다. 한동안 실탄 걱정을 안 하고 싶으면, 체구 체력 좋은 놈에게 빈 릭샥을 지게 해 습격에서 존나게 던져 넣고 도피탈출 직전에 먼저 산으로 보내는 방법이 있다. 반만 차도 쇠덩이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먹을 것을 그러고 싶어들 한다.


그러나 이제 20명 남은 지역대에서 서대위 팀원들이 느끼는 중요한 점은 배고프고 위험하고 그런 물리적인 것이 아니다. 팀 담당관을 가매장할 때도 힘들었지만 다는 아니다. 작계 타격작전에서 오하사는 적 경계병을 대검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긴장한 상태로 급소를 찌르는 것이 아니라 복부를 자신도 모르게 완전히 난자해버렸다. 폐나 쇄골 급소에 정확히 단번에 찌르거나 목을 긋는 것은 전문적으로 훈련해도 정말 긴장되는 상황에서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피와 살점이 튀는 전장에서 저기 남쪽 아래 보병도 다 경험하는 것이기에 특별하다 감정을 호소할 수도 없다. 그로 인해 정신적으로 눌리는 기분은 본능적으로 부담을 주었다.



팀장 서대위 역시 마찬가지였다. 습격상황에서 순간 적과 눈앞에서 조우해 K1으로 난사한 경험이 있다. 멀리서 조준해 맞추는 것과 상대 눈동자를 찰라라도 응시하고 죽이는 것은 달랐다. 수류탄을 까서 던지면 씨바 수류탄이 너희들을 죽였지 내가 죽였냐 그런 기분이 든다. 그런 상황을 겪고 산으로 복귀해 자고 일어나면 군복에 상대의 피와 살 부스러기 같은 것이 묻어 있고 망각이 안 된다.


다들 경험은 비슷비슷한데, 오하사가 아예 팀 첨병으로 북한군 군복을 입겠다고 서대위에게 말은 했지만, 사실 자기 군복에 묻은 어떤 죽은 자의 흔적이 세탁도 안 하니 매일 보며 입고 있어야 했던 이유도 크다. 사람을 죽이고 그로 인해 상대에게서 나온 땀 냄새 피 냄새나 똥 냄새 내장 냄새 같은 것이 쉽사리 기억에서 눈에서 귀에서 코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모두 같은 기분 같은 표정이었기에 대열의 중간에서는 서로에게 느낄 수 없었지만, 지역대원들은 남들이 보기에 매우 잔인한 짐승과 같은 면모로 점차 변하고 있었다. 굉장히 단순해졌으며, 육감과 살기가 하루 24시간 본능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전투도 아니고 먹을 것이나 실탄 수류탄을 위한 보급습격에서, 쌀 한 되를 위해 사람을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게 되었다.


그 마음의 미묘한 흔적들은 각자가 느끼는 강도가 약간씩 달랐으나, 전쟁은 낭만도 꿈도 화려함도 적의도 아닌 것은 무언의 공통분모였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더 사소해졌다. 힘든 것은 내적인 충돌이었다. 어려서부터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녀도, 사람을 상해하고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듣지 못한다.


아무리 부실하더라도 교육은 인명의 소중함을 말하며, 어느 종교에 가건 사람을 사랑하고 도우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거기 반대되는 것을 저질렀다. 그리고 살고 싶다. 이전에 사회와 교육에서 배운 것은 이미 저 멀리 가버렸다. 그것이 마음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충돌한다. 무언가 오랫동안 간직한 가치관 비슷한 것이 무너졌는데, 그걸 어떤 논리적인 언어와 생각으로 규명하지도 못한다. 프로이드의 책을 읽으면 모두 미쳐버릴 것이다. 그러면서 물론 할 건 한다. 자기가 가졌던 가치관 같은 것이 위배되고 멀어지자, 갑자기 자기 존재에 관한 의문까지 든다. 그러나 계속 해야 한다. 할 건 계속 해야 했다.


점차 이러한 남들이 보기에 야만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K-7 무성총 총알이 없다. 아주 젠틀하게 하나 보낼 수 있는 것인데 공중재보급은 꿈도 못 꾸고, 만약 상공에서 뿌린다고 해도 그건 우리 여기 있으니 죽이러 오라는 말과 같다. 국토는 좁고 전술 섹터도 좁다. 그런 건 어디 함경도에서나 가능한데, 장거리 무전기 배터리와 실탄과 C4 같은 값 싼 것을 싣고 그 비싼 수송기를 보내기도 어려울 거라고 당연히 상상한다. 아직 징후는 없지만 갑자기 중국군 신형 전투기나 헬리콥터들이 두만강을 건너온다면 그냥 격추당하는 거다.


그래도 적중률 쓸 만 하다고 했던 K-7 무성총, 나름 신뢰도도 있고 맞기도 잘 맞는다. 그러나 모두 깨달았다. 그 권총탄 맞는다고 영화처럼 사람이 꼴까락 쥐죽은 듯이 죽어주는 게 아니란 사실을. 그러므로 절명시키기 위해 여러 발을 계속 쏘는 경우가 생기고, 빨리 상황을 종료시키고자 다른 팀에서 무성총 맞고 주춤하는 적을 달려들어 대검 2차 공격으로 절명시키는 일도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K-7 사수들도 한 명을 쏘게 되면 기본 세 발 이상 쏘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7중대 무성무기 사수는 ‘씨바, 일단 몸통에 맞춘 다음 좀 더 다가가 대가리 쏘는 게 장땡이더라.’ 농담 아닌 농담을 했다. 모두 씁쓸하게 웃었지만, 다른 무성 사수들은 내심 존나 맞는 말이네 생각했을 거다. 그 말을 듣고 그렇게 하는 사람도 분명 생겼을 것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전쟁터에서 가족 입회 하에 염하는 것도 아니고. 전선에서 그 살벌한 포격전이 일어나면 거기 맞아 어디 사람 형체나 갖추겠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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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8

  • 작성자
    Lv.27 네비아찌
    작성일
    20.06.04 13:25
    No. 1

    잇빨중사님 여기서도 잘 보고 있습니다. 한가지 의문점은 K7기관단총과 북괴 백두산권총이 같은 9mm para탄을 쓰는데 백두산 탄약을 노획해서 K7에 쓰는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작중에 그런 묘사를 하신건지 궁금합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0.06.04 13:58
    No. 2

    그건 아닙니다. 비슷하거나 동일한 크기의 탄이라고 다른 총기에 사용하는 것은 총기사고의 지름길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권총 실탄을 K-7에 쓰기 시작하면 - 작동을 하더라고 - 총을 망치는 지름길로 알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약실이 먹통되지 않을까요? 아주 미묘한 mm 오차로 약실과 약실에서 시작되는 총열 (+강선) 작살나는 것으로 압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0.06.04 17:52
    No. 3

    두 살탄의 탄두 탄피 구경과 전장이 같은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네비아찌
    작성일
    20.06.05 17:21
    No. 4

    백두산 권총의 원형인 CZ-75는 K5, K7과 같은 9x19mm 파라블럼탄을 씁니다만... 말씀처럼 실전에서는 신뢰성 문제가 크겠네요. 아무튼 감동스런 글들 항상 감사합니다.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0.06.05 17:28
    No. 5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sa******
    작성일
    20.08.06 16:37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0.08.06 17:04
    No. 7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참좋은아침
    작성일
    22.03.26 10:51
    No.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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