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심권 님의 서재입니다.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심권
그림/삽화
메이산
작품등록일 :
2022.06.02 01:20
최근연재일 :
2022.12.03 23:30
연재수 :
142 회
조회수 :
9,249
추천수 :
927
글자수 :
790,487

작성
22.08.13 18:30
조회
29
추천
4
글자
12쪽

밤의 숲, 제단의 아래로

DUMMY

유리오는 나뭇가지를 헤치며 앞으로 걸었다. 잎에 맺혀 있던 물방울들이 튀는 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밤의 숲에서는 아무리 한낮이라도 주변이 온통 어두웠다. 수백 년, 어른들의 과장 섞인 이야기에 따르면 수천 년 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온통 하늘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는 길을 잃기 쉽고 어둡다는 특성 때문에 유독 조난자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했다.


일행은 젠이 띄워 놓은 작은 빛의 구슬에 의존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런 데도 신전이 있어?"

"뭘 모르네. 이런 데니까 있는 거야."


이번 목적지는 지난번에 리오나의 검을 찾기 위해 갔던 신전보다 더 안쪽에 있었다. 유리오는 몰랐지만, 저번에 갔던 신전은 숲 변두리에 있어 가장 많은 순례자가 오간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성물을 두고 가려는 사람도, 성물을 훔쳐 가려는 사람도 많은 편이었다.

"이렇게 고생해서 갔는데 아무것도 없으면 어떻게 해?"

"아마 아무것도 없겠지. 그렇더라도 가는 거니까."


서비가 일행의 맨 앞에 서서 방향을 지시했다. 이 어두운 숲에서 그렇게 커다란 후드를 쓰고 어떻게 앞을 볼 수 있는지. 유리오로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숲을 잘 모르는 유리오가 일행의 중앙에서 젠과 함께 걸었다. 젠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녀가 투덜거리는 소리에 하나하나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는 걸 알면서도 가야 하는 이유가 뭔데?"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걸 안다며?"

"그건 경험적으로 아는 거지.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아직 분명하게 존재하는 가능성이고."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게 좀 말해줬으면 좋겠다. 유리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소맷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덥고 습한 숲속이었지만 옷을 벗어 던지고 걸을 수는 없었다. 독초나 벌레가 많아 맨살을 드러내는 게 좋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진짜 덥네. 그냥 겉옷 좀 벗으면 안 돼? 다치면 치료하면 되잖아."

"보통 사람들은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먼저거든."

"아니, 나라고 다치고 싶대? 그냥 다쳐도 치료하면 된다는 거지."


젠이 짐승이라도 보듯 그녀를 흘낏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객사 안 했나 모르겠네."

"내가 운 하나는 좋거든. 그거라면 누구한테도 안 지지."

"하긴, 그런 총을 들고 다니면서 길에서 칼 안 맞은 것만으로도 운은 좋네."


뒤에서 따라오던 순례자들이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오는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다. 보이는 거라곤 나무줄기, 나뭇가지, 나뭇잎, 그리고 거미줄뿐.


아, 더럽게 덥네. 여기서 나가면 이놈의 머리카락은 꼭 잘라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며 발을 옮기던 그녀는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앞에서 걷고 있던 일행이 갑자기 우뚝하고 멈춘 탓이었다.


"왜 그래?"

"쉿."


젠이 입가에 집게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모두가 시간이 멈춘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유리오는 그들이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 숨을 죽였다. 왜 걸음을 멈춘 건지, 아무 일도 없는 건지 물어봐도 젠은 대답하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거의 다 온 모양인데."


이따금 머리 언저리를 찔러 오던 가시덤불들은 언젠가부터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발밑에 툭툭 걸리던 굵은 나무뿌리들도 그 기세가 한껏 누그러졌다. 먼저 간 누군가가 뒤에 올 사람을 위해 길을 만져 놓은 덕이었다. 길이랄 것도 없었던 숲이 이제야 좀 걸을 만하게 느껴졌다.


"저기 보이냐? 희끄무레한 지붕."

"안 보이는데."


유리오는 눈 위에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보다가 바보 같은 짓이란 걸 알고 손을 내렸다. 태양 빛이 내리쬐지 않는 곳에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녀의 눈은 좀처럼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조금 더 걸으니 건물처럼 보이는 형체가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젠은 등을 돌리고 낙오자가 없는지 확인했다.


"문제없이 도착했네. 그럼 준비하자고."


작은 공터에 신전이라기에는 수수한 건물 한 채가 서 있었다. 숲을 빠져나온 일행은 불을 붙여 횃불을 만들었다.


"근데, 랜턴 같은 걸 들면 안 되는 거야?"

"밤의 숲에서?"


"응. 횃불은 안 되는 거 알겠어. 근데 랜턴 정도는 들 수도 있잖아?"

"밤의 숲에서는 인공적인 불빛을 쓰지 않는 게 불문율이라고 하더군요."


유리오와 젠을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불문율이라. 유리오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무신경한 성격에, 미신 같은 걸 좋아하지 않았다.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규칙 같은 걸 지켜야 한다는데 좋을 리가 없지.


"마법으로 만드는 빛은 인공적인가요?"

"글쎄요, 이미 그 문제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있었지요. 다만 아니라는 쪽으로 합의가 된 모양입니다."

"그런가요, 알다가도 모르겠네."


랜턴을 들 수 있게 해 주면 이 숲에서 죽는 사람이 반은 줄어들 텐데.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저 앞에서 의식을 치르는 서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서비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식용 검을 뽑아 바닥에 그림 그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후드를 벗더니 바닥에 앉아 기도했다. 아무리 유리오라도 이런 순간을 방해하거나 분위기를 깨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구경했다.


서비가 일어나 손짓하자 뒤쪽에 서 있던 일행이 신전의 입구로 모여들었다.

"전부 다 들어가는 거야? 좁을 것 같은데."

"보통 절반 정도는 입구를 지켜. 들어가 보고 싶니, 유리오?"

"음, 아니. 난 그냥 여기 있을게."


일단 따라오긴 했지만, 유리오는 아직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였다. 아이니의 강신 과정을 돕다 보면 엄마와 관련된 단서를 찾을 수 있겠지. 그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이쉐 알첸브라임이 죽었든 살아 있든 그녀는 분명 아이니를 추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강신이라는 중대사 앞에서 유리오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가 없었다. 마치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어디론가 하염없이 떠밀려 가는 기분이었다.


젠과 서비가 왜 아이니를 강림시키려 하는지, 아이니가 강림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왜요?"

"얼굴색이 안 좋으신데요."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유리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유리오는 제 뺨을 한 손으로 감쌌다. 신전 안으로 들어간 건 젠과 서비를 포함한 세 명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바깥에 남았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면 모두가 양보해 줬을 테지만.


"아이니 신이 강림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죠?"

유리오가 불쑥 그렇게 물었음에도 여자는 당황하지 않았다. 종교인이란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걸까, 초연한 얼굴로 미소 지을 따름이었다.


"저도 잘은 모른답니다. 그게 궁금하신가요?"

"그쪽은 궁금하지 않아요?"


정말 이상하군. 강신에 성공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면서 이렇게 움직이다니. 만약 아이니라는 신이 강림해서 모든 사람을 다 사냥해 버린다면? 한 명씩, 한 명씩 정체불명의 이유로 천천히 죽어 가는 거지.


유리오는 문가에 주저앉아 머리카락을 긁으며 대충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냥의 신이니까 그런 일을 벌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는 그런 걸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도록 자랐죠. 유리오 씨가 궁금해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걸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도록 자라는 건 뭘까. 그러고 보니, 젠과 서비의 과거에 대해서도 자세히는 들은 적이 없었다. 젠은 아이니의 신전에 버려진 아이였고, 서비는 제국 사냥꾼이 되고 싶어 했다는 사실 말고는.


두 사람 역시 그런 걸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도록 자랐으리라. 유리오는 새삼 그들에게서 거리감을 느꼈다.


"엄마가 예전에 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죠.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마라."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저는 모르죠, 안 지키고 사니까."


조용히 문가를 서 있던 남자가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어쩌면 알 거 같기도. 엄마는 다른 사람들한테 부담 주는 걸 싫어했어요. 어릴 때도 남에게 폐를 끼쳤을 때면 호되게 혼이 났었죠."


유리오의 엄마, 이쉐 알첸브라임이 자주 하던 말은 또 있었다.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는 이유는 내 몫을 절반 떼어 상대에게 주기 때문이라는 말.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건 어쩌면 내 감정을, 내가 겪는 상황을,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지 말라는 말인지도 몰라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설명하는 건 자신이 없는데. 유리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예를 들어서 봐요, 제가 여기서 아, 날씨 더럽게 덥네. 습도까지 높아서 불쾌하고. 이렇게 말한다고 치면요."


"그렇게 말한다고 치면요?"

"여기 계신 두 분은 지금 날씨가 덥고 습도가 높아서 제가 불쾌함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되겠죠."


"그렇겠죠, 말로 표현하는 걸 들었으니까."

"그런 걸 하지 말라는 거죠. 너의 불쾌함은 네가 혼자 알아서 소화하고 씹어 삼키라는 뭐 그런."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래도 아주 충분한 설명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유리오는 왜 이쉐가 예전부터 그런 말을 했는지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말을 지키면서 살지는 않을 거지만.


원래 그녀는 엄마 말을 그리 잘 듣는 딸이 아니었다. 왠지 조금 속이 시원해지던 참에 그녀의 머릿속에 하나의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원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괜히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설교만 했네. 유리오는 괜히 겸연쩍은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었다.


그때 젠과 서비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던 남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코나, 실라. 안으로 들어가자."


유리오와 함께 기다리던 두 사람이 몸을 일으켰다.

"유리오 씨, 같이 들어가실래요?"

"안에서 일을 끝내고 나오면 되는 게 아니었어요?"


"원래는 그런데, 제단 안쪽에 숨겨진 공간이 있었습니다. 내려가 봐야 할 것 같네요."

숨겨진 공간? 내려가다니? 무언가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조짐이 보였다.


함께 기다리던 여자가 신전 문 앞에 서서 유리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밖에 혼자 있으면 위험할 거예요. 같이 가요."

유리오는 선선히 그녀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신전 안쪽은 작은 제단밖에 없는 평범한 공간이었다. 젠이 새로 들어온 세 사람을 보고는 제단 쪽으로 턱짓했다.


"이 제단 밑에 숨겨진 계단이 있어. 이렇게 되면 안에 성물이 있을 가능성이 커지지."

"이 밑에 계단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낸 거야?"


"다 방법이 있지. 하여튼 지금 바로 들어갈 거야.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니까 넌 밖에서 기다려도 돼."


신전 밑에 숨겨진 계단, 성물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순간. 이런 중요한 순간에 혼자 바깥을 지키고 서 있을 수는 없었다.


"나도 갈게."

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 밖에 혼자 있는 것보다 나을지도 몰라. 다 같이 가자."


힘을 모아 작은 제단을 밀어내자 정말 그 아래에 숨겨진 계단이 있었다. 숲속으로 들어올 때처럼 서비가 앞장서서 내려갔다.


"여기서는 랜턴을 들어도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유리오의 질문에 젠이 키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유리오의 눈에 그 아래의 공간은 한없는 어둠처럼 보였다. 도굴단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이래서는 진짜 도굴단 같잖아.


그녀는 어둠 속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제국 사냥꾼은 총을 두 번 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3 철학자 병, 마침 딱 좋은 사건 22.09.17 65 3 12쪽
112 마음의 문제 +1 22.09.16 40 4 12쪽
111 카페 나루의 화이트초콜릿 치즈 케이크 22.09.15 61 4 12쪽
110 천재 마법사 유망주 +1 22.09.14 64 4 13쪽
109 장대비 +1 22.09.13 43 4 12쪽
108 수업 시간 +1 22.09.12 37 4 12쪽
107 죽어 사라질 권리 22.09.11 34 3 13쪽
106 의외의 만남 22.09.09 35 4 12쪽
105 허물어지는 경계선 22.09.08 31 4 12쪽
104 감기지 않는 눈, 영혼의 조각 +1 22.09.07 31 4 12쪽
103 불명확한 존재들 +1 22.09.06 34 4 12쪽
102 아무것도 아닌 22.09.05 29 4 13쪽
101 후유증 +1 22.09.01 33 4 12쪽
100 진실 +2 22.08.31 35 4 13쪽
99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1 22.08.30 31 4 13쪽
98 적격 심사 +1 22.08.29 39 4 13쪽
97 안부 인사 22.08.28 25 4 13쪽
96 뜻밖의 조력자 22.08.27 29 4 13쪽
95 낯선 도시에서 22.08.26 26 5 12쪽
94 별의 뒷면 22.08.25 26 3 13쪽
93 허용되지 않은 것 22.08.24 28 4 13쪽
92 균열 +1 22.08.23 33 4 13쪽
91 혼돈의 꽃 +1 22.08.22 30 4 12쪽
90 신에게 가까워지는 이들 +1 22.08.17 25 4 13쪽
89 망가진 자물쇠 22.08.16 28 4 13쪽
88 시체와 꽃 +1 22.08.15 28 4 13쪽
87 가장 깊은 곳에서 발견한 것 22.08.14 29 4 13쪽
» 밤의 숲, 제단의 아래로 22.08.13 30 4 12쪽
85 천재 비서의 하루 +1 22.08.12 31 4 13쪽
84 바꿀 수 없어 받아들이는 것 22.08.11 29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