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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53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14 18:30
조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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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3쪽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한 것

DUMMY

책에서나 보던 광경 같은데. 신전 안에 숨어 있는 계단, 그 아래 지하로 통하는 길. 계단 아래는 어두컴컴한 통로였다. 어디로 뻗어 있는지, 얼마나 뻗어 있는지는 여기서 알 수 없었다.


유리오는 일행의 최후방에서 젠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역시나 횃불을 든 서비가 가장 앞에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안 무서워, 서비?"


유리오가 소리치듯 말한 탓인지, 목소리가 통로 안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서비의 대답은 조용히 돌아왔다.


"무섭다기보다는 기대돼."


정말 이상한 성격이라니까······. 유리오는 괜히 허리춤에 차고 있는 총을 한 번 쥐어 보았다. 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이 긴 통로는 마치 동굴 같았다. 금방이라도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롭지는 않았지만, 마음껏 뛰어다니기에는 어쩐지 불안할 정도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꽤 걸은 것 같은데도 빛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통로의 끝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성물을 찾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함정 같은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젠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별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상한 건가. 유리오는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평소에 그렇게 겁이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


"그러고 보니까, 뭐 좀 물어봐도 돼?"

"뭔데."

"너, 싸움 잘해?"


갑자기 젠이 걸음을 우뚝 멈추는 통에 유리오는 그만 넘어질 뻔했다. 이따금 그의 얼굴에서 감정을 읽어내기 힘들 때가 있었다. 그의 오른쪽 눈이 한동안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 분이나 지났을까, 그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건 왜 물어보는 거야?"

"지금 우리가 어디 있는지 봐, 폐쇄된 통로 안에 있잖아."

"그래서?"


"당연히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거 아냐? 도적 떼가 나타난다든가, 이상한 괴수가 저 앞에 숨어 지내고 있다든가. 아니면 강신을 방해하고 싶어 하는 어떤 집단의 공격을 받는다든가."


"뭐, 그건 그렇지."

"그런 상황에서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냐고."


지금까지는 딱히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이 일행이 단순한 도굴단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지금까지 안락하고 평안한 여행을 해 온 건 아니었다. 유리오가 합류한 뒤에도 이따금 숲에서 야생 동물을 마주치거나,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붙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신이 엮인 일이니까, 훨씬 더 큰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유리오는 그런 의심이 들었다. 아니, 이건 신만 엮인 일이 아니다. 신, 그리고 제국 사냥꾼 제1호가 엮인 일이지.


"그럭저럭하는 것 같은데."

"나보다 잘해?"


"네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지."

"그것도 그러네."


젠은 등에 긴 검 한 자루를 메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오는 그가 그 검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키가 아주 큰 것도, 체격이 아주 단단한 것도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강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가 얘를 지켜 줘야 하면 어쩌지? 유리오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서비는 일행이 한참을 더 걷고 나서야 비로소 멈춰 섰다.


"잠시만, 상황 점검을 한번 해 보자."

여섯 명의 순례자들은 발을 멈췄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걸었지? 가늠한 사람. 원래 내가 세었어야 했는데, 너무 피곤한 상태라 신경줄을 놓아 버렸네."

"아마 2킬로미터 정도 걸은 것 같은데."


젠과 유리오의 바로 앞에서 걷던 남자가 대답했다. 그의 이름은 실라였다. 서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소맷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어디까지 이어지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다들 괜찮아? 갑자기 몸이 안 좋다거나,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는 사람?"


유리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 꽤 많은 거리를 걸어서 피곤하다는 것만 빼면 아무 문제도 없었다. 다른 순례자들 역시 별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표해 왔다.


"이 통로에는 아무런 마법적 장치도 없어. 아마 평범한 동굴인 것 같아. 왜 신전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 신전은 누구의 신전인 거야?"


모두의 이목이 유리오에게 쏠렸다. 그녀는 이제 그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몇 군데의 신전을 들르는 동안, 한 가지 의문점을 강하게 느꼈다. 이제 그 의문점에 대해 모두에게 물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든 신전이 말이지, 음. 이 신전이 누구를 모시는 곳인지 알 수 없게 생겨먹은 거 같아.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여기가 어떤 신을 위한 신전인지 알아보는 게 불가능해."


이 통로와 통해 있던 신전만 해도 그랬다. 신의 조각상이라거나, 경전의 일부라거나, 어떤 신을 특정해 낼 만한 요소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제단이 있었을 뿐.


"이 신전은 육체가 없는 모든 신의 신전입니다, 유리오 씨."

실라가 대답했다. 그는 대답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멋쩍게 웃어 보였다.


"어떻게 설명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국교는 존재하지 않고, 제국 어디서든 종교의 자유는 보장됩니다. 하지만 그게 모든 신이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겠죠."


"네, 그렇겠죠? 그게 이 신전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뜻은 그만큼 많은 종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죠. 혼자 힘으로 신전을 세우고, 신을 모시며 관리할 수 없는 종교들이 아주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냥 무엇을 믿을지 정하고, 그 종교의 이름을 정하고, 믿으면 된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종교가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육체가 없는 모든 신의 신전이 필요한 거죠. 어떤 신이든, 어떤 신을 믿는 사람들이든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서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전을 공유한다는 건가요? 무슨 여관처럼?"


실라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례자 중에 유독 웃음이 많은 편이었다. 다른 이들이 특별히 의견을 덧붙이지 않는 걸 보니, 충분한 설명인 모양이었다.


"물론 규모가 큰 종교들은 많은 신전을 독점하고 있죠. 저희 교단도 예전에는 상당히 교세가 센 편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신세지만."


서비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저 앞으로 뻗어 있는 통로 쪽을 가리켰다.


"하여튼, 그렇기 때문에 저 앞에 뭐가 있을지 추정하는 게 더 어려워. 직전에 여기를 다녀간 게 누구인지도 모르고. 혹시 그만 돌아가고 싶다는 사람이 더 많으면, 그냥 돌아가는 걸로 하자."


그렇게 말하면 누가 돌아가자고 할 수 있겠어? 유리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목을 두어 바퀴 돌렸다. 그녀는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끝장을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돌아가고 싶어 할지도 모르니까,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이 통로가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아. 식량도 충분하고, 오늘 하루 정도는 더 움직여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말을 꺼낸 건 엘데라는 남자였다. 그는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그게 그의 주장에 한 층 더 무게를 실어 주고는 했다. 젠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건 그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래, 그러면 조금 더 가 보자. 아직은 별 수상한 낌새도 없으니까."


다들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통로 안은 바깥에 비하면 서늘했고, 오히려 공기가 쾌적했다. 어딘가로 바람이 통하는 것 같았다. 일행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잠시 서서 쉬었던 덕인지, 그들의 얼굴에는 대체로 아까보다 생기가 돌았다.


유리오는 아무것도 없는 천장이며 벽면을 둘러보았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네, 여기. 이런 데 와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는데."

"꿈에서 봤다,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 하려는 거면 아서라."

"에이, 그건 아니야."


처음에야 그런 잡담이라도 나누며 걸었지, 계속 걷다 보면 힘이 빠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따금 조용히 제 물병에서 물을 꺼내 마시는 소리만이 들릴 뿐.


내가 여기 언제 와 봤지? 유리오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여기 올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익숙하단 말이야. 이 공간의 에너지라고 해야 하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녀는 사월에서 태어났고 사월에서 자랐다. 집을 나온 뒤에는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이런 동굴 같은 통로를 걸은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불가사의한 느낌이 드는 곳에 와 볼 만한 일은 단 한 번밖에 없었는데.


"설마, 예전에······."

"잠깐. 빛이 보여. 뒤쪽에 이상한 기색은 없지?"

"없어."


서비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과연, 저 앞에 희미한 불빛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공적인 조명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유리오는 그게 마치 촛불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하나였던 빛이 이윽고 두 개, 세 개,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일행은 비로소 길었던 통로의 끝에 다다랐다.


"촛불이군요."


그 끝은 마치 커다란 동굴 같은 공간이었다. 어두컴컴한 가운데 여기저기서 빛나는 수많은 촛불이 방 안을 밝히며 일렁였다. 낭만적이라고 하지 못할 것도 없는 광경이었다. 그 모습만 말하자면.


"조각상···인가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방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커다란 조각상이었다. 흔한 신상(神像)의 모습이잖아. 커다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존재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굽어살피고 있었다. 팔에는 무언가를 안은 듯한 모양이었는데, 아래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키가 상당히 큰데. 대충 어림해도 3미터는 넘어 보여."


젠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분위기에 압도된 채 멍하니 서 있던 일행은 그 말을 신호 삼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흩어져서 누군가는 신상을 관찰하고, 누군가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비교적 최근까지 누군가가 관리했군요. 깔끔하게 손질된 흔적이 있어요."

"이런 동굴 같은 곳에서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손봐야 했겠지."

"이건 무슨 신상이죠? 아니, 신이 맞기는 한 걸까요?"


유리오는 가만히 그 조각상을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시선을 올려도 그 조각과 눈을 마주칠 수는 없었다. 애초부터 눈이 조각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베일로 얼굴을 가린 그것은, 펄럭거리는 옷으로 몸 역시 가린 채였다.


이렇게 봐서는 이 조각상의 모델이 사람인지, 신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이가 어느 정도나 되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서비, 서비가 봐도 아무것도 모르겠어?"


서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상당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다른 일행들이 방 안을 조사하는 동안 서비와 젠, 그리고 유리오 세 사람은 조각상을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한동안 그렇게 서 있다가 참다못한 젠이 입을 열었다.


"서비."

"알았어."


후드를 벗고 세 번째 눈을 뜨라는 뜻이었다. 유리오는 한껏 긴장한 채 서비 쪽을 바라보았다. 요조의 세 번째 눈으로는 정말 무언가를 볼 수 있는 건가? 소문을 무성하게 듣기는 했지만, 그걸 진짜 확인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서비가 후드를 슬쩍 걷어 올리자 이마에 있는 세 번째 눈이 드러났다. 그녀는 조각상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올렸다. 조용히 무언가를 보고 있던 그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표정 변화를 읽어낸 젠 역시 얼굴을 굳혔다.


화가 난 것 같은데. 유리오는 조용히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낌새가 영 심상치 않았다.


"실라. 저 위로 올라갈 수 있겠어?"

"저 위로 말입니까."


실라는 일행 중 가장 키가 크고 몸이 날랬다. 서비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조심하고."


그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나무 타듯 조각상을 타기 시작했다. 몇 번 몸을 튕겨 오르자 이내 팔 부근에 다다랐다.


"윽."

"거기 뭐가 있지? 실라."


실라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모두가 거기에 있는 게 무엇인지 직감했다. 누군가가 두어 걸음 정도 뒤로 물러섰다.


"시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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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진실 +2 22.08.31 35 4 13쪽
99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1 22.08.30 31 4 13쪽
98 적격 심사 +1 22.08.29 39 4 13쪽
97 안부 인사 22.08.28 25 4 13쪽
96 뜻밖의 조력자 22.08.27 29 4 13쪽
95 낯선 도시에서 22.08.26 26 5 12쪽
94 별의 뒷면 22.08.25 26 3 13쪽
93 허용되지 않은 것 22.08.24 28 4 13쪽
92 균열 +1 22.08.23 33 4 13쪽
91 혼돈의 꽃 +1 22.08.22 30 4 12쪽
90 신에게 가까워지는 이들 +1 22.08.17 25 4 13쪽
89 망가진 자물쇠 22.08.16 28 4 13쪽
88 시체와 꽃 +1 22.08.15 28 4 13쪽
»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한 것 22.08.14 30 4 13쪽
86 밤의 숲, 제단의 아래로 22.08.13 30 4 12쪽
85 천재 비서의 하루 +1 22.08.12 32 4 13쪽
84 바꿀 수 없어 받아들이는 것 22.08.11 29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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