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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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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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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는 신들도 찍는다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므네모시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땅의 여신 가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12명의 티탄 신족 중 하나이다.


므네모시네는 저승에서 기억의 연못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죽어서 저승에 간 망자가 환생할 때, 레테의 강물을 마시게 되면 기억을 모두 잃지만, 므네모시네의 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제우스는 신들의 신으로 알려져 있죠.”


그가 이야기했다. 단정하게 빗은 머리, 한길은 자신의 앞에 앉은 그의 패션이 꾸미지 않은 듯 하지만 세련되었다고 생각했다. 얇은 검정 터틀넥 니트, 챠콜 그레이 콤비가 그의 단정한 인상을 한층 돋보이게 해 준다.


윗면은 얇은 뿔테, 아랫면은 무테로 만들어진 안경도 썩 잘 어울렸다. 그에게서 지적인 풍모가 느껴진다.


“그건 제우스가 권력을 잡고 나서의 이야기입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의의 주인으로 군림하기 위해 무던히 싸워야 했죠. 권력 앞에서는 신들도 인간도 다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생수병을 열고 한모금 목을 축였다. 꿀꺽 꿀꺽 물이 넘어갈 때마다 목젖이 위 아래로 움직였다. 한길의 시선은 온통 그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제우스의 아버지, 삼촌, 고모들도 권력을 놓고 그와 다퉈야 했습니다.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제압하고 그에게 대항했던 티탄족, 아! 제우스에게는 삼촌과 고모들이었죠. 티탄족을 지옥에 가뒀어요. 그렇게 싸움이 시작되었죠.”


“신들도 치열하게 권력을 다투었다니 신기하네요. 뭔가 신들이라고 하면 전지전능하달까?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존재인데, 싸워서 권력을 얻어야 한다는게 안 어울리는 것 같아요.”


한길이 그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그는 신화 같은 것은 전혀 몰랐다.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재미있었다.


한길이 흥미로워하는 것을 보고 그가 미소를 띄었다.


“결국 승리는 제우스에게 돌아가고 제우스는 올림포스의 주인이 됩니다. 그런데 이 신들의 전쟁에서 제우스와 므네모시네의 관계가 재미있습니다.


둘은 고모와 조카의 관계였거든요.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와 므네모시네가 남매지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므네모시네는 부모, 형제의 편을 들지 않고, 조카인 제우스의 편을 들었어요. 그리고 둘은 9일 밤 낮을 관계해서 9명의 자식을 낳았죠.”


“재미있는 이야기군요.”


한길은 신들의 이야기도 참으로 통속적이라고 생각했다. 막장 드라마는 머나먼 옛날 신화의 세계에서부터 존재했구나.


“그런데 제우스는 신들의 신이라면서요? 다른 여자들도 많은데 므네··· 뭐라고 하셨죠? 이름이 너무 어렵네요. 여하튼 고모와 관계를 멪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그는 티탄족과의 싸움 티타노마키아를 치루고, 이어서 거인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간신히 승리한 제우스는 나중에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기억’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죠. 그래서 그는 기억의 신인 므네모시네에게 접근하게 된겁니다.


권력과 기억이 하나가 된 것이죠. 모든 것은 기억해야 했죠. 악기를 연주하는 것, 노래를 하는 것 모두 기억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억만이 지속적인 발전을 약속할 수 있었죠.”


“그렇군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깁니다.”


선생님은 한길에게 노트를 내밀었다. 므네모시네의 노트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봄날의 햇살처럼 한길의 가슴에 깊이 파고 들었다. 한길은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따뜻해서 모세혈관 하나하나에까지 전달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잊지 마세요. 당신이 누구인지. 기억해 내세요. 기억은 소중하니까요. 망각은 그만큼을 잃는 겁니다.”


*


우형은 동욱과 인철의 집으로 향했다. 지은 지 오래된 연립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였다. 동욱이 인철의 집까지 운전하는 동안 차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어색한 공기를 견딜 수가 없었는지 동욱은 신호 대기로 차가 멈추자, 라디오를 켰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연일 폭등하고 있습니다. 최근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공공재개발이 추진되면서, 노후화된 동네들마다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요,


그런데 일부 지역은 10여 년 전 재개발 사업 인가까지 받았던 곳인데 지금은 신청 자격조차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빚어졌는지 김성운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신호가 바뀌고 주택가 초입에 들어서자 골목은 점점 좁아지고 가팔라졌다. 동욱은 골목길에 주차되어있는 차들을 피해 조심조심 운전했다.


“이곳은 2011년 재개발 사업인가가 났지만, 6년 뒤 구역이 해제됐습니다. 그래도 재개발 기대를 접지 않았던 다수의 주민들은 최근 정부의 공공재개발 추진 소식에 다시 희망을 품었지만, 이번엔 심사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는 소식에 허탈해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골목 재생사업을 진행 중인 곳은 신청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거의 다 도착했지만 주차되어있는 차들을 피해 천천히 이동 하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간신히 골목을 빠져나갈 즈음에 맞은편에서 차가 진입하자 서로 누가 빠져야 할지 신경전이 팽팽해졌다.


맞은편에서 네가 먼저 양보하라고 빵빵 클락션을 울려댔다. 동욱도 지지않고 뒤를 손가락질 해 보이며 네가 움직이라고 클락션을 울려댔다.


한국이 개성 없는 판상형 아파트들의 천국이라지만 아파트 만한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형은 골목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신경전을 펼치자 답답함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간신히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곳인가? 그러고 보니 조금씩 기억이 났다. 낯익은 장면들이다. 고등학교 때 인철네 집에서 만화책이나 비디오 따위를 빌리고, 순대, 떡복이 같은 주전부리를 사다가 뒹굴뒹굴 보냈던 기억이.


건축한지 40년은 족히 되었으니, 인철은 그의 생의 대부분을 이 빌라에서 보낸 셈이다.


‘그 때 이 동네는 꽤나 그럴듯 했는데···’


무협 드라마 같은 건 시리즈가 길어서 비디오 테이프로 20개 이상씩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한참 흥미지진한 타이밍에 비디오 가게에 가서 다음 편을 빌리려고 하면, 이전 집에서 아직 반납하지 않았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빨리 전화 좀 해 보시라고 채근하기 일쑤였는데···


우형은 30년전으로 추억 여행을 하고 있었다.

아마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시대의 산물일 것이다. 카세트 테잎, 비디오 테잎, 플로피 디스크, 삐삐, CD, DVD 같은 것들. 그리고 동네마다 몇 개씩 있던 비디오 대여점들. 지금은 사라져버린 가게의 풍경들이다.


그가 과거의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인철의 집 앞에 도착했다. 동욱이 주차할 공간을 찾고 있었지만, 이미 빌라의 주차 공간은 차들로 꽉 차 있었다. 근처 주택가 골목골목도 이미 차들로 빼곡했다.


8-90년대 집을 지을 때는, 차들이 이렇게 많을 거라 생각 못 했을테니 이해는 가지만, 옛날 주택가들은 길의 절반은 차가 차지하고 있는 골목길의 답답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동욱이 주차할 공간을 찾는 동안, 우형이 먼저 내려 인철의 집으로 들어갔다. 동욱이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자, 빌라 복도로 경쾌하게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마트해진 시대.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난 십 년 남짓한 기간에 모든 것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핸드폰 하나로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거추장 거리는 열쇠도 더 이상 필요 없고, 집 안은 카메라 하나 달아 외부에서도 컨트롤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상상했던 자동차가 날아다니는 미래사회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소프트웨어의 변화는 과거와 엄청난 차이가 생겼다.


인철의 집은 깨끗했다. 방 세 개가 있는 공간, 홀로 계시던 아버지, 인철 부부, 딸까지 같이 지냈던 시기가 있었을 테지. 우형은 몇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인철의 아내 얼굴을 기억해 내려 애써 보았지만 생각 나지 않았다.


거실에는 가족 사진 같은 것도 없었다.


“뭐야! 전보다 더 뭐가 없는데?”


뒤따라 들어온 동욱의 목소리에 우형은 멈칫했다.


“살림이 이렇게 단촐했나?”


우형이 동욱에게 물었다. 동욱은 종종 인철이네 집에 와서 자고 가곤 했다고 했었다. 돌싱인 동욱은 혼자 사는 인철이네 집에 가끔 찾아와 술도 마시고 자고 가곤 했다. 인철의 거래처에 따라다니며 주변인들에게 보험도 소개하는 건 덤이었다.


집은 최근에 유행하는 미니멀리즘 라이프처럼 아무 것도 없었다. 거실에는 인조가죽으로 된 3인용 소파와 작은 협탁, 벽에 걸린 60인치 TV가 다였다.


부엌에는 작은 전기밥솥, 전자레인지, 냉장고 그리고 4인용 식탁이 있었다. 식탁 위는 아무것도 없이 깨끗했다. 싱크대에도 물 한 방울 없이 깔끔했다.


오래된 2도어 냉장고를 열어보니, 생수병 3개와 몇병의 소주병, 맥주캔 뿐이었다. 냉장고 손잡이쪽 칸에는 배달 음식점에서 주는 1회용 간장, 와사비, 케찹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술과 안주 삼아 배달시켜 먹는 음식들이 집에서 먹는 생활의 대부분이었나, 냉장고 문을 닫으며 그는 생각했다. 하긴 혼자 사는 남자들 대부분의 냉장고가 인철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이혼 후, 그의 냉장고도 이랬다. 항상 아내가 챙겨주고 관리하던 식단에서 벗어나니 무언가를 해 먹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한 끼 먹기 위해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밑반찬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이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낯설고 귀찮은 작업이었다.


혼자 지내기 시작하면서 초반에는 매일같이 라면이나 배달 음식에 의존했다. 그러다보니 몸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탄탄하던 몸매는 쳐지기 시작했고 배에는 어느덧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1년쯤 지나자 10킬로쯤 군살이 붙었다. 몸이 무거워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헉헉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가게 문을 닫는데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군살 없이 탄탄하던 엘리트 대기업 차장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배 나온 퉁퉁한 중년의 아저씨가 서 있었다.


그날 이후 우형은 새벽 조깅을 시작했다. 라면 대신 닭가슴살과 단백질 파우더를 주문하고, 커피숍에서 팔고 남은 샐러드로 가볍게 식사하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워지니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전에 왔을 때는 이 정도로 단촐하지는 않았는데.”


동욱이 낯설다는 듯이 집 안을 둘러보았다.


“뭐야? 방들도 뭐 싹 치워버렸네?”


그가 방들을 들락거리며 문을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 동욱을 따라 열린 문 안으로 슬쩍 들여다보이는 방안에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안방에는 침대와 장롱, 작은 협탁만 덩그라니 있었고 다른 두 방은 아무 세간살이 없이 비워져 있었다. 마치 이사를 가기 위해 준비해 놓은 집처럼 세간살이 몇 개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산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언제 이렇게 치운 거야? 이 자식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동욱이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왔다. 그는 소파에 앉아 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손으로 우형에게 협탁의 맥주 가리켰다.


우형은 협탁위에 꺼내 놓은 맥주를 한 캔 따서 들이켰다. 물과 술 밖에 들어 있지 않은 냉장고라 그런지 맥주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시원하고 쌉쌀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 맥주캔을 협탁에 내려놓자 우형의 눈에 협탁 유리 아래로 보이는 서류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뭐지?”


“뭐?”


동욱이 물었다. 우형이 손을 뻗어 협탁 밑 누런 서류봉투를 열자, 동욱의 눈도 반짝 빛났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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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은우의 이야기 – 구질구질한 고시원.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 한 잔 21.05.12 74 1 13쪽
3 서연의 이야기 – 우리도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2 21.05.12 89 2 14쪽
2 서라의 이야기 - 가짜 세계에서 가짜의 삶을 살면 어때서? 21.05.12 109 2 12쪽
1 프롤로그 +3 21.05.12 187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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