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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세상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귀환자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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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감자세상
작품등록일 :
2023.05.10 11:2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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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25,145

작성
23.05.2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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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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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신을 만나야 하는 이유

DUMMY

멜렉이 미소를 지으며 이름을 말했다.


“내 이름은 레인코바 소노바. 레인이라고 불러. 내가 비를 좋아하거든. 에흐예.”

“레인이라. 좋아. 대신 너도 날 에흐예라고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부르면 될까? 에흐예 님은 이름이 어떻게 돼?”

“신.”


순간 레인과 요르의 표정이 굳어졌다.

요르도 류신이 에흐예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진짜 이름은 모르고 이번에 처음 들은 것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신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신?”

“그래. 류신. 성이 류, 이름이 신.”

“아! 그렇구나. 그나저나······ 이름이 신이라니.”


레인이 놀란 표정으로 되뇌었다.


“그냥 이름일 뿐이야. 별다른 의미 없어”


류신이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하지만 그의 변명을 들은 레인의 표정이 묘했다.


“역시 말이 맞았네.”

“무슨 말?”

“신께서 그랬어. 자신과 가장 닮은 자가 대리인 중에 있다고.”


류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레인은 궁금했다. 왜 류신이 그토록 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지,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질문을 받는 시간이다.


“진짜 묻고 싶은 게 있겠지?”

“맞아.”


순간 둘의 표정들이 진지해졌다.


“먼저 말할게. 신은······ 물론 네가 아니라 진짜 신을 말하는 거야.”

“나도 알아.”

“네 예상대로 탑 안에 있어.”


레인이 말했다. 류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레인은 이미 알고 있었다.


“탑을 봉인했다며?”

“맞아. 봉인했어.”

“누가 한 거지?”

“우리 모두······ 신의 대리인의 이름을 가진 아홉이 모여서. 너도 있었다면 열 명이 모여서 완벽하게 봉인했을 텐데······ 그래서 약간 아쉬운 봉인이 되었지.”


아쉽다니. 그 말은 탑의 봉인이 완벽하지 않다는 의미다.


“아쉽다라······ 부술 수도 있다는 말이네.”


하지만 레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부술 수는 없어. 외부든 내부든 부수는 것은 불가능.”

“부술 수 없는 봉인? 그런 게 존재해?”

“아홉 명 모두의 목숨이 그 봉인에 담겨 있다면······ 가능해.”


죽음의 봉인.

류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봉인을 통해 레인은 자신의 목숨을 한 번 더 저당 잡힌 셈이었다.

신의 질병이 아니라 하더라도 봉인에 문제가 생기는 순간 그녀는 죽는다. 물론 그녀만이 아니라 아홉 모두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결국 그만큼 완벽한 봉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럼 봉인을 푸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야.”

“죽음······ 뿐이겠네.”


류신의 말에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탑의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봉인을 만든 모두가 죽어야 한다는 말은 레인 자신도 죽는다는 의미다. 그녀는 그런 말을 담담하게 했다.


“왜 봉인하기로 한 거야?”

“방해된다는 이유로. 신이······”

“방해라······”

“우리가 지구로 왔을 때 가장 먼저 본 게 탑이었어. 넌 어땠어? 탑을 봤을 때의 기분이?”

“기분? 열받았지. 당장 쳐들어가 부숴버리고 싶었으니까.”

“그래. 나도 비슷했어. 그 심리를 파고들어서 봉인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 그런데 우린 아홉뿐이잖아.”

“내가 없었구나.”

“하루를 기다렸지만 넌 나타나지 않았어. 그래서 아홉만 봉인에 나섰지. 목숨을 건 죽음의 봉인이었어. 영원히 신을 가둬버린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다 나중에 진짜 의도를 알게 되었지.”

“아자토스······”

“맞아. 우리 사이에 파멸자들이 숨어있었어. 대리인을 죽이고 대리인으로 위장한 파멸자들이. 그들이 신을 가둔 것은 자신들의 신이 왔을 때를 대비한 거였어.”


레인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아자토스의 이름이 나오자 류신이 피식 웃었다.


“아자토스든 뭐든 나오면 밟아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누가 대리인이고 파멸자인지는 알아?”


하지만 이번에도 레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몰라. 확실하게 알아낸 게 엘 하이 하나야. 그는 이계에서 온 파멸자야.”

“엘 하이? 너와 대립한다는?”

“맞아. 이 세계수를 탐내고 있지.”

“그래서 여기로 애들을 보냈던 거구나.”

“맞아.”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놈이네.”


류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죽일 거야?”

“어차피 탑의 봉인을 풀려면 모두 죽어야 하는 거 아냐? 예외 없이.”


류신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순간 요르는 물론 레인도 류신의 얼굴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그 말은······ 나도 죽이겠다는 거야?”


레인이 표정을 풀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넌 그냥 놔둬도 죽잖아. 그나마 자연사할 수 있게 기다려 줄게. 수백만 년을 참고 기다렸는데 그 정도 못 기다리겠어?”

“고마워 몸 둘 바를 모르겠네.”


레인이 빙긋 웃었다.


“엘 하이를 제외한 나머지 중 우리 같은 대리인이 있을까?”

“아마······ 있지 않을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류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낼 정보는 전부 얻어냈다.


“나도 묻고 싶은 게 있어.”


레인의 말에 류신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신을 만나려는 이유가 뭐야?”


레인의 얼굴은 어두워져 있었다. 이미 류신이 신을 만나려는 이유가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 그거? 신을 만나려는 이유?”

“그래. 그 이유.”

“넌······ 말쿠트의 멸망을 보면서 어땠어?”

“말쿠트의 멸망?”


레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하나의 세상이라는 게 고작 몇백만 년 만에 멸망할 수 있는 걸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신의 의도일까?”

“그걸 막으려고 우릴 보낸 건 아닐까?”

“아니. 세상의 멸망을 우리는 막을 수 없어. 태어나고 죽는 것은 우리 권한 밖이야. 그것은 신의 권한 밖이기도 해. 네가 걸린 병처럼······ 신도 죽어.”


레인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장난스럽게만 보이던 류신의 모습을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가 지키던 세상이 파멸자에게 멸망한 걸까? 아니야. 이미 세상은 멸망할 운명이었어. 고작 480만 년. 그 사이에 찬란하던 문명은 무너지고 썩어갔지.”

“······”

“그 마지막을 파멸자들이 그저 숟가락 슬쩍 올린 것뿐이야. 그래서 난 신을 만나야 해. 능력이 안 되면 세상 창조 같은 건 하지 말라고 할 거야. 아니 최소한 창조했으면 건드리지 말라고.”

“······”

“괜히 자꾸 건드려서 세상을 어지럽히지 말라고. 스스로의 운명이 아니라 신이 개입해 변하는 운명이라는 거······ 기분 더럽잖아.”


류신의 말에 레인이 논을 감아버렸다.

슬픈 이야기다. 그녀도 말쿠트의 멸망은 예상하고 있었다.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임무도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었다.


“신을······ 죽이려는 거구나.”

“그래. 죽일 거야.”


류신은 담담하게 말했다.


“이 우주와 세상은 생각보다 잘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돌아가. 이 거대한 시스템을 만든 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신 따위가 아니야. 지금은 우리가 모르는 더 거대한 무언가가 있겠지.”

“······”


레인은 조용히 류신의 이야기를 들었다. 요르도 침묵한 채 류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시스템을 만든 후 사라졌어. 나타나지 않았지. 그런데 이 시스템 안에서 깨작거리는 것들이 신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난장판을 만드는 거에 불과해. 그래서 쓸어버릴 거야. 신이라는 존재들을.”


류신의 표정은 차가웠다.


“인간의 운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따위, 아니 모든 생명의 운명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 따윈 못하게 막을 거야.”

“지구는······ 잘 버티고 있잖아. 수십억 년을.”

“신이 지구에서 떠났으니까. 신앙심만 있고 신은 없으니까. 세상에 개입하던 신이 사라졌으니까.”

“······”

“지구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살인도 없어지지 않아. 범죄가 들끓고 환경도 척박해지고, 인간은 오만하고 이기적이기까지 하지.”

“······”

“그래도 지구는 수십억 년을 버텼어.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려는 노력들도 해.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 나는 케테르에서 그런 모습을 보질 못했어. 늘 신에게 기도만 올렸지. 마치 할 줄 아는 건 그거밖에 없다는 듯이.”


류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그딴 게 싫을 뿐이야. 내 운명이든 뭐든 그냥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누구 영향 안 받고 심플하잖아.”


류신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레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쿠트도 다르지 않았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기도만 해대는 자들의 모습뿐이었으니까.


“오늘부터 여기서 지내.”

“어머! 우리 동거하자고? 만나자마자 그럴 줄은 몰랐는데?”


레인이 딱딱함을 조금 풀어보려고 농담을 던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류신이 피식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농담이 나와? 너도 참······ 방 하나 따로 만들어줘.”


류신의 말에 다시 우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집 안 내부의 구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이 하나 뚝딱 만들어졌다.


“아쉬워라.”


여전히 레인은 류신을 향해 농담을 던졌고, 류신은 그런 레인의 농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류신은 웃고 있었다. 최소한 절망하거나 힘겨워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속으로 박수를 보내는 류신이었다.


“쉬고 있어.”

“내가 다스리는 지역은······”

“인간들의 손에 맡기면 돼. 알아서들 하라고. 우리가 나서는 것도 신이 나서서 망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류신의 말에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통치에는 재주가 없었다. 아니, 신의 대리인들은 통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신의 대리인이 이세계에서 하던 일도 통치는 아니었다.


“지배자들은······”


레인이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서로 경쟁 관계야.”

“경쟁?”

“그래. 아자토스가 왔을 때 자신의 양 옆에 하나씩만 자리를 내준다고 했어. 그런데 지구로 온 것은 모두 아홉. 물론 그 중에 파멸자가 몇인지는 모르지만······ 다들 아자토스의 옆자리에 앉으려고 할 거야. 모두 경쟁자라는 거지.”

“오호. 서로 뒤통수 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잖아.”

“맞아. 그래서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제일 중요한 정보를 제일 마지막에 알려주네.”


류신은 어이가 없었다. 이런 상태라면 떼거리로 몰려와 다구리당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말을 마친 레인은 다시 나무 침대에 누우려 했다. 그때 부드러운 나뭇잎들이 침대 아래로 날아와 깔렸다.


“고마워!”


레인의 말에 세계수가 대답하듯 소리를 냈다.


쏴아- 쏴아-


그렇게 레인이 눕고 눈을 감자 류신이 요르와 함께 방을 나왔다.

방을 나오자 멀리 바벨탑의 실루엣이 보였다.

지구에 온 첫날부터 꽤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


암시장은 지하에 열린다.

지하 공간에 만들어진 암시장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다.

종족을 뛰어넘어 모든 종족이 이용하는 암시장이 버젓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존재했다. 물론 지상이 아닌 지하에 만들어져 있지만.


서울 종로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은 세상이 변해도 여전히 건재했다.

근처의 청와대가 있기 때문에 군대가 이곳을 철저하게 지킨 결과다.


세종대왕 동상 아래로 내려가면 꽤 넓은 지하 대피소가 나온다.

과거에는 전시실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몬스터나 재해를 대비한 대피소로 개조되었 운영되고 있다.

그 대피소의 입구 옆쪽으로 작은 복도가 이어져 있고, 그 복도를 따라가면 막다른 곳에 작은 문이 있다. 그 문을 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난다.

지하로 한참을 내려가면 바로 지하에 만들어진 거대한 암시장이 나타난다.


세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 이영철은 전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대피소 안쪽에 별도의 문이 있는 것에도 놀라던 그였다.

세로는 자신보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인간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지구에 온지 고작 2년 밖에 안 된 자신보다 더 모르는 인간이 있다니.


“놀랍군. 이런 데에 암시장이 있다니.”

“세상에, 이것이 비밀 통로였단 말인가?”

“이렇게 땅속 깊이 만들어진 암시장이라니.”


연신 이영철은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넌 인간이면서 나보다 어떻게 더 모르는 거야?”

“멜렉 님만 수호하고 있었으니까. 지구로 돌아온 이후 변화된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자랑이다.”


당당하게 대답하는 이영철에 세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지막 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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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귀환자는 신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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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기회를 주마 23.05.28 1,318 16 13쪽
25 류테크 23.05.27 1,324 18 13쪽
24 새로운 국장 23.05.26 1,423 20 12쪽
23 바벨탑의 봉인 +1 23.05.25 1,402 22 13쪽
22 암시장 23.05.24 1,546 20 13쪽
» 신을 만나야 하는 이유 23.05.23 1,878 22 13쪽
20 세상의 중심 +1 23.05.22 1,749 22 12쪽
19 먹어도 돼 +1 23.05.21 1,756 24 12쪽
18 떼어내 줄게 23.05.20 1,778 20 13쪽
17 여긴 내 구역이야l 23.05.19 1,797 25 12쪽
16 죽음을 내릴 존재 +1 23.05.18 1,833 26 12쪽
15 내가 데려간다 23.05.17 1,914 24 13쪽
14 간보지 마 23.05.16 2,067 27 13쪽
13 쇼고스 +1 23.05.15 2,266 37 13쪽
12 삼자대면 +1 23.05.14 2,433 35 12쪽
11 세계수를 지키는 존재 +4 23.05.13 2,456 37 12쪽
10 세계수는 내가 갖는다 23.05.12 2,499 35 12쪽
9 내 집에서 다 꺼져 23.05.12 2,530 36 12쪽
8 여기가 집이다 +1 23.05.11 2,631 35 13쪽
7 왜 여기에? 23.05.11 2,617 40 12쪽
6 사막 한가운데(2) 23.05.10 2,682 35 11쪽
5 사막 한가운데(1) 23.05.10 2,823 36 13쪽
4 마지막 귀환자 +1 23.05.10 3,031 47 13쪽
3 변해버린 지구 23.05.10 3,574 40 14쪽
2 여기가 집이라고? +2 23.05.10 4,039 47 13쪽
1 프롤로그 +2 23.05.10 4,902 5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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