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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맛 님의 서재입니다.

유령 보는 작곡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신맛
작품등록일 :
2019.06.19 19:12
최근연재일 :
2019.07.22 19:05
연재수 :
30 회
조회수 :
39,077
추천수 :
723
글자수 :
163,197

작성
19.06.21 19:05
조회
1,842
추천
27
글자
11쪽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3)

DUMMY

###


작업실에 들어가자 예상외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 시열아, 왔냐?”

“경재 선배? 안녕하세요.”

입사 초기 내 사수였던 정경재였다.

그는 지금까지 2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아마 이번에 3팀의 인원이 비어서 이동해온 것 같았다.

이거 설마 다시 막내 노릇을 하는 건가?

“그래. 몸은 괜찮고?”

“예.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 인사에 그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뭐? 야야. 어디서 그런 무서운 소리를. 나 여전히 2팀 소속이거든? 그게 아니라 단순히 전달할 말이 있어서 기다린 거야.”

착각이었구나.

그런데 저렇게 학을 떼는 모습을 보니 가히 기분이 좋진 않았다.

“무슨 말이요?”

“너 대표님이 부르신다. 그러니까 지금 바로 대표실로 가봐.”

그가 말하는 대표님이란 당연히 장하준 대표가 아닌, 김도훈 대표일 것이다.

장하준 대표는 분명 오늘부터 자회사로 출근했을 테니 말이다.

“김 대표님이요? 무슨 일로 절 부르신데요?”

“글쎄? 나도 모르지.”

나는 아무래도 어제 일어난 사고 때문에 부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방금 들어선 작업실에서 도로 나와 대표실로 향했다.


대표실로 들어가자마자 김도훈 대표가 가장 먼저 건넨 말은 예상대로였다.

“백시열 씨?”

“예.”

“그래요. 몸은 좀 어떻습니까?”

어째 한동안 저 말을 자주 들을 것 같다고 예감하며 그에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CT도 찍었는데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나왔습니다.”

“그래요? 정말 다행입니다.”

“심려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사실 사과는 제가 해야 합니다.”

“예?”

무슨 말이지?

그는 장하준 대표와 다르게 철저하게 경영에만 신경 쓰는 타입이었다.

일개 사원인 내 이름과 얼굴도 모르고 있을 거란 말.

방금 전에도 내 얼굴과 이름도 매치시키지 못하는 눈치였는데 무슨 사과를 한다는 걸까?

“이번 자회사 전적 명단에 백시열 씨 이름이 누락되었더군요.”

······뭐?

저게 지금 무슨 말이지?

멍하니 그저 보고만 있자 다시금 그가 입을 열었다.

“팀원들이 옮겨 가는 상황에서 혼자만 남은 게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총무팀 인사 담당이 실수를 했더군요.”

아아. 그런 건가?

편곡 능력이 있는 사람을 자회사로 보내지 않으려는 속셈이라고만 판단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저런 사정을 들으니 오히려 납득이 되었다.

“그렇군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래.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답했다.

왜냐하면 정말 아무렇지 않았거든.

애초에 실수였다는데 그걸 탓할 수는 없잖아?

“그래요? 그럼 거기 가서도 열심히 하세요.”

김도훈 대표도 아주 쿨하게 답했다.

아니면 그냥 냉정한 거려나?

이미 저렇다는 평이 자자한 인물이기에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예.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심지어 말없이 나가보라고 눈치를 주기에 곧바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뭐, 원래 이렇게 될 예정이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속이 편하다.

솔직히 팀원들 대부분이 옮겨갔는데 홀로 남아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른다.

아까 본 정경 선배도 분명 오랫동안 날 가르쳐준 고마운 존재였음에도 우리 작업실에 있는 모습이 어색하기 그지없었으니까.



###


그 사이 약발이 다 한 걸까?

복도에 떡하니 나를 바라보는 존재.

백중원이 다시 등장했다.

“······.”

어째 약간은 애처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떠다닐 수 있을 텐데 바닥에 발을 붙이고 벽에 등을 기댄 자세로 창문 밖 풍경을 보고 있었다.

벽을 통과하는 유령이 벽에 기댄다?

누가 봐도 저건 연기다.

분명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말라고 나를 배려하기 위해 하는 연기겠지.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생각해준다니, 적대감이 살짝 녹아내린다.

덕분에 그가 재등장했음에도 차분히 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가까워지자 그가 예상대로 말을 걸어왔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얼굴로.

- 우연인 거냐? 운명인 거냐?

사람들이 다니는 복도라 나는 그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답할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다.

저게 대체 뭔 소리야?

- 날 유일하게 볼 줄 아는 네가 1%의 직원이라고? 이게 우연인 거냐?

······사실은 사고였습니다.

- 그래, 일단 내가 네 망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래야 이야기가 되겠어. 내가 너를 통해 알고 싶은 사실이 아주 많거든.

젠장. 슬슬 다시 무서워지려고 하네.

이젠 망상이 날 설득하겠다고 한다.



###


망상이 괜히 망상일까?

그가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려준다고 한들, 과연 그것이 정말 내가 몰랐던 걸까?

이미 알고 있는데 모르고 있다는 망상을 하는 거라면?

과연 망상인지 진짜인지 어떻게 구분을 할 수 있을까?

그가 내게 한 제안은 바로 타인을 통한 검증이었다.


경재 선배가 경악 어린 표정으로 나와 쥐고 있는 수첩을 번갈아 봤다.

마주 본 상태에서 그가 손으로 가린 채 수첩에 적어 넣은 문양, 숫자, 단어, 심지어 문장까지 내가 알아맞혔기 때문이다.

그런데 솔직히 놀라기로는 그보다 내가 더 놀랐을 것이다.

자기 수첩임에도 이리저리 뒤져보는 그의 뒤에서 백중원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짜냐? 내 망상이 아니라 저게 진짜 백중원의 유령이라고?

“야, 너 이거 무슨 트릭이야? 어? 좀 알려주라!”

“비, 비밀을 알려주면 마술이 아니죠.”

“에이. 야, 그러지 말고. 우리 공주님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그래. 응?”

유령을 볼 줄 알면 된다고 말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진땀을 빼며 거절을 하는데 고생해야 했다.

치사한 새끼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간신히 그의 작업실을 빠져 나오자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던 백중원이 뒷모습을 보이며 허공에 떠있었다.

- 자, 우리 이제 진지하게 대화를 좀 나눠볼까?

그렇게 말하고 앞서 가는 그의 뒤를 따라 나는 당분간 나 혼자 쓰게 될 3팀 작업실로 들어갔다.

미친 게 아니라 유령이 보이게 되었다라.

이거 더 좋아진 건지 나빠진 건지 모르겠다.


- 그러니까 하준이 형이 보관 중이던 내 유품을 옮기다가 계단에서 굴렀다고? 그렇게 의식을 잃고 눈을 떠보니 응급실이었고? 그때 내가 나타났고, 너도 나를 볼 수 있게 된 거다?

“아마도요.”

- 하아. 이거야 원. 솔직히 나도 이게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내가 죽은 건 확실한 거 같은데. 정신을 차리고 나니 18년 후의 미래에다 나는 유령이 되어 있다니.

“저도 유령이 보이게 되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 그래. 우리 서로 인정하자. 너나 나나 피해자라는 걸. 가해자가 있는지조차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우리 둘 중 한 명의 고의는 아닌 거야. 그렇지?

“예.”

- 그러니 너 오늘 새벽이나 아침처럼 무서워하거나 무시하면 안 된다?

확실히 상처입긴 했나 보다.

나도 나름 찔렸기에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답했다.

- 좋아.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 1%가 내가 아는 1%인 건 확실하지?

“예. 백중원 씨와 장하준 대표님이 세우신 그 1%가 맞습니다. 건물은 몇 번 이전한 걸로······ 그러고 보니 여기는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나는 그가 인연을 찾아 1%를 찾다가 우연히 나와 마주친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리 물었다.

- 여기를 무슨 수로 찾아와? 니 뒤를 밟은 거지.

와. 대박 소름.

삐쳐서 사라진 게 아니라 사라진 척 숨어서 미행을 했다는 말이잖아?

설마 삐쳤던 것도 연기였던 걸까?

내가 속으로 배신감에 치를 떨든 말든 그는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 바빴다.

- 그럼 하준이 형은 대표 자리에서 언제 물러난 거야? 너 방금 장하준 대표님이라고 했잖아.

“1% 대표직에서 물러나신 건 8개월쯤 되셨고, 이번에 새로 설립된 자회사의 대표가 되셨으니 여전히 대표님이신 거죠.”

- 은퇴한 것도 아니고, 자회사 대표로 갔다고? 그 말은 누가 쫓아냈다는 거잖아? 아까 그 김도훈이란 자식이 범인이냐?

그렇게 짐작은 되지만, 확실한 건 몰랐기에 나는 일단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거기까진 모르겠습니다.”

- 아, 그리고 너 하준이 형 라인이냐?

“그게 무슨······”

- 아까 너 나간 후 대표실에서 그 녀석이 다른 놈하고 말할 때 그러던데?

내가 나간 후에도 잠시 대표실에서 대기했다는 건데 정말로 몰래 미행을 했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나는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저 라인 같은 거 없는데요.”

- 그래?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너가 그쪽 라인인 줄 몰랐을 거라며. 오히려 사고가 나서 다행이라고 하던데?

뭐가 어째?

저 말은 곧 실수로 명단에서 누락된 게 아니라, 어제 장하준 대표의 짐을 들어준 일이 알려진 게 전직의 원인이라는 말?

“와, 대박. 그게 뭡니까? 아니, 나이 든 분이 무거운 짐을 옮기고 계셔서 도와드린 것뿐인데 그걸로 사람을 라인이나 잡는 놈 취급해요?”

- 안 그래도 같이 있던 놈이 그러더라. 겨우 짐을 들어준 걸로 그쪽 사람으로 보는 건 조금 무리이지 않느냐고.

누군지 몰라도 굉장히 합리적인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요?”

- 그럴 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더라. 어차피 백시열이란 작곡가는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가치 있는 인물은 아니라고.

순식간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아. 이제는 유령에게까지 쪽이 팔리나.

개쪽도 이런 개쪽이 없었다.

유령의 입을 통해 능력 없는 놈이란 소리를 듣다니.

그것도 경영 쪽 자질만큼은 진짜라는 김도훈 대표의 평가.

정말 지랄 같은 점은 내가 그 말에 반박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 작곡가가 곡으로 히트 치지 못했으니 저런 말을 들어도 싸다.

“뭐, 힘내라. 너 생긴 거 보니까 아직 서른도 안 됐지? 그 나이에 두각을 나타내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야. 이제부터니까 뭐든 열심히만 하면 돼.”

“예. 감사합니다.”

유령의 위로도 위로라고 효과가 있었다.

비록 그 유령은 20대에 가수와 배우로 각각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인물이었지만······.

“그리고 호칭 정리부터 하자. 앞으로 유령이니 환상이니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말고 형이라고 불러. 난 이름 부를게. 알았지?”

“예.”

불만은 없었다.

사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삼촌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유령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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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P10. 월간 백설기 (2) +2 19.07.22 580 24 12쪽
29 EP10. 월간 백설기 (1) +2 19.07.20 724 22 12쪽
28 EP9. Voyager (3) +1 19.07.19 708 22 12쪽
27 EP9. Voyager (2) +2 19.07.18 739 19 13쪽
26 EP9. Voyager (1) +2 19.07.17 791 22 12쪽
25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3) 19.07.16 805 22 12쪽
24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2) 19.07.15 834 21 12쪽
23 EP8. 내가 제일 잘 나가 (1) 19.07.13 956 21 13쪽
22 EP7. 세상은 요지경 (3) 19.07.12 934 25 12쪽
21 EP7. 세상은 요지경 (2) 19.07.11 1,005 16 13쪽
20 EP7. 세상은 요지경 (1) 19.07.10 1,134 21 12쪽
19 EP6. Break Away (3) 19.07.09 1,149 28 12쪽
18 EP6. Break Away (2) +2 19.07.08 1,186 23 13쪽
17 EP6. Break Away (1) 19.07.06 1,215 24 10쪽
16 EP5. 민물장어의 꿈 (3) 19.07.05 1,224 24 12쪽
15 EP5. 민물장어의 꿈 (2) +4 19.07.04 1,246 24 13쪽
14 EP5. 민물장어의 꿈 (1) 19.07.03 1,288 24 12쪽
13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3) 19.07.02 1,305 25 12쪽
12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2) 19.07.01 1,337 25 14쪽
11 EP4.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1) 19.06.29 1,379 24 10쪽
10 EP3. 야생화 (3) +2 19.06.28 1,439 26 13쪽
9 EP3. 야생화 (2) 19.06.27 1,443 21 12쪽
8 EP3. 야생화 (1) +2 19.06.26 1,544 21 13쪽
7 EP2. 좋은 날 (3) +1 19.06.24 1,572 28 13쪽
6 EP2. 좋은 날 (2) +2 19.06.23 1,660 28 14쪽
5 EP2. 좋은 날 (1) +2 19.06.22 1,789 27 14쪽
»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3) 19.06.21 1,843 27 11쪽
3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2) +1 19.06.20 1,972 24 13쪽
2 EP1. 어쩌다 마주친 그대 (1) +2 19.06.19 2,539 34 13쪽
1 프롤로그 +1 19.06.19 2,721 31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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