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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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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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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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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대가 4

DUMMY

시간은 인간이 중심이든 아니든 흘러간다.


복잡하고 극도로 피로한 작전준비 단계를 거쳐 피양을 훨씬 북상해 전투강하했고, 여러 DZ에서 교전이 일어났으며, 북한군은 준군사조직을 동원해 공중침투가 가능한 곳에 며칠간 깔아놓고 있었다. DZ에서 피해가 일어났고, 손실된 병력을 뒤로 하고 계속 목표 타격작전을, 매번 작전 때마다 또 희생이 늘어났고, 작계가 끝나자 지역대 규합 후 습격 매복 탈취를 반복, 그 와중에 주요 도로 정찰감시보고를 수행했다.


전투원들은 최초 3일간은 거의 못 잤고, 2주간은 3시간 이상 자지 못했고, 은거지를 세 번 옮겼으며, 세 번의 대규모 적 추격을 받았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 둘 씩 지역대원들이 죽고 다쳤다. 이것을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리한 것일지 몰라도, 지역대에 이동을 지체시킬 들것에 누워야 할 중상자는 없었다. 다만, 10지역대와 같이 있는 대대장이 다쳐서 누워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포성은 점차 올라오고 있었고, 아마도 피양은 점령된 것 같았다. 전투기들은 은거지 북쪽으로 날아갔고, 대원들, 아니 12지역대원들은 아군 진군을 기다렸다. 아군 K2 탱크를 보고 싶었다.


박소령은 중압감에 눌리고 있다. 아무리 조건이 안 좋았다 상황이 우리 편이 아니었다 해도 부하 30명을 넘게 잃었다. 팀작전이 끝나고 지역대 타격을 처음 시도했을때, 박소령은 과연 자신이 올바른 판단을 했는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부하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혼자 심각하게 - 다른 지역대원들과 똑같이 - 분노와 증오와 자책감으로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가졌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자도 가면상태다. 자다가 툭 치면 자동으로 거총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 벌어지면 즉각 판단해서 조치해야 한다. 지역대원들 모두 자신을 뚜러져라 보고 있기에 자중하고 중심을 잡아야 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박소령은 여단에서 유명한 지역대장이었다.


현실과 실전은 달랐다. 특히나 마지막 지역대 타격작전을 억지로 강행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자책이 몰려온다. 그 작전에서만 10명 넘게 전사했다. 곧바로 박소령은 권총 대신 쓰러진 중대장의 K1을 잡았다.


정오에 각 중대 보고병들이 왔을 때, 박소령은 중대장들에게 오후 3시 지역대 본부로 오라는 전갈을 보냈다. 평시 같으면 그냥 올라오면서 지역댐 식사하셨습니까? 하겠지만, 이제는 절차가 있다. 지역대 본부 은거지 근처에 두드러진 나무가 하나 있고, 그 나무가 일종의 암구어였다. 그 나무 20미터 근방 수풀에 본부중대 경계병이 거총하고 있고, 접근자가 그 나무에 ‘은밀하게’ 도달하면 먼저 본부팀 경계병에게 숫자 암구어를 건다. 암구어는 간단한 법칙에 따라 매일 변하는데 금방 떠올릴 수 있다.


이 과정은 특히 특수전통신에도 언급되는 것인데, 만약 강압에 의한 접근, 즉, 적에게 사로잡힌 상태에서 뒤에 적을 달고 왔을 경우, 경계병에게 원래 숫자암호 조합이 되지 않는 높은 숫자로 암구어를 걸고, 그럴 경우 경계병은 조용히 본부 은거지로 연결된 견인줄을 당겨 신호한다. 이어 2차 검문에 들어가는데, 그 나무의 왼쪽을 통과하면 정상적인 것이고, 오른쪽으로 통과하면 뒤에 적이 달려 있거나 무슨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만약 포로로 잡혀 목숨을 건지고자 왔다면 두 번의 거짓말을 해야 한다. 지역대원들 등에 칼을 꼽기 위해서...


7중대는 중대장이 전사한 관계로 담당관이 왔고, 8중대장 이대위와 9중대장 서대위가 암구어를 통과해 들어왔다. 번듯하게 살다가 완전히 파산한 사람 네 명이 모인 듯한 분위기다. 모두 수염이 덥수룩 자랐고, 지친 기색에, 또한, 이미 보통 사람들이 할 체험을 넘어선 사람들의 남모를 무표정에 냉정한 살기가 순간순간 번득인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네 폭력배 모두 나머지 셋을 죽이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눈빛처럼 보일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죽고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이제 모두 안다.


박소령은 주제를 피하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몰고 간다. 지역대장을 제외한 세 명은 이 산중에서 날카롭게 발달한 육감으로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박소령 역시 부하들이 눈치 챘다는 사실을 깨닫자 곧 말수가 줄어들고 무섭게 침묵했다. 저 멀리서 여러 발의 포성이 들렸고, 모두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박소령 얼굴로 집중했다. 8중대장 이대위가 천천히 입을 연다.


“지역댐, 뭐, 그냥, 있는 그대로 말씀하십쇼. 위에서 뭐가 왔습니까? 그 염병할 재보급 소식 대신 말입니다.”


지역대장은 말이 없다. 서대위도 입을 연다.


“말씀하십시오.”


7중대 담당관 김상사는 북한 담배를 북한 성냥으로 붙였다.


“완전히 새마을이네, 이 담배. 후~~~!”


박소령은 웃으면서 결국, 바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전쟁, 다 무엇을 위한 것이겠어. 나라가 큰 상처를 입어도 결국 통일되어 한동안 노력하면 결국 남부럽지 않은 강대국이 되는 것이겠지. 물론 그 과실은 우리가 먹는 것이 아니라 후대가 먹는 것이고. 서울만 해도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가 여기 왔고. 보잘 것 없지만 우린 최선을 다했어."

"그래. 난 부하들을 잃은 책임을 무겁게 느낀다. 너희들과 똑같다. 이미 분위기를 간파했겠지만, 오늘 아침 위로부터 자그마치 세 번째 전문이 왔다. 그리고 실행해야 할 '명령'이다. 우리가 20명밖에 안 되지만 상부는 보고를 올려도 잊은 것 같다. 내일 밤이다. 자그마치 20명이나 모여 통합작전이다. 내용은 여기 있다. 읽고 돌려보기 바란다. 약간의 토의가 필요하다.”


[독사B 모든 골프. 00월 00일 00시 01분을 기해. 모든 전력을 다해 모든 적 보급선에 대한 차단 파괴 지연 작전을 수행하라. 작전은 2일간 중단 없이 지속하라.]


이대위와 서대위와 김상사는 볼펜으로 암호를 해역 해 쓴 특유의 필체, 그 내용을 보면서 차례로 표정이 굳었다. 마지막으로 읽은 김상사가 담배를 뿜으며 몸에 율동을 시작했다.


“변했다면 미안해. 짜증만 내서 미안해. 신경 못써서 미안해. 미안해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너 없이는 안 돼. 고민하고 후회하고 기대하고 이러면서 단단해지는 거겠지. 이제 그만 들어와 줄래 내 품 안.”


지역대장이 다시 입을 열어도 김상사는 아주 작은 소리로 흥얼거리며 랩을 계속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삼류 랩을 하는 김상사가 아니라 박소령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이틀 동안 대대적으로 밀고 올라온다는 뜻으로 보인다. 좋게 말해 우리가 이틀만 버티면 드디어 종료점을 맞는다는 뜻이고. 골똘히 생각해 본 결과, 그게 4일이 될 수도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남하하는 적 보급선에다 우리가 차단 파괴작전을 펼치면 효과가 이틀 뒤부터 나타난다고 가정할 때, 앞서 말한 ‘좋게 말해서’ 제대로 밀고 올라왔을 경우 이틀이란 말이고, 합하면 4일. 모든 제대에 전달된 것 같다. 의견들을 말해봐.”


김상사가 노래 마지막 구절을 끝냈다.


“내가 환하게 웃게 해줄게. 가자! 집에 데려다 줄게.”


김상사가 웃던 얼굴을 갑자기 무거운 인상으로 구기며 담배를 군홧발로 퍽 밟아 껐다. 박소령은 고개를 숙였다. 침묵이 흐른다. 이대위가 목을 우두둑 꺾더니 마치 상한 음식 토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월남에도 안 가 본 용감한 김쌍사. 거 누구 노래야?”


“김진표 데시다...하.”



세상에 올 때 내 맘대로 온건 아니지만은

이 가슴에 꿈도 많았지


내 손에 없는 내 것을 찾아 낮이나 밤이나

뒤볼 새 없이 나는 뛰었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꿈만 같은데

두 번 살 수 없는 인생 후회도 많아


스쳐간 세월 아쉬워한들 돌릴 수 없으니

남은 세월이나 잘해봐야지


돌아본 인생 부끄러워도 지울 수 없으니

나머지 인생 잘 해봐야지


- 김성환의 노래 ‘인생’



지역대장은 모인 지역대원들을 둘러본다. 이게 남한군인지 북한군인지 구별이 잘 안 간다. 대부분이 AK를 들었고 중간에 RPG도 솟아 있고, 북한군 모자도 여기저기. K1 K2는 중간에 보물찾기처럼 섞여 있고, 붕대를 감은 손으로 거기 착검까지 한 대원도 있었다. 휴대한 대검이 AK에는 착검이 안 되니까. 아프리카 용병부대를 본다. 영내에 있었다면 의무대로 가야 할 여러 부상들을 모두 숨기고 있다. 모두가 칭송하는 애꾸눈 잭이 된 대원도 있다. 아프다고 하는 것이 쪽팔리고 의료품도 없다.


이제 의무 주특기는 침으로 백혈병이나 암까지 고칠 기세다. 팔에 파편이 박힌 상태로 붕대를 감고 버티는 대원도 있다. 그래도 그 대원은 파편이 다리에 박히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 것도 못하니까. 언넘 쏠려도 적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 대원 팔에서 고통이 몰려오면 웃으면서 야야야야야... 온다 씨바 인상을 긁는다.


모두 자연스럽게 담배도 피우고 농담도 하고 뭐 먹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모두의 얼굴은 종이를 태우고 침을 섞어 완전히 시커멓게 위장했고, 목과 귀와 손등도 완전 꺼먹칠이 되어 있다. 흰자와 치아들만 빛난다. 김상사가 AK 탄창 두 개를 거꾸로 겹쳐 테이프로 감았다. 누가 물어보니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영화에서 봤다 씨이발."


그리고 떠드는 지역대원들 가운데 인상적인 한 마디를 들었다.


"내 이랄 주 알았으모 걍 베레모 가져올 거마. 짱구 맞나! 마 베레모 쓰고 전투하는 기 내 꿈이었다이가."


“주목...... 그동안 수고했다. 오늘도 수고하자. 내일까지 수고하자. 그동안 못난 지역대장 만나서 수고 많았다. 각 중대장이 받은 임무를 잘 숙지했으리라 믿는다. 우리 불굴의 12지역대! 먼저 간 전우들을 생각해서 최선을 다하자. 마구잡이로 돌격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도로 차량 보급선을 철저히 파괴하고 어떤 방법이든 지연시키고 차단시키고 무엇이든 하는 것이다."

"나 역시 뒤에서 멀뚱멀뚱 바라보지 않겠다. 어떻게 하면 더 피해를 입히고 적을 더 지연시킬 수 있을까 순간순간 고민하면서 치고 빠지고 치고 빠지고 이틀이다. 자, 모두 서로 악수하자.... 그리고, 우리 조용한 음조로 애국가를 부르자... 4절까지...”


애국가가 끝나자 서로서로 악수하고 포옹하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모두 상황이 무엇인지 대충 다 알고 있었으나, 눈물은 쪽팔린 것이었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지만, 이런 때는 웃는다. 일본 말로 곤조다. 약자도 강한 것 앞에 목숨 걸고 곤조를 부리면 강자가 된다. 내가 너의 힘이 되고 너는 저 녀석에서 힘을 주어야 한다. 춤을 추고 웃는 사람도 있다. 모든 말의 반이 욕이다. 모든 얼굴이 시커먼 관계로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그때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지역댐! 아니 우리가 왜 애국가를 조용히 불러야 합니까? 저 아래서 우리 여기 있는지 모릅니까? 여기서 소리 지른다고 뭐 달라집니까? 듣는다고 우리가 지금 뭐가 무섭습니까! 지역댐, 우리 목청껏 지역대가 한 번 불러요!”


여기저기서 호응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다만 소리 지른 사람도 ‘마지막인데’란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순간 지역대장 박소령은 이빨을 악물고, 속에서 뭐가 치밀어 올라오는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K2에 탄창을 꼽아 공중으로 들어 노리쇠 후퇴전진하면서 삽탄하고 소리쳤다.


“하자! 지역대가! 니미 씨발 저 아래 개 좆 같은 니미 씨발 개팔 좆팔 개 씹새끼들이 다 듣도록! 군가 한다. 군가는 12지역대가. 지역대가~~~~~ 하낫 둘 셋 넷!!!”


폭소가 터졌다. 이어서 우렁찬 노랫소리가 산악에 울려 퍼진다. 점심 때부터 구름이 낮고 어두우며 바람이 푹푹 밀려오기를 반복하더니, 서서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누구라도 상관없이 목을 위로 꺾어 얼굴에 비를 맞으며 마음의 갈증을 해소한다. 훈련 때마다 노땅 원사들이 맨날 하던 말을 떠올린다.


‘비 오는 날은 게릴라 잔칫날이여. 호로새끼들아.’


아무도 그러자고 하지 않았지만, 포성이 울리는 남쪽으로 모두 몸을 돌려 총 옆에 내려놓고 천천히 절했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절대로 보지 않고 하산을 시작했다. 서로의 눈가를 봐서는 안 되는 시간이다. 앞서 가는 사람 등도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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