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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깎이 님의 서재입니다.

소나타빌 빈 방 있어요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완결

B급깎이
작품등록일 :
2019.09.11 20:26
최근연재일 :
2019.12.30 18:00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1,947
추천수 :
62
글자수 :
182,121

작성
19.10.18 18:00
조회
68
추천
1
글자
8쪽

Chapter 1: 50년 동안 스물셋-2

DUMMY

“어디로 가지? 어디로 가지? 그래! 마실 나가자!”

스칼렛 양은 챙이 넓은 모자를 꾹 누른 채 50년 동안 보지 못했던 마을의 전경을 둘러보며 읍내라고 말할 수 있는 로즈멜로우 타운을 향해 걸어갔어요. 가죽 구두를 신은 그녀의 두 발이 좁은 흙길을 사뿐사뿐 노닐었고 치렁치렁한 치마는 깃털마냥 펄럭거렸으며 어깨에 두른 짧은 망토도 함께 흔들렸답니다.

“어쩜 50년 동안 하나도 안 변했냐. 외삼촌께서도 자기 어렸을 때랑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말씀하셨었지. 세상에! 그러면 100년 동안 바뀐 게 없는 거야?”

물론 세상은 스칼렛 양이 모르는 사이에 알음알음 조금씩 변해갔으므로 100년 동안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그녀의 말은 마을 입장에서는 억울한 말일지도 몰라요. 스칼렛 양이 저택에 콕 쳐박혀있던 지난 세월 동안, 마을에는 초보적인 전기 설비가 들어왔고, 로즈멜로우타운에만 있던 전화기가 놓인 우체국도 하나 생겼어요. 그런데 운 나쁘게도 스칼렛 양이 걸어간 오솔길에는 이런 신문물들이 하나도 없었어요. 마을 예산이 모자랐던 탓일까요? 버터컵 가문이 몰락하고 뒤이어 마을을 맡게 된 다른 가문이 기금을 모조리 횡령한 걸까요? 어느 쪽이든, 스칼렛 양은 기억하던 것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 마을을 보고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답니다. 자기가 죽은 적도 없고 세상이 1861년 그대로 인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지요. 물론 그녀의 상상은 로즈멜로우 타운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졌답니다.

스칼렛 양은 30분 정도 더 걸어서 로즈멜로우 타운에 입성했어요. 그런데 뭘 하려고 했었죠? 기억이 나지 않네요!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였지? 여기는 소나타빌이랑 다르게 엄청 많이 변했네. 하나도 못 알아보겠어. 땅에다가 벽돌을 깔았네? 전에는 흙바닥이었는데. 또 저기는 옷가게가 있던 자리인데 어쩌다가 빵집으로 변했담? 맞다! 내 드레스를 고치려고 맡겨뒀었잖아!”

50년 동안이나 안 찾아간 옷이 남아있기는 할까요? 아마 아닐 거예요. 머리가 안 좋은 스칼렛 양도 그 옷이 지금쯤은 작살이 났거나 다른 사람이 가져갔든지 해서 되찾을 수 없으리라는 건 알았어요. 그래서 스칼렛 양은 일단 드레스는 단념하고 지금부터 뭘 할지 생각해보기로 했지요.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바뀐 세상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지만, 스칼렛 양은 50년 만에 되찾은 하루를 어제처럼 날리고 싶지는 않았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벤치에 앉아서 할 일을 손에 꼽아보는 것도 그녀의 성격에는 맞지 않았던 고로, 스칼렛 양은 눈앞에 보이는 빵집에 가보기로 하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어요.

“이봐, 계집애! 비켜! 죽고 싶어?”

아뿔싸, 하마터면 자동차가 스칼렛 양을 받아버릴 뻔했네요. 스칼렛 양은 운전수가 고함을 치는 것을 듣고 겁먹은 고양이처럼 몸서리치며 급하게 몸을 뺐어요. 구두의 앞코가 아슬아슬하게 자동차의 타이어에 스쳤어요. 그녀가 육신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하마터면 상판이 갈릴 뻔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스칼렛 양은 자동차에 치일 뻔했고 또 운전수에게 험한 말을 들었는데도 황홀경에 젖어 좋다고 탄성을 자아내는 게 내는 게 아니겠어요? 단단히 미친 것 같아요.

“저 사람이 날 봤어! 날 봤다고! 나한테 말도 걸었어! 비록 욕지거리이기는 했지만 다음 사람이 분명 훌륭하고 멋진 말을 해줄 거야, 야호!”

입이 험한 운전수 덕에 스칼렛 양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빵집에 입성할 수 있었어요. 빵집 카운터에 서있던 꼬마 아가씨와 그녀의 오빠로 보이는 청년은 웬 미친 여자가 들어왔다고 서로 속삭였어요.

“해리, 저 여자 이상해.”

제빵 업무 때문에 몸에 차오르는 지방을 간헐적 단식으로 간신히 누르고 있는 여동생이 청년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말했어요. 청년 해리는 오븐에서 빵을 꺼내다가 몸을 돌려서, 몸을 숙이고 부드러운 빵들을 쿡쿡 찔러보고 있는 갈색머리 여자를 찬찬히 뜯어보았어요. 스칼렛 양은 식빵 냄새를 맡으면서 마치 대마초를 들이킨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으므로 해리는 못 볼 것을 본 것 마냥 얼굴을 찌푸렸답니다.

“그래. 나이도 젊은 것 같은데 벌써 머리가 돈 것 같아.”

“칼을 들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칼은 무슨. 권총 아닐까? 아니다. 몸이 저렇게 얇아서야 권총을 찼으면 벌써 티가 났겠네.”

남매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동안 스칼렛 양은 바구니에 크루아상, 롤케잌, 식빵, 바게트, 쿠키 등 잘 먹던 음식들을 모조리 쓸어 담았어요. 아니, 베이커리 안에 있는 모든 빵들을 한 개 씩 전부 다 집었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그 신사님은 일 년에 한 번씩 젯밥을 얻어먹는다고 했으니까 나도 이 빵을 먹을 수 있을 거야. 그저께 나이프를 들었고 어제는 바느질도 했는걸. 내 혀도 돌아왔을 거야.”

“오빠, 저 아가씨가 뭐라고 말하는지 들려?”

빵집 아가씨가 해리에게 속삭였어요. 해리는 이제 손님에게서 신경을 끄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모르겠고 궁금하지도 않다고 대답했어요. 참으로 무심한 오빠죠?

스칼렛 양은 빵을 잔뜩 들고서 계산대로 왔어요. 빵집 아가씨는 빵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가격을 다 더했는데, 스칼렛 양이 워낙 많이 골랐는지라 계산이 다소 오래 걸렸답니다. 그동안 스칼렛 양이 몸을 베베 꼬면서 기대감을 꾹꾹 눌러 담은 눈과 수줍게 닫았지만 미소를 만면에 띤 입술로 이 불쌍한 빵집 아가씨를 바라보았어요. 빵집 아가씨는 불안감에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을 달달 떨다가 그만 연필을 부러뜨리고 말았답니다.

‘이 아가씨 표정이 왜 이래? 설마, 말로만 듣던 동성애잔가? 난 남자가 좋은데! 아, 이런 연필을 부러뜨렸잖아.’

“실례합니다.”

빵집 아가씨는 서랍에서 새 연필을 꺼내 수첩에 몇 번 그어보고 다시 계산을 시작했고, 초록빛 큰 눈을 슬쩍 굴리며 스칼렛 양을 몰래 바라보았어요.

‘또 뭐야? 이번에는 왜 고개를 푹 숙이고 우는 건데? 이 아가씨 조울증인가?’

아아, 이 순한 빵집 아가씨가 스칼렛 양의 마음을 모르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어요. 우선 빵집 아가씨는 죽어본 적도 없고, 50년 동안 묵언수행을 하다시피 타인과 차단된 적이 없었잖아요.

스칼렛 양을 변호해주자면, 그녀는 눈앞에 서있는 빵집 아가씨가 뭔가 근사하고 대단한 말을 해줄 줄 알고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있었어요. 그런데 들은 말은 고작 “실례합니다.” 뿐이었으니 울만도 하지요.

“아가씨, 제가 뭐 잘못했나요?”

빵집 아가씨가 스칼렛 양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어요. 스칼렛 양은 놀라서 펄쩍 뛰다시피 했다가 아니라고 고개를 젓네요.

“아니에요. 다 제 탓이에요.”

“힐다, 뭐야?”

드디어 홀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생긴 해리는 빵을 굽다 말고 카운터로 와 꺼이꺼이 울 준비를 마친 스칼렛 양을 보았어요. 그는 영문을 모른 채 동생 힐다를 힐끔거렸고, 빵집 아가씨 힐다도 어쩔 줄 몰라서 불안한 눈초리를 바들바들 떨었어요. 그들은 개업한 이례로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다는 걸 느꼈고, 진상 손님을 최대한 빨리 밖으로 내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답니다.

빵집 남매가 역모를 모의하는 동안 스칼렛 양의 눈에서는 기어코 자두처럼 크고 굵은 눈물 한 방울이 솟아나와 바닥으로 떨어지네요. 스칼렛 양은 실눈을 뜨고 자신의 눈물 자국을 바라보다가 눈꺼풀을 티끌만치 조금씩 벌려가며 눈물 자국을 더 자세히 관찰했어요. 눈물을 보이던 그녀의 눈망울에 생기가 돌고 입술에는 미소가 만면에 번졌고, 빵집 아가씨는 이 조울증 걸린 여자 때문에 겁에 질려 아랫입술을 깨물었답니다.

“내가 울었네? 내가 울었잖아? 와아, 아가씨. 내가 울었어요, 고마워요! 내가 울었다! 아가씨 이름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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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Chapter 6: 방울 목걸이-1 19.10.26 32 1 8쪽
16 Chapter 5: 5단 케이크 파티-4 19.10.25 57 1 9쪽
15 Chapter 5: 5단 케이크 파티-3 19.10.24 35 1 8쪽
14 Chapter 5: 5단 케이크 파티-2 19.10.24 39 1 8쪽
13 Chapter 5: 5단 케이크 파티-1 19.10.23 32 0 8쪽
12 Chapter 4: 손님은 언제나 환영해요.-4 19.10.23 35 1 7쪽
11 Chapter 4: 손님은 언제나 환영해요.-3 19.10.22 31 1 7쪽
10 Chapter 4: 손님은 언제나 환영해요.-2 19.10.22 31 1 7쪽
9 Chapter 4: 손님은 언제나 환영해요.-1 19.10.21 31 1 7쪽
8 Chapter 3: 이제 호텔을 열어요.-2 19.10.21 45 1 8쪽
7 Chapter 3: 이제 호텔을 열어요.-1 19.10.20 38 2 8쪽
6 Chapter 2: 호텔을 열고 싶어요-2 19.10.20 37 2 9쪽
5 Chapter 2: 호텔을 열고 싶어요.-1 19.10.19 49 3 8쪽
4 Chapter 1: 50년 동안 스물셋-3 19.10.19 88 3 8쪽
» Chapter 1: 50년 동안 스물셋-2 19.10.18 69 1 8쪽
2 Chapter 1: 50년 동안 스물셋 19.10.18 87 2 7쪽
1 Chapter 0: 접촉 +1 19.09.11 211 6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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