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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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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0.27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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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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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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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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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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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2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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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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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5.왜 착한 사람들이 지느냐고 묻지마라, 당신들이 진거니까

DUMMY

홍마노. 로제타의 붉은 머리카락에 잘 어울릴듯 했다. 손가락사이에 구르는 구슬의 감촉이 차가웠다. 세이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팔찌를 품에 넣었다. 주인이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목걸이요? 이건 동방의 환제국에서 온 목걸이인데....숙녀분한테 정말 잘 어울리네요."

주인은 저 반대편에서 막 목걸이를 고르는 연인에게 온 신경을 다 쓰고 있었다.

"저, 저 세이안님..."

잭이 어물거리면서 세이안에게 다가왔다. 잭은 불안한 얼굴로 세이안에게 속삭였다.

"그거 값을 치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세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인데, 치러서 뭐해?"

"네?"

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곧, 죽는다고 했다. 개미새끼 하나 한 보인다 했더니....이 녀석들 판을 크게 벌리는군."

"네?"

"애들이나 데리고 와."

세이안은 좌판에 몸을 기댔다. 한 낮, 하늘에 뜬 구름은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가벼워보였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걸음마저 그러했다. 깔깔 거리며 웃는 연인과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여유롭게 보였다. 세이안은 반쯤 눈을 내려떴다. 입술에 걸리는 가느다란 호는, 눈동자만큼이나 붉어보였다.

세이안의 미소가 짙어질수록, 잭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잭은 서둘러 아이들이 있는 회전목마를 향해 달려갔다. 회전목마는 돌아가는 것을 천천히 멈추고 있었다.

“하나.”

세이안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잭 아저씨?”

벨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폴은 벨르가 목마에서 떨어지기라도 할 듯이 벨라를 꼭 안고 있었다.

“둘.”

잭은 더 말하지 않고 둘을 끌어내렸다.

“무, 무슨 짓이야!”

붙들려 내려온 폴은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폴의 뒤로 섬광이 번뜩였다.

“엎드려!”

잭은 둘을 꽉 내리눌렀다. 그 순간, 굉음이 울렸다.

“콰광!”

세이안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꽂았다. 섬광은 여기저기 내리꽂혔다.

“어?”

노점 주인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섬광 한 줄기가 좌판에 내려 꽂혔다. 좌판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부서졌다. 그것도 모자랐던 것인지, 파편은 엄청난 속도로 주변으로 날아갔다. 퍼걱. 다소 묵직한 소리였다. 세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머리를 잃은 시신이 주춤거리며 걷다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세이안은 애도하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파아악!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회전목마의 머리 파편이 나타났다. 파편은 숙인 세이안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갔다. 세이안은 고개를 들었다. 세이안은 머리를 만져보았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몇 오라기 우수수 흩어졌다.

“이런, 머리모양이 이상해졌잖아. 로제타가 싫어할 것 같은데.”

"세이안님!"

잭이 소리 질렀다. 세이안은 힐끗 앞을 내려다보았다.

"아이들을...!"

잭은 아이들을 두 팔로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잭의 등에는 파라솔의 기둥조각이 박혀 있었다. 세이안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나 무른 녀석."

세이안은 아이들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네가 병사했다고 말해두겠다. 돈은 조합에서 지불할 거다."

잭은 고개를 떨어트렸다. 세이안은 힐끗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일어서, 애새끼들아."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냥 죽어버려. 어차피 저 녀석들은 너희를 수거하는 것보다는 아예 없애버리기로 결정한 것 같은데.”

세이안은 손날을 세웠다. 손끝에 푸르스름한 빛이 맺혔다.

‘녀석들의 신체만으로도 협상은 가능하니까. 살려서 데려 갈 필요까지는 없어.’

머리정도면 되겠군.

“안 돼!”

그 순간, 누군가가 세이안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말릴 새도 없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새라가 달려 나갔다. 하아, 정말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감수성이 돋아도 그렇지, 어떻게 저렇게 파편이 날아다니는 한 가운데로 뛰어들 수 있냐고, 야이... 그래, 그래...이해한다, 이해해. 격동의 사춘기라는 거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차크람을 뒤따라 보냈다.

새라가 세이안을 밀치는 것과 동시에 두 장의 차크람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세이안의 붉은 검기가 차크람에 부딪혀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진다.

세이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건물 파편이 세이안의 바로 옆에 떨어졌다. 세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하나 종잇장처럼 우겨진 철판이 떨어져내린다. 그것도 바로 세이안이 앉아 있던 자리에 말이다. 이거 참. 주인공은 뭘 해도 산다는 건가. 무슨 영화도 아니고...아니, 잠깐 저 인간이 주인공이었던가?

"애들한테 무슨 짓이야!"

세이안은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새라를 바라보았다. 새라는 아이들을 일으켰다.

"그것보다 당신들은 왜 이곳에 있죠? 지하실에 있어야 할 텐데."

글쎄 말이다. 나도 이런 장소로 오고 싶지는 않았거든. 이렇게 폭발이 마구 일어나는 곳에서는 말이야. 어이쿠, 저거 혹시 길에서 봤던 식료품 가게 간판 아니야? 바로 우리를 향해 날아오네.

“으아아아!”

제이드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비명을 질러댔다.

쾅! 날아오던 간판이 뭔가에 부딪혔다. 파지직! 번개가 치는 것처럼 자잘한 빛줄기가 투명한 표면에 번지는 게 보였다. 섬광은 나타났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간판은 튕기는게 아니라 그냥 부서져버렸고.

"대단하군요, 가니메, 아니 피엘."

피엘이 친 실드 덕분에 이렇게 거리의 도로가 폭탄으로 움푹움푹 패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서 있는 곳만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폭음에도 불구하고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릴 정도다. 정말 대단하다. 노른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가만, 피엘은 노른 중에서도 제일 약한 노른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그렇다면? 나는 네메시스를 홱 돌아보았다. 네메시스는 무심한 척 딴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그렇게 바깥 풍경 구경하지 말고 뭐라도 좀 말해봐, 야! 네메시스! 하다못해 실드 치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그런데."

세이안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실드로 흘러들어왔다.

"저는 그냥 이렇게 둘 생각입니까? 자비로우신 여신님들!"

세이안은 히죽 웃으면서 실드에 찰싹 달라붙었다.

"누가 여신이야!“

피엘이었다.

"그냥 죽어버려요."

새라가 아이들을 안아든 채 말했다.

"글쎄, 뭐 주인공은 안 죽는다니까 상관 없...."

"무슨 소리예요! 빨리 들여보내주세요."

"지금 세이안을 들여보내주려면, 피엘이 실드를 거둬야 하고, 그렇게 되면..."

가정이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지는...것은 아니고...하여간 우리가 위험해진다.

“저만 쏙 빼놓고 실드를 친 것 보면 꼭 저를 노린 것 같습니다만?”

세이안이 씨익 웃었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나. 저 모습을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누군가가 있는 데 말이야. 누구인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누구더라? 모카와 비슷한 누군가가 있었는데?

쿠콰쾅! 곳곳에서 땅이 파이고 건물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무시무시한 무기라니. 하기야 우리 지구에서는 이정도는 껌일 정도로 무서운 무기가 많지.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말이야. 다만 문명인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런 소음은 싹 제거한 영상만 볼 뿐이요, 비문명인은 몸으로 겪는다는 사소한 차이가 있달까나.

“뭔가 준비해놓은 게 있을 텐데, 세이안.”

네메시스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거야 당연하지요. 다만...”

세이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여러분께는 그다지 유쾌한 장면이 아닐 텐데요. 그래서 제가 안전가옥에 처박아 놓은 건데. 어른 말을 듣지 않다니, 다들 나쁜 아이들이군요"

세이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대면서 손가락을 하나씩 접어보였다. 하나 둘 셋....다섯?

폭음이 사라졌다. 정말 깨끗하게.

방금 전 있었던 일들이 모두 거짓 같다. 그저 뿌연 먼지만이 곳곳에 떠다니고 있었다. 건물잔해마저 먼지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폭음이 사라지자, 사람들의 절규가 들린다.

“내팔, 내팔이 보이지 않아!”

“엄마, 엄마....”

“아무것도 안보여!”

이건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질 수 없어.

“뭘 한 거냐?”

네메시스가 물었다. 피엘도 의심스러운지 실드친 걸 안 풀었다.

“마법 무력화 주문인가요?”

세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도시 지하에 대규모 항마법 진이 그려져 있습니다.”

세이안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발동하는 이유는?”

“저들을 잡기 위해서죠.”

세이안이 머리 위를 가리켰다. 화창한 하늘. 한 대의 비행선이 두둥실 떠 있었다.

“저들이 이번 공격에 사용한 것은 마나를 운영하는 기존의 기계였을 겁니다.

아직 이 아이들만큼 성공적인 기계는 못 만든 모양입니다. 마법학은 제 전공이 아니라 딱히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저 기계들, 아니 아이들은 마나와는 다른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 같더군요. 맞죠, 새라 양?”

새라가 울컥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별 말은 못하는 걸 보니, 세이안의 말이 맞나보다.

“그러니 그 기계, 아니 아이들을 썼다면 항마법진 따위는 먹히지 않았을 테죠.”

세이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다시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가고일을 탄 라이더들이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가고일 무리 쪽에서 뭔가를 쏘는 게 보였다. 얼마 후, 비행선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마구 흔들리더니, 아래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네요.”

“그러게.”

하마터면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일뻔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먼지를 걷어내고 그 아래 있는 광경을 보여주었다.

“으으으윽....”

곳곳에서 신음하는 부상자들과 아이를 찾는 부모들이 보였다.

“세이안. 왜 항마법진인가 뭔가를 발동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린 거야?”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노린 겁니다. 연금술사 협회 놈들은 워낙에 지독한 놈들이라 확실히 잡으려면 이 방법 밖에 없어요.”

“그런데 왜....”

아, 골치가 지끈거린다. 한 도시 전체를 쑥밭으로 만들어버리는 놈들이나, 그 놈들을 잡으려고 도시 전체를 미끼로 쓰는 이놈이나....

“왜 오늘로 잡은 거예요? 그것도 유원지를 장소로 택한 이유가 뭐냐고요! 당신 눈에는 이 광경이 안보여요?!”

새라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새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잔해에 파묻힌 사람의 머리가 솟아 있었다. 초점이 없는 눈과 미동조차 없는 저 몸을 보니,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세이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 사람들이 운이 없었던 것 뿐이죠.”

바람이 분다. 분명 방금 전까지 지상에 쏟아지던 열기 때문에 더운 바람인데도, 왜 이렇게 차게 느껴지는 걸까.


작가의말

세이안....약간이 아니라 꽤 맛이간 인물이네요.

얼굴과 실력은 있으나 개념은 먼 곳으로 보낸 인물이라...

리안을 굴리는데 큰 공헌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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