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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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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
추천수 :
48
글자수 :
211,636

작성
21.05.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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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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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죽기 살기로 다이어트 해봤어?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서연은 음료수 매대에서 빠진 물품들을 채워서 진열을 해 놓고 매장을 한 번 둘러보았다. 딱히 신경 쓸 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고 적당히 매대에서 자리를 지키면 될 것 같다. 손님이 별로 없으면 인강도 두 세 개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의 장점은 낮에 분주한 매장은 아니라는 점이다. 100미터 근방에 편의점이 네 개가 있다. 대부분은 지하철역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큰 편의점이 제일 분주하다.


그리고 역세권에서 멀어질수록 손님이 뜸하고 주택가 안쪽 깊숙이 들어온 이 작은 편의점에 제일 유동인구가 적다.


편의점주로서는 제일 안좋은 입지라 편의점이 하나 늘어날수록 시름이 깊어갔겠지만, 일하는 알바생 입장에선 이런 곳이 제일 만만하다.


망하지만 않는다면 공시준비하는 동안 최대한 뽑아 먹을 수 있는 만큼 뽑아 먹고 싶다고 서연은 생각했다.


계산대에 자리를 잡고 집에서 타 온 텀블러의 커피를 한 모금 홀짝거렸다. 인강 수업을 고르고 나서 골전도 이어폰을 켰다. 골전도 이어폰은 귀를 막지 않아 강의를 들으면서 손님의 말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인강 동영상을 듣는데 메신저 문자 내용이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집에 별 일 없지?]



엄마다. 주말에만 보는 엄마는 일하다 한가할 때 서연에게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묻곤 한다. 현재로선 엄마가 모든 식구들의 네트워크 한 가운데에 있다. 아버지는 엄마와 연락을 하고, 서연도 엄마와 연락을 한다.


엄마는 서라에게 문자를 보내고, 서라는 필요할 때만 답을 한다. 가족들 사이에 단톡방 같은 건 없다. 아마 만든다고 해도 서라는 분명 단톡방에서 바로 나갈 것이다.


우리는 그만큼 다 같이 대화를 하는 것에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서연도 아버지의 안부를 엄마에게 묻는다. 어디서 무얼 하고 지내는지 엄마를 통해서만 소식을 들을 뿐이다. 아버지도 서연과 서라의 안부를 엄마를 통해 듣는다.


이상한 가족관계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상태가 너무 익숙해져서 서로 대화하는 일이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서연은 지금 대화를 할지 동영상이 끝난 뒤에 잠깐 망설이다가 영상을 멈추고 문자를 보냈다.



[별 일 없어]



서연이 답 문자를 보내면, 그 다음부터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방언터지듯 그동안 담아 놓은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할 것이다.


[엄마] 밥은 잘 먹고 다니는 거야?

[서연] 어. 잘 먹고 다니지.

[엄마] 귀찮더라도 집에서라도 제대로 좀 챙겨먹어.

[서연] 여기서 나오는 도시락 폐기되는 거 먹기도 바빠서 뭐 해 먹을새도 없어.

[엄마] 맨날 그런 인스턴트 도시락만 먹어서 쓰니?

[서연] 요새는 이런 도시락들도 잘 나와서 집밥이나 별 차이 없어.

[엄마] 에휴... 빨리 시험 합격해서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서연] 잘 하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엄마 몸이나 잘 챙기셔요

[엄마] 서라는?

[서연] 맨날 똑같지 뭐.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그냥 조용해.

[엄마] 네가 먼저 아는 척 좀 해 봐. 그냥 두지 말고.

[서연] 걔 그러는 거 하루 이틀이야? 방문 두드리고 문자로 말 걸어도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해.


서연은 짜증이 났다. 늘 같은 패턴이다. 서연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고 그리고 나서 서라는 어떤지, 서라를 좀 챙기지, 네가 먼저 말을 걸지, 노력을 하지...


보통 때 같았으면 그냥 꾹 참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편의점에서 나이 먹을만큼 먹은 서연이 이십대 초반 아이들과 같이 구질구질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인강에 독서실을 전전하면서 아등바등 일하고 있는데, 늘 엄마의 모든 걱정은 서라를 향해 있다는 게 그녀의 화를 치솟게 한다.


[서연] 엄마가 걔를 더 안나오게 하는 거잖아.


서연은 결국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내 뱉고야 말았다.


[서연] 왜 걔한테 돈을 주는데? 꼬박꼬박 150만원씩 주는데 걔가 뭐가 아쉬워서 나가서 일할 생각을 하겠어? 방구석에 쳐박혀서 뒹굴뒹굴 놀아도 집에 먹을 거 있겠다, 컴퓨터 끼고 앉아서 필요한 거 있음 주문하고, 사먹고, 펑펑 놀고 먹고 지내도 잔소리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엄마] 그건...


안다. 엄마도 아빠도 서연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서라를 팔아서 받은 3억, 그 돈으로 아파트를 받고 서라를 버리기로 했다고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했고, 서라는 다달이 그 돈을 갚으라고 안방을 점령하고 시위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에게 밖에 나가 무언가를 하라고 잔소리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서연도 잘 알고 있다.


그냥 어느 날 문득,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속내를 보일 곳이 또 엄마 밖에 없다.


[서연] 아무튼 걔는 문 꼭꼭 걸어 잠그고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 쓸데 없는 걱정 할 필요 없어.


[엄마] 휴우... 그래. 주말에 보자.


서연은 냉장고의 편의점 음식에도 집에서 밥을 해 먹거나 딱히 시켜먹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괜히 쓸데없는 걱정이나 짊어지고 남의집 살이 하면서 전전긍긍하겠지.


편의점 문에서 소리가 났다. 손님이 들어오는 소리. 그녀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서연] 어. 나 손님와서 나중에 또 이야기 할게.


[엄마]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문자 남겨. 나중에 집에 들어갈 때 장봐서 갈게.


[서연] 알았어.


주말에 고된 몸을 이끌고 오면서 장을 봐서 오겠다는 엄마의 말에 서연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못되게 말한 것 같아 엄마가 측은해졌다.

눈시울이 화끈거렸다.


‘티슈가 어딨더라... 선반 아래에서 봤었는데...’


누가 볼까 황급히 티슈를 찾았다. 아래 구석에 하얗게 펄럭이는 티슈 끝자락이 보이자마자 빠르게 픽-픽-픽 뽑아 눈 밑을 쿡쿡 찍었다.


탁- 소리와 함께 계산대에 생리대와 물티슈가 올라왔다. 빨갛게 충혈된 눈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숙인채 바코드 리더기로 아이템을 찍었다. 띡-띡- 경쾌하게 읽히는 소리와 포스기에서 가격을 알려주었다.


“12,500원입니다!”


손님은 말 없이 카드를 밀어 넣었다. 서연은 출력된 영수증을 내밀며 그제서야 손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손님은 서연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 영수증을 주면 받을 때나 잠깐 눈이 마주칠텐데 이미 한동안 그녀를 응시하고 있던 눈길이다.


‘뭐야!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건데?’


혹시 아는 사람인가 싶어 서연도 뚫어지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20대의 가냘픈, 그러나 호리호리한 몸매, 아이라인은 진하게 그렸지만 다른 부분은 적당히 내츄럴 메이크업이다. 립스틱은 틴트를 발라서 적당히 자연스러운 빨간색 그라데이션을 넣었다.


그녀는 입 꼬리를 묘하게 일그러뜨리더니 영수증을 받아들고도 한참을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쳐다보았다. 서연은 하마터면 저 아세요 하고 물어볼 뻔 했다. 손님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더니 여전히 올라간 한쪽 입꼬리를 내리지 않은 채 등을 보이고 돌아섰다.


나가면서 핑크빛 야구모자 챙을 눈 아래쪽으로 깊숙이 내리더니 문을 열고 사라져버렸다.


*

‘못 알아봤다!’


서라는 편의점을 나오며 생각했다. 평소 자주 가는 편의점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생리가 터진 것 같다는 느낌에 급히 들어갔다.


집 부엌 냉동고에 가득차 있는 유통기한 지난 편의점 삼각김밥을 보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줄은 알았지만 여기서 일하는 줄은 몰랐다.


생리대를 계산대에 무심히 얹어놨을 때, 바코드를 찍는 서연의 얼굴을 보고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는데 놀랍게도 서연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영수증을 받고도 한참을 더 눈을 쳐다보았는데 서연은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아는 척을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서라는 발길을 돌렸다.

하긴, 생각해 보니 못 알아보는게 당연하겠다 싶다. 고등학교 때까지 서라는 165센티에 85킬로가 나가는 몸집이었다. 누가봐도 뚱뚱한 몸이었다.


송아라네 패거리들이 서라를 돼지냄새 난다고 노랑내라고 불렀다. 간호대학에 잠시 다녔다가 때려치고 집 안에 틀어박혔을 때 120 킬로까지 나갔었다. 그 때가 언니를 본 마지막이었을거다.


식구들이 있을 때 방 밖에 나가 본 적이 없으니까 현재의 모습의 서라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서라는 피식 웃었다. 생각해 보니 85킬로, 120 킬로의 거구에서 45킬로의 지금의 모습은 사진으로 보면 전혀 다른 세 사람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때 죽으려고 했었다.


그리고 120 킬로까지 폭식을 하고 방에 틀어박혔을 때 그냥 별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뒤룩뒤룩 앉기도 힘든 몸을 끌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컴퓨터만 마주하고 앉아 가상의 공간에서만 존재하고 있을 때 송아라를 봤다.


서라는 매일 왜 사는지 모르겠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송아라에게서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연예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었다. SNS에서 그녀를 팔로우 하는 사람들이 백만 명이 넘었다.


왜 송아라를 팔로우 했을까? 서라는 매일같이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송아라가 좋아하는 패션스타일,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꽃, 좋아하는 커피, 그녀가 찍은 광고들, 촬영 중이라는 영화, 그녀의 화장법까지 송아라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나도 그녀처럼 살고 싶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SNS 사진에 글을 달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서라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지워버렸다.


그다음 날부터 서라는 물만 마셨다. 죽지 않는 선까지 물만 마셨다. 그리고 식구들이 없는 시간에 밖에 나가 걷고 또 걸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뛸 수 없었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온 몸의 근육들이 하나같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냥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켜고 걷고 또 걷고 발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걸었다.


걷는 일에 조금 익숙해지자 물과 오이를 들고 다녔다. 좀 더 먼 곳까지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을 중심으로 3정거장, 5정거장, 10정거장 이렇게 조금씩 더 멀리 늘렸다. 늘어진 몸이 보이는 게 싫어서 최대한 롱패딩에 후드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걸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몸무게가 80킬로까지 내려왔다. 그러자 조금씩 뛰는게 가능해졌다. 음식도 단백질 파우더와 오이, 당근, 샐러드로 조금씩 바꿔나갔다. 2년째가 되자 60킬로가 되었다.


집에서 닭가슴살을 갈아 먹고 영양식에 대해서 인터넷으로 공부했다. 견과류, 항산화가 풍부한 붉은색 야채, 과일들을 챙겨 먹었다. 두 시간씩 조깅하고 헬스장에 가서 몸매 관리를 시작했다.


3년째 45킬로가 되었을 때, 그녀는 통장에 잔고를 확인했다. 라식 수술을 먼저 했다. 75킬로를 배면서 쳐진 살들은 의학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화장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메이크업 제품들을 주문하고 얼굴에 처음으로 화장을 해 보았다. 거울 앞에 있는 사람은 서라도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처음으로 마사지샵에 갔을 때, 샵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서라를 보고 피부가 너무 좋다고 얼굴이 너무 작다고 끊임없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송아라가 지내는 하루 하루는 이런 것이었겠구나 그녀는 그 때 조금 알 것 같았다.


옷을 사러 가면 점원들이 어떤 옷을 입고 나와도 잘 어울린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이 옷은 언니를 위해 맞춤으로 나온 옷 같아 서로 옷을 가지고 나와 서라에게 입혀 보려고 경쟁하듯 가지고 왔다.


서라는 처음으로 강력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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