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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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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0.27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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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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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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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9.1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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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5.왜 착한 사람들이 지느냐고 묻지마라, 당신들이 진거니까

DUMMY

"저...우리는 왜 안 들어가죠?"

아이들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들의 손은 잭에게 단단히 붙들려 있었다. 세이안은 이미 등을 돌려버린 뒤였다.

"그게 말이지...하하."

잭은 어쩔 줄 몰라하며 마른 입술을 적셨다.

"너희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단다."

잭은 아이들 앞에서 한없이 약해졌다. 그런 점 때문에, 어쌔신 길드의 수장인 에리나는 잭을 이런 한직에 처박았다. 잭은 아이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은 도저히 보지 못했다.

"이 아저씨와 함께 맛있는 거 먹지 않을래?"

여자아이가 남자아이 뒤에 숨었다. 남자아이가 눈에 불을 켰다. 잭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에요."

"거짓말. 그 아저씨들도 나쁜 사람 아니라고 했어."

"고 녀석 참..."

동생을 지키겠다는 오빠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애잔했다.

"뭘 그렇게 시간을 끄나?"

계단에서 세이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나쁜 사람 아니야. 우리 집에도 너희 같은 아들내미 하나, 딸내미 하나가 있는 걸. 우리 자식이름을 걸지. 너희를 해치지 않을 거야."

그제야 아이들이 쭈뼛거리면서 잭을 뒤따랐다.

"왜 시간을 끌었던 거지?"

밖에 나오자마자 세이안이 물었다.

"그야...하하....애들에게 설명좀 하느라고요."

“설명이라?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아니면 설명이 무슨 소용인가? 어줍은 자비 따윈 집어치워.”

세이안은 흘긋 아이들을 쏘아보앗다. 아이들은 주눅이 들어 잭 뒤로 숨었다.

'세이안 씨는 언제봐도 무섭단 말이야.'

잭은 식은땀을 흘렸다. 세이안은 겉모습으로는 분명 이 대륙 최고의 미남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금을 녹여 만든 것 같은 머리카락이며, 가넷을 얇게 저며 붙인 것 같은 눈동자 등등. 잭의 딸이 보는 "완소 꽃미남"잡지에 등장할만한 외모였다.

하지만 잭이 알기로 세이안은 최악의 어쌔신이었다. 세이안이 의뢰를 맡는 일은 드물었으나, 한 번 의뢰를 맡으면 반드시 성공했다. 암살 대상으로 여자와 아이를 가리지 않았고, 수법역시 대범하고 잔인한 것이 많았다.

'그런 점은 꼭 에리나 님과 비슷하다니까.'

세이안이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는 상대는 딱 두 사람 뿐이다. 스승인 말후트와 세켐 뿐이었다. 그 외의 인간에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길드 수장인 에리나에게마저 그랬다. 세켐은 세상을 뜬지 꽤 되었으니, 현재 세이안이 애정을 갖고 대하는 대상은 말후트 한 사람 뿐이었다.

"세이안씨. 고작 아이들이잖습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까지는..."

잭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었다. 다른 장소로 아이들을 이동시킬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흔히 순수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순수하다고 해서 선은 아니야. 선하다고 해도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더 나아. 병신 같은 놈들은 아이들을 가리켜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하지만, 무한한 최악의 가능성은 말하지 않지.

이 세상에 우리를 내보낸 놈들도 똑같은 소리를 했겠지. 미래의 희망이라고. 그 꼴이 지금 우리잖아.

그런데 저 녀석들이 조금 일찍 시궁창에 뛰어들었다고 해서, 내가 동정이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그, 그....세이안씨. 아이들에게 무슨 험한 말씀이십니까?“

"무른 녀석. 에리나 님이 왜 너를 여기에 처박았는지 알겠군."

"그...죄송합니다.“

잭은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나저나 아이들은 어떻게 하시려고...”

세이안은 빙그레 웃었다.

“시궁창에 가본 적 있나?”

“아, 그...”

잭은 세이안의 눈치를 보았다. 세이안의 미소가 더욱 짙어졋다.

“더러운 것들은 더러운 냄새를 맡고 몰려들기 마련이지. ”

‘설마 아이들을 미끼로....’

잭은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아이들은 불안한 얼굴로 잭을 바라보았다. 잭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잠깐만요.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한참 먹던 일행이 정신이 든 건, 새라가 아이들을 찾으면서부터였다.

“애들은? 애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거죠?”

어이쿠, 참 빨리도 알아차린다. 새라는 입에 기름칠을 한 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세이안도 사라졌어! 다들 몰래 맛있는 거 먹으려고 사라졌나봐.”

제이드는 손가락에 묻은 치즈 소스를 빨면서 외쳤다. 다들 머리는 장식으로 단 건가? 딱봐도 알겠잖아. 감금이라고, 감금!

“어째서 우리를 이곳에 가둔 거야?”

나나가 문쪽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콩콩 두드렸다.

“세이안씨, 세이안씨. 문열어보세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나나가 그래도 빠르구나. 그래도 이미 늦었어.

“우우! 사람을 여기다 가둬두고 무슨 짓이야?”

제이드도 뒤늦게 달려가서 문을 두드린다. 여기서 침착한 것은 네메시스와 나 뿐이다. 타이거는 침착하다기보다는 체념한 듯한 눈치였다.

“두목님이 여기 계시니까....”

그래, 타이거. 네가 고생이 많다. 나는 타이거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주고는 식탁에 가 앉았다. 이제 좀 먹어보자. 네메시스도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고기가 보기보단 좀 질기네.

“으아아아아!”

“열어줘!”

이런저런 소음을 배경으로 먹으니 더 맛깔나네. 음?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보니 로제타와 피엘이 곁에 서 있었다.

“어째 평온하시군요.”

“뭐, 이런 거에 하도 익숙해져서 말이야. 납치당하고 감금당하는 거.”

미드가르드의 무더스 시에서의 일이 생각난다. 로제라는 여자의 약혼자한테 쫓기고, 휴이테 상사에서 보호라는 명목으로 감금당하고, 로키에게 납치당해서 도시 지하로 끌려갔었지. 하아. 나도 참 파란만장했군. 내 말을 두 사람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혹시 여자한테 납치당했냐?”

“주로 남자한테 당했어.”

“어, 그래. 음, 그래 참 너도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구나.”

피엘이 떨떠름한 어조로 말했다. 어이 너도 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쓸데없이 동질감 느끼는 표정으로 고개 끄덕이지 마. 기분 이상해져. 그러고 보니 저 녀석 한때 제우스에게 납치당한 후, 억지로 술 따르는 일도 하지 않았었나?

“그런데 왜 우리만 여기 가둔 걸까요?”

“안전을 위해서가 아닐까?”

"그렇군요. 그럼 아이들은요?“

”글세.“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 알 바 아니었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아이들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아이들의 이름조차 알기 싫다. 그 아이들이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동정심을 보일 수는 있어도 그 아이들과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지구에서의 일만해도 그렇다. 지구에서 인체실험을 당하고 강제로 포르노에 출연하는 애들이 한둘이냐 말이다. 그 사실을 알고, 그 아이들에게 동정심을 느낀다고 해도, 그 아이들을 위해서 선듯 돈을 내거나 그 나라까지 가서 구출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아니, 아프리카나 남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다. 실종되는 아동들이 갈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무슨 짓을 당할까? 아이들의 부모만 애태울 뿐이지, 누구하나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북쪽의 아이들이 굶주림을 참다못해 탈출하다가 대동강 물에 빠져죽는다고 해서, 누가 그 아이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뻗겠느냔 말이다.

종교단체도 있고, 국제 봉사단체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인류의 전체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의 인구일 뿐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한다. 전쟁을 막을 수 없다. 독재정치를 끝내지도 못한다. 가난한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하다못해 가난한 한 마을, 한 가정을 제대로 돕지도 못한다. 그저 생명을 잇기만 할 뿐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가능성? 무한한 가능성? 그 아이들이 자라나 성인이 되어 조국의 운명을 바꿀 거라고?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무도 그런 가능성에 관심이 없다. 아이들의 부모조차 없을 것이고, 아이들 자신조차 관심이 없을 것이다. 생존 그 자체에 관심이 쏠려 있을 뿐이다.

생각해보라. 총탄이 비 오듯 쏟아지고, 굶어죽은 시체와 타죽은 시체가 발부리에 걸리는 거리를. 그 거리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미래의 가능성을 말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이야기다.

솔직히 말해보자. 그 나라들이 가난해지면 가난해질수록, 전쟁이 심하면 심할수록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일지?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돈과 무기가 있고, 교활한 머리가 있는 우리들에게는 석유와 다이아몬드가 필요하고, 농작물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그것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런데 그걸 가진 나라들은? 열심히 전쟁하며, 우리에게서 무기를 비싼 값에 사들인다. 자신들의 젖줄인 자원을 헐값에 팔아치우며, 그보다 더 소중한 생명을 파괴한다. 그네들이 싸우면 싸울수록 우리에게는 더욱 이득이다.

가끔 테러라는 사악한 저항을 하는 병신들이 있지만, 그네들이 죽이는 건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 아니다. 언제든지 보충할 수 있는 하층계급 사람들일 뿐이다. 게다가 그 놈들도 결국은 우리에게서 무기를 사간다. 이런 식이니, 절대로 그 자들은 우리 사회를 무너트리지 못한다. 자기 살만 파먹을 뿐이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우리는 복지를 누리고, 교육의 혜택을 받는다. 그러고는 가증스러운 눈물을 보이며 그들을 위해 월 3만원을 내서 물이 없어 괴로운 누구를 살리고,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누구에게 키니네를 주자고 한다. 사정을 알고 보면 얼마나 가증스러운 짓거리인가. 차라리 아무 도움도 주지 말자. 차라리 대놓고 빨대를 꽂고 쭉쭉 빨자. 그러면 그네들도 정신 좀 차리겠지.

그런 고로, 나는 그 아이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 아이들을 동정하고 구한다고 해서 바귈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여태까지 한 짓거리들이 무슨 소용이 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황제를 만나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만, 뭔가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어차피 인간은 똑같은데, 달라지는 거 하나 없는 족속인데.....심지어 지구에서 수천만 광년 떨어진 이곳조차도 이 모양인데...대체 난 뭘 바꾸고 싶었던 걸까?

마음이 한없이 허허로워진다.

“세이안 씨?!”

새라는 문을 두드리며 이미 어딘가 가버린 세이안을 불러댄다. 에효, 지치지도 않나. 나는 쯧쯧 혀를 차고는 음식에 손을 가져갔다. 먹자, 먹어. 먹는 게 남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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