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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 님의 서재입니다.

검정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gargang1
작품등록일 :
2017.06.26 15:34
최근연재일 :
2017.08.04 15:36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2,108
추천수 :
77
글자수 :
186,575

작성
17.07.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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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검정 # 28

DUMMY

나는 처음엔 자발적으로 주차장에 왔지만 이젠 원해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고 고립되었다.

우선 눈발이 셌다. 하지만 눈발이 잠잠해지더라도 나서기 힘들었다. 눈이 내 무릎높이까지 쌓여서 자전거를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쳐만 준다면 좋겠다. 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런 시간이 아쉬워졌다. 뭐라도 해야 했다. 주차되어있는 자동차가 몇 대 보였다. 나는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문의 손잡이를 잡고 덜컥. 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가방을 뒤적거려 총을 찾았다. 그리고 창문을 향해 탕. 음. 총이라는 건 엄청 편하군. 나는 귓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가 뺐다. 시끄럽긴 해도 간단했다.


차 안에는 다양한 게 있었다. 골프채, 쿠션, 수첩과 연필, 곰인형. 곰인형이라니. 참. 이것을 보니 내가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애꿎은 인형의 복부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수첩과 연필을 꺼냈다.

음. 그렇다면 은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그렇다면 편지와 반지와 곰인형, 손목시계. 꽤나 로맨틱한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3일째. 눈 대신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갑자기 날씨가 풀리면서 눈이 비로 바뀐 것이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덕분에 눈이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애매한 날씨라면 바닥을 빙판을 만들었겠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날씨는 따듯한 게 분명했다. 나는 자전거의 뒷자리의 짐을 확인한 후에 자전거를 몰았다.

하늘은 환한 빛을 발산했다. 번개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구름 사이로 옮겨 다녔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랜 시간 동안 구름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검은세상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의 위대함이란 놀라웠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세삼 느꼈다.

그런데 은지는 뭘 하고 있을까? 은지도 나처럼 환한 하늘을 보고 있을까?



드디어. 드디어 보였다. 가로수길이. 그 뒤에 으리으리한 내 집도. 분명 은지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기겠지? 나는 문을 힘차게 열었다.


“은지야! 나 왔어. 곰인형도 가져왔어! 네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뚱뚱한 녀석, 길쭉한 놈, 못생긴 곰돌이들, 전부를 가져왔어!”

나는 몸을 흔들고 빗물을 털어내며 외쳤다. 그런데 은지의 대답이 없었다.

“은지야? 어디에 있어?”

나는 얼굴의 빗물을 한번 쓸어내리고 다시 외쳤다. 나의 말은 집을 울렸지만 여전히 은지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갑자기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뭔가 잘못되었다. 나는 들고 있던 곰인형이 들어있는 상자를 던지고 거칠게 방문을 하나씩 열어나갔다. 은지야. 를 외치면서.


2층의 영화를 볼 수 있는 방을 열자 그곳에 누워있는 은지가 있었다. 코미디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틀어 논 채.

자고 있나? 내가 외치는 소리를 못 들었나?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서웠다. 그녀를 확인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녀가 죽었으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확인해야했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 귀를 대고 가슴이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그녀의 가슴은 위아래로 희미하게 움직였고 내 귀엔 그녀의 숨과 함께 앓는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놀라서 젖은 윗옷을 벗어 던지고 은지를 품으로 끌어안았다.


“은지야! 괜찮아?”

나의 목소리에 눈물이 녹아있었다. 덕분에 개구리같은 이상한 소리가 섞여 입 밖으로 나왔다.


“어? 왔어?”

은지는 애매한 미소로 조용하게 말했다. 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화장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녀에게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이다. 설마.


“언제부터 이랬어? 몸이 너무 뜨거워.”

나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내 볼의 눈물을 닦아주고 안타까운 표정을 보였다.


“괜찮아. 조금 피곤해서 그래.”


“곰인형도 가져왔고 줄 선물도 챙겨왔어.”


“고생했어. 고마워. 그런데...”


“잠시만 기다려!”

은지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는 밑으로 뛰어 갔다. 아. 상자는 터져 곰인형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나는 곰인형과 편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곰인형이 내 팔을 벗어나려고 부풀어 올랐지만 나는 있는 힘껏 인형을 안아서 저항하는 곰인형을 제압했다. 그리고 다시 뛰어 올라갔다.


“이것 봐.”

나는 곰인형들을 은지 앞에 조심스럽게 쏟아 놓았다.


“기쁘네.”

은지는 말했다. 나는 얼른 곰인형을 하나씩 그녀에게 보여주며 맘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그녀는 보여줄 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자기가 말했던 곰인형이 없어?”


“응.”


“그곳에 있는 곰인형을 전부 가져온 건데?”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런 건 처음부터 없었어.”

은지는 씁쓸하게 웃었다.

“콜록.”


“뭐? 왜?”


“하아. 나 사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아.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곰인형을 핑계로 너를 보낸거야. 미안해.”

은지는 아픈 숨을 힘겹게 뱉어내며 말을 했다.


“무슨 소리야? 그럼 말을 해야지!”

나는 소리쳤다.


“아프면 내게 말을 해야지! 언제부터야? 설마? 바다에 갈 때 기침했던 것이...?”


내가 묻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바보야! 엄청 오래 전이잖아? 왜 병을 키워!”

나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감정이 내 맘대로 표현이 안 되었다. 걱정될수록 화가 났다.


“콜록. 이제 지난 일이야. 어떻게 할 수 없어. 막을 수 없던 거야. 자기가 미안해할 필요가 없고 나도 후회하지 않아. 어차피 죽는다면 자기와 추억이 있는 이곳에서 죽고 싶었어.”

은지는 영화가 보이는 스크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내가 그래서 병원에 가자고 했잖아! 아니야. 너 말대로 지난 일이지.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나는 너를 의사에게 대리고 갈 거야.”

나는 어금니를 깨물고 화를 참으며 말했다.


“난 알 수 있어. 난 살 수 없을 거야.”

은지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고 힘없이 말했다.


“아니 살 수 있어! 난 너 때문에 자살을 하지 않았어. 그런데 네가 죽는다고? 어쩜 이렇게 이기적이야? 그럼 내가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아? 너를 절대 죽게 하지 않겠어.”

나는 소리쳤다. 은지는 힘없이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그녀는 울고 있다.


“나 없이 잘 살 수 있지?”

은지는 흐느끼며 물었다.


“아니. 절대! 제발 그런 말하지 마. 지금까지 못 본 영화가 얼마나 많아? 앞으로 우리 하늘을 보며 많은 말들을 해야 하잖아. 아이도 낳고 재밌게 살고 싶잖아.”

나는 말했다. 은지는 얼굴을 두 손에 묻으며 몸을 들썩였다.


“아이의 이름은 뭐가 좋을까?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게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기대되지 않아? 우리가 가족을 만든다면 무엇을 해도 행복할거야. 그렇지?”


은지는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렇지 않냐고!”


“응... 맞아...”

은지는 눈물 때문에 힘겹게 말을 했다.


“그러면 살아야지. 내가 죽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 때 자기가 했던 말이 생각나. 나보고 같이 미래를 생각하자며? 같이 미래를 생각하려면 어떻게든 살아야해. 솔직히 말해 봐. 살고 싶지 않아?”

나는 은지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그녀의 눈에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비쳤다.


“나... 나 사실 살고 싶어!”

은지는 흐느끼며 소리쳤다.



나는 자전거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자전거 뒤에 은지가 누워서 갈 수 있도록 리어카를 부착하는 것이다. 나는 같은 길이의 쇠막대기를 리어카와 연결하고 노끈으로 감았다. 최대한 견고하게 여러 번, 예쁘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리어카 위에 커다란 파라솔을 달았다. 그리고 그 위에 비닐을 덮어 비바람을 막을 수 있게 했다. 자전거가 달리면 은지는 춥게 느껴질테니. 그리고 이불을 잔뜩 들고 나왔다. 그것을 리어카의 바닥에 깔았다.


충분할까? 이미 리어카 밖으로 이불은 삐져나오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그녀에게 충분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일단 준비는 된 것 같았다.

바보같이. 빨리 말했으면 좋았을텐데. 왜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못할까. 나는 젖은 머리를 손으로 대충 털었다. 비 때문에 맨살에 옷이 붙는 것이 껄끄럽게 느껴져서 웃옷을 벗고 수건으로 몸을 빠르게 닦았다. 그리고 대충 두꺼운 옷을 하나 입었다.

우의를 챙겨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은지를 데리러 집으로 들어갔다. 은지는 화장품을 챙기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물었다.


“콜록. 이게 필요해. 화장을 해야 하니까. 그게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야.”

은지는 화장품을 가방에 힘겹게 넣으며 말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은지가 화장품을 챙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또 챙길 것 있어?”

나는 마음이 급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물었다. 하지만 빨리 가야하는데 은지는 나에게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녀의 걸음은 느렸지만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았다. 서쪽 끝 방. 내가 과일과 야채 따위를 키우려 했던 그곳. 그녀가 문을 열자 빨간색의 빛이 흘러나왔다.


“짜잔.”

은지는 자랑스러운 듯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텃밭이 보였다. 그리고 싹이, 푸른 싹이 자라고 있었다. 너무나 놀라웠다. 감동적이기 까지 했다.


“많이는 못했어. 몸이 좋지 않아서.”

은지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이런 바보야. 아프면 쉬고 있을 것이지 이런 건 왜 했어?”

나는 고생했다는 말 대신 이런 말이 불쑥 먼저 나왔다.


“나는 자기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별로야?”

은지는 나의 말에 약간 실망한 듯 고개를 떨구고 작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모습에 얼른 진심을 전했다.

“너무 멋져. 우리가 병원만 갔다 오면 계속 키우자. 여기서 각가지 과일과 채소들을 먹을 수 있을 거야. 잘했어.”


“그런데 우리가 이곳에 다시 올 시간이 되면 저것들은 죽어 있을 거야.”

은지는 안타까운 듯이 싹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아냐. 금방이야. 금방 갔다올 거야. 아주 잠시만. 그래. 조금만 기다리면 돼.”

나는 은지를 일으키며 달랬다. 그리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물과 손전등 몇 개, 통조림 몇 개, 건전지 몇 개, 그녀의 가방, 라이터, 그리고 몇 개의 총과 총알을 챙겼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 그리고 손목시계와 반지, 편지도. 아 물론 그녀가 화장품을 싼 가방도 챙겼다. 웬일인지 가방 안엔 화장품 말고도 상비약이 보였다.

자전거로 가면 금방일 것이다. 물론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천천히 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비도 오고 있으니. 5일. 길어도 5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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