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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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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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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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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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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VS 흙수저의 회사 생활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안 바쁘지?”


최대리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자 은우는 황급히 ATL+TAB 키를 눌렀다. 순식간에 채팅창에서 업무용 엑셀 파일 창이 떴다.


“...어...음...”


은우는 바쁘냐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이상한 신음소리 같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아직 그의 의도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어디 보자~”


최대리는 남의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며, 제멋대로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은우는 분명 채팅창이 보이지 않는 다는 걸 알지만, 그의 시선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방금 전까지 세헤라자데는 고시원에서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 않았던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거 이미 선적 끝나고 납품한 물건 단가잖아. 이걸 왜 보고 있을까?”


빙글빙글 웃으며 능청스럽게 말한다. 네가 딴 짓하고 있는 거 다 알지. 솔직히 불어라 임마, 하는 표정.


‘만약 숨겨진 창을 최대리가 클릭해서 보기라도 한다면...’


생각만해도 아찔해졌다. 고시원, 샤워실, 옆 칸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다, 아마 마지막에 올라와 있던 이런 문구들을 읽는다면?


마치 변태들이 모여 있는 익명의 채팅방처럼 보일 것이다. 아니다. 그러면 오히려 호기심에 자신도 가입하게 해 달라고 조를지도 모른다. 은우의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해졌다.


“이 삐에로 인형은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그가 모니터 위에 얹어 놓은 작은 삐에로 인형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모니터 위의 삐에로 인형에 간 나머지 아래에 숨겨진 채팅창은 묻힌 것 같다. 은우는 다행이라고 안도의 함숨을 내쉬었다.


은우는 슬쩍 박부장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그는 자리에 없다. 삐에로 인형은 박부장이 은우에게만 살짝 준 것이다.


얼마 전, 캐나다에 살고 있는 딸이 보내준 거라며 은우에게 주었다. 왜 이걸 나한테 주었을까. 은우는 이유를 묻지는 않았지만 박부장이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아낀다는 것은,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아들이 없어서 은우를 아들처럼 여기는 걸까? 하지만 더 붙임성 있고 정이 많은 최대리도 있는데? 왜 나같이 무뚝뚝한 아웃사이더에게 슬쩍 주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중국 공장에서 샘플 받은거야? 뭐 귀엽기는 한데, 이거 팔리겠나? 우리나라 정서에 안 맞는 제품인데...”


최대리가 한쪽에 먼지가 뽀얗게 앉은 삐에로를 보며 말했다. 헝겊 인형의 몸 안에는 철사로 되어 있어 구부리거나 세울 수 있다. 인형의 얼굴은 세라믹으로 구워져서 도자기 특유의 반질반질 하얗게 윤이 난다.


“아니, 선물 받은 거야.”


“그럼 집에 갖다 놓지 왜 여기다 둬?”


“집에 마땅히 둘 데도 없고...”


은우는 최대리에게 고시원에 이런걸 놔두고 꾸밀 처지가 못 된다는 말은 하기 싫었다.


금수저. 최대리 부친은 종로에서 금은방을 운영하시다고 했다. 남대문과 종로에 작은 상가를 세 개 소유하고 있다고 했던가.


그는 자기 명의로 된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중소기업에 어울리지 않게 중형 세단을 몰고 출퇴근한다.


딱히 돈에 구애받지 않는 생활. 그에게 회사 생활은 일종의 취미 활동 같은 거라고 해야하나? 그의 생활 수준은 회사 월급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


아버지가 일찌감치 명의 변경을 해 준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가 다달이 통장에 따박따박 꽂힌다. 회사에서 월급으로 받는 돈은 용돈의 일부일 뿐이다.


그의 돈 씀씀이는 항상 넉넉하다. 툭하면 회사 동료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고, 기분 좋은 날엔 근사한 곳에 데려가 한 턱 쏘곤 한다. 그래서 여직원들에게 항상 인기가 많다.


회사 윗 분들이나 거래처 사람들도 최대리를 좋아한다. 필요하면 자기 사비를 들여서라도 개인사를 챙기거나, 일상에 당당하고 여유로운 생활 태도에 그를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어떤 벽이 있는 것이다.


30평대 아파트에 럭셔리한 라이프를 즐기는 최대리에게 고시원 생활이 무엇인지 구구절절 설명하기 귀찮기도 하고, 그가 그런 생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최대리는 회사를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며 온갖 소식을 물어다 나르는 바지런한 쥐 같다. 뭐 물론 쥐처럼 병균을 옮긴다거나 유해한 그런 류의 것은 아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다람쥐같은, 사람들에게 귀여움 받고 사랑받는 존재에 더 가깝다.


그가 바지런히 여기저기 소식을 물어 나르긴 하지만, 악감정이 있거나 가십용으로 뒤에서 씹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접착제 역할을 하는 편이다. 붙임성 좋은 최대리에게 본인의 속내나 개인사를 무방비로 잘 털어 놓는 편이라고나 할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이따 나 아는 형님이 이 근처에 와인바를 열었는데 가자!”


“난 됐어.”


“다 같이 가야 재밌지. 우리 회사 젊은 직원 다 합쳐봐야 몇 명 되지도 않는데, 거기 한 두 명 가면 무슨 재미야.”


“나 빼고 넷이 가면 되잖아.”


“넷 하고 다섯하고 또 느낌이 다르지. 다섯 명쯤 되면 그래도 그룹 같고 네 명은 좀 뭔가 어설픈 숫자 아니냐?


지금 거기 막 오픈해서 사람 없으니까 나한테 연락한건데 꼴랑 네 명이 가면 우습잖아. 그리고 그 형님이 기분파야. 먹고 싶은대로 다 시키라고 했어. 자기가 쏜다고.”


최대리의 이상한 논리에 뭐라고 더 대꾸하기가 귀찮아졌다. 이 녀석은 늘 막무가내다. 하지만 묘하게 기분 나쁘지 않게 설득하는 재주가 있다.


“이게 거기서 끝이 아니야. <더룸> 알지? 우리나라 잡화업계의 큰 손 브랜드. 이 와인바 형님 사촌형이 무려 <더룸>의 이사래. 크크크. ”


그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고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잘만 하면, 그 형님이 사촌 형 소개해 줄 거라고 했거든. 그 사촌 형님도 와인바 들락거릴 거 아니냐. 자연스럽게~ 그렇게 또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거쥐~.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아니겠냐 이거야. 암튼 가는 거다!”


그에게 세일즈맨이라는 일은 찰떡같이 잘 어울린다.

그는 신신당부를 하고 사라졌다. 아마 다른 직원들은 공짜 와인바 이야기에 신이 나 있을 것이다. 저쪽 여직원들 자리를 보니, 뭘 입고 갈지가 걱정인지 급히 쇼핑을 하네, 근처에 아는 옷가게 어디가 괜찮네하는 이야기들이 들렸다.



*



서라는 다섯 명 밖에 없는 채팅창에서 세헤라자데의 이야기 이후에 아무 이야기가 없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보통 서라가 들어간 채팅방들은 적게는 십 수 명 많게는 수 백 명이 들어가 있었고, 대화가 끊이는 적은 없었다.


한 번 대화를 놓치면 읽지 않은 이전 대화를 보는 것도 일이었다. 어떤 때에는 밀린 대화들을 읽는 데에만 한 두 시간씩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정도 요령도 생겼다. 그냥 실시간으로 적당히 핫한 대화가 있을 때 끼어들었다가 쓸데없는 대화들은 그냥 넘긴다. 혹시 읽지 않은 대화들이 길어질 경우, 대충 분위기만 파악하거나 귀찮을 경우엔 그냥 읽지 않고 넘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침묵이 감도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침묵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돌아가면서 자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도 뭔가 말해야 하나? 다들 서라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문득 부담이 밀려왔다. 뭐라도 말해야 한다면? 그런데 딱히 할 말이 없을 경우엔 어떻게 하지? 어디서 이야기라도 가지고 와야 되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인터넷 서치 창을 열었다. 그런데 마치 그런 서라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채팅 창이 깜박 거렸다.


서라는 깜박거리는 채팅창을 눌렀다.

편집자였다.


[편집자] 세헤라자데님 이야기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 하시기 어려웠을텐데, 공유해 주셔서요. 그리고 이 방에 처음 오신 분도 있고 해서 이 채팅방의 룰에 대해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서라는 신기했다. 편집자라는 사람, 정체가 뭐야? 내 생각을 읽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귀신같은 타이밍에 저런 글을 올리고 있다.


[편집자] 이 방은 자유롭게 아무런 대화를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이 본인의 이야기여도 되고, 지어낸 이야기여도 되고, 인터넷에서 가지고 온 이야기도 됩니다.


굳이 진짜 있었던 실화인지, 아닌지, 본인의 이야기인지, 타인의 이야기인지 밝히실 필요는 없어요.


본인 이야기를 하고 싶으시면 하시는 거고, 하기 싫으시면 안하는 거죠. 본인 이야기라고 밝히셔도 되고, 밝히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지어낸 이야기로 본인 이야기라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곳은 익명의 공간이니까요. 누가 검증하는 행위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가끔 드리는 질문에도,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되지만 거짓으로 답을 하셔도 괜찮습니다.


편집자라는 사람은 확실히 독특한 사람이다. 그는 어째서 이런 방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왜 질문에 거짓으로 답해도 된다는 건지도 의도를 모르겠다.


서라는 약간 혼란스러웠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인터넷에 있는 사진과 정보로 자신의 글인양 올렸다가 서라 뒤에서 그녀를 욕하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사람들은 거짓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리고 거짓을 잡아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증거를 찾아내려고 하는데, 이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거지? 왜 이런 방을 만든 거지?


하지만 그에게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다. 알 수 없는 묘한 캐릭터다.



*



“이 방이예요.”


고시원 주인 아주머니의 목소리다. 씻고 자려고 누운 은우에게 또렷이 들리는 목소리. 그리고 두 사람의 인기척. 자정이 넘은 시각이다.


역시 와인바니, 호프집이니 사람들이 왁자하게 모여 떠드는 모임 같은 건 은우에게 맞지 않았다. 그는 하릴없이 와인 잔을 비우다가 적당히 일어났다. 그냥 일찍 들어가 쉬는 게 다음날 일하는 데 무리가 없을 테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화장실에 가는 척 슬쩍 일어나 빠져나왔다. 어차피 그들은 은우가 있건 없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수련과 민아는 언제 갈아입고 왔는지 어깨끈이 화려한 슬립형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다. 근처에 옷가게 어쩌고 하더니 퇴근 후 회사 근처에서 재빠르게 한 벌씩 사서 입고 온 것 같았다.


특히 현민아는 최대리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최근 회식이나 사적인 모임이 생기면 최대리 옆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눈에 보였다.


“여기가 이 근방에서 제일 싸. 역도 가깝고. 이만한 데가 없을 거야. 방세가 싼 대신에 우리는 최소 6개월 이상 있겠다는 사람들만 받고 있는데, 뭐 하도 사정이 딱하다고 하니까... 대신 좀 깔끔하게 쓰고 문제없이 지내요.”


“네.”


적당히 굵은 남자의 목소리다. 목소리로 보아 어린 친구는 아니다. 중년의 나이인 것 같다.


비어 있던 옆방에 누가 들어오는 모양이다. 은우는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생각했다. 옆 방이 한동안 비어 있던 탓에 그나마 좀 조용하게 지냈다. 뭐 두고 보면 알겠지 어떤 사람인지, 방이 영원히 비어 있을수는 없으니까.


제발 조용한 사람이기를, 이 순간 만큼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찾고 싶어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드르릉~ 푸우~ 푸드드드드드~ 드르릉~ 푸우~ 푸드드드드...”


옆 방에서 어마어마한 코골이가 시작되었을 때, 은우는 당분간 편안하게 숙면을 취하는 건 글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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