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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0.27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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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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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DUMMY

루비니아 제국의 수도 울란. 서북 영주 연합의 거목, 우드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앞에는 개척지의 내로라하는 영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곧 몬스터들의 두목이 도착하오."

우드는 한껏 비웃음을 얼굴에 띄우며 말했다. 모여 있던 영주들 역시 비슷한 표정이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남자만 어두운 얼굴이었다.

"저 멍청한 제이드는 저 스스로 죽을 자리를 찾아온 거요."

현재 전 대륙은 몬스터 토벌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그 와중에 데리안 영지는 다른 영지와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오크를 불러와서 기사단을 만들지 않나, 고블린을 고용해서 휴먼삼 농사를 짓지 않나.

“그 사악한 오크며 가고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사들이 죽어나갔소이까?"

우드의 맞은편에 있던 중년 남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사실, 휴먼삼으로 인해 데리안 영지에 돈이 모이는 것을 보고 그것을 탐내 여러 영주들이 시비를 걸었었다. 알렉과 우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알렉은 신경 써서 키운 군사 이천중 절반을 잃었다. 그 중에는 알렉이 자랑하던 마탑의 마법사도 하나 있었다.

다른 영주들도 하나둘씩 분노를 터트렸다.

“애송이 주제에 말이야.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무지렁이 백성 놈들은 세금도 낮고 복지도 좋다면서 또 그 곳으로 몰려가지 뭐요.”

“이해가 안 가오. 냄새나는 몬스터와 뒤엉켜 사는 게 뭐가 좋다고들 그러는지.”

그때, 우드의 시야에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영주가 보였다. 솔 아이젤이었다.

“이보시오, 아이젤. 아까부터 말이 별로 없으시더이다?”

우드가 넌지시 말을 걸어보았다.

아이젤 가문은 한때 루비니아의 백작가문이었으나, 저 유명한 갈르리오 황제시절 서북지방으로 쫓겨난 가문이었다. 구(舊) 데리안 가문이 서북지방에 정착할 무렵, 함께 개척을 시작해왔으니 무려 삼백년간이나 서북지역을 운영한 유서 깊은 가문이었다. 다른 가문들이 방랑기사나 모험가로 시작한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때문에 다들 솔의 눈치를 조금씩 보고 있었고, 그것이 우드의 기분을 언짢게 했다.

“흠. 솔직히 전 제이드 자체보다 몬스터 토벌령이 신경 쓰이는 군요.”

솔이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겨우 사십 세. 한창때를 빗겨간 나이건만, 솔의 얼굴은 지금도 여러 여성을 울리고도 남았다. 말끔하게 빗어 넘긴 금빛 머리카락은 솔의 혈통을 떠올리게 했다. 한때 수도에서 날렸던 가문, 서북지역의 오랜 터주대감 등등. 거기에 미려한 턱선이며....눈가에 자리한 잔주름조차도 솔의 외모를 상하게 한다기보다는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마치 잘 닦인 고가구위에 얹힌 세월의 더깨 같달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우드의 말은 꽤 날이 서 있었다. 솔은 깍지 꼈던 손을 풀었다.

“때와 장소가 공교롭군요.”

“때와 장소?”

“곧 중앙의 군대가 서북지역으로 올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말입니다.”

중앙의 군대라는 단어에 영주들이 움찔거렸다.

“어째서 그렇소?”

“최근에 폐하께서 검은산맥에 보내신 토벌단이 떠올라서 말입니다. 저희야 폐하의 위명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겠지만, 한편으로 영지민들에게는 대규모 군대가 주둔하는 것에 불안감이 조장될까 그게 걱정이지요.”

솔의 말은 영주들을 자극했다. 영주들도 혹시나 중앙에서 군대를 파견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젊은 황제에게 그런 여력이 있을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만에 하나라도 불안이 현실이 될까봐 걱정이었다.

“허허.”

우드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시오. 붕어하신 수피안 황제께서 친서를 내리시어 서북방을 개척하는 자에게 20년간 면세와 각종 특혜를 보장한다고 하셨잖소.”

“그렇기야 합니다만...인간의 약속이 신의 말씀보다 더 클까요?”

우드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솔의 말은 얼마든지 황제의 약속이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기야 죽은 사자가 살아있는 늑대를 못 이긴다는 말도 있다지요.”

누군가가 솔을 거들고 나섰다. 죽은 황제의 약속이야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그 생각에 다른 영주들이 얼굴이 굳어갔다.

“조용히 하시오. 어찌되었건 황명이오. 황명을 거역하는 건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오.”

우드는 솔을 쏘아보았다.

“게다가 황제 폐하께옵서 황송하옵게도 저 우드를 불러 친히 독대하셨소. 그때 말씀으로는 반드시 우리 서북 영주 연합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하셨소.”

“그렇기야 하겠지요.”

솔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저 애송이 놈이...’

우드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솔이 이렇게 입을 열어 한마디 할 때마다 영주들은 동요하곤 했다. 영주연합의 수장인 우드의 권위보다 솔의 말이 더 힘을 갖는 듯한 느낌에, 우드는 기분이 편치 못했다.

“저, 영주님.”

솔의 집사였다. 집사는 솔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만, 잠시 자리를 뜨도록 하겠습니다. 괜찮겠지요?”

“마음대로 하시오.”

“그럼 이만.”

솔은 느긋한 걸음으로 홀을 나섰다.

“솔의 말을 들으니 걱정이긴 합니다. 만약 이 모든 게 드래곤이 드워프와 엘프 잡는 놀음이라면....”

드워프와 엘프 잡기. 사이가 나쁘기로 유명한 두 종족, 드워프와 엘프가 어느 날 길에서 만났다. 둘은 분노하며 서로에게 달려들었고, 둘의 싸움은 해가 지도록 그칠 줄 몰랐다. 결국 둘은 지쳐 쓰러졌고, 지나가던 드래곤이 때마침 이 모습을 보고 둘을 잡아가버렸다. 드래곤은 둘에게 평생 마법무구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사이 나쁜 둘을 이용해서 이득을 얻는다는 의미의 속담이었다.

“설마 폐하께서...”

“그럴 리가 있겠소?”

우드는 히죽 웃었다.

“현재 폐하께서는 대륙회의에 신경 쓰느라고 바쁘실 거요. 특히 저 엘라드 황제와 고테 황제가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으니 말이오. 그러니 어찌 우리 같은 촌구석에 신경쓰시겠소? 저 사악하고 버르장머리 없는 제이드 따위야, 우리 같은 미천한 자들에게 맡기면 족하다오.”

“그래도...”

“어허! 내가 전날에 황제폐하를 친견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때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우리에게 전권을 맡긴다고 하셨소.”

우드는 버럭 소리 질렀다. 어설프게 말을 꺼내보려던 영주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 우드를 못 믿겠다, 이거요?”

“아니오. 당연히 우드 경을 믿지요.”

“암요.”

영주들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드의 영지는 이들 영주들 사이에서 가장 규모가 컸으며, 재력 또한 막강했다. 재력으로 견주자면 데리안이 유일할 정도였다.

“흠흠.”

우드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영주들이 굽실거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솔, 이놈...내권위에 도전했겠다? 어디 두고 보자.’

우드는 솔이 나간 문을 향해 매서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래, 어떻게 되었나. 미마는 찾았나?”

홀을 어느 정도 벗어났다 싶자, 솔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집사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저, 그것이...”

“왜 그러는가? 못 찾은 건가?”

집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찾긴 찾았습니다만...그게...”

“어서, 이야기해주게. 무려 이십년 만일세. 그녀의 종족은 대체로 수명이 짧아. 십년이라면 그녀에게는 어마어마한 시간일 수 있어. 그러니 어서 이야기해주게. 더 늦기 전에 말이야.”

“그러니까 말씀입니다....”

집사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았다.

“장소를 옮겨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솔의 거처.

“후우....”

솔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의 손에는 시가홀더가 들려 있었다. 드워프의 것보다는 훨씬 약한 것이었지만, 독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자네는 최선을 다했어. 다만...지금 혼자 있고 싶군.”

이십년 동안, 솔은 한 여자를 찾아 헤맸다. 한때 솔이 아무것도 없던 시절, 솔의 곁에 있어줬던 여인이었다. 둘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으나, 둘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아니, 그 사건만 아니었어도 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둘은 헤어져야 했다.

‘게다가 헤어질 때 그렇게 상처를 줬으니...’

솔은 다시 한 번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철없던 시절 자신이 던졌던 말. 솔은 나중에 얼마나 그 말을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 말에 미마는 눈물을 뿌리면서 사라졌다.

‘미안해요,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게요.’

미마가 그렇게 사라진 후, 솔은 자신의 말을 후회했다. 솔은 곧 부친과 주변사람들 몰래 미마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은 미마를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미마는 자신의 말대로 영원히 솔에게서 사라진 것이다.

이십년 만에 집사에게서 들은 소식은 뜻밖이었다.

‘미마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니...’

솔과 헤어진 후, 미마는 고향에서 솔의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아이는 열살이 되던 해 고향을 떠났다고 했다.

솔이 들은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그때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솔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작가의말

나쁜 남자, 솔? 일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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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14.09.26 41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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