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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774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2.05.11 14:48
조회
2,701
추천
36
글자
19쪽

진천 - 1화

DUMMY

사천, 명대륙 중심부에 우뚝 솟은 화려한 전각의 가장 상층부.


"마교 우호법 장적소가 수하 두명을 대동하고 북흥의 국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사 하나의 보고를 받은 하오문주가 의뢰라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우호법이? 잠행이더냐?"


"아닙니다. 대놓고 관도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허, 참! 아무리 절정을 이룬 고수라도 겁이 없구만... 개방과 무영문에서도 따라 붙었을 테니 비문대 2개 조를 추가로 붙이되, 무슨 일이 있어도 교전은 하지 말라 명하라."


"존명!"


무사가 방을 나서자 하오문주의 옆에 있던 중년사내가 물었다.


"근 60년간 미동도 없던 마교의 우호법이 단독 출타라... 북흥이라면 어떤 가능성이 있겠소?"


"허허. 마교놈들 생각을 겉잡을 수가 있어야지요. 북흥에 무언가가 있다기 보단 무림맹의 눈을 그쪽으로 돌리고 뭔가를 하려는 것일 수도... 이거, 감시 범위를 크게 늘려야겠소이다."



***


천마신교 서열 6위, 극마의 고수이자 우호법인 장적소는 지금 연생초를 찾기 위해 북흥 국경의 산자락을 지나고 있었다.


연생초는 겨우 5년 정도 수명을 연장시키는 하급 영초였기에 그만한 고수가 움직일 일은 아니었지만, 거의 일평생 마교 밖으로 나올 일이 없는 호법원의 업무 특성상 근 30년 만의 휴가를 겸해 나온 참이었다.


"크크, 무림맹 떨거지들이 많이도 달라 붙었구만. 유랑 나온 늙은이한테 관심도 많지."


"귀찮으시면 저희가 쳐내고 오겠습니다."


뒤를 따르던 청의, 녹의의 사내가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기세를 표출하자 장적소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됐다. 저놈들은 본좌가 뭐라도 할 줄 알고 먼길을 쫓아 다니는데, 돌고 돌아 개고생이나 시키면 그만이다. 흐흐!"


비릿하게 웃은 장적소는 이십리 쯤 밖에 보이는 작은 촌마을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좀 더 느긋하게 가자. 저기서 하루 묵자꾸나.”


"존명."


그렇게 마을로 들어선 일행이 객잔을 찾아 두리번 거리던 어느 순간.


“헙!!!!!”


골목 어귀에 웅크린 아이를 본 장적소의 눈이 화등잔만 해지더니, 삽시간에 심장이 폭발하듯 요동을 쳤다.


‘미친!! 처, 처, 처, 천무지체!!’


그가 본건 6세 남짓의, 내공은 커녕 단련도 전혀 안된 비쩍 마른 아이였지만 장적소는 그 기괴하리만치 강렬한 기감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꿈인가? 이거 꿈이야? 아니야!! 천운! 이런 천운이! 어찌 이런 곳에서!!’


장적소의 손발이 덜덜 떨리고 온몸에서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천마의 신체를 태득(胎得)한 자! 저 아이를 본교에서 키우면 신마(神魔)가 꿈이 아니다!’


내공까지 끌어올려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른 장적소가 아이를 향해 물었다.


“아이야. 여기 앉아서 무엇하느냐?”


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고개를 들자, 그 눈빛을 본 장적소가 뒤쪽의 수하를 향해 말했다.


“음식과 물.”


"네.”


녹의 사내가 짧은 포권과 동시에 몸을 날렸고 장적소는 아이에게 미소를 지었다.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구나. 곧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주마.”


아이는 순간 눈을 반짝였지만 다시 고개를 푹 숙여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허허."


혹여나 아이가 겁을 먹을까 걱정이 든 장적소는 부러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봤다.


변방 국경의 빈촌.


명제국의 땅이라고 하기도 애매해서 무관은 커녕 관아조차 없는 곳.


‘만약 이 아이가 산서의 외곽에만 있었으도... 벌써 어느 문파든 쥐도 새도 모르게 데려 갔겠지.’


그 때 녹의 사내가 가벼운 경공으로 다가와 면포 보자기와 죽엽통을 내밀었다.


“음.”


장적소가 보자기를 아이 앞에 내려놓으니, 아이는 번개 같은 손짓으로 만두를 잡아챘다.


덥썩!!


“허허, 천천히 먹거라. 물도 좀 마시고. 자.”


장적소가 물을 건내려는데 아이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음? 왜 그러느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도 며칠 동안 굶으셨어요... 이거 가져다 드리고 싶은데...”


“아비와 어미? 으음.”


‘부모는 죽여야 하는가? 허나 아이의 심기가 상하면...’


아이를 마교로 데려가는 것을 부모가 허락할 리가 없다.


마교는 옛날부터 고아들을 납치해서 키웠기에 장적소는 잠시동안 부모를 없애고 아이만 데려갈까 생각을 했지만, 혹 아이의 정신이 무너질까 걱정이 됐다.


잠시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광영, 음식을 넉넉히 사와라.”


“존명.”


녹의 사내가 다시 몸을 날렸고, 아이는 사내의 몸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만두를 입에 쑤셔 넣었다.


“허허, 물도 좀 마시라니까. 천천히 먹거라.”


***



잠시 후, 장적소는 아이를 따라 산비탈 어귀의 허름한 초가에 도착했다.


말이 초가지 사실상 폐가에 가까운 집 안에선 여인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 어머니! 음식을 가져왔어요!! 일어나 보세요!!”


아이가 팔을 흔들어댔지만 어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으음... 으으..."


연신 괴로운 신음성만 흘리며 상당한 땀을 흘리는 모습을 본 장적소가 두툼한 손으로 아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노부가 한번 살펴봐도 되겠느냐?”


"..."


아이가 어미의 팔을 꼭 잡고 놓지 않자, 장적소가 한층 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허허, 어미가 그리도 좋으냐?”


“네, 어머니를 제일 사랑해요. 어머니만 있으면 하루 종일 행복해요...”


서럽게 울먹이는 아이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던 장적소는 순식간에 아이의 혈도를 눌러 눕힌 다음 여인의 혈맥을 짚었다.


여인의 몸은 진기가 모두 빠져 나간데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 모든 장기가 상하고 기혈까지 뒤틀려 며칠을 넘기지 못할 상태.


“보체단 두개를 물에 풀어 오너라.”


"존명."


청의사내가 방을 나서자 장적소는 여인의 몸 곳곳을 짚으며 내기를 불어 넣었다가, 곧 수하가 나무그릇에 담아 온 약물을 입으로 흘려 넣었다.


여인의 신음이 멈추고 호흡이 편해지는 것을 확인한 장적소가 아이를 바라보며 뒤쪽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마영, 광영. 이 아이는 천무지체다."


“...!!”


그에 두 사내의 눈도 아까의 장적소와 마찬가지로 화등잔만해지며 시선이 아이에게 고정됐다.


목석 같던 상관이 갑자기 변방의 빈민을 돌봐주기에 그저 잠깐의 기행이겠거니 했는데...


“마령 주혼술(瑪靈 駐魂術)에 대해 잘 알더냐?”


“하문 하십시오.”


마령 주혼술은 마교가 납치해 온 아이들을 수월하게 훈련 시키기 위해 영혼을 묶고 기억을 지우는 마교내 혼술(魂術)연구기관인 자령단(紫令團)의 제령술.


“혹 저 아이가 부모를 잃고 정신이 무너지면 주혼술이 필요할 터, 그것이 천무지체의 능력과 충돌하겠느냐?”


“본교의 마천공은 역천의 심법이기에 천무지체와의 상성이 확실치 않습니다. 그런만큼 도가의 정순한 심법을 사사하는 것이 좋을 듯 하고, 그렇게 되면 주혼술은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으음."


그의 말대로 기혈을 역으로 운기하는 마천공과 천무지체와의 상성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는 만큼 아이에게 마공을 전수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었다.


하여 도가의 정순한 내공을 쌓으면 주혼술 같은 건 걸어봐야 금세 풀려버릴 것이기에, 괜히 부모를 죽여 아이에게 절망감이나 복수심을 심어 줄 필요는 없었다.


“그래 맞다. 일단 부모는 언제술(言提術)로 거둬야겠군.”


언제술(言提術)이란 자신의 말에 담은 공력을 상대의 기맥과 동화시키는 술법으로, 설득을 하거나 자백 또는 지식을 전달하는데 효율이 좋아 마교나 사파뿐 아니라 정파에서도 왕왕 사용된다.


"음?"


"왜 그러십니까?"


갑자기 장적소가 고개를 휙 돌리며 눈을 게슴츠레 좁혔다.


"뭔가가 달려 오는데 산짐승은 아니고... 무인은 아니군. 이놈의 아비인가? 헛,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장적소의 말이 끝난지 반각쯤 지나자 수하들도 뭔가를 느꼈는지 방향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반각이 더 지난 후.


"여보!!! 진호야!!!"


산비탈의 위쪽에서 나무짐을 내팽겨친 사내 하나가 몸을 휘적이며 달려들었다.


“다, 다, 당신들 뭐야!!"


“멈춰라!”


내력이 실린 장적소의 외침에 멈칫한 사내는 한껏 긴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누, 누구냐니까!!”


일반 사람은 이 정도의 내공이 섞인 외침을 들으면 몸에 힘이 풀리고 충격을 받기 마련인데, 장적소는 저 사내가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것을 눈치 채곤 적잖이 놀랐다.


"허어, 과연... 견부 아래 호자는 없는 법이구나. 상당한 강골이다."


"악야!!"


장적소를 뒤로 하고 집안으로 뛰어들어가던 아비의 몸이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덜커덩!


"억!!"


그의 몸을 공력으로 짓누른 장적소가 입을 열었다.


“들어라. 본좌는 천마신교의 우호법 장적소라고 한다. 지나다 본 아이가 너무 굶은 듯 해 음식을 주었고, 어미가 아프다기에 잠깐 의술을 베풀었다.“


“뭐, 뭐요? 천마신교?"


"일단 가족을 봐라."


"...여, 여보!!”


우당탕탕!!!


"진호야!!"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네발로 달려 들어간 아비가 가족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자 장적소가 말했다.


“아이는 기력이 너무 쇠하여 음식을 먹이고 잠시 혈을 짚어 재워 두었다.”


"아, 악야... 진호야..."


오늘 아침에 비하면 지나칠 정도로 혈색이 좋아지고 숨이 안정 된 아내를 본 아비는 붉어진 눈시울로 장적소를 바라봤다.


“이... 이게 진짜 생시 입니까? 이게 대체... 어떻게 이렇게 하루 아침에..."


“크큭! 저 여인에겐 영단과 함께 본좌의 진기를 내렸으니 이제 밥만 잘 먹어도 무병장수 할 것이다.”


"예? 여, 여, 영단이요?"


영단이란 말에 사내가 또 한번 놀라자 장적소가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당연히 대가를 받을 것이야. 내 본론만 말하마. 네 아들이 무인으로써 굉장한 몸을 타고 났으니 아들을 본좌에게 맡겨라. 허면 훗날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고수가 될 것이다.”


“!!!"


"이런 변방에서 천하게 살 아이가 아니야."


"제 아들이 대체 무슨... 아니, 안됩니다. 저와 아내는 아이가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저희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미 예상한 대답에 장적소는 짐짓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본좌도 저 아이의 심신을 최대한 평온하게 하고싶다. 허니 네놈들도 데려가 본교의 외성에 적당한 집을 주고 생활비도 매달 내려 주마.”


원래라면 이런 수상한 제안은 단칼에 거절하는 것이 당연할 터였기에 장적소는 슬슬 언제술을 사용할 준비를 시작했다.


“네? 저, 정말 저희를 거둬주실겁니까?"


"뭐라?"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오히려 장적소가 당황을 했다.


“천마신교란 말을 못들었더냐? 순순히 따라오겠다고?”


“그게 뭔데요?"


"???"


"아, 아니. 뭐든간에 어르신은 죽어가던 제 안사람을 살려주셨고... 집이랑 돈도 주신다면서요.”


“본좌가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죽이지만 않으시면 뭐라도 좋습니다."


"죽일수도 있는데?"


"그럴거면 지금 죽이시겠죠."


"..."


"그리고 여기에 계속 있어도 어차피... 죽을날만 기다리던 처집니다."


"..."


아비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던 장적소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허어, 이제 보니 모자른 놈이 아니더냐. 네놈 정말로 천마신교를 모르더냐?"


"어, 그게... 나쁜뎁니까? 그래도 제 아내를 살려주셨으니 입에 풀칠만 하게 해주시면 어디라도 따라 가겠습니다."


"끌! 아무리 변방이라지만 이거 황당하구만. 그래, 허면 일단 가자."


단순하고 낙천적이다.


'기골은 장대하나 신중함이 없고 단순하다. 많이 모자란 놈이군.'


장적소는 속으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지만 겉으론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이의 이름이 무엇이냐? 네놈도.”


“네, 저는 백씨 진천(鎭天)이라 하옵고, 아이는 진호(鎭虎)라 하옵니다.”


“뭐라? 아비는 하늘을 진압하고 아들은 범을 진압한다? 광오하구나. 이는 필시 무가의 작명일 터.”


“예? 아닙니다. 둘 다 제 선친이 지어주셨는데 선친도 그저 저와 같은 나무꾼이셨습니다.”


“...아니야. 이건 절대 그냥 나온 이름이 아니다. 흐흐! 그래, 어쨋든 네 선친도 좋아하실게다. 광영, 마영. 무림맹 벌레 놈들이 더 달라 붙기 전에 빠르게 복귀한다.”


"존명."



***



십만대산, 천마신교의 내성에 도착한 장적소는 곧장 대전으로 달려가 교주 앞에 부복했다.


“천마신교의 지존이시여!”


천마신교의 교주 구학영은 한가롭게 태의에 반쯤 기대 누워있던 몸을 번쩍 일으키며 화색을 띄웠다.


“오, 우호법! 그래, 연생초를 가져 왔는가?”


장적소는 잠시 헛기침을 하며 좌우를 살피곤 나지막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크흠! 그... 교주님. 속하가 천무지체의 아이를 만나 즉시 본교로 데려왔나이다.”


“...!!!”


잠시 교주의 숨이 멈추는 듯 하더니, 금세 참았던 숨과 함께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서!!”


파악!!


끼이익-


교주의 외침과 함게 대전의 문이 열리고 깡마른 거지꼴의 아이가 대전에 들었다.


그 아이는 대전에 가득한 지독한 마기에도 별 영향을 안받는 듯 주춤거리며 장적소를 향해 다가섰다.


“오오! 가히 범의 기세다! 단전도 없는데 기맥이 모두 열려있고 미미하나마 자연진기까지 순환하고 있질 않는가!”


교주는 원래도 마교의 지존이라기엔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언행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마치 저잣거리의 상인이라도 된 냥 아이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방정스런 찬사를 이어갔다.


“골격과 근골의 균형이 절묘한 것이 외공만 익혀도 절정을 넘나들 것이요, 어떤 무기를 잡아도 대성할 기세로다!”


마치 누군가에게 물건을 파는 듯 아이를 칭찬하던 교주가 호쾌하게 외쳤다.


“우호법, 길게 말 안하네. 최선을 다하게!”


“존명!”


“흐흐!! 아이야, 넌 이름이 무엇이냐?”


급작스런 교주의 질문을 받은 아이는 잠시 눈을 굴리다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저... 저는 백... 진호라고 하옵니다.”


“허! 이름에 진(鎭-진압할 진)자를 넣었다고? 범을 진압하는 백가라!! 이름도 호쾌하구나! 하하하!!”


장적소가 조심스럽게 교주에게 말을 꺼냈다.


“일단 상승의 경지를 위해 태천심법으로 단전을 잡고 소림의 기초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오, 그래! 체(體)와 심(心)의 중심은 태극의 묘리로 잡고 권, 검, 도, 창 중 적기를 찾으려면 소림만 한 것이 없으니! 좋다 좋아! 하하하! 훗날 천마(화경)에 달하면 본좌의 독학무공과 본교의 상승마공을 직접 전수 해주마!”


장적소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물었다.


“도가의 심법이 기본이 되어도 상승마공을 배울 수 있습니까?”


“암, 상승의 경지란 미천한 것들이 구별한 정사의 개념 따위는 아득히 초월하는 것이다.”


“지존께 큰 가르침을 받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포권을 한 장적소가 말을 이었다.


“참, 아이의 심신 보존을 위해 부모를 함께 데려와 외성에 기거 시켰습니다.”


“음? 부모를?”


교주는 잠시 생각에 빠지는 듯 하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응당 그래야지. 외성에서 가장 좋은 저택에 머물게 하고 호위와 시비, 숙수 등 인력과 금전을 아끼지 말고 보살펴라.”


교주는 흡족한 표정으로 진호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대전 밖으로 신형을 날리며 한껏 높아진 목소리로 외쳤다.


“하루 빨리 너의 성취를 보고 싶구나! 하하하!”


***


진호의 아비 백진천과 어미 악야는 요 며칠 꿈을 꾸듯 멍한 채로 살고 있었다.


집과 돈을 준다기에 그저 허름한 초가에 동네 점소이만큼의 월봉 정도나 될까 했는데...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십수 명의 시비들이 자신들의 옷과 잠자리를 봐주고, 청소는 물론 숙수들이 매끼니를 수라상처럼 내오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여기저기 배치되어 있는 호위무사들 까지...


그날도 차려진 산해진미 중 오리다리를 우물거리던 진천이 악야에게 말했다.


“여보, 사실은 우리가 죽었고 여기는 천국 아닐까? 그날 당신이 죽고, 나도 당신 따라가서...”


“이이는! 진호도 있는데 말 함부로 하지 말아요! 장적소 어르신께서 내린 천은에 부정 타겠어요!!”


“아, 아니. 우리 같은 거지들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나 이거지. 당신도 너무 태연하고... 뭐가 이상하잖아.”


“훗! 여보, 진호 두 살 때 옆동네 노의원이 했던 말 기억나죠?”


진천이 만두를 반으로 쪼개며 대답했다.


“무슨 말? 아아, 무인으로 키우면 대성할 거란 말?”


“네, 어딜 가도 천재로 대접받을 거라고 했잖아요. 우리가 변방에서 살기도 했고 애가 너무 어려서 아직 몰랐을 뿐이지. 분명 진호가 엄청난 재능이 있는게 확실해요.”


“쩝. 근데 그때 우리 아버지가 저런 약골을 보고 뭔 소리냐면서 쫓아냈잖아. 돌팔이라면서.”


“아버님이 의원도 아니고 어떻게 알아요? 의원말을 들어야죠. 아니면 괜히 무인이 됐다가 죽거나 다칠까봐 아예 처음부터 막으신 걸 수도 있구요.”


“흠, 하긴 아버지가 워낙 괴팍했으니... 거렁뱅이 집안에서 맨날 하고싶은 대로 살라고 하질 않나... 다 늙어서 갑자기 가출을 하질 않나... 쯧, 지금쯤이면 돌아가셨을 텐데 마지막은 어떠셨을지 참.”


“아무튼! 우리 진호가 복덩어리라 그래요. 어미도 살려주고, 우리 가족 먹여 살리잖아요.”


악야의 말에 진호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히히. 어머니가 안 아프니까 너무 좋아요.”


“우리 아가가 좋으니까 엄마도 너무 좋아. 많이 먹으렴 우리 아가~”


진호의 볼을 집으며 웃는 악야의 얼굴은 며칠 전까지 사경을 헤매던 환자라곤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오히려 평생을 귀하게 자란 귀부인처럼 생기가 넘쳤다.


사실 진천과 악야 두 사람이 이곳이 '마교' 라는 것에 대한 실감을 거의 못하고 있었다.


마교의 외성은 그저 조금 깊은 산중에 있을 뿐, 하북의 3할에 가까운 면적에 수많은 마도 문파와 사파, 그리고 마교 고수들의 가족들이 사는 민가도 워낙 많았으니 누가 굳이 말하지 않으면 평범한 성내의 도시와 다름이 없었다.


또 외성은 자유로운 바깥의 출입은 물론 장사치들도 곧잘 오가던 터라 진천 내외는 생각보다 편한 마음으로 꿈만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었다.


애초에 마교가 뭔지 잘 몰랐던 것도 그들이 편안한 이유였다.


그렇게 진호의 가족이 놀라고,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동안 3개월의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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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 진천 - 244화 (1부 完) 23.10.22 62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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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진천 - 237화 23.10.15 5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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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진천 - 234화 23.10.12 46 0 11쪽
234 진천 - 233화 23.10.11 54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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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진천 - 229화 23.10.07 50 0 13쪽
229 진천 - 228화 23.10.06 66 1 13쪽
228 진천 - 227화 23.10.05 55 0 13쪽
227 진천 - 226화 23.10.04 62 0 12쪽
226 진천 - 225화 23.10.03 65 0 11쪽
225 진천 - 224화 23.10.02 64 0 9쪽
224 진천 - 223화 23.10.01 74 0 12쪽
223 진천 - 222화 23.09.30 69 0 11쪽
222 진천 - 221화 23.09.29 65 0 9쪽
221 진천 - 220화 23.09.28 64 0 11쪽
220 진천 - 219화 23.09.27 73 0 10쪽
219 진천 - 218화 23.09.26 77 0 10쪽
218 진천 - 217화 +3 23.09.25 84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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