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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깎이 님의 서재입니다.

소나타빌 빈 방 있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B급깎이
작품등록일 :
2019.09.11 20:26
최근연재일 :
2019.12.30 18:0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1,949
추천수 :
62
글자수 :
182,121

작성
19.10.21 12:00
조회
45
추천
1
글자
8쪽

Chapter 3: 이제 호텔을 열어요.-2

DUMMY

스칼렛 양은 발레리나처럼 까치발을 들고 홀을 빙글빙글 돌며 돌아다니다가 소파에 몸을 던졌어요.

“가만 있자, 나 죽은 다음에도 집을 고친 적이 있던가?”

스칼렛 양은 검지로 입술을 톡톡 건드리며 생각해보았어요. 그녀는 천장을 기어 다니는 벌레가 보여서 눈살을 찌푸렸지요.

“그래, 벌레. 맞다, 벌레가 너무 많아서 벽을 아예 뜯었지. 하는 김에 이것저것 고치지 않았나? 밖에 있는 정자도 원래 없던 거잖아. 밤중에 열심히 울고 있는데 우지끈 우지끈 나무가 박살나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었다구. 그때 누가 일을 맡았는지 아빠 일기장에 적혀있을까?”

버터컵 백작은 귀염둥이 딸아이였던 스칼렛 버터컵 양이 1861년에 정체를 모를 병에 걸려 죽고, 5년 뒤 스칼렛 양의 오빠인 윌리엄 버터컵이 낙마 사고로 사망하자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술독에 빠져 같은 해인 1866년에 죽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우리 스칼렛 양은 5년 치 일기만 보면 되요. 그녀는 저택을 수리했을 때쯤에 버터컵 백작이 살아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스칼렛 양은 1층에 있는 서남쪽 방에 있는 버터컵 백작의 서재로 갔어요. 서재는 너무 커서 도서관에 가까웠답니다.

“지금도 이렇게 큰데 나 어렸을 때는 얼마나 커보였던지, 그때는 책장 위가 안 보였었어.”

스칼렛 양은 서재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책상으로 다가가 책상에 바짝 붙어있는 의자를 슬며시 당겼어요. 책상과 의자에는 먼지가 잔뜩 달라붙어있었답니다. 그녀는 후후 입김을 불어 먼지를 털고 의자에 앉았어요.

스칼렛 양은 일기를 꺼내려고 서랍장을 당겼어요. 열쇠가 채워져 있어서 열리지 않았지만 이럴 때야말로 귀신답게 행동할 때랍니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밑 서랍 코앞에 쭈그리고 앉았어요. 그리고는 머리를 쭉 들이밀었지요. 숱 많은 갈색 머리카락과 동그란 이마를 가진 머리가 통째로 서랍장을 뚫고 들어갔답니다. 스칼렛 양은 눈을 껌뻑 거리며 시냇물에 고개를 박고 물고기를 관찰하듯 서랍 안을 살펴보았어요.

“아하! 아빠 일기 저깄다!”

스칼렛 양은 팔도 서랍 안으로 쑥 집어넣어서 일기를 빼내고는 책상 위에 올려놓았답니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첫장을 펼쳤어요.

“58년부터 시작이네. 넘겨, 넘겨. 좋아 61년. 61년 6월 3일. 내 딸이 죽었다. 맞다, 나 6월에 죽었지? 하도 오래 되어서 언제 죽었는지도 잊고 있었잖아.

6월 3일.

내 딸이 죽었다. 그저께까지는 고열에 시달리며 정신을 못 차리던 아이가 어제부터 눈도 똑바로 뜨고 말도 하기에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기운이 없어서 실패하고 말았지만, 혼자 걷겠다고 침대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제 정말 다 나으려나보다 생각했는데 새벽에 갑자기 죽었다. 나는 그만 내 서재에서 잠든 탓에 딸아이가 손을 휘저으며 나와 제 오빠를 찾았다는데도 곁을 지키지 못했다. 하인이 나를 흔들어 깨워 2층으로 데려갔을 때에는 이미 교구 목사가 기도문을 올리고 의사는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스칼렛 양은 여기까지만 읽고서 그만 울음이 북받쳐서 일기를 덮고 펑펑 울었어요. 버터컵 백작이 딸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진솔하게 적어둔 부분을 읽을 자신이 없었거든요. 물론 스칼렛 양은 마음을 가다듬고 기어코 나머지 부분도 읽어서 건축설계사를 찾아내 연락처까지 알아냈지만 큰 용기가 필요했답니다.

“63년 8월 13일.”

아직도 눈시울이 붉은 스칼렛 양은 눈물을 훔쳤어요.

“하루도 빼먹지 말고 딸아이의 방을 정돈하라고 하인들에게 지시했는데도 기어코 방에 벌레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가증스러운 해충들이 방주인이 떠난 걸 기어코 알아챈 모양이다. 살충제를 구해서 뿌렸는데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해리슨 씨에게 편지를 보내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스칼렛 양은 버터컵 백작이 받은 편지들 중에 해리슨이라는 사람이 보낸 것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았어요. 해리슨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두 사람 있었고, 그중에 편지에 백작이 언급한 해충 문제를 논한 로이 해리슨 사람은 한 명 뿐이었답니다. 스칼렛 양은 편지를 써서 로이 해리슨 씨에게 보내기로 결심했어요. 스칼렛 양은 큰 공장 깃이 달린 펜을 들어 편지를 써내려갔답니다.

“로이 해리슨 씨께

저는 현재 버터컵 저택을 소유하고 있는 스칼렛 버터컵이라고 합니다. 전에 제 증조부이신 버터컵 백작께서 해리슨 씨에게 저택 보수를 의뢰하신 적이 있으시기에 편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저택을 대대적으로 개조해 호텔로 만들 계획입니다. 부디 오셔서 견적을 봐주시고 설계도를 작성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물론 스칼렛 양은 이 기본적인 용건 뒤에 말씀 많이 들었다는 둥, 어떻다는 둥, 잘 안 돌아가는 그녀의 머리에서 짜깁기할 수 있는 온갖 미사여구를 다 꺼내서 편지에 적었어요. 갑자기 나타난 저택의 후계자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 일어 가족 관계도 김병득 씨가 알려준 대로 썼지요. 그리고는 노랗게 빛바랜 편지 봉투 안에 넣었어요. 50년 전에는 새 거였는데 참 아까워요.

“자, 우표도 붙였고, 다 됐다. 내일 외출할 때 우체통에 넣어야지.”

스칼렛 양은 계획했던 대로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어요. 거의 50년 전에 집을 손봐준 신사라면 지금쯤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었거나 그녀 자신처럼 관짝 신세가 되었을 거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힐다, 히일다~.”

호텔을 열어서 신나게 놀 거라는 흥분도 가라앉았겠다, 한동안 정신없는 아가씨도 나타나지 않겠다, 다시금 제빵 일에 집중하고 있던 힐다 양 앞에 스칼렛 양이 미소를 담뿍 머금고 나타났어요. 이번에도 아침부터 들이닥치는 통에 힐다 양은 또 빵을 죄다 엎을 뻔했답니다.

“아, 스칼렛. 오랜만이네요.”

힐다 양이 빵을 담은 쟁반을 일단 탁자에 올려놓으면서 말했어요. 스칼렛 양과 함께 있으면 언제 빵을 엎을지 모른다는 걸 경험으로 채득한 탓이지요.

“짠! 이거 뭐게요?”

스칼렛 양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서류를 꺼내 펼쳐보였어요. 힐다 양은 서류를 받아들고 찬찬히 읽어보았답니다.

“주택 담보 대출증명서. 스칼렛 오스틴 버터컵 양은 20년 상환을 목표로 하여 버터컵 저택 및 부속 영지를 담보로 9000 파운드를 연이율 8퍼센트로 대출 받음. 스칼렛, 정말 대출 받은 거예요? 이제 호텔을 열수 있는 거예요?”

스칼렛 양이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직원도 하나도 안 뽑았고, 저택 개조는커녕 견적도 못 내봤는데 성격이 급해서 덜컥 대출 먼저 받은 데다 경영에 대해서도 하나도 아는 게 없었지만 당장은 기분이 너무 좋았지요.

“한참 걸리겠지만 이제 시작할 수 있어요! 힐다, 주방장 할래요? 월급도 줄 거고, 직원들한테는 방값도 안 받을 건데. 어때요, 돈 벌면서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고 싶지 않아요?”

“좋아요, 너무 좋아요! 나도 비단 이불에서 자볼래요.”

힐다 양이 스칼렛 양의 손을 잡고 방방 뛰었어요. 스칼렛 양도 좋아라하며 같이 뛰었지요.

“환장하겠네.”

힐다 양의 오빠인 해리 씨는 한 쌍의 바보 아가씨들을 보면서 자꾸만 식은땀이 나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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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Chapter 7: 봄비 -2 19.10.28 104 1 10쪽
19 Chapter 7: 봄비 19.10.27 31 1 9쪽
18 Chapter 6: 방울 목걸이-2 19.10.27 37 1 7쪽
17 Chapter 6: 방울 목걸이-1 19.10.26 32 1 8쪽
16 Chapter 5: 5단 케이크 파티-4 19.10.25 57 1 9쪽
15 Chapter 5: 5단 케이크 파티-3 19.10.24 35 1 8쪽
14 Chapter 5: 5단 케이크 파티-2 19.10.24 39 1 8쪽
13 Chapter 5: 5단 케이크 파티-1 19.10.23 32 0 8쪽
12 Chapter 4: 손님은 언제나 환영해요.-4 19.10.23 35 1 7쪽
11 Chapter 4: 손님은 언제나 환영해요.-3 19.10.22 31 1 7쪽
10 Chapter 4: 손님은 언제나 환영해요.-2 19.10.22 31 1 7쪽
9 Chapter 4: 손님은 언제나 환영해요.-1 19.10.21 31 1 7쪽
» Chapter 3: 이제 호텔을 열어요.-2 19.10.21 46 1 8쪽
7 Chapter 3: 이제 호텔을 열어요.-1 19.10.20 38 2 8쪽
6 Chapter 2: 호텔을 열고 싶어요-2 19.10.20 37 2 9쪽
5 Chapter 2: 호텔을 열고 싶어요.-1 19.10.19 49 3 8쪽
4 Chapter 1: 50년 동안 스물셋-3 19.10.19 88 3 8쪽
3 Chapter 1: 50년 동안 스물셋-2 19.10.18 69 1 8쪽
2 Chapter 1: 50년 동안 스물셋 19.10.18 87 2 7쪽
1 Chapter 0: 접촉 +1 19.09.11 211 6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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