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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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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6.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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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지역대가 1

DUMMY

이젠 허기도 없다.


허기로 인해 뇌 가동률이 떨어졌는지 허기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조여진 혁띠 남은 부분이 사타구니 밑으로 내려간다. 며칠 동안 무얼 먹었는지 모른다.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 달 짜리 전술종합훈련에서 항상 마주하던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강도가 상상 이상이다. 오하사는 원래 골격이 크고 남성 호르몬이 강해서인지 젊은 나이에 수염이 무척 빽빽하고 터프하게 자라, 종종 전술훈련 복귀해 씻고 면도하기 전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중사로 알고 경례하곤 했다. 전술종합에서 7kg이 빠졌다면, 도래한 전쟁은 기본 10kg 이상이다. 전술종합에서 혁띠가 남아돌면 옆으로 돌려 측면 혁띠 속으로 삽입해 칼 차듯이 고정하곤 했다.


이제 근 3주. 이제 산을 타도 땀조차 안 흐른다. 호흡도 거칠어지지 않는다. 체중이 많이 빠져서 그런 것 같고, 몸도 산악에 적응되었다. 옆에 앉은 중대장 서대위도 얼핏 보면 부사관인지 장교인지 구분 안 간다.


그도 그럴 것이, 2주차가 넘어갔을 때, 옆 팀 담당관이 포로로 잡혔다는 말을 들었고, 그날 산으로 올라와서 서대위 팀은 대검을 뽑아 계급장과 마크와 모든 것을 제거했다. 그 장면은 마치 자기가 자기를 강등시키는 혹은 단체로 자살할 사람들이 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결국 찍찍이로 붙이는 마크들이었지만 미묘하게 장교 군복은 그 마크 찍찍이만 봐도 티가 난다. 군복에 붙은 찍찍이건 뭐건 모든 것을 다 떼어내니 이상하게 서로 간에 서열도 찾지 않고 서로 상의하는 사이로 점차 변모했다.


그러나 이런 믿고 털어놓는 것은 북으로 날아오기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역대 중대장들은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팀을 한 가족처럼 꾸미게 된다. 모두 계급 안 부르고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있어, 어떨 때 들으면 형이 이야기하는 것 같고, 동생이 꼬장 부리는 느낌도 든다. 물론 팀장은 서로 호형호제처럼 지내지만 일정한 권위가 있고, 아무리 편하고 친해도 중대장에게 권위가 필요한 자리에서는 깍듯하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룰이고, 그 기본적인 룰을 더 강하게 원하느냐 덜 원하느냐가 팀장 성향이다.


일단 훈련만 나가면 같이 걷고 먹고 자고 하기에 어떤 생활의 구분이 사라진다. 팀원이 밥 해먹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는데 그저 바라만 보기가 점차 불편해지고, 보병부대라면 할 수 없는 나무를 해오고 텐트도 치게 된다. 팀원들이 며칠에 걸쳐 비트를 만들려 땅을 파고 있는데 그걸 보면서 지시만 하는 것도 곤역인 부대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가 중위도 대위도 삽과 톱을 든다. 그렇다고 팀원들이 감사하다 어쩌다 말도 한 마디 없다. 서로가 적응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전시라면 몇 명 안 되는 팀에서 단 한 명도 뒷짐을 쥘 수가 없다. 그리고 전시가 실제로 도래했다. 몇 가지 이유로 지역대 한 팀은 다른 지역대 작전에 꼈다.


이러한 전제를 두고 말하면, 서대위는 딱히 권위를 선호하거나 바라는 사람이 아니다. 서대위는 딱히 호형호제하는 팀 분위기를 만들지 않았으나 모든 것이 이성적이고 행동에 신뢰감이 있었다. 아무리 몸 쓰는 부대지만 중요한 결정을 할 때가 있고, 그럴 때 팀원들은 서대위에게 물어보면 가장 현명한 답을 얻는다는 걸 알았다.


사회나 여자친구 집안 문제 등을 서대위에게 많이 물어보았고, 서대위는 항상 ‘내가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토를 달면서 정확히 아는 것만 설명해주었다. 그래서 일부 팀원들은 서대위 영향으로 제대하고 대학 진학을 결심하기도 했다. 보기에 별 특징도 없고 터프한 것도 없고 그런 중대장이었지만, 한 6개월 지나자 남들은 물러 보인다고 떠들건 말건 팀원들이 서대위를 중심으로 잘 뭉쳤다.


이 점은 전시가 되자 무서운 힘 혹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팀원들이 죽어나가고 (그리고 삼단삽으로 매장까지 해야 하는), 다치고 지치고 하는 과정에서 일부 팀에서는 계급간 의견 충돌이 발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실탄이 삽탄된 총을 가지고, 이미 사람 죽이는 경험을 했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이 총 한 방에 정말 좆도 없다는 것도 체험했다. 내가 죽을지 네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만 위험한 것을 맡기면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는 일은 모든 사람의 가능성이었다. 그런데, 서대위의 팀은 그런 일이 없었다. 사실, 너무 심하게 장악하려 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장교도 존재한다. 그럴 때 ‘넘어가면 접지하고 곧바로 갈겨버린다’ 농담 반 진담 반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적대적 항명은 말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군대는 군대 방식을 생각보다 쉽게 못 버린다. 진짜 현장에 도달했을 때 지휘관 하기에 달렸다.


서대위는 작전계획을 짜도 항상 팀원의 안전을 고려했고, MSS 지점에 도달해서 최종 브리핑할 때, 각 대원이 위치할 포인트를 정확히 설명하고 1차에서 3차까지 개인별 유보계획까지 꼼꼼하게 설명했다. 그냥 거기서 총 들고 있다가 적 나타나면 쏴! 그건 어쩌면 일방적인 지시다. 서대위는 어떤 곳을 습격할 때 첨병 하나 세우더라도 보다 자세하고 명확하게 임무를 주지시킨다.


“저 자리야. 그런데 잘 봐봐. 우리 본대가 임무 수행할 때, 만약 악(적)이 등장했다 이거야. 그럼 저 자리에서 쏴야겠지? 그런데 봐. 사계가 뚫려 위치는 매우 좋지만 교전으로 치면 저기 거의 엄폐물이 없고, 저 돌무더기에 엄폐하면 절대로 이동 못하고 묶인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알려야 하니까 일단 돌무더기에서 쏘고 나서 저 나무들 뒤로 곧바로 존나게 달려서 자리를 잡아야 돼. 저 나무들에만 들어가면, 그 이후로 쏘고 이동 쏘고 이동은 쉬워. 잘 안 보이니까. 일단 저기 도달하면 2차 3차 4차 기동 후 사격위치를 눈으로 찍어둬. 그래야 너도 안전하고 시간을 끌어 우리가 대처할 수 있어. 그 뒤로 만약 본대가 위험에 빠지면 합류해서 도울 생각 말고 넌 끝까지 기동하면서 저격수처럼 쏘다가 네가 위험하면 단독, 재집결지로 가라. 우리가 설정한 재집결지 대기시간 기억하지? 시계 있지? 좋아. 질문!”




늦은 가을 혹은 초겨울의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서대위, 이중사, 오하사, 백하사가 모닥불 없이 모닥불가처럼 앉아 있다. 군복은 때가 누적되어 디지털 위장무늬가 눅눅하고 어두운 회색으로 변했으며, 여기 저기 찢어지고 꿰메고 군복은 상처 투성이다. 거기에 군복에 모든 것을 제거했고, 서대위를 제외하면 모두 AK를 들고 있고, 이중사는 북한군 AK 탄입대 겸 조끼를 착용하고 있다.


이 모습을 봤다면 아마도 1970년대 관공서에 붙어 있던 간첩신고용 전단지의 무장공비 모습과 유사하다. 모두 생존을 위해 철저하게 현실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모두 AK 용 예비 공이를 포켓에 하나씩 가지고 있고, 공이 부러지는 일은 거의 없다지만, 내가 전투 중에 부러지면 니가 책임질 거여? 그런. 백하사는 아예 리꾸사꾸에 AK 노리쇠뭉치 새것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노획해서 사용하는 AK가 좀 낡기는 했으나 이상하게 영점이 잡힌 듯 조준하고 쏘면 무척 잘 맞는다.


알다시피, 모든 총은 같은 공장에서 나와도 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르는 사람은 그냥 AK 사용하다 더 새 것 있으면 버리고 집어... 그렇겠지만 몇 번 쏘고 나서 그 총이 마음에 들면 그걸로 기레이 가려고 한다. 이 중의 점입가경은 바로 오하사로 모든 것이 북한군이다. 군복도 장구도 총도 모자도 노획한 북한군으로 세트처럼 장비하고 있었고, 어쩌면 얼굴도 그렇다.


통신주특기 사수가 전사함에 따라서 백하사는 자동적으로 통신 부사수에서 사수로 격상되었으나, 이제 무전기는 시도해도 교신이 안 된다. 이는 사수가 전사하기 전부터 나타난 상황으로, 백하사 실력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태양충전기로 오래 충전해서 틀면 일정하게 수신은 된다. 송신이 안 되는 거다. 백하사는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사령부에서 무선망에서 사라진 자기 팀 명칭 수신으로 어떤 전문(명령)을 내릴 줄 알았다.


그러나 작은 한 팀을 위한 선택 전문은 없었다. 지금 교신은 지역대본부에서만 가능하고, 그것도 D-데이에서 일주일은 지나서였다. 지역대에서 손상이 안 된 가장 상태 좋은 무전기를 접수해 사용하고 있다. 그 대신 7중대는 무전기가 없다. 침투한지 열흘 조금 지나서 전시작계 작전을 효력이 어땠든 수행하고 나서 규합한 지역대는, 인원도 상태도 말이 아니었으나, 지역대장은 이렇게 모여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팀별 분산 은거를 지시했고, 한 중대장은 인원도 얼마 안 되는데, 두 제대로 묶는 게 어떻겠냐고 건의했었다. 이를 들은 지역대장은 각 팀별로 하기로 재차 확인하면서 팀별 500미터 정도씩 이격했다.


모든 팀은 정오에 한 명을 보내서 지역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팀 별 포진 형태는 사방으로 인계철선이 되고 여차하면 모여서 전투력을 규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각 팀들은 다른 팀이 공격받을 경우 은밀히 접근해서 15분간 저격 혹은 엄호사격을 해주고 튀는 것이 철칙이다. 여러 번의 적 추격으로 많은 장비가 유실되었고, 농담처럼 하던 말이 현실이 되었다. 점차 밤에 추워졌지만 침낭이나 기타는 모두 사라진지 오래였다. 밤이면 마른 풀까지 깔고 덮고 덜덜 떨던 누군가가 진짜로 기억에서 사라진 전설을 떠올린 것이다.


“예전 DZ에 낙하산 묻은 장소 기억하는 사람 있어? 몇 개 파다가 잘라서 침구처럼 쓰자.”


“전황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긴 건가 진 건가?”

“왜 아군이 안 올라 와. 내려가서 보급투쟁 좀 합시다래.”

“야, 아래 저 개새끼들도 초근목피하는데.”


“우리 중대 도로 정찰감시 몇 십니까?”


“지금 8중대니까... 우리가 박모 전에 내려가서 교대한다.”


“어떻대냐? 후퇴 많이 하고 있대?”

“밤에 주로 북상하고 있답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만주 산적 되기 전에 제발 좀 이제 올라와라.”

“전투기들이 한참을 더 올라가니까 기다려봐.”


멀리 포성이 들린다.


“거의 다 올라온 거 같기는 해.”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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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7 hi******
    작성일
    20.06.01 15:28
    No. 1

    30년도 더 전 애기입니다만, 늦가을도 아닌데 전방에서 김장 준비하면서 이엉을 엮는데 할 줄 아는 병사들이 없더라구요. 저 역시 도회지 출신입니다만 경험 많은 소대 선임하사(중사)와 그래도 눈썰미 있는 저(중위) 둘이 이엉 엮었습니다. 솔선수범인지 뭔지...

    찬성: 2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0.06.04 18:05
    No. 2

    중사 달던 해에 사병식당에서 삽으로 깍두기 비벼 봤습니다. 가격을 줄이려 일산 대화동 가서 배추 무우 직접 뽑아서 60에 적재. 여단에서 우리 대대에 도우라 했고 대대가 우리 지역대를 찍어서. 지금 생각하면 못 먹을 거 같습니다. 그냥 공구리 욕조에서 비볐습니다.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99 sa******
    작성일
    20.08.06 16:29
    No. 3

    작가님이 김포쪽에서 근무 하셨나 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0 조휘준
    작성일
    20.08.06 17:04
    No. 4

    인천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참좋은아침
    작성일
    22.03.26 10:53
    No.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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