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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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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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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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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우형의 이야기 – 빛의 속도로 엘리트 인생에서 바닥으로 추락하기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역시 2층에 위치한 커피 전문점은 아니었나?’


우형은 한산한 카페를 보며 생각했다.


부동산 주인은 무조건 1층 대로변에 가게로 하라고 했지만 우형은 말을 듣지 않았다. 1층 대로변의 임대료와 월세는 감당할만한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형은 부동산 업자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요즘 트렌드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독특한 인테리어와 컨셉으로 단골 고객을 모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아내도 말렸다. 경험도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다가는 퇴직금이나 다 까먹게 될 거라고. 아내의 말이 옳았다.


직장 생활 20여년, 차장 직함 하나 달랑 꿰차고 눈치 주는 직장에서 더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 더이상 할 일도, 새로운 프로젝트도 주어지지 않았다.


점심시간은 늘 혼자 도시락을 먹었다.

직원들 중에 우형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우형이 언제까지 버티는지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퇴근 후, 바리스타 코스를 찾아 수업을 들었다. 퇴직금을 계산하고 가용할 수 있는 저축, 대출을 꼼꼼하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점포 위치, 점포 사이즈, 인테리어, 커피 머신은 어떤 기종으로 할지, 집기들 디자인 선정, 초기 인건비 등등 회사에서 다른 프로젝트를 할 때보다 더 열심히 준비했다.


회사에서의 생활은 침묵 속에서, 집에서는 전쟁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내와 매일같이 싸움이 벌어졌다. 지긋지긋한 나날들이었다.


그 날도 싸움의 패턴은 똑같았다. 바리스타 학원에서 돌아와 피곤함에 쩔은 몸을 잠시 씻고 나오자 마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폭포수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래서 기어이 커피숍을 차릴거야?”


“그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났잖아.”


“자기 혼자 결정하고 진행하고 있는거지, 그게 왜 다 끝난거야?”


우형은 이 지리멸렬하고 반복되는 싸움에서 그냥 백기를 던지고 싶었다.


“그럼 뭘 하는게 좋을까? 한 번 이야기 해봐. 치킨집? 한식당? 파스타집? 어디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이야기 해 보라고.”


“그냥 다른 직장을 구해봐.”


“내 나이, 이제 내일모레 오십이야. 나라고 뭐 다른데 들어갈 만한 데 없는지 안 알아봤겠어? 없어. 지금 있는 회사에서도 나가라고 등 떠미는데, 이 어중간한 나이에 어딜 다시 들어가라는 거야. “


“그래도 찾아보면 설마 들어갈 데가 없겠어? 대기업 차장자리까지 한 사람인데!”


아내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다른 일자리도 계속 찾아볼 테니까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우형도 아내도 다른 자리를 찾아보겠다는 말은 그냥 하는 이야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형은 그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어쨌든,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대안은 필요하다. 그러니 재취업이 안될 경우를 대비해 자영업을 준비 해야한다.


그러나 아내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공부 잘하는 모범생, 대기업 입사, 빠른 승진, 성실한 가장, 좋은 직장. 이러한 것들이 만들어 주었던 안정된 중산층의 생활이 영원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어느 순간 내려 놓을 때가 왔을 뿐이다. 사실 우형도 이 사실을 받아 들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열심히 살았다.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그가 성실하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학창시절에는 늘 모범생이었다. 남들이 알아주는 일류 대학에 들어가서도 성실하게 학업에 임했다. 그리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스펙을 쌓아갔다. 그렇게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러나 회사는 학교와는 달랐다. 학교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집단이었고 다 적당히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한 경쟁의 연속이었다. 모두들 우형만큼 머리가 좋고 영민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었다. 아무리 성실하고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언제 내쳐질 지 알 수 없는 곳, 그런 곳이었다.


숨이 막힐정도로 달려왔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영어, 일어, 중국어 그 때 그 때 시류에 맞는 외국어들을 공부했고, 근태는 늘 성실했으며, 평소에 몸이 아프지 않도록 적당히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영양제를 먹어가며 건강 관리를 했다.


승진에 도움이 될만한 어려운 프로젝트들은 도맡아 진행했고 성과를 내기 위해 밤 잠을 줄였다. 윗분들의 눈에 들기 위해 경조사, 등산, 골프 등 라인에 맞춰 취미 활동을 열심히 쫓아 다니기도 했다.


덕분에 남들보다 과장, 차장까지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주변 동료들의 시샘어린 눈초리가 싫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라고 여겼으니까.


“퇴직금 갖고 가게냈는데, 잘 안되면 어쩔건데? 당장 매달 들어가는 아파트 관리비며 애들 학원비, 생활비가 감당이 안되면 그건 어디서 메꿀거냐고”


가 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아내도 우형도 낯선 길에 익숙하지 않았다.

아내는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대기업 차장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하하호호 주변인들과 수다 떨고, 마사지를 받고, 쇼핑을 하거나 모임을 하는 일상이 사라질까 두려워했다.


우형에게서 대기업 차장이라는 직함을 떼어 내고 나면 초라해지는 그저 그런 늙수구레한 중년의 남자, 또는 그의 아내로 전락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것이리라.


“이 집을 팔고 작은데로 이사가면 어떨까?”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우형은 생각했다.


“이사를 가? 어디로?”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고상하고 우아하게 손질된 웨이브 헤어가 그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부르르 흔들렸다.


그녀는 몹시 흥분했는지 엄지 손톱으로 검지 손톱을 긁기 시작했다. 매주 유행에 맞춰 다듬은 네일 젤이 발작적인 손톱질 사이에서 조금씩 뜯겨 나갔다.


“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건 아니지만, 지금 우리 형편으로는 계속 강남 아파트를 유지하기 힘들테니까, 어디 좀 저렴한 외곽으로 가는 것도 괜찮겠지.”


그는 알고 있었다. 아내에게 강남 아파트, 아이들의 학군, 그동안 유지해 온 인맥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강남을 벗어나 산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인생에는 계속 사모님 소리를 듣고, 아이들 유학 뒷바라지를 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의 브런치 카페에서 모임을 하면서 품위 유지를 하며 사는 것만이 그려져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 지속되지 못한다는 걸 안 순간, 모든 화살이 우형에게 돌아온다는 것도.


“미쳤어? 지금이 애들한테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데 이사를 가? 고3, 고1인 애를 이제와서 전학을 시켜? 강남 벗어나서 애들 교육이나 제대로 시킬 수 있을 거 같아? 당신이 애들 교육에 대해서 대체 뭘 알아?


여기 날고 기는 애들 그냥 되는 거 아냐. 다 엄마들 네트워크로 만들어지는 거라구. 성민이 유학 보내려면 지금부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부지런히 뛰어다녀도 모자른 마당에···”


우형은 머릿 속이 멍해졌다. 반복되는 싸움에 지쳐갔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벌판에 혼자 우뚝 서 있다. 마른 풀들이 누렇게 말라가고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아주 멀리서 기마병들의 말 발굽 소리같은 것이 웅웅웅- 작게 울려퍼진다.


“난 절대 이사는 못해! 이 동네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갈거야!”


아내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5년전인가? 김이사와 박전무간의 사내 알력이 심해진 것이. 그쯤 된 것 같다.


김이사는 Y대 출신의 회사에서 바닥부터 다져온 사내 실력파였고, 박전무는 해외 유학파 박사, 특채 출신이었다.


김이사는 박전무가 등장함과 동시에 몹시 예민해지기 시작했고, 자신의 인맥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고급 일식집에 몇몇을 불러 조용히 술자리도 가졌다.


김이사의 오른팔과 같은 정부장이 늘 모임을 총괄하고 김이사의 의사를 전달했다.


“줄 잘서! 알지?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거 봤어? 박전무가 회사에 무슨 기반이 있냐? 얼마나 가겠어?”


정부장은 수시로 같이 점심을 먹자고 불러 우형에게 넌지시 말했다. 마치 너는 나만 믿고 잘 따라오면 앞길은 탄탄대로라고 하는 것 같았고, 실제 회사 내에서도 우형을 부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뒤에서 공공연하게 김이사 라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핸드폰 무선 사업부는 한동안 정말 잘 나갔다. 늘 새 모델이 출시되기만을 기다렸고, 새 기종은 비싼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오더가 들어와도 물량을 대기 어려울 정도였다.


김이사 부사장자리에 올라가는 건 시간 문제라고들 했다. 다들 회사 미래사업에 핸드폰 무선 사업부를 빼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들 했다.


그러나 박전무의 의견은 달랐다. 박전무는 핸드폰 사업은 현재가 포화상태이며 앞으로 사양 사업이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회사의 사활을 반도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미래 전략 회의에서 두 사람의 의견은 팽팽하게 맞섰다. 사람들이 수군댔다. 박전무가 오래 버티지 못할거라고.


그러나 시간은 박전무의 손을 들어주었다. 3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핸드폰 사업부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김이사의 입김은 점차 줄어들었다. 김이사의 라인이라고 떠들고 다니던 정부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박전무의 라인으로 갈아탔다.


“나는 이혼을 했으면 했지, 여기서 나가는 건 절대 못해. 당신 그렇게 고집을 부릴거면, 혼자 나가서 가게를 차리든 죽을 끓이든 알아서 해. 난 우리 애들 여기서 키우고 유학도 보내고 할테니까.”


이혼이라는 단어에 우형은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내는 반쯤 긁어서 떨어진 네일 젤을 풀풀 날리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쾅-하는 문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갔다.


박전무의 라인으로 갈아탔으면 괜찮았을까? 그는 생각했다. 정부장처럼 적당히 시류에 맞춰 실세로 등장한 박전무의 라인 갈아타기를 했더라면, 어쨌든 정년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그는 김이사가 짐을 챙겨 떠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언제 그런 화려한 시절이 있었나 싶게 초라한 퇴장이었다.


*


우형은 손님 없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내렸다.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위잉하고 울려퍼졌다. 그리고 원두와 스팀이 만나서 올라오는 커피의 향기가 퍼져나왔다.


커피숍을 운영한지 2년째. 아내의 말이 옳았다. 경험이 없는 그가 오픈한 2층의 카페에는 손님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오픈하고 6개월쯤은 괜찮은 것도 같았다.


독특한 모로코 풍의 인테리어에 제법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었다. 그러나 SNS에 올라간 사진에 눌려진 좋아요 숫자가 줄어들수록 손님들의 발길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SNS에 좋아요 숫자가 더 이상 눌러지지 않는 순간, 아내도 이혼을 요구했다. 아내는 우형을 자신의 인생에서 언팔하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원하는대로 강남의 집과 아이들을 아내에게 남기고 몸만 떠났다.

가게에서 먹고 자고 하는 생활. 남들이 보기엔 남루한 홀아비의 생활이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손님이 없는 날이 반복될수록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었다. 텅 빈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것 막연히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견뎌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오늘도 그 손님이 올까?’


우형은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2시. 늘 이 맘 때 오는 손님을 어느덧 기다리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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