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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 님의 서재입니다.

유령 보는 작곡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신맛
작품등록일 :
2019.06.19 19:12
최근연재일 :
2019.07.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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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07.0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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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P5. 민물장어의 꿈 (1)

DUMMY

###


드디어 방영일이 되었다.

혼자 산다가 밤 시간대 방송이라 이번에는 회사 차원에서 시청회를 열진 않았다.

백희는 아나와 함께 보겠다고 아나의 좁은 원룸에서 함께 잘 계획을 세웠던데, 아마 다른 사람들은 각자 편한 장소에서 보고 있으리라.

나만 해도 내 방 TV 앞에 편하게 누워 있었으니까.

중원이 형을 위해 만든 미디어 룸 덕분에 더욱 좁아진 방이었지만 그래도 집이 편했다.

방송이 시작되고 예의 혼자 산다의 시그니처, 아침 기상 모습으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좁은 방에 침대도 없이 얇은 이불 위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모습은 아무래도 다른 연예인들에 비하면 서민적이다 못해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 저번보다는 낫네.

“그러게요.”

궁핍하다고 해도 웰투코를 찍었을 때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이번에는 정말 아나의 방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

인기를 얻고 있는 현재까지도 전혀 변화가 없다면 오히려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그런 상황임에도 비주얼이 모든 걸 살렸다.

붉은 머리에 녹안, 양 볼과 콧잔등에 몰린 주근깨가 인상적인 인형 같은 외모.

혼자 산다에 지금까지 외국인이 안 나온 건 아니지만, 확실히 새로운 그림임에는 틀림없었다.

더구나 얼굴은 애인데, 몸은······

딱히 사이즈가 적은 셔츠도 아닌 것 같은데 유독 도드라진 부분으로 자꾸 시선이 내려간다.

문제는 아나의 나이가 나이다보니 곧바로 죄책감이 뒤따른다는 거였다.

나름 그녀와 함께 지낸 시간이 적지 않은 나조차 이런데 방송으로 보는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아무래도 숙소를 바꿔 달라고 건의해야겠습니다. 슬슬 보안도 신경 써야겠어요.”

- 바꾸는 김에 우리도 좀 바꾸자. 이 방이 쟤 방보다 좁은 거 알지?

나는 벽에 하체를 집어넣은 채로 그리 말하는 중원이 형을 한 번 돌아본 후 다시금 TV로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돈 없어요.”

- 궁상맞은 시키.

씻기도 전에 아나가 한 행동은 화장대 앞에 앉는 거였다.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틈틈이 백희나 유튜브에서 배운 메이크업 스킬을 자신의 얼굴에 시험해보고 있었던 것.

그걸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씻지 않고 시도하다니.

벌써부터 평범함에선 한참 벗어나 있었다.

이번 도전은 유튜브 방송에 나오는 뷰티 유튜버 따라 하기.

한참을 거울 앞에서 씨름하더니 멈추어 놓은 화면 속 유튜버의 얼굴과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곧이어 울상이 되는 얼굴.

내 얼굴도 절로 찡그러졌다.

“그, 그래도 성장했네요. 이상하다는 걸 아는 거 보면.”

- 나도 이제 슬슬 요즘 스타일에 적응 하나보다. 이제는 내 눈에도 쟤 화장이 촌스러워 보여.

아나의 문제는 조지아에서 살아오며 자연스레 익혀진 패션 감각과 한국에서 유행하는 감각의 괴리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가 손고자라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오죽하면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메이크업을 가르쳐줬던 백희가 도중에 제발 너는 그 시간에 그냥 노래 연습을 더 하라고 말했을까.

이후에는 그녀가 된장찌개를 요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런데 어째 결과물이 영 불안해 보인다.

때마침 백희가 오더니 둘이 함께 식사를 했다.

된장찌개를 한 입 집어넣은 백희.

순식간에 기겁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르더니 재빨리 밥을 쳐묵쳐묵.

그런데 이번에는 뜨거운 밥 때문에 입을 벌린 채 어버버 거리는 장면에서 결국 빵 터졌다.

“푸하하! 대체 얼마나 짠 거야?”

- 낄낄. 저 된장찌개 색깔 좀 봐라. 저게 어딜 봐서 찌개냐, 된장 소스지.

놀랍게도 아나는 그런 백희의 모습을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바라보며 된장찌개로 몇 번이나 숟가락을 가져가 입에 넣고 있었다.

솔직히 나라별 식성의 차이 때문인지, 단순히 아나의 손고자가 요리에도 적용이 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보다······

“······그래도 귀엽네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는 아무 것도 몰라요.’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니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아침에 연습한 화장을 지우고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노메이크업 상태인데도 저렇다.

- 하준이 형 보는 눈이 얼마나 무서운데. 발굴만 잘 하고 그 뒤로 요령 있게 키울 줄 모르는 게 문제였지.

“에이. 키울 줄 모르다뇨. 형 이후로도 한동안 성공시킨 스타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 소립니까?”

- 야! 그거 대부분 내가 키운 거야! 뒤에서 하준이 형이 허허하고 웃고 있을 때 내가 애들 때려가며 키운 거라고!

“진짜 때렸습니까?”

- 비유다. 이 시키야!

라고 말하는 그의 반투명한 손바닥이 내 머리를 통과해 지나갔다.


드디어 기대하던 데뷔곡 녹음 장면이 나왔다.

내가 보낸 음원을 덧씌운 형태였지만 다행히 싱크는 정확하게 맞았다.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두렵지만 한 발만~ 내딛자는 말을 믿어~ 어느새 나는~ 길가에 핀~ 꽃의 향기를~ 즐기고 있을 거라고~~~”

아나의 목소리가 나오자 나는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으악! 무슨 짓을 한 거야? 저렇게 에코를 막 집어넣으면 나중에 어떻게 하라고!”

물론 시청자들 입장에서 듣기야 좋으리라.

하지만 저러면 막상 음원으로 들을 때의 임팩트가 떨어진다.

그렇다고 음원도 저렇게 만들 수는 없다.

그러면 반복해서 듣기 힘들어지니까.

질리기 때문이다.

설탕을 과하게 넣은 음식은 쉽게 물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음량과 음색을 미세 조정하는 마스터링 작업이 괜히 고급 스킬인 게 아니란 말이다.

- 너 음원 보낼 때 믹싱이랑 마스터링 안 했다고 말하지 않았냐? 쟤들이 그 말 듣고 자기들이 알아서 한 거 아냐? 저거 완전 방송용 튜닝이잖아.

“아니 그러니까 남의 작품에 저런 짓을 왜 하냐고요······.”

더구나 의외로 길게 나갔다.

다 이어 붙이면 1분 30초 정도는 될 것 같다.

전체 곡의 약 40%. 그것도 하이라이트인 인트로와 후렴구 중심으로 내보낸 것이다.

팍팍 밀어준 티를 내고 싶었나본데 멋대로 이펙터를 써버린 덕분에 오히려 민폐가 되었다.

“아아.”

아직은 넓지 못한 아나의 음역대에 맞춰 멜로디를 짜느라 고생했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중원이 형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 이미 터진 건 어쩔 수 없지.

맞다. 이미 터진 거다.

지금은 대책을 생각해야 할 때다.

“음원도 수정해야겠죠?”

- 하기는 해야지. 저것과 똑같이 만들지는 말고 그 사이에 적당한 지점을 찾을 수밖에.

적당한.

정말 무서운 말이다.

왠지 한동안 잠은 다 잔 것 같다.



###


내가 마스터링 작업에 밤잠을 줄여가며 매진하고 있을 때.

슬슬 잠잠해지던 아나의 화제성이 혼자 산다로 인해 다시금 불타올랐다.

효녀로만 보였던 아나의 엉뚱한 모습과 숨길 수 없는 사랑스런 모습이 웰투코 때 이상으로 화제를 몰고 온 것.

이제는 이미지를 생각해 방송 섭외 요청도 골라서 선택해야 할 정도였다.

음원에 대한 관심도 올라갔다.

대체 언제 나오냐는 글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이기 시작할 즈음.

“끝이다! 이제 진짜 끝! 더는 못해!”

가까스로 모든 작업이 끝났다.

아나의 데뷔곡 ‘가려진 길 앞에 서서’의 준비가 완료된 것이다.


나와 중원이 형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아나의 데뷔 싱글 쇼케이스 행사가 열렸고, 그녀의 공식 SNS 계정도 생성되어 운영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긴 시간 동안 머리를 싸매도 비전문 분야에 있어서는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아나의 매니지먼트가 2층으로 넘어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드디어 음원 발매일.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며 키위 사이트 순위를 확인했다.


——————————————————————————————

1위 직쏘 - 드르렁 쿨쿨

2위 ANA - 가려진 길 앞에 서서

3위 MOON - 머리, 어깨, 무릎, 발

···

···

——————————————————————————————


“2위다! 아자!”

- 에이. 2위네.

허공에 내지르는 내 주먹에서 멀찍이 떨어지며 중원이 형이 그렇게 중얼거리자 나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2위라고요!”

- 1위 아님 꺼져.

“야 이 1위성애자야!”

그렇게 외치면서도 내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온전히 내가 프로듀싱한 첫 작품이 2위에 올랐다.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웃을 자신이 있었다.

- 방송 인기 덕인 건 알지? 솔직히 네 노래 중에선 서연이에게 준 곡이 제일 낫지. 네가 만든 곡 중 유일하게 곡의 힘만으로 1위 찍을 만한 곡이니까.

하지만 팩트로 두들기는 데는 대책이 없구나.

좋아할 땐 좀 그냥 냅두지.

그런데 유령의 촉은 무시무시했다.


아나의 ‘가려진 길 앞에 서서’가 계속 2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3일 뒤.

서연의 7th 싱글, 이식쿨 발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실시간 차트에서 1위를 찍어버렸다.

그 뒤로 내려올 줄 모르더니 기어코 일일차트에서도 기존 곡들의 순위를 한 단계씩 아래로 떨어트려 버렸다.

“맙소사.”

- 뭐, 니가 만든 곡 중 제일 좋았으니까. 더구나 편곡 기가 막히게 됐는데? 저쪽이 확실히 인력이 빵빵한가보다.

서연의 이식쿨이 내 곡이라는 사실은 우리 회사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즉, 출근길이 두려웠다.

예상대로 영미 누나가 날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얌마! 할 게 없어서 팀킬을 하냐? 어?”

진심으로 빡친 건지 곧바로 헤드락에 걸었다.

“켁! 미, 미안!”

그녀의 역정은 그만큼 ‘가려진 길 앞에 서서’를 향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3팀 출신 셋이 협력해서 처음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니 팀장으로써 더욱 특별한 느낌일 테니까.

반면 석진이는 2위를 3일 동안 찍다가 현재도 3위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그로서는 차트 진입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그 첫 번째 곡이 2위를 찍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미 누나도 그런 석진이의 기색을 모를 리 없었다.

“에이 씨. 1위 찍음 가려고 했지만 안 되겠다. 오늘은 고기 먹으러 간다!”

“누님 집에 가는 겁니까? 오랜만에 미선이 보겠네요.”

미선이는 영미 누나의 딸.

우리는 가끔 그녀의 집으로 고기를 먹으러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석진이가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웃기지 마! 고기 집으로 간다! 그것도 밥 없이 고기만으로 배 채우기! 단, 소주는 허용!”

“오오!”

딱히 회식할 시기가 아니었기에 저건 온전히 영미 누나가 쏘겠단 의미.

아직 이번 곡으로 인한 수입이 발생하지 않은 상황이니 분명 무리하는 거다.

하지만 나와 석진이는 별말 없이 그녀의 말에 따랐다.

줄 때는 넙죽 받아먹는 게 후배의 도리니까.

살짝 그녀의 지갑 사정이 걱정 되었는데 다행히 그녀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막창 집이었다.

- 어이고, 이 것들아. 그냥 하준이 형한테 소고기 먹고 싶다고 하면 회식비 내줄텐데.

무립니다.

지금이야 회사 규모가 단출하다고 해도 1% 시절, 대표님과 우리 3팀 잉여들과의 거리는 어마어마하게 멀었다.

저번의 이자카야처럼 직접 불러 주는 거라면 몰라도 우리가 회식비를 달라고 조른다?

나와 석진이는커녕 영미 누나도 못할 짓이지.



###


며칠 후, 2층 사무실에서 손 팀장님과 앞으로 아나의 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내려가는 길.

갑자기 댄스 연습실로 눈길이 갔다.

CH100에는 배우 둘과 이제 막 데뷔한 가수 하나만 있다.

하나 있는 가수는 지금 지하에서 연습 중인데 2층 댄스 연습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누굴까 싶어 슬쩍 다가가 문으로 훔쳐봤더니 백희였다.

“대단하네······.”

그래. 감동 먹었다.

아나의 스케줄이 워낙 많아 바쁠 텐데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하는 게 춤연습이라니.

중원이 형의 얘는 뭘 해도 성공하겠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리고 저 아이가 바라보는 방향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갑자기 무언가가 머릿속에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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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P10. 월간 백설기 (1) +2 19.07.20 724 22 12쪽
28 EP9. Voyager (3) +1 19.07.19 708 22 12쪽
27 EP9. Voyager (2) +2 19.07.18 739 19 13쪽
26 EP9. Voyager (1) +2 19.07.17 790 22 12쪽
25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3) 19.07.16 805 22 12쪽
24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2) 19.07.15 834 21 12쪽
23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1) 19.07.13 956 21 13쪽
22 EP7. 세상은 요지경 (3) 19.07.12 934 25 12쪽
21 EP7. 세상은 요지경 (2) 19.07.11 1,005 16 13쪽
20 EP7. 세상은 요지경 (1) 19.07.10 1,134 21 12쪽
19 EP6. Break Away (3) 19.07.09 1,149 28 12쪽
18 EP6. Break Away (2) +2 19.07.08 1,186 23 13쪽
17 EP6. Break Away (1) 19.07.06 1,215 24 10쪽
16 EP5. 민물장어의 꿈 (3) 19.07.05 1,224 24 12쪽
15 EP5. 민물장어의 꿈 (2) +4 19.07.04 1,246 24 13쪽
» EP5. 민물장어의 꿈 (1) 19.07.03 1,288 24 12쪽
13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3) 19.07.02 1,304 25 12쪽
12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2) 19.07.01 1,337 25 14쪽
11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1) 19.06.29 1,379 24 10쪽
10 EP3. 야생화 (3) +2 19.06.28 1,439 26 13쪽
9 EP3. 야생화 (2) 19.06.27 1,443 21 12쪽
8 EP3. 야생화 (1) +2 19.06.26 1,544 21 13쪽
7 EP2. 좋은 날 (3) +1 19.06.24 1,572 28 13쪽
6 EP2. 좋은 날 (2) +2 19.06.23 1,660 28 14쪽
5 EP2. 좋은 날 (1) +2 19.06.22 1,789 27 14쪽
4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3) 19.06.21 1,842 27 11쪽
3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2) +1 19.06.20 1,972 24 13쪽
2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1) +2 19.06.19 2,539 34 13쪽
1 프롤로그 +1 19.06.19 2,721 3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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