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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 님의 서재입니다.

유령 보는 작곡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신맛
작품등록일 :
2019.06.19 19:12
최근연재일 :
2019.07.22 19: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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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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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3,197

작성
19.07.1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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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EP9. Voyager (1)

DUMMY

###


서연을 영입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가 간과한 건 바로 해외 활동.

이미 오랫동안 해외에서 활동하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녀다.

SNC가 아주 친절히 안내를 해준 모양인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각국에서 서연의 섭외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단독 콘서트 제안도 있었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제의는 대부분 영어로 들어왔다.

의외로 캐나다 유학파인 석진이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정말 크게 당황할 뻔 했다.

석진이만큼은 실제로 여러 번 당황했고.

“으아악! 못 알아듣겠어요! 뭐라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고요! 어떻게 해요, 형? 이거 중요한 계약 제의면 어떻게 하냐고요!”

간간히 자국 억양이 강한 영어를 쓰는 경우 녀석이 알아듣지 못했던 것.

특히 영어권 국가라 믿었던 필리핀 쪽이 유독 알아듣기 힘들어서 배신감이 컸다나.

그렇게 어렵게 받아온 제의들을 내가 정리해서 서연의 전담 매니저 중 한 명인 정민경 팀장님께 건넸다.

그녀는 말할 것도 없이 이번에 구성된 ‘서연 전담 팀’의 팀장이었다.

“어머? 이런 걸 대표님이 직접 하시는 거예요?”

“이번에 백희에게 예능 첫 고정 제의가 들어와서요. 배 팀장님은 그쪽 제작진을 만나러 갔습니다.”

“두 분 다 고생하시네요.”

그녀는 SNC 시절부터 서연의 출연 교섭 및 스케줄 전반을 관리해왔던 인물로 AOG 데뷔 때부터 서연과 함께 한, 이모 조카 사이 같은 존재였다.

마흔이 넘은 나이의 그녀는 영미 누나를 밀어내고 단번에 우리 회사 최고령으로 등극하셨다.

사실 서연이 1인 기획사를 세웠다면 그 회사 운영을 맡았을 확률이 유력한 인물이었기에 나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대하는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서연과 함께 움직이는 다른 매니저와 다르게 그녀는 기본적으로 우리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며 서연과 관련된 일 전반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 일도 틈틈이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 솜씨가 장난이 아니었다.

초짜 대표인 내 눈에는 그녀가 슈퍼우먼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무래도 GB 엔터는 앞으로도 여초세가 강할 것 같다.

슥슥.

그녀는 리스트를 재빠르게 훑어보더니 어떤 건 동그라미를, 또 어떤 건 가로로 줄을 그어 버렸다.

딱 봐도 뭐는 받아들이고, 뭐는 거절하는 거라고 체크하는 것 같은데······

그녀가 순식간에 두 가지로 분류된 리스트를 다시 내게 건넸다.

살짝 당황한 얼굴로 리스트를 받아 든 나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연 씨에게 의견을 묻지 않고 이렇게 결정해도 되는 겁니까?”

그녀가 내 물음에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서연이 의견을 적극 반영한 거예요. 과거 좋은 기억이 없었던 곳의 제의이거나 경험상 수상해 보이는 곳은 거절을 하는 거죠.”

묻지도 않고 서연의 의견이 반영된 거란 믿음을 주는 저 눈빛.

오랫동안 함께 하면 저렇게 되는 건가?

- 오올. 보통이 아닌데?

동감이다.

장하준 대표님도 그랬지만, 그녀도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이런 경우 나도 모르게 내심이 나와 버린다.

“사실 서연 씨에게 제안을 했을 때만 해도 해외 활동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대표로써 상당히 무책임한 발언으로 내비쳐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 내뱉고 난 직후 뜨끔하기도 했고.

다행이 그녀는 언짢아하지 않고 예의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해외 공연이라고 해도 주최 측이 보내주는 티켓으로 공항까지만 가면 그들이 알아서 해준답니다. 대우는 국내와 비교해서 월등히 좋은 편이고요. 물론 경험 미숙이나 실력 부족으로 지원이 아주 부실하거나 불쾌한 경험을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 곳이라고 판단되는 곳은 지금처럼 줄을 그어 버리는 거예요.”

“그럼 해외 단독 콘서트는 어떻습니까? 특히 이번에 태국에서 제의한 페이는 무시무시하던데요.”

“크게 다를 바 없어요. 공연 기획사에 의뢰를 넣으면 되니까요. 반대로 공연 기획사에서 먼저 제의가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에 태국에서 들어온 오퍼도 그런 경우네요. 믿을 만한 회사를 고르는 게 문제지만, 이번에 제의를 해온 곳은 작년에 한 번 함께 했던 적이 있는 공연 기획사라 믿고 받아들인 거죠.”


이후로도 정 팀장님은 가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어느 정도 비벼볼 만 해야 배 팀장도 텃세를 부릴 텐데, 오히려 배우는 게 많다며 그녀를 상급자 대하듯 깍듯이 모셨다.

덕분에 편해진 건 나였다.

한동안 일이 많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는데, 그녀가 빠르게 매니지먼트 팀을 장악하며 내가 그쪽으로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진짜 서연의 합류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네요.”

- 다 내 선견지명 덕이지.

“늬예 늬예.”

- 하아. 유행어란 걸 알겠는데도 한 대 치고 싶은 건 세대 차이인 걸까?

“저는 형 세대가 아니라 모르겠네요.”

- 그래. 그냥 니가 재수 없는 거였어.

“큭큭. 아무튼 덕분에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겠어요.”

- 당연하지. 서연이 일만 맡아도 될 정 팀장이 왜 다른 일도 도와주고 있겠냐? 다 너보고 얼른 서연이 앨범 작업에 집중해달라고 압박하는 거야.

“역시 그렇죠?”

예전의 나라면 눈치 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 근래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다양한 경험을 했고, 결정적으로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보냈던 나날들이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굳이 직접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의사를 눈치껏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반대로 간간히 나 역시 그런 방법을 쓸 수 있게 됐고.

물론 이 경우 ‘오해’가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 있었기에 주의해야했지만, 내 경우는 중원이 형이라는 필터가 하나 더 있어서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정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존재였다.

“정말 신기하긴 해요. 형이 나타난 후 어떻게 모든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수가 있죠?”

이 형이 막상 판을 깔아주면 워낙 낯부끄러워하는 성격이라 이런 류의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않고 이런 상황을 넙죽넙죽 받아들이기만 할 수는 없었다.

- 내 조언이 통한 것도 네가 네 일에 재주가 있는 녀석이었기 때문이야. 아닌 말로 이식쿨 같은 곡을 네가 만들 능력이 없었다면 내가 아무리 도와줬어도 지금 같은 자리에 있진 않았겠지.

내 태도가 진지하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이번에는 형도 빼지 않고 진지하게 답해주었다.

그런데 그 덕에 오히려 내 낯이 부끄러워졌다.

“에이. 저 정도 되는 놈이야 많은 걸요. 1%의 전속 작곡가였다고 해도 결국, 3팀에서 찍새 취급이나 받고 있었는데요.”

- 야. 정신 차려. 과신하는 것도 나쁘지만, 자기 자신을 너무 저평가하는 게 더 안 좋아. 과신이라도 하면 그래도 일단 실행에 옮기기라도 한 거니까 실패를 통해 배울 기회라도 생기지. 하지만 스스로를 저평가해서 시도조차 안하면 변하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다 공감 가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 생각은 변하질 않았다.

“저평가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잖아요.”

- ······야. 이천 년 전에 공자님도 말씀하셨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고.

참 뜬금없이 들린다.

느닷없이 웬 공자?

“갑자기 무슨 말이세요?”

- 너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란 말이야. 네가 뭘 할 줄 아는지, 뭘 할 줄 모르는지.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여지없이 자기 자신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

단순히 자신감 좀 가지라는 말로 이해했었는데, 이제 보니 정말 내가 나를 저평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 메타인지라는 건데 내가 심리학 교수님께 얻은 가르침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지. 소크라테스도 말했잖냐. ‘너 자신을 알라’고. 동서양 현자들과 현대의 전문가까지 한 목소리를 낼 정도로 중요하다는 거지.

“그래서 결국, 제 생각 이상으로 제가 대단한 놈이라는 겁니까?”

말해놓고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게 나는 여전히 납득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 네가 뭐가 대단한데?

“예?”

- 이게 내 말을 허투로 들었네. 대단하다고 생각하라는 게 아니라 네가 어떤 부분에서 대단하고 어떤 부분에서 모자란 건지 객관적으로 파악하라는 말이라고.

“아하. 가릿.”

자신감을 가지라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스스로 분석하라는 말이었구나.

나는 진지하게 현재 내 장단점을 파악하기 위한 생각을 시작했다.

그래서 또 혼났다.

- 야! 자기 머릿속에 의존해서 스스로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파악할래? 객관적인 지표를 이용하란 말이야!


객관적인 지표.

냉혹한 연예계다보니 지표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중원이 형과 만난 이후 거둔 실적은 모두 곡과 그 곡으로 거둔 수입으로 드러나 있었다.

특히 ‘이식쿨’과 ‘하이 미’는 월간 차트까지 1위에 오른 후 차트에 장기간 머물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곡이 되었다.

내내 1위를 못하던 1학년 7반은 ‘달리달리’로 마침내 각종 차트와 음방에서 1위를 찍었다.

서연은 ‘하이 미’를 듣고 우리 같은 신생 소규모 기획사로 올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수입은 강 교수님의 조언 때문에 들어온 돈을 섣불리 쓰지 않아 많이 불어나 있었다.

이미 장하준 대표님이 아나와 함께 맡긴 7억은 줄어들기는커녕 배 이상으로 불어나 있었고, 지금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었다.

서연까지 영입한 상황이다 보니 그조차 부족해 보였지만.

아마 서연의 개인 재산이 우리 회사 자금의 몇 배는 되겠지?

어쨌거나 내가 만든 곡이 중원이 형의 조언을 통해 좀 더 효율적으로 알려지면서 지금과 같은 성공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래. 나는 결국 곡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


좀 더 주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덕분에 내 단점도 파악할 수 있었다.

- 넌 작곡가 체질이지, 작사가 체질은 아니야. 가사 쓸 때도 너무 멜로디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더라.

나는 작사를 할 때, 멜로디를 잘 살리는 방향으로 만드는 경향이 강했다.

이게 퍼포먼스 중심의 아이돌 음악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내가 작사한 하이 미와 달리달리는 대성공이었다.

반면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이나 감성적인 부분은 부족했다.

서연이 선호하는 감성적인 팝이나 발라드 음악과는 궁합이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결국, 나는 이번 앨범의 작사는 서연과 영미 누나에게 완전히 맡겨 버렸다.

앨범의 대략적인 구성을 마친 나는 내가 스케치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석진이와 함께 곡을 다듬어 갔다.

“와, 형. 이것들을 정말 수록곡으로 쓴다고요? 이거 싱글로 나눠 내면 다 1위 먹을 것 같은데!”

“됐어. 그런 거 따지다가는 앨범 못 만들어. 그냥 이번 앨범에 제일 잘 어울리는 곡들을 선정한 거야. 그리고 서연 씨야 공연 중심으로 활동할 거니까 앨범 수록곡이라고 마냥 아쉬워할 것도 없지.”

“쩝. 그렇기는 하죠. 그러고 보니 잘하면 서연 씨 공연에 애들도 설 수 있겠네요?”

“그럼 좋겠지.”

“결과적으로 은령이에게 더 미안해지네요.”

석진이의 말에 나도 동감했다.

“이거 정말 걔한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서연의 의견을 반영하다보니 앨범에 댄스곡이 하나도 끼지 않았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은령이가 이번 앨범에 끼어들 구석이 마땅치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카톡으로 이 얘기를 서연에게 했더니 아주 신박한 아이디어를 내주었다.


서연님 [그럼 뮤비에 참여시키면 어때요? 은령이 분위기면 괜찮은 느낌이 나올 것 같은데.]


확실히 살짝 우울함이 엿보이는 은령의 미모는 이번 타이틀곡 분위기와 잘 맞을 것 같았다.

내가 제의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해서라도 참여 시켜주려는 그녀의 마음이 고마웠다.


나 [서연 씨는 마음마저 예쁘십니다.]

서연님 [아잉. 부끄부끄.]


그리고 애교도 만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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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P10. 월간 백설기 (2) +2 19.07.22 580 24 12쪽
29 EP10. 월간 백설기 (1) +2 19.07.20 724 22 12쪽
28 EP9. Voyager (3) +1 19.07.19 708 22 12쪽
27 EP9. Voyager (2) +2 19.07.18 739 19 13쪽
» EP9. Voyager (1) +2 19.07.17 791 22 12쪽
25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3) 19.07.16 805 22 12쪽
24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2) 19.07.15 834 21 12쪽
23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1) 19.07.13 956 21 13쪽
22 EP7. 세상은 요지경 (3) 19.07.12 934 25 12쪽
21 EP7. 세상은 요지경 (2) 19.07.11 1,005 16 13쪽
20 EP7. 세상은 요지경 (1) 19.07.10 1,134 21 12쪽
19 EP6. Break Away (3) 19.07.09 1,149 28 12쪽
18 EP6. Break Away (2) +2 19.07.08 1,186 23 13쪽
17 EP6. Break Away (1) 19.07.06 1,215 24 10쪽
16 EP5. 민물장어의 꿈 (3) 19.07.05 1,224 24 12쪽
15 EP5. 민물장어의 꿈 (2) +4 19.07.04 1,246 24 13쪽
14 EP5. 민물장어의 꿈 (1) 19.07.03 1,288 24 12쪽
13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3) 19.07.02 1,305 25 12쪽
12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2) 19.07.01 1,337 25 14쪽
11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1) 19.06.29 1,379 24 10쪽
10 EP3. 야생화 (3) +2 19.06.28 1,439 26 13쪽
9 EP3. 야생화 (2) 19.06.27 1,443 21 12쪽
8 EP3. 야생화 (1) +2 19.06.26 1,544 21 13쪽
7 EP2. 좋은 날 (3) +1 19.06.24 1,572 28 13쪽
6 EP2. 좋은 날 (2) +2 19.06.23 1,660 28 14쪽
5 EP2. 좋은 날 (1) +2 19.06.22 1,789 27 14쪽
4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3) 19.06.21 1,842 27 11쪽
3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2) +1 19.06.20 1,972 24 13쪽
2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1) +2 19.06.19 2,539 34 13쪽
1 프롤로그 +1 19.06.19 2,721 3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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