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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 님의 서재입니다.

유령 보는 작곡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신맛
작품등록일 :
2019.06.19 19:12
최근연재일 :
2019.07.2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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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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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197

작성
19.07.0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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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3)

DUMMY

###


방송은 여파는 생각 이상이었다.


[웰컴 투 코리아 조지아편 화제. 시청률 4.253%.]

[실검 1위한 빨강 머리 효녀, ‘아나’]

[붉은 머리의 미소녀는 대체 누구? 관심 이어져]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기 위해 먼 이국 땅을 밟은, 얼굴만이 아닌 마음씨도 예쁜 효녀.

효심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서를 제대로 자극한 것이다.

모두 나와 중원이 형이 노렸던 부분이다.

이게 다 변태 소리까지 들어가며 철저하게 조사한 덕분에 아나가 부모님께 생활비 일부를 몰래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마냥 우연히 드러난 부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출된 부분이 있었다는 뜻.

예를 들어 대표님은 내 기획안을 통해 이미 아나가 생활비 일부를 가족들에게 보내고 있다는 걸 알고 계셨다.

방송을 위해 연기를 한 것이다.

아나 아버지의 발언 역시 카메라 밖에서 은연중에 제작진들이 기획안대로 그를 유도한 결과물이었다.

아나와 가족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 내가 월드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축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너무 노골적이라고 욕만 먹고 수상은 꿈도 못꿨을 걸? 이 새끼 이거 노렸구나란 생각이 들게 하면 안돼. 보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알아차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의도를 잘 감춰야지.

아나가 적은 생활비로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 역시 연출이었다.

한두달 전만해도 실제로 방송에 나온 모습과 비슷하게 살았겠지만, 모델료로 들어오는 돈이 쏠쏠한 지금은 아니었다.

아나에게 과거 힘들게 살았던 모습이 방송에 나오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한 후,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것이다.

덕분에 그 모습을 본 가족들이 속상해 할 거란 예상을 못한 아나는 허둥지둥 서울의 인구까지 들이밀며 말도 안되는 변명을 했던 것이다.

고깃집에서도 일부러 비싼 꽃등심과 갈비살을 시켰다.

제작진이 계산하는 것임에도 가격에 관심을 가지도록 부추겼다.

이후 한국의 물가가 얼마나 쎈지를 카메라 밖에서 상당히 노골적으로 가족들에게 보여줬다.

거기에 아나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가족들의 성격까지.

디테일에 디테일을 파고들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실제로 노골적으로 효녀를 만들려고 연출을 하지 않고, 우연히 드러난 것처럼 만드니 그 파급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타 방송에서 섭외 문의가 줄을 잇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 잡지 표지 모델로 발탁되었다는 소식에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던 백희가 무안해 할 정도였다.

몇몇 SNS를 즐겨하는 스타들은 아나의 효심에 감동했다며 응원하는 글을 올려 기사화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타국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깝네요.]

[연습생 시절 생각에 눈물이 나네. 힘내라. 빨강 머리 아나!]

개중에는 서연도 있었다.

[꼭 데뷔해서 우리 같이 무대에서 봐요! -sean_aog]

따로 언질도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우연인가?

어쨌거나 중원이 형과 함께 했던 고생이 생각 이상으로 보상 받는 것 같아 뿌듯하기가 그지 없었다.


슬슬 늘어나는 스케쥴에 연습 일정이 차질이 빚어질 때 쯤.

또 한 번의 큰 기회, 백희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박 사건이 찾아왔다.

“피디 님! 대박 사건! 대박 사건! 빼박 캔트 대박 사건요!”

어느새 그녀는 2층 매니지먼트 팀과 지하의 스튜디오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맡고 있었다.

중원이 형 말대로 그녀는 이런 적극성과 긍정적인 에너지로 점점 CH100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호들갑이야?”

“혼자 산다! 혼자 산다에서 섭외가 들어왔어요!”

혼자 산다.

혼자 사는 연예인의 하루 일상을 담아낸 관찰 예능이었다.

무려 시청자가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 순위에 단골처럼 1위를 하는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그곳에서 섭외가 들어왔다고?

나는 백희에게 덤덤하게 말했다.

“잘됐네.”

“으아. 뭐에요? 소식 가져온 사람 보람 없게. 좀 더 놀라셔야죠!”

“뭐, 요즘 아나의 화제성이면 섭외 들어올만도 하잖아?”

“에이. 재미없어.”

사실은 나도 놀랬다.

단지 백희의 호들갑이 너무 심해서 놀란 모습을 보일 타이밍을 놓쳤을 뿐.

“아무튼 회의한다고 다들 올라오시래요.”

역시나 이번에도 회의구나.

혼자 산다라면 그럴만 하다 싶었다.

- 유명한 프로그램이냐?

백희가 나가는 것에 맞춰 중원이 형이 물어왔다.

나는 어떤 프로그램인지 대략적으로 설명한 후, 근 몇 년 간 가장 인기있는 예능 중 하나라는 말도 빼먹지 않고 덧붙였다.

- 유명한 프로그램 맞네.

설명한 사람 힘 빠지게 저런 반응이라니.

하지만 곧 아까 백희에게 보인 내 반응이 떠올라 잠자코 있었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자 나는 살짝 질린 얼굴로 물었다.

“설마 이번에도 저번처럼 기획하는 겁니까?”

- 응? 너 이미 아나에 관해서는 전문가잖아. 그때처럼 할 필요는 없지.

“휴우.”

하긴. 우리 둘만큼 아나에 관해 아는 사람은 최소한 대한민국에선 없으리라.

어쩌면 아나 본인보다 많이 알지도 몰랐다.

- 뭐, 이번에는 혼자 해봐. 언제까지 내가 너 뒤치닥거릴 해줄 수는 없잖아.

말을 해도 꼭 그런식으로······

아무튼 의외의 제안이었지만 나는 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혼자 산다 섭외 소식을 듣자마자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거든.


이번에는 우리 유령께서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나는 회의가 시작하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토해냈다.

다행이 다들 반응이 좋았다.

형에게 검증 받지 않아 살짝 불안했는데 다들 호응해주니 그런 마음이 싹 걷혔다.

“이제 보니 우리 백 피디는 여기가 아니라 방송국에서 피디가 되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손 팀장님의 말에 나는 대표님 옆에 떠 있는 중원이 형을 흘깃 바라보고 재빨리 시선을 원상복구시켰다.

만능 엔터테이너에게 가르침을 받으니 정말 점점 활동 분야가 넓어지는 것 같았거든.

아무튼 이번에는 그렇게 내 아이디어를 토대로 CH100 식구들이 함께 생각을 모으기 시작했다.



###


이제는 아나의 싱글 곡을 마무리할 때였다.

아직 아나의 실력이 부족해서 멜로디를 쓸 때 그 점을 신경 쓰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 먹었다.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아 결국 트랙 쪽을 석진이에게 맡겼는데 그 결과물이 예상 이상으로 좋게 나왔다.

“헤헤.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해서 클럽 일도 다 취소하고 여기에만 올인했으니까요.”

사실 EDM이 전문인 석진이라 얼터너티브 팝 장르인 이번 곡의 배경음을 과연 잘 처리할 수 있을 지 살짝 걱정했었다.

시간이 촉박하지 않았다면 분명 녀석에게 맡기진 않았으리라.

그런데 오히려 일렉트로 하우스 풍에서 자주 쓰이는 음들이 가미된 트랙은 굉장히 신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인트로의 스트링 선율과 배경에 깔린 트랙은 나와 석진이의 협업에 중원이 형의 조언까지 더해져 만든 것으로, 현재 아나의 이미지와 어울리게 아주 잘 뽑혔다.

- 흡입력 있는 싸비에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의외성이 돋보이는 코드라. 곡 잘 빠졌네.

여기에 영미 누나가 만든 가사가 입혀졌다.

“가사는 철저하게 한글만 사용해서 90년대 감성을 곁들여 봤어. 현재 아나가 방송 덕분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번 아나의 데뷔 싱글이야 말로 1% 3팀 소속으로 쩌리 취급받던 우리 세 사람이 온전히 협력해서 만든 첫 번째 작품이었다.

그렇게 혼자 산다 촬영을 며칠 앞두고 아나의 데뷔 싱글 곡, ‘가려진 길 앞에 서서’가 완성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아나의 매니저를 맡게 된 배장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

“예. 잘 부탁 드립니다.”

백희에 이어 아나에게 매니저 한 명이 더 붙었다.

20대 후반이지만 벌써 두 딸 아이를 둔, 나름 경력 있는 매니저였다.

슬슬 아나의 안전에 신경 쓸 시기라는 걸 알아차린 대표님이 취하신 조치였다.

또한 백희 역시 이제는 제대로 된 일을 배울 수 있게 되리라.

그와 동시에 아나의 스케쥴 관리가 완전히 2층 매니지먼트 팀으로 넘어갔다.

이제 더는 연습생이라고 하기 애매해졌기 때문이다.

아나의 데뷔곡 녹음을 촬영일에 맞추기로 정했기에 내게는 며칠 시간이 비었다.

그래서 빌어먹게도 또 일을 해야 했다.

비스킷 엔터테인먼트에서 의뢰한 곡의 마감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생각 이상으로 작업이 술술 풀렸다는 것이다.

- 실력 많이 좋아졌네.

인색하다기 보다 냉정한 중원이 형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는 건 정말 실력이 좋아졌단 뜻이리라.

사실 체감도 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텅 빈 도화지에 무조건 좋은 그림을 그리려고 애를 썼었다면, 이제는 붓을 들기 전에 충분히 생각을 하고 붓을 들게 되었달까.

그의 말대로 ‘기획’의 중요성을 알고 활용할 수 있게 된 덕이 아닐까 싶다.

덕분에 비스킷 측에서 요구사항을 상세하게 적어준 것이 오히려 작업을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결국 혼자 산다 촬영일 전에 곡을 완성해 보내는 데 성공한 나는 편안한 기분으로 아나의 녹음 장면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어머, 이분이시구나. 안녕하세요. 혼자 산다 작가, 이진실이에요. 아나 양이랑 백희 씨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안녕하십니까. 백시열입니다.”

“방금 전 아나 양 원룸에서 정말 좋은 그림 나왔어요. 말씀하신 것보다 더 재밌던데요?”

“다행이네요. 그래도 나름 백희에게 많이 배운 것 같던데 여전하다면 정말 재능이 없는 거죠.”

우리 대화의 소재는 바로 아나의 ‘화장술’이었다.

혼자 산다 섭외 소식에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를 토대로 회의를 거쳐 몇가지 소스를 방송국에 전달했더니,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결국 그대로 진행을 한 모양인데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결과물이 꽤 좋게 나온 모양이다.

“그럼 녹음 장면 촬영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냥 평소처럼 행동하시면 되요.”

이후는 잘 모르겠다.

이미 웰투코를 통해 한 번 경험했음에도 긴장해서 녹음실 촬영 장면은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거든.

아. 이진실 작가가 ‘평소처럼!’이란 글을 적은 스케치북을 마구 흔들던 기억은 났다.


이틀 후, 혼자 산다 측에서 연락이 왔다.

“피디 님. 저 이진실이에요. 기억하세요?”

“예. 작가님. 한참 바쁘실텐데 어쩐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곡이 얼마나 완성 되었는지 알 수 있을까 해서요.”

그녀가 언급할만 한 곡은 아나의 데뷔곡 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사실 곡이 좋다는 반응이 많아서요. 조금 실어 볼 계획인데 마이크에 노래가 제대로 담기지 않은 거 같네요.”

당연히 거절 할 이유가 없었다.

“믹싱하고 마스터링 작업만 남았으니 지금 상태로도 보내는데는 문제 없습니다. 파일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참. 꼭 압축해서 보내주세요. 제 폰 용량 얼마 없어요옹.”

“하하. 네.”

통화를 끝낸 내게 중원이 형이 물었다.

- 곡 달래?

“예.”

- 숟가락 얹고 싶었나보네.

“숟가락이요?”

- 자기네 방송은 ‘효녀 아나의 데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팍팍 밀어주고 있습니다.’는 티를 내고 싶은 거잖아. 애초에 왜 여기서 섭외가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하냐?

잘 이해가 안 되었다.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요? 아니면 저희들에게요?”

- 당연히 둘 다지. 방송 이미지도 좋아지고, 이번에 자기들이 밀어줬다는 티를 냈으니 다음에 너희한테 무슨 부탁이라도 해와봐라. 쉽게 거절할 수 있겠냐?

“무서워라.”

정말 생각없이 살면 안 되겠다고 느끼는 요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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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P10. 월간 백설기 (2) +2 19.07.22 580 24 12쪽
29 EP10. 월간 백설기 (1) +2 19.07.20 724 22 12쪽
28 EP9. Voyager (3) +1 19.07.19 708 22 12쪽
27 EP9. Voyager (2) +2 19.07.18 739 19 13쪽
26 EP9. Voyager (1) +2 19.07.17 790 22 12쪽
25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3) 19.07.16 805 22 12쪽
24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2) 19.07.15 834 21 12쪽
23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1) 19.07.13 956 21 13쪽
22 EP7. 세상은 요지경 (3) 19.07.12 934 25 12쪽
21 EP7. 세상은 요지경 (2) 19.07.11 1,005 16 13쪽
20 EP7. 세상은 요지경 (1) 19.07.10 1,134 21 12쪽
19 EP6. Break Away (3) 19.07.09 1,149 28 12쪽
18 EP6. Break Away (2) +2 19.07.08 1,186 23 13쪽
17 EP6. Break Away (1) 19.07.06 1,215 24 10쪽
16 EP5. 민물장어의 꿈 (3) 19.07.05 1,224 24 12쪽
15 EP5. 민물장어의 꿈 (2) +4 19.07.04 1,246 24 13쪽
14 EP5. 민물장어의 꿈 (1) 19.07.03 1,288 24 12쪽
»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3) 19.07.02 1,305 25 12쪽
12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2) 19.07.01 1,337 25 14쪽
11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1) 19.06.29 1,379 24 10쪽
10 EP3. 야생화 (3) +2 19.06.28 1,439 26 13쪽
9 EP3. 야생화 (2) 19.06.27 1,443 21 12쪽
8 EP3. 야생화 (1) +2 19.06.26 1,544 21 13쪽
7 EP2. 좋은 날 (3) +1 19.06.24 1,572 28 13쪽
6 EP2. 좋은 날 (2) +2 19.06.23 1,660 28 14쪽
5 EP2. 좋은 날 (1) +2 19.06.22 1,789 27 14쪽
4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3) 19.06.21 1,842 27 11쪽
3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2) +1 19.06.20 1,972 24 13쪽
2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1) +2 19.06.19 2,539 34 13쪽
1 프롤로그 +1 19.06.19 2,721 3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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