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64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9.12 18:30
조회
37
추천
4
글자
12쪽

수업 시간

DUMMY

당분간 아레인스터에 남기로 했다. 젠의 부상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까. 서비를 포함한 다른 일행들은 안타레스를 떴다. 놀랍게도, 아실카 시칼트라 학장에게서 히산나의 목걸이를 얻어서.


"이게 정말 되기는 하는 건가요?"


그리고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그 학장의 딸, 루토 시칼트라라는 여자와 함께 보냈다. 이상한 뜻은 아니고. 그 사람이 내게 마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긴 사정이 있지만,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 쪽으로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자꾸 딴 생각하니까 그렇죠. 의심을 품지 마세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걸 어떻게 하라고.

"루스."


이건 빛의 구체를 만들어내는 주문이다. 난도가 낮은 소마법 주문으로, 모든 마법사가 맨 처음에 이 주문을 익히면서 공부를 시작한다고 한다.


······는데 왜 나는 못 하는 거냐고. 오늘만 이 주문을 백 번은 외운 것 같은데. 허공에 혼잣말하는 미친 사람으로 보이기에 십상이다.


"알첸브라임 양은 자질이 있어요. 내가 그 정도도 못 알아보는 사람은 아니에요."


루토 시칼트라. 이 예쁜 여자에 대해 말하자면 나와는 상당히 복잡한 관계다. 우선 얼마 전부터 내 마법 선생을 자청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제자인 이엘의 옛 여자친구의 언니인데, 그러니까 나랑은 남이라는 뜻이다.


생판 남인 나를 여기 머물게 하며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심지어 나를 처음 만나자마자 무슨 말을 했느냐. 여기, 안타레스에 있는 마법 학교, 아레인스터에 입학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다.


공부와는 담을 쌓은 나라도 아레인스터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학교라는 사실은 아는데. 설마 학장의 딸이니까, 무슨 인맥 같은 걸로 집어넣을 생각은 아니었겠지?


"저보다는 젠이 더 재능 있지 않을까요? 젠은 실제로 마법을 쓸 줄도 아는데. 저는 교양으로 이론 과목조차 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알첸브라임 양에게는 마법이 필요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리고 시칼트라 선생은 거의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다녔다. 이엘이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기다란 가운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쓴 모습은 척 보기에도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왜 나한테 이렇게 잘 대해 주는 거냐고.


"지금으로서는 자기 몸을 지킬 방법이 별로 없으니까요. 알고 있겠죠, 알첸브라임 양이 가지고 있던 총은 마법 총이 아니었다는 걸."

"······네."


치사하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냐.

그 총은 이 여자가 가져가서 보관하고 있었다. 나에게서 압수해 간 건 아니고. 그 총이 진짜든 가짜든, 누군가가 내게서 그걸 빼앗아 갈 권리는 없으니까. 어찌 됐든 그건 지금 내 물건이었다.


"알첸브라임 양은 총기를 실제로 본 적이 있나요? 원래 가지고 다니던 저 무기 빼고."

"없어요."


지금 황제, 그러니까 밀의 황제 하가미가 즉위한 이후로 새로운 총을 만드는 게 금지되었다고 들었다. 황제가 바뀐 게 몇 년 전이더라? 나는 역사에 약한데. 하여튼 그건 내가 태어나기 전 일이고, 내가 진짜 총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면 말이지.


"밀의 황제가 즉위하고 나서 23년이 지났죠. 그 칙령을 발표한 건 즉위 2년째의 일이고. 그러니까 알첸브라임 양이 태어난 뒤로는 새로운 총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거네요. 적어도 양지에서는."


"제가 가지고 있던 건 음지에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건가요?"

"어쩌면 만들어진 지 오래된 물건인지도 모르죠. 칙령 이전에는 총을 만드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으니까."


진짜 총을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니, 생각하면 섬뜩한데. 나는 내가 그걸 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내가 그 총을 쏠 수 없었던 건, 사실 내가 진짜 총을 다루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었을까?


아리나딘의 사자인지 뭔지 하는 녀석에게 그 총을 겨누었을 때 방아쇠를 당겼다면 정말 총알이 나갔을까?


"알첸브라임 양이 그걸 한 번도 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걸 쏴서 사람을 죽였다면 무슨 문제가 생겼을지 모르는데."

"어차피 총을 다루는 방법도 모르는걸요."


칙령을 위반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음지에서 진짜 총을 쏴댄 사람들이 없었을 리가 없지. 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든가. 그런 거 아냐?


"그러니까 알첸브라임 양에게는 지금 마땅한 무기가 없죠. 그 검도 좋은 물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성물이라면서요?"

"리오나의 검이라고 들었어요."


"성물은 마법 무기의 일종이죠. 마법 무기는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의 편의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요. 알첸브라임 양이 그 검을 잘 다룰 수 있다고 해서, 비슷한 다른 검을 그 수준으로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네, 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거다. 내 총은 쓸 수 없는 물건이고, 내 검의 성능은 사기라는 거지. 나는 순수한 내 능력으로 내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러니까 마법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 마법이라는 걸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었으면, 누구나 다 마법사 아니었을까요?"

"실례가 되는 질문일지도 모르는데, 부모님 집안에 마법사는 없나요?"

"아빠 쪽이라면······."


엄마 쪽은 마법이나 공부 같은 것과는 담쌓은 집안이니까. 집을 나오고 나서 한동안 같이 지냈던 미스트라 고모 역시 마법사라고 했다. 그리 대단한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 같았지만.


"그게 중요한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하나도 안 중요해요. 가족 중에 마법사가 있다고 하면, 거 봐요. 알첸브라임 양도 할 수 있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려고 한 거죠."

"에이."


나는 책상 위로 상반신을 눕혔다. 젠은 마력 신경계를 다쳤다고 했다. 며칠만 약을 먹으면 될 거라던 그 부상은 생각보다 치료하는 데 오래 걸렸다. 하지만 우리는 젠이 다 나으면 여기를 떠날 예정이었다.


그 전에 쓸 만한 마법을 배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역시 이건 시간 낭비야.


"처음 봤을 때 저한테 아레인스터에 입학할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셨죠?"

"그랬었죠."

"왜 그런 제안을 하신 거죠? 그때는 결국 구체적인 이유는 듣지 못했어요."


무언가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런 말은 아무래도 영 와 닿지 않는다. 난 뭐라고 해야 하나, 좀 반골 기질이 있어서.


"내가 원래 어디서 일하던 사람인지 소개했던가요?"

"아뇨."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 이렇게 말해도 모르죠?"

"모르죠."


자랑은 아닌데,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영 깜깜한 편이었다. 시칼트라 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정면을 노려보았다.


"뭘 하는 곳인지는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할게요. 제가 왜 알첸브라임 양이 가지고 있는 총이 가짜인 걸 알아볼 수 있었냐, 그건 제가 마법 무기를 연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이제 안 하는 건가요?"

"네?"

"과거형으로 말씀하셔서요."


시칼트라 씨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 채 그 의자를 몇 바퀴고 돌렸다. 나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정도면 이제 어지럽지 않나? 라고 생각했을 때쯤, 시칼트라 씨가 간신히 발을 땅에 짚어 의자를 멈췄다.


"저는 여전히 연구원이죠. 하지만 이제 연구소가 없으니까. 고등 마법 무기 연구소는 보름 전에 완전히 파괴됐어요. 테러리스트들이 연구소를 습격해서 소장님을 비롯해 모든 연구원을 살해했거든요. 장비나 서류도 거의 다 유실됐어요. 저는 학회 때문에 연구소를 떠나 있었죠. 그래서 화를 겪지 않은 거예요."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바닥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솔직히 시칼트라 씨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내가 여기서 지낸 지 열흘 정도 된 것 같은데, 여기서 이렇게 한가해 보이는 건 이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여기는 시칼트라 학장의 집인데, 나는 학장의 얼굴조차 본 적이 없었다.


학장의 비서이자 아들이라는 사람도, 이따금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언제나 바쁜 모양이지.


"연구소가 그렇게 되고 나서, 저는 돌아가 보지도 못했어요. 사건은 현장 사진으로 접했죠. 당분간은 이 학교 밖으로 나가지도 않을 거예요. 나한테는 여기가 가장 안전하다는 걸 아니까."


그렇구나. 시칼트라 씨는 그 연구소의 유일한 생존자다. 유일한 생존자라는 건 혼자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저는 여기 숨어 있는 거죠. 알첸브라임 양에게도 같은 걸 권하는 거예요."

"저도 여기 숨어 있으라고요?"

"그렇죠."


하지만 결국 또 겉도는 이야기다. 이건 중대한 사실을 숨기는 사람의 태도였다. 불과 몇 달 전의 나였다면 여기서 대화를 끝내고 방을 나섰을 텐데.


"젠과 서비의 일은 어떻게 하죠? 제가 여기 남게 되면 제 친구들은 동료 하나를 잃어버리는 건데."

"성물은 네 개가 남았다고 했던가요?"

"네."


내가 가지고 있는 리오나의 검, 서비가 시칼트라 학장에게서 받아낸 히산나의 목걸이. 그리고 원래 일행이 가지고 있었다던 티타야의 구두. 순례자들이 모은 건 이렇게 세 개였다. 이 세 개를 모으는 데 이만큼이나 걸렸으니, 앞으로는 더 힘든 일이 남았겠지.


"인신공격이나 비난으로 생각하지 말고, 잘 들어요. 알첸브라임 양."

"네."


"알첸브라임 양은 본인이 그 일행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런가? 시칼트라 씨의 표정이나 말투는 덤덤했다. 나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분명 내게는 공격적인 내용이었다.


"그 사람들이 수행하려는 일이 알첸브라임 양에게도 똑같이 중요한 건가요?"

"그건 아니겠죠."


젠이나 서비가 성물을 모아 신을 부르려는 건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다. 나한테 그런 신념 따위는 없었다. 신을 부른다는 게 대체 어떤 일일까, 그 정도의 호기심은 있었지만.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나요?"

"그것도···아니지 않을까요?"


목숨이 위험할 만한 상황이라. 차마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는 말 못 하겠다. 그러면, 마법을 배우면 내 몸을 내가 지킬 수 있게 되는 걸까?


"아무리 성물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게 그 어떤 상황에서나 알첸브라임 양을 지켜주는 건 아니에요."

"그러면 여기 언제까지 숨어 있으면 되는 건가요?"


젠장, 나도 모르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말았다. 내 말투나 표정은 누가 봐도 반항적이었다. 이렇게까지 대드는 걸로 보일 생각은 없었는데.


"모든 게 괜찮아질 때까지?"

"그게 언제죠?"


"알첸브라임 양. 당신을 노리는 세력이 크게 둘이라고 가정할게요. 첫째, 당신을 신의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아리나딘의 신자들. 이 사람들의 존재는 이미 인지하고 있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들은 언제 목적을 바꿀지 몰라요. 그게 아리나딘이니까. 당장 내일 당신에게 흥미를 잃을 수도 있겠죠."


"아리나딘이라는 게 대체 뭐죠?"

"아리나딘은 혼돈 그 자체. 아리나딘을 믿는 자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하려 드는 사람들이에요."


"물구나무를 선 채로 대륙 횡단을 한다거나, 맨눈으로 태양 관측을 한다거나. 그런 일도 할 수 있나요?"


이번 농담은 조금 웃겼는지, 시칼트라 씨는 소리 내서 웃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얼굴은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유리오 알첸브라임이라는 사람. 당신 그 자체를 노리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왜 저를 노린다는 거죠?"

"복수하기 위해서죠. 이쉐 알첸브라임에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3 철학자 병, 마침 딱 좋은 사건 22.09.17 66 3 12쪽
112 마음의 문제 +1 22.09.16 40 4 12쪽
111 카페 나루의 화이트초콜릿 치즈 케이크 22.09.15 62 4 12쪽
110 천재 마법사 유망주 +1 22.09.14 65 4 13쪽
109 장대비 +1 22.09.13 43 4 12쪽
» 수업 시간 +1 22.09.12 38 4 12쪽
107 죽어 사라질 권리 22.09.11 35 3 13쪽
106 의외의 만남 22.09.09 35 4 12쪽
105 허물어지는 경계선 22.09.08 31 4 12쪽
104 감기지 않는 눈, 영혼의 조각 +1 22.09.07 31 4 12쪽
103 불명확한 존재들 +1 22.09.06 35 4 12쪽
102 아무것도 아닌 22.09.05 29 4 13쪽
101 후유증 +1 22.09.01 33 4 12쪽
100 진실 +2 22.08.31 35 4 13쪽
99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1 22.08.30 31 4 13쪽
98 적격 심사 +1 22.08.29 39 4 13쪽
97 안부 인사 22.08.28 25 4 13쪽
96 뜻밖의 조력자 22.08.27 29 4 13쪽
95 낯선 도시에서 22.08.26 26 5 12쪽
94 별의 뒷면 22.08.25 26 3 13쪽
93 허용되지 않은 것 22.08.24 28 4 13쪽
92 균열 +1 22.08.23 33 4 13쪽
91 혼돈의 꽃 +1 22.08.22 30 4 12쪽
90 신에게 가까워지는 이들 +1 22.08.17 25 4 13쪽
89 망가진 자물쇠 22.08.16 28 4 13쪽
88 시체와 꽃 +1 22.08.15 28 4 13쪽
87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한 것 22.08.14 30 4 13쪽
86 밤의 숲, 제단의 아래로 22.08.13 30 4 12쪽
85 천재 비서의 하루 +1 22.08.12 32 4 13쪽
84 바꿀 수 없어 받아들이는 것 22.08.11 30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