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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수씨네 다락

실수로 그만 멸망 버튼을 눌러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김이라
작품등록일 :
2021.05.12 20:13
최근연재일 :
2021.06.12 08:0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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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
추천수 :
48
글자수 :
211,636

작성
21.05.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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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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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고시원 방값 2만원 깎아줄게, 됐지?

매일 매일 똑같은 세상 어차피 지긋지긋했잖아? 실수로 그만 이 세계의 멸망 버튼이 눌러졌다




DUMMY

숙면을 취하지 못한지 벌써 삼일째. 은우는 고시원 주인 아주머니에게 옆방에 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 거냐고 물었다.


“왜? 그 분 뭐 문제 있어?”


아주머니가 빙글빙글 웃었다. 고시원밥 십수년에 눈치가 귀신이다.


“아니, 뭐 그냥... 오래 계실 분인지 궁금해서요.”


아주버니는 음-하더니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았다. 장기로 있는 은우와 단기로 있는 옆방 아저씨와 누가 더 도움이 될지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있겠지. 은우는 생각했다. 해보나 마나한 계산질이다.


“좀만 참으면 안될까? 딱 한 달만 있다가 나갈 거라고 하는데... 알지? 내가 원래 단기는 잘 안 받는거. 우리는 뭐 식구나 다름 없지. 안그래?”


아주머니는 가식적인 미소를 잔뜩 띠고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리고 크게 선심이나 쓴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자기 방 값 2만원 깎아줄게.”


은우의 손을 꼭 잡더니 알았지? 알았지? 반복하더니 눈을 흘기며 이제 됐다는 눈빛으로 총총 걸어나갔다.


‘되긴 뭐가 돼.’


은우는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러나 이달 방세에서 2만원 빼 준다며 선심쓰듯 가 버리는 아주머니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빨리 이 고시원에서 탈출하는게 답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저축액이 얼마였더라. 머릿속으로 통장 잔고를 계산해 보니 한숨이 나온다.


어디 반지하나 옥탑으로 올라가려고 해도 보증금이 있어야 갈텐데, 이놈의 통장 잔고는 도무지 살이 붙질 않는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보는데, 눈이 충혈되어 있다. 얼굴은 탄력이 없이 축 늘어졌고 다크 서클이 앉은 눈 밑은 퀭하다. 너구리 같은 눈이다. 나지막한 한숨이 나왔다. 은우는 면도를 하며 탄력 없는 살을 만졌다.


어젯밤.


옆방 아저씨가 코를 골기 전에 빨리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은우는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이미 이틀간 코골이에 시달려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귓 속에 귀마개도 넣었다. 이물감이 있으면 잘 못자는 성격인데, 이렇게라도 자야지 했다.


하지만 다 소용 없었다. 은우는 물 속에 가라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수중 속에서도 느껴지는 진동과 소음이 고스란히 그에게 전달되었다.


물 속에 깊이 가라앉은 몸, 그러나 정신은 말똥말똥 각성 상태가 된다. 어둡고 캄캄한 물 속, 차갑다. 가끔 뭔가 미끌거리는게 은우의 발목을 감싸고 있다. 뭐지? 간질간질하고 축축하고 덤불같은 느낌의 무엇이 그의 발목 근처에서 춤춘다.


그러나 은우는 눈을 뜰 수가 없다. 눈을 떠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물 속에서 파동이 주기적으로 그를 덮친다. 흔들리고 싶지 않은데 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물결에 밀려 움직인다.


‘눈을, 눈을 떠야해.’


그의 의식이 자꾸 그를 각성시킨다. 힘겹게 눈을 떴다. 물 속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발목을 간질이던 덤불들이 몸 위로 점점 올라온다. 미끌거리면서 축축한 이 감촉이 점점 위로 올라온다.


온통 검은 물 속은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싫은데, 이 기분 나쁜 느낌을 물리쳐버리고 싶은데 계속 위로 위로 올라오고 있다.


기분 나쁜 무언가는 손이 있는 곳까지 올라왔다. 그는 손을 간질이기 시작하는 그것을 꽉 움켜쥐었다. 미끌이며 물 속에서 춤 추듯 움직인다. 은우는 손으로 꽉 움켜쥔 그것을 눈 앞으로 가지고 왔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말겠다고 눈을 있는 힘껏 부릅떴다.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지는 어둠 속.


‘이게 대체 뭐지?’


눈에 핏발이 설 것처럼 힘을 주고 쳐다보던 은우는 비명을 질렀다.


머릿카락. 머릿카락이다. 그의 발 끝에서 몸으로 올라오고 있는 것은 머릿카락의 덤불들이다. 그는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뿌리치려고 발버둥을 치고 팔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물결에 따라 출렁거리기만 할 뿐, 머릿카락의 덤불은 그의 몸을 감싸 먹어버리겟다는 듯 점점 더 숱이 많아지고 위로 올라온다.


으아아아악-


목구멍에서 분명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은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떴다.


옆 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파동이 되어 계속 은우의 방을 덮쳐왔다. 저 소리 때문이었나, 그는 어두운 물 속에서 물결의 파동이 밀려왔던 이유가 옆 방 코골이의 파동 때문인가 했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축축하다.


남자들의 코골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옆 방의 코골이는 정말 참기 어려웠다. 옆방은 복식 호흡으로 코골이를 하는 것 같았다. 소리가 단전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온 몸으로 소리를 뿜어 내는 것 같았다.


은우는 귀마개를 빼 보았다. 이어폰의 볼륨을 가장 작은 소리고 했다가 순식간에 최대출력으로 듣는 것처럼 급작스러운 귀를 찢는 듯한 소음에 깜짝 놀랐다.


대체 어떻게 저렇게 코를 골 수가 있지? 그는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내가 뭔가 잘못 들은건가? 그는 귀를 막고 있던 손에서 힘을 뺐다.


말.소.리


틀림없이 말소리가 들렸다. 옆방에서.


‘두 사람인가?’


하지만 옆 방 고시원 방에 두 사람이 들어갈 공간은 절.대. 나오지 않는 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성인 남자가 발을 뻗으면 끝나는 침대 공간, 그것도 침대 한쪽 윗편은 수납공간으로 만들어둬서 발은 늘 수납 공간 아래쪽에 끼워 넣는다는 느낌으로 누워야 한다.


책상, 수납공간이 모두 손만 뻗으면 닿는, 관짝보다 조금 더 큰 공간에 성인 남자 둘이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저 말소리의 정체는 대체 뭐지?’


그의 신경이 온통 옆 방에 가기 시작했다. 주기적인 거대한 코골이의 파도 속에 들려 나오는 말소리. 마치 혼잣말을 하는 듯한 말소리. 그는 그 말소리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위해 주의를 집중했다.


드르릉- 드르릉- 푸르르르, 드르릉-드르릉- 푸르르르-


반복되는 코골이 속에 간간이 들리는 말소리. 귀의 감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신경 하나하나를 옆 방의 소리에 집중했다. 조금씩 말의 파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줄게...? 같은 말이었다. 같은 말, 한 문장이 반복되고 있었다. ‘내’와 ‘줄게’ 사이에 무언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뭘 준다는거지?’


옆 방에서 소리만 듣고 추측해 본다면, 마치 잠자고 있는 옆 방 중년의 남자 곁에 누군가 서서 그를 내려다 보고 있는 느낌? 그리고 반복적인 문구로 같은 말을 내 뱉고 있는 것 같다.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어쩌면... 잠꼬대일 수도 있지.’


은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상상을 하기보다 현실적인 상상을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리고 옆 방의 소리도 조금씩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내... 혀를... 줄게...”


내.혀.를.줄.게.


은우는 또 한 번 소름이 끼쳤다. ‘내 혀를 줄게’라니. 잠꼬대도 저런 잠꼬대를 할까? 그는 잠자기는 다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고시원으로 옮길까? 밤새 은우 ‘내 혀를 줄게’와 코골이의 파도 속에서 갈등해야 했다.



*



인철의 사망 소식을 들은 건 오후 네 시 무렵이었다. 우형이 서라에게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생수를 가져다 주고 난 뒤 였으니까.


인철에게 연락을 해도 답이 없어 걱정하다가 동욱에게 물었었다. 인철과 연락이 되는지. 동욱은 부친상 이후에 바빠서 연락해 보지 못했노라고, 조만간 인철이 사는 곳 근처에 방문할 일이 있으니 자기가 연락해 보겠다고 했었다.


우형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인철이 죽었다면 누가 상주역을 하지? 그는 인철의 부친상 풍경을 기억했다. 혼자 덩그라니 빈소를 지키고 있던 인철의 모습. 그가 가고 나니 그의 죽음을 배웅해 줄 사람이 없다.


캐나다에 살고 있다는 딸에게 연락을 해도 그녀가 갑자기 들어와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아무래도 동욱과 둘이 빈소를 지키고 유품도 정리해야 할 것 같다.


가게는 어떻게 하고 가나, 그는 카페를 둘러보았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는 닫아야 할 것 같은데, 길게 문을 닫자니 또 한숨이 나온다.


뭐 장사가 잘 되던 것도 아니었으니 문 좀 닫아도 상관은 없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 동안 닫아 두어야 한다는 일이 두렵다.


빈 가게지만 누군가에게 문만 열어 놓으라고 맡길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이럴 때 손 벌릴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다.


그러던 그에게 테이블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는 서라가 눈에 띄었다. 지난 번 퀴즈 이후에 간간히 말을 걸기도 하고 제법 인사도 나눌 정도의 사이는 되었다.


‘그녀에게 한 번 부탁해 볼까?’


우형은 그냥 가게문을 닫을까, 그녀에게 부탁해 볼까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



“저 할게요.”


그가 수십번을 망설인 끝에 어렵게 말을 꺼낸 것에 비해 서라는 너무나 쉽게 허락했다.


“대신, 저 그냥 여기 있는 방 써도 되요?”


그녀가 그가 숙소로 쓰고 있는 방을 써도 되는지 물었다. 우형은 잠시 망설였다. 그래도 외간 남자가 쓰던 방을 다 큰 처자에게 쓰라고 허락하는 게 맞는 건지,

그런 우형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가 말했다.


“밤늦게 집에 왔다 갔다 하는 거 좀 위험하기도 하고 귀찮아서요. 방에 있는 거 아무것도 얌전히 잠만 잘게요. 걱정마세요.”


그래. 뭐 별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방은 방일 뿐이니까. 게다가 우형은 보통 남자들보다 깔끔한 편이지 않은가. 아가씨가 와서 쓴다고 해도 홀아비 냄새로 코를 싸맬 일은 없을 것이다.


우형은 흔쾌히 승낙했다. 서라가 웃었다. 그리고는 오픈할 때 준비해야 할 것, 문 닫을 때 주의 사항 같은 걸 정리해서 달라고 하고 다시 노트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삐에로가 이야기 하고 있었다.


서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세헤라자데의 이야기에 이어 삐에로의 고시원 이야기도 만만치 않았다.


[파티마] 그래서 그 방에 두 명이 있는지 한 명이 있는지 확인해 보셨어요?


[삐에로] 아니요. 남의 방이라서. 그냥 혼자 잠꼬대를 한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황금박쥐] 와! 삐에로님 대단하심요. 저 같으면 당장 짐 싸서 나올거 같아요.


[세헤라자데] 그러게요. 사흘째 거의 못 주무셨다면서요. 한 달을 어떻게 버텨요.


[삐에로] 그렇지 않아도 골치가 아파요. 한 달 단기방이라 저 분 때문에 제가 나가자니, 그것도 쉽지 않고, 옆방분 나갈 때까지 버티는 일도 고통스러운 일이고...


[황금박쥐] 제가 방이 여유가 있으면 삐에로님 방 하나 내 드리고 싶네요.


[삐에로] 말씀이라도 고맙습니다.


서라는 문득, 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서라는 당분간 카페에서 먹고 자고 할 텐데, 서라의 방을 내어 준다면?


그녀는 머릿속으로 상상해보았다. 번호키로 되어 있는 현관. 그리고 서라만 열고 닫을 수 있는 방문키, 방에는 별도의 욕실도 딸려 있고 집에 식구들도 거의 없다.


서연이 있기는 하지만...


하지만 서연이 들고 나는 시간은 늘 규칙적이니까. 이번 주말엔 엄마는 아빠가 있는 부산에 내려간다고 했으니 잘만 하면 서라가 카페에 있는 기간 동안은 충분히 지낼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떤 사람이지? 낯선 사람을 함부로 집에 들인다? 그는 믿을만한 사람일까? 그런 생각들이 서라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새로운 세계의 판을 짜기 위해서 필요한 건 <진리의 돌>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은우, 서라, 서연, 우형’ 네 사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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