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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1,833
추천수 :
48
글자수 :
211,636

작성
21.05.12 20:57
조회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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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서라의 이야기 - 가짜 세계에서 가짜의 삶을 살면 어때서?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서라는 어디 들어갈 만한 오픈챗방이 없나 제목을 뒤적이는 중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가입자 47명


입장하기를 누르자 도토리라는 랜덤 네임이 생성되었다.



[바나나] 도토리님! 반가워요.


[도토리] 안녕하세요.


[그래떼] 도토리님 어솨요


[최고봉] 체코 프라하가 너무 좋았어요.


[민트쵸코] 거기 정말 예쁘죠.


[아리스] 프라하도 좋지만 바르셀로나 골목 골목 누비고 다니던 생각이 나요. 해산물도 너무 맛있고...


[민트쵸코] 가우디 건물들도 끝내주죠.



서라는 구글에서 <바르셀로나 가우디>를 검색했다.


‘구엘공원, 카사밀라, 사그리다파밀리아...’


구엘공원 사진들 중 몇 장 그럴 듯한 걸 골라 채팅방에 올렸다.



[민트쵸코] 어머! 구엘공원이다! 도토리님 맞죠?


[도토리] 네


[바나나] 도토리님도 바르셀로나 다셔오셨었군요.


[도토리] 네. 좀 오래되긴 했지만.



서라는 오른쪽 모니터로 채팅을 하고, 왼쪽 듀얼 모니터에 띄워 놓은 인터넷 창에서 재빠르게 <바르셀로나 가우디> 사진들, 블로그 글을 스캔했다.



[도토리] 바르셀로나는 뭐 가우디 빼면 이야기 할 게 없을 정도라.


[아리스] 카사밀라네요


[도토리] 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귀찮을 거 같아요. 관광객이 늘 진을 치고 있어서. 조용하게 살긴 힘든 곳 같죠?


[그래떼] 맞아요. 저도 저기 가 봤는데, 항상 건물 앞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북적북적 있어서, 여기 사는 사람들은 피곤하겠다 싶기는 했어요.



서라는 채팅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면서, 다른 모니터로 블로그 여행 글들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아리스] 그런데 도토리님 사진 전부 풍경이네요. 본인 있는 사진은 왜 안 보여주세요?


[도토리] 뭐 이 방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제 얼굴 남들한테 보이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요.


‘뭐야? 나 지금 의심하는 거야?’


서라는 아리스의 질문에서 미묘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자기가 바르셀로나 이야기로 주도를 잡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내가 끼어 들어서 기분이 나빴나?’



어쩐지 아리스의 말투에 가시가 느껴졌다. 화제에 맞춰 발빠르게 올라오는 도토리의 사진들에서 뭔가 심기가 뒤틀린 것 같다.



[아리스] 그럼 얼굴은 모자이크로 가리고 보여주셔도 되잖아요.


[도토리] 귀찮잖아요. 그런거.


[그래떼] 저도 이해해요. 요즘은 인터넷 상에서 올라오는 사진들을 도용 하는 사람들도 많고...


[바나나] 저는 제가 별로 사진빨이 안 좋아서. 딱히 사진 찍는 걸 좋아하 지도 않고. 보여줄만한 사진들도 없어요. 하하



바나나는 적당히 사람 반겨줄 줄도 알고, 약간 미묘한 상황에서 중재자 역할도 할 줄 아는 것 같다. 서라는 인터넷 창에서 별스타를 검색했다. 해쉬태그로 #구엘공원 / #카사밀라를 검색했다.


수만장의 사진들이 나온다. 서라는 그 중 적당히 평범하고 팔로워도 많지 않은 유저를 골라 사진들을 골랐다.


서라의 손가락은 미친 듯이 움직였다. 아리스의 덫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속도가 중요하다.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적당히 속도 조절을 해 가면서 검색 결과를 스캐닝, 복사 붙여넣기는 자연스럽게.



[바나나] 오모오모~ 도토리님 인물 사진 올려주셨네


[그래떼] 도토리님 키도 몸매도 이만하면 연예인이신데요?


[도토리] 칭찬 감사감사~ 일단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했어요. 부끄럽네요. 5분 후에 지울게요.


[민트쵸코] 저도 바르셀로나 너무 좋아하는데, 또 가고 싶네요. 언제 다시 가나.


[아리스] 도토리님 혹시 Lab이라는 식당 가보셨어요?



잠깐 조용한 듯 싶더니 아리스가 다시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이년은 서라의 행동들이 걸리는 것 같다. 서라는 아리스의 질문이 호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키워드로 <바르셀로나 Lab 레스토랑>을 넣자마자 미슐랭 3 스타 레스토랑 같은 제목들이 우르르 나오고 있었다. 서라는 키보드를 두드렸다.



[도토리]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잖아요.


인물 사진도, 미슐랭 레스토랑에도 적절한 속도의 대응을 했더니 아리스가 잠깐 잠잠해졌다. 다른 사람들도 서라의 인물 사진이 올라오자 더 이상 의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리스] 도토리님 저 바르셀로나 사진들 언제 다녀오신거예요?


아직 끝나지 않았구나. 서라는 직감했다. 아리스가 아직도 의심을 하고 있다는 걸.


[도토리] 꽤 오래 됐네요. 한 5-6년 됐나?



서라는 지금까지 복사해서 붙인 사진들에 문제가 있는지 재빠르게 다시 스크롤을 올려 스캔했다.



‘크게 문제가 될 만한 사진들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러다가 서라는 등골이 살짝 서늘해 짐을 느꼈다.


다시 Lab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미슐랭 레스토랑. 검색 리스트들을 눈으로 스캔하던 서라는 아차 소리를 내고 말았다.


‘오픈한지 3년만에 미슐랭 쓰리스타를 단 Lab 레스토랑의 성공 비결은 스타 쉐프 레오나르도를 영입한 데에 있다?’


아리스의 비웃음이 느껴진다.


서라는 마우스를 손가락으로 툭툭툭 쳤다.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될 때 자신도 모르게 하는 습관이다.


서라는 <방 탈퇴하기> 버튼을 눌렀다.


여기서 굳이 쓸데없는 변명을 늘어 놓는 일은 너무 소모적이다.


그런데 방을 나오고 나서 다른 채팅방 제목을 훑어 보았지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혹시 그 사람들이 내 뒷담화를 하고 있지 않을까 불안감이 자꾸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서라는 다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방을 눌렀다. 여전히 47명의 가입자.


다시 랜덤 이름이 생성되었다. 랜덤 이름은 곰돌이.


역시나 서라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나나] 에이... 뭐 그냥 나가셨나보죠.


[아리스] 아닐걸요? 뭔가 찔리는게 있으니까 나가셨겠죠.


[곰돌이] 아...안녕하세요.


[바나나] 곰돌이님 어서요세요.


[민트쵸코] 반가워요.


[그래떼] 너무 갑자기 나가시니까 좀 그렇긴 하네요. 곰돌이님 어서오세요.


[곰돌이] 반갑습니다


[아리스] 들어오자마자 저희 이야기에 끼어서 잘난척하듯이 이런저런 사진 올리는 것도 좀 수상하고 사진들도 저는 영 이상하던데요?


[그래떼] 사진은 전 뭐 이상한 거 모르겠던데요?


[아리스] 처음에 올린 풍경 사진들은 DSLR로 찍은거고 완전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대포사이즈 카메라에 비싼 렌즈 끼워서 찍은 고퀄 사진이던데, 나중에 제가 인물 사진은 왜 없냐고 하니까 급히 갖고 온 사진들은 다 그냥 핸드폰 셀카 같은 거잖아요.


[민트쵸코] 카메라야 좋은거, 핸드폰 다 갖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아리스] 그 좋은 풍경 찍겠다고 가져간 대포폰으로는 풍경만 찍고, 본인 사진은 전부 셀카로 찍는거 이해가 가세요? 저는 이해 안가던데.


[바나나] 매번 대포폰으로 찍어달라고 부탁하기 어려우면, 그냥 본인 사진은 핸드폰 셀카로 찍을 수도 있죠 뭐.


[그래떼] 그런데 듣고 보니까 좀 이상해 보이긴 하네요. 기왕 좋은데 가서 좋은 카메라로 찍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기는 한데...


아리스는 그래떼의 의심에 의기양양해진 듯 했다.

서라는 이번에는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대화에 섣불리 참여했다가 더 큰 의심만 불러올테니까.



[민트쵸코] 그런데 갑자기 왜 나가신걸까요? 저는 그게 더 이상하네요.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본인 사진 막 올리시다가 갑자기 나가시니까 영 찝찝한 느낌?


[아리스] 전 그 분이 황급히 나간 이유를 알 거 같아요.


[그래떼] 뭔가요?


[민트쵸코] 뭐래요?


[바나나] 저도 궁금


[아리스] 레스토랑 때문이예요.


[그래떼] 레스토랑이요?


[민트쵸코] 저 잠깐 복습하고 올게요.


[바나나] 제가 올라갔다 왔어요.


바나나는 친절하게 아리스와 도토리의 대화를 복사해서 붙여 넣었다.


---------------------------------


[아리스] 도토리님 혹시 Lab이라는 식당 가보셨어요?


[도토리]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이잖아요.


---------------------------------


[바나나] 이거 말씀하시는 거죠?


[아리스] 맞아요. 저거.


[민트쵸코] 저게 왜요?


[아리스] 저 레스토랑 사실 생긴지 얼마 안됐어요. 미슐랭 레스토랑이긴 한데, 오픈한지 얼마 안된 레스토랑이죠. 거기 쉐프가 엄청 유명한 사람이라 쉐프빨로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파인 다이닝 중에서 미술랭 바로 단 곳인데, 도토리님이 5년 전에 바르셀로나 다녀왔다고 하셔서 저는 거기서 확신했어요.


[그래떼] 어머어머! 아리스님 대단! 엄지 척!


[민트쵸코] 대박쓰!


[바나나] 그럼 도토리님 가 보지도 않고 아는 척? 거짓말? 소오름.



서라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모두들 앞에서 옷이 하나 하나 벗겨지는 느낌. 그냥 뻔뻔하게 남아서 식당 정도는 가보진 않았고 미식을 좋아해서 미슐랭 레스토랑 정도는 꿰고 있다고 할 걸 그랬나?


그 방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도토리에서 곰돌이라는 이름으로 서라가 다시 들어왔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지 모두들 서라의 거짓말을 밝힌 아리스에 대한 칭찬과 추앙으로 채팅창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민트쵸코] 그래서 나가신거구나.


[바나나] 그런데 설마 그 사진들이 다 거짓말일까요? 사진들로 봐서는 진짜 가셨던 거 같기도 하고. 레스토랑이야 그냥 아는 척 하셨던 걸 수도 있지만.


[아리스] 저는 사진도 다 거짓말이었다는 데에 제 손모가지 겁니다.


[그래떼] 아리스님 말 들어보면 거짓말 같기도 해요. 그렇지 않고서야. 제발이 저리

니까 급히 나갔겠죠.


[바나나] 너무 저희끼리 이야기 하는 거 아닌가요? 새로 오신 분도 있는데... 곰돌이님 당황스럽겠어요.



서라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서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 멤버인 척 연기를 해야 하는데 이미 손은 축축해져 있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귀까지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린다. 두근 두근 두근...



[곰돌이] 뭐 재미있는 이야기들 하고 계셨나봐요?


[민트쵸코] 곰돌이님 들어오기 전에, 나가셨던 분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곰돌이] 제가 끼어들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서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바나나] 아까 도토리님이라는 분이 들어오셨었는데, 아무래도 남의 사진 도용해서

여행 다녀온 것처럼 거짓말 하시다가 뽀록나기 직전에 도망가신 거 같다고...


[곰돌이] 아... 그런 일이...


[그래떼] 요새는 익명의 공간이라는 걸 이용해서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다니까요?


[민트쵸코] 아리스님 촉이 아니었으면 아마 모두들 깜박 속아 넘어갔겠지만...


[바나나] 대체 그런 거짓말을 해서 얻는 게 뭔지 모르겠네요.



서라는 아리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아리스는 곰돌이도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냥 뒤 돌아보지 않고 나가기 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그러면 곰돌이와 도토리가 동일인이라는게 바로 들통나겠지.


휴우...


한숨이 나왔다. 잠깐의 실수였을뿐인데.

이제와서 곰돌이 이름으로 다시 나갈 수는 없다.

그냥 며칠 조용히 뒀다가 자연스러운 타이밍을 보고 나오는 수밖에.


검정색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무도 서라를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얼굴이 계속 화끈거렸다. 머리에서 열이 나는 것 같다. 해열제라도 먹어야 할 것 같다. 어딘가 서랍에 넣어둔 것 같은데...


서랍을 여는 손에서도 미세한 진동이 있다.


달달달달


그냥 가만히 있을 걸, 처음부터 너무 나댔다. 서랍의 해열제를 한 알 털어 넣고 책상 위에 놓인 물병을 열었다. 꿀꺽꿀꺽 목에 넘어가는 물 소리와 두근 두근 미친 듯이 방망이질하는 심장 소리,


그리고 자꾸 달달달달 멈춰지지 않는 손의 떨림.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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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3 21.05.12 187 3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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