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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6.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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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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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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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
9쪽

지역대가 10

DUMMY

서대위가 목격한 주검 중에서 이중사의 주검이 가장 무섭고 두려웠고 잊히지 않을 장면이었다.


수류탄 폭발과 함께 달려드는 적에게 총을 쏘다 전사했는데, 총알과 파편이 두상을 때려 시신을 크게 훼손했다는 점만이 아니라, 이중사가 전사하며 굳은 몸과 얼굴 표정이었다. 이를 악물고 있었고 눈은 분노와 고통을 동시에 담고 있었으며, 얼굴 모든 근육들이 일그러져 있었고, 땅에서 한 뼘 공중으로 들린 오른손이 수류탄을 쥔 듯, 마치 무엇을 긁는 듯한 모양으로 굳어져 이승을 떴다. 그 손 모양은 무언가 절실했다. 예를 들어 수류탄 몇 개만 더 있었다면...


그런. 자총으로 자살한 태평양전쟁 일본군의 표정도 그보다 서러운 모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와 비슷하게... AK 탄창에 실탄을 삽탄하다 전사한 지역대원도 있었다. 항상 새것인 실탄은 병사에게 묘한 매력을 발산하지만 망자 근처에 흩어진 실탄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의 장식품이다. 실탄 가득 찬 하나의 탄창은 평시에나 무거움을 주지, 긴장한 병사에게 한 탄창 사용은 그저 찰라다.


미군이 탄창을 베스트에 가득 꼽고 다니는 것은 생존에 유리하다. 전투 총격전이란 순간이며 꼭 맞추지 않더라도 순간 집중된 화력은 아주 작은 전투에도 전황에 매우 유리하다. 그리고 유리한 쪽에서 정확한 조준을 시작한다. 양쪽 어느 쪽에서 ‘여기서 그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쪽 모두 ‘우리 말끔하게 같이 다 죽자’ 전투하지 않는다.


앞서 오솔길의 진리를 말했다.

산을 내려오다 별로 차이도 없어 보이는 길의 갈라짐. 그러나 그건 점점 넓어지게 되어 있다. 왜냐? 같은 방향으로 갈 것이면 사람이 왜 거기에 다른 길을 냈겠는가. 그건 정말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난 것이다. 나무꾼이라면 거기서 많이 다른 방향으로 다니다 길이 난 것이다.


깊은 산의 조난은 바로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에서 살짝 옆으로 새는 길을 보고 별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 그 정도는 내가 새롭게 도전해도 충분히 감당한다는 착각.


특전부사관들 입대도 어쩌면 같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인생에 약간 모자란 것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 또한 인생은 한두 개 오솔길 판단으로 결정되거나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다. 죽는 순간도 어쩌면 오솔길 갈림이다. 죄를 존나게 지은 사람이 죽기 직전 회계하고, 성직자가 죄를 사해주는 것이 너무나도 마땅치 않다. 회개는 하고 지옥이 있다면 벌은 별개로 받아야 한다. 그런 야비한 게 어디 있나. 그냥 가던 길로 가야지. 죽음이 무섭다고 쪽을 팔아?


오솔길 판단은, 적어도 자신들이 알기에 유일하게 생존한 세 사람에게 또 당도했다. 서쪽으로 야산을 돌파해 나왔을 때, 셋은 완전히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는 순간 잠시 멈춰 생각했다. 서쪽으로 돌파한 이유는 평지가 아니라 능선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두 저 멀리 높은 산을 보았다. 그 세 봉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섹터의 참고점이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지만 가장 안전한 곳. 저기로 숨어들면 다시 게릴라전을 이어갈 수 있다. 그렇게 아군의 진군을 만날 수도 있다.


거기서 약간만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연기가 올라오는 7! 은거지는 ‘0’. 0이냐 7이냐. 이유는 하나였다.


직속상관 지역대장 박흥수 소령이 7-명령을 구령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서대위가 백하사와 오하사에게 새롭게 명령할 수도 있다. 물론, 지난 3주가 흐르면서, 무조건 말도 안 되는 것을 하라고 되는 것도 아니다.


마치 검사라는 직업처럼 각 대원은 일종의 살상 독립체로, 그 독립체를 적절히 부응시켜 움직이게 하는 것이 지휘관이었다. 물론 팀원들은 중대장의 말에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서대위는 선한 얼굴, 더욱 자세히 말하면, (팀원들은 결코 인정하지 않겠지만 사회로 따지면) 굉장히 잘생긴 얼굴에 피부도 여자처럼 깨끗하고 말투가 낮고 조용하다. 그러면서 몸도 얼굴과 상반될 정도로 근육질이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복을 입으면 대학원생 같다. 나가서 특전부대에 근무하는 것을 말하지도 않고, 주로 남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한다. 겉으로는 이 부대에 안 맞는 사람 같지만, 생각보다 이 부대에 잘 맞는 사람이다. 남들이 말하는 특전맨 객기가 딱히 안 보일 뿐. 술도 욕도 지역대 대대 기준 저 밑의 낙제점인 중대장이다. 다른 지역대 노땅 원사는 서대위를 ‘교장샘 오셨냐?’ 그러곤 했다.


“중댐....”

“......”

“입은 있으나 말은 못하겠습니다. 중댐.”


갈등하고 있었다. 전사한 담당관 이중사도 그러했지만, 너무 가까운 것도 어쩌면 문제였다.


팀원들은 몇 차례 관사아파트에서 싸모가 해주는 고기와 밥과 술을 먹었고 두 딸을 귀여워했다. TO 꽉 차야 12명 팀이었지만 실제 명칭 0여단 05대대 12지역대 9중대 - 일반명칭 불사조 중대. 일반명칭은 뭐 항상 아무 거나 뽀대 나는 걸로 하니까.


서대위의 아기나 다름없는 둘째 딸 이름이 단풍이었고, 팀원들은 팀 이름을 단풍중대로 바꾸자고 농담반 진담반 말했었다. 지역대 부사관 오장인 본부중대 김원사는 그랬다.


‘단풍중대? 전 여단의 폭소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거지? 10땡 화투중대는 어때? 아조 단풍처럼 시뻘겋게 지고 싶다는 무슨 일본제국군 사쿠라 그런 거냐?’


입대하는 특전부사관들 문화가 많이 변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가정 사회적으로 조금씩 불우한 면을 지니고 있는 특징은 한순간에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돈을 모은다거나 제대하고 경찰이나 어디 가려고 입대했다는 신삥하사는 고참들의 씁쓸한 웃음을 유발시켰다.


‘뭐 저런 새끼를 뽑았어.’

‘이제 체력장만 잘하면 개나 소나 다 오는구나.’

‘붙으려고 운동만 존나 열심히 하고 대가리가 비었어.’

‘저거 전술훈련 나가서 몇몇 휙휙 돌려봐야 정신을 차리지.’

‘저런 게 중사 달면 하사 존나 패고 매일 술에 쩔어 살 대표적인 케이스지. 말은 아주....’


담당관을 제외하면 모두 미혼이었던 팀원들은 서대위의 딸들을 무척 귀여워했다. 적 같은 지휘관이면 그 자녀들도 좋게 안 보인다.


‘어, 상똘의 아들이구나.’


차라리 중대장 집에서 밥 먹고 안 그러고 자녀들도 눈으로 안 봤다면 그 미묘한 갈등은 없었을런지 모른다. 팀원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작전을 계속 뛰고. 그러다 가끔씩 누가 하사나 중사나 대위가 아닌 ‘사람’으로 보일 때가 있다.


팀원들이 서대위를 보면 곧바로 그, 아빠 성품처럼 말 잘 듣고 예쁘고 품에 쏙쏙 안기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건 불우한 자들의 로망이었다. 서대위는 대학도 수도권 좋은 곳을 나왔고 싸모도 대학서 만난 동문이고 친절하다. 친절하다 그런 것보다 뭐랄까... 젠틀하다. 대가리 속이 똥으로 차지 않은 인간 부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쌔삼 깨닫게 해준다.


생과 사에서 남자답게 상대를 조져버리고 미래를 멀리 내다보지 않는 부사관들이 꽤 있었다. 자신 인생의 막장 쑈를 목숨 걸고 즐기는... 뭐 제대로 받은 것이 없는 인생에서 더 받기를 바라지도 않는 어떤 면에서 매우 냉정하고 잔인해진 사람들. 그들이 평시에 제대하면 생각과는 달리 또 다시 사회적으로 비천한 직업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군인이 멋있는 건 군대에 있을 때뿐이다. 부사관들이 내심 실망할 때는 멋있었던 고참이 제대하고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사는 것을 볼 때다. 의지만 있으면 변변한 직업이란 말도 너무 과한 표현이지만, 사회로 돌아가니 결국 학력도 머리에 든 것도 누가 도와줄 사람도 없는 상태 그대로 원복된다. 그래서 제대하고 장기 박을 걸 후회하는 사람들 꽤 많다. 제대하고 10년이 넘어도 그런 소리를 한다.


이 상황에서 세 명은 서로를 걱정하면서도 임무를 위한 도전을 바라고 있었다.


“말 못하겠습니다. 중댐. 결정하십쇼.”

“오하사 말해봐.”

“말 못하겠습니다.”

“말을 하건 말건 넌 어디로 가고 싶냐고.”

“.............. 7요.”


“지역대장은 분명 7을 명령했다. 그걸 듣고 살아 있는 사람은 현재 우리 셋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난 내가 어떤 방향을 원한다 개인적인 의사를 말하고 싶지 않다. 명령은 명령이다. 지역대장도 하고 싶어서 내린 명령 아니다. 지역대장도 우리도 군인이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없다. 난 의견을 모아 결정하고 싶다. 백하사 말해봐.”


“저는 중댐 판단에 맞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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