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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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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0.27 01:59
최근연재일 :
2024.01.2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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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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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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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6
글자수 :
1,741,134

작성
14.09.23 00:56
조회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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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7쪽

25.왜 착한 사람들이 지느냐고 묻지마라, 당신들이 진거니까

DUMMY

광풍이 우리를 향해 불어 닥쳤다.

“세라 언니!”

폴과 벨르가 세라의 팔에 안겨서 소리 질렀다.

“살려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

"엄마!"

”꺄아악!“

세라는 비명을 질렀다. 열풍에 휘말린 아이들은 곧바로 세라의 품에서 벗어나 허공으로 떠올랐다. 세라의 손끝에 매달린 아이들이 울부짖었다.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벨르가 내 머리위에서 소리 질렀다. 아이의 머리카락이 내 뺨을 어루만졌다. 서늘한 감촉이 느껴졌지만, 나는 손을 뻗을 수 없었다. 내 두 손은 아리아나의 붉은 촉수에 묶여 땅에 붙잡혀 있었다.

“아, 안 돼!”

세라의 얼굴이 고통과 공포로 얼룩져갔다. 두 아이의 손이 점점 풀려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아악!”

“꺄악!”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세라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내가, 내가 잡아볼게!”

뒤쪽에서 나나가 소리쳤다. 뒤를 돌아보니 제이드, 나나, 타이거, 이 세 사람이 허우적거리면서 손을 뻗고 있었다. 야속하게도 아이들은 그들의 손을 그대로 스쳐지나갔다.

“어....”

제이드가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타이거와 나나에게서는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거센 숨소리나 한숨소리가 날 법도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그 둘은 아이들이 사라진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제이드는 여전히 멍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 걔네들 어디로 간 거야?”

다들 대답이 없다. 그저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흔들릴 뿐.


바람이 멈췄다. 한때 새타이어라는 이름의 도시였던 땅은 말없이 잠들어 있었다. 연금술사들과 사제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지만 생존자들은 거의 없었다. 매캐한 먼지와 연기 때문에 그들은 콜록거리면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털썩. 새라가 주저앉았다. 나나는 고개를 숙였고, 타이거는 도드라진 송곳니가 더 드러나게 입을 다물었다. 제이드는 계속해서 토악질을 하고 있었다.

“웨에에엑!”

휘이잉. 바람이 불어왔다.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른 땅에 눈물이 번져가는 것이 보였다. 새라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 앞에 목이 없는 두 구의 시신이 말없이 지상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머리는 연금술협회에서 가져간 모양입니다. 그곳에 칩이 이식되었던 모양이죠. 칩이라도 회수하자, 그런 생각이었나 봅니다.”

세이안이 말했다. 폴과 벨르는 도시 외곽에서 발견되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둘의 신원이 밝혀진 건, 호주머니에 들어 있던 과자 덕분이었다. 잭이 마지막으로 사준 색깔 사탕은 부서지지도 않고 온전한 형태로 들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팔찌 형태의 아리아나가 속삭였다.

'그 아이들...생명체로 인식되지 않았어요. 기계와 생체조직이 결합된 형태로 인식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그래. 그런 것이다. 아리아나는 위험한 상황이 닥치자 우리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 짧은 순간에 아리아나는 우선순위를 짰다. 기계도 아니고 생명체도 아닌 아이들은 순위표에서 맨 밑이었다. 1순위, 2순위...이런 식으로 우리를 보호하려다 보니 아이들은 맨 마지막으로 밀려났고, 결국엔 무시당했다.

'제가, 제가 일루전으로 나가서 설명하면, 그러면 다들...'

'진정이 될 리 없지. 내가 나중에 설명할 테니, 아리는 그냥 이대로 있어.'

생명체로 인식되지 못했다...그런 말을 일행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 특히, 세라라면 더욱더. 네메시스나 피엘은 또 모르지. 그들은 애초에 인간이 아니니까. 세이안은 전직 범죄자니까 넘어가고. 세라는 참지 못할 것이다. 또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과 비슷한 종족인 나나와 타이거도 가만 있지 못할 것이다. 모두 아리아나의 탓으로 돌리거나, 충격을 받아 버리겠지.

그럴거라면 차라리 침묵하며 애도하는 게 나았다.

“뭐 죽은 사람이 이 애들 하나뿐입니까? 지금도 케리아 왕국에서는 수백명의 아이들이 실험용이니 장기이식이니 하는 걸로 죽어 가는데.”

세이안의 목소리는 여상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가랑잎 하나 졌다, 이런 말투였다. 저 인간은 역시 적을 만드는 유형이다. 가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왜 입을 나불댄담.

“지독하네. 그 칩을 회수하려고 도시를 통째로 날리고, 여의치 않으니까 이차 폭발까지 일으키고.”

이거 그냥 단순한 무슨 길드가 아니라, 테러단체 같네. 아, 물론 내 옆에 있는 전직 암살길드의 조직원 님도 마찬가지지만.

“새라.”

나는 새라를 불렀다.

“우리가 이 애들을 위해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


무너진 도시를 재건할 수는 없다. 죽은 사람들을 되살릴 수도 없다. 폴과 벨르도 이제 과거의 사람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오빠 노릇하겠다며 나서던 폴도, 겁많던 벨르도 이제는 한때 “존재했던 사람”이 된 것이다.

“미안하다.”

나는 작게 속삭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미안해."

그 녀석들이 내 말을 듣고 있을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나만의 자기만족에서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낫다.

"쉽게 판단하고, 쉽게 포기해서 미안하다.”

사람 목숨이 쉽게 사라지는 곳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그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닌데. 그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봐야 뭐하겠느냐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뭔가를 헷갈린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의무인데 말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그건 인간이란 존재자체의 업, 카르마 같은 것인데.

새라는 주사기를 꺼내들었다. 새라는 눈물을 훔치며 시신의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피스톤을 잡아당기자 아이들의 푸른 혈액이 실린더에 딸려 나온다.

카일 잭.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칩이 하나씩 박혀 있는데, 영혼과 기계의 접합을 돕기 위한 작용을 했다. 그러면서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그중 하나가 혈액의 변화였다. 칩과 접촉하면서 혈액속에 있는 헤모글로빈이 화학작용을 일으켜서 색이 변한다고 했다. 내가, 아니 운이 기억하고 있는 게 맞던가? 당시 운은 소더였지, 의사나 화학자는 아니었으니 정확하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어찌되었든 혈액이 칩과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었다.새라는 마법사였고, 모터 웨건안에는 간단한 마법실험도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울란으로 향하는 도중, 간단한 실험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걸로 정말 뭔가를 밝힐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해야할 일이 생기자, 새라의 얼굴은 아까보다는 밝아보였다.

아이들의 혈액중 일부는 영지의 마법학교에, 또 일부는 상아탑으로 보내질 것이라고, 새라는 말했다. 그들 또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밝혀낼 것이다.

뜨거웠던 바람은 서늘해졌다. 이제 떠날 때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작가의말

25화를 마쳤습니다.

비극적인 내용이라서 망설여졌던 것인지, 꽤 오랫동안 글을 놓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꼭 그 이유때문만은 아니고요.

어찌되었건, 후련하면서도 안타까운 기분이 드네요.

실제로도 실종되어 장기이식, 강제 노동과 온갖 학대에 노출된 아동들을 생각해보면...;;

이번화는 분량조절에 실패해서 분량이 좀(아니 많이)적어졌습니다.

사과드립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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