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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771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3.10.06 21:47
조회
65
추천
1
글자
13쪽

진천 - 228화

DUMMY

진천의 명을 받은 소성비가 우측 후방을 바라보자, 그 시선 끝에 있던 열댓의 마인들 중 둘이 절도있는 동작으로 고개를 숙인 후 곧장 몸을 날려 사라졌다.


"우학."


"신 우학."


우학과 다른 대장들이 동시에 납작 엎드렸다.


"사내놈들이 뭐 그런일로 죽을 상을 하고있나. 일어들나라."


"..."


진천의 말과 표정은 제법 인자했으나, 그것이 탁한 눈과 기괴한 기감과 뒤섞이다보니 더없이 공포스러웠다.


"지존이시여! 감히 지존의 명 없이 회군한 죄 백번 죽어도 갚지 못할 것 입니다. 용서치 마시옵소서!!"


전신을 죄여오는 진천의 기감에 우학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핏대를 세우자 다른 대장들을 비롯해 근처의 호법대원들까지 숨을 죽이고 진천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다시 한번 들려온 진천의 부드러운 목소리.


"괜찮대도. 부교주만한 고수가 태모를 인질로 잡고 협박하는데 달리 재간이 있나. 자, 몇달 밖에서 고생들 했으니 각자 대원들과 휴식을 취해라. 곧 다시 출정할 것이다."


"교주님!! 크흑!!"


이어진 진천의 자애(?)로움이 감동한 듯한 우학이 고개를 푹 떨구며 침통한 탄식을 내뱉었고, 다른 대장들도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얼굴을 일그렸다.


그들은 모두 마교서열 50위내의 고수들이자 각각 무력대를 책임지는 대장들.


만약 진천이 진짜 분기가 탱천하여 그 자리 모두의 목을 쳤더라도 할말은 없는 죄를 저지르긴 했으나 그만한 자들이 한날 한시에 주검이 되어버리면 가뜩이나 위축된 마교의 전력이 절반은 깎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긴 했다.


물론 이들이 그런 계산을 하고 진천의 앞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지금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천마부터 극마에 이르는 고수들이 되어 교주의 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강제로 철수한 것만도 분통이 터졌다.


심지어 그 대상이 적도 아니고 자신들의 부교주였으니 얼마나 혼란스럽겠는가.


"우학, 너는 본좌를 따라라. 부교주를 만난 이야기를 좀 듣자."


"...존명."



***



"편히 말해라. 부교주를 만난 곳이 어디지?"


"계수산의 최남단 끝자락입니다. 중앙에서 출발한 저희 2대가 외곽을 모두 훑고 10부 능선으로 달리며 하던 수색의 막바지였습니다."


"계수산... 흠. 확실히 거기에 뭐가 있긴 한 모양인데."


태의에 앉은 진천이 몸을 기울여 한쪽 팔걸이에 받친 주먹을 턱으로 괴며 눈을 게슴츠레 좁혔다.


"놈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나? 따로 연락법은 남겼고?"


"북쪽으로 몸을 날린것까지만 보았습니다. 그 외에 따로 남긴 말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속하들이 너무 부족하여..."


"아아."


또 다시 죽을상으로 변하려는 우학의 낌새에 진천이 왼쪽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그의 말을 끊었다.


"너희가 잘못한 것이 아니니 지난 일에 사로잡히지 마라. 다음에 잘 하면 될 것 아닌가."


"...교주님."


"음."


진천의 이해심에 진심으로 감동한 우학은 오래전 마교에 온지 얼마 안되었던 진천의 모습을 떠오름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공포심을 느꼈다.


그 때.


후우우욱-


가벼운 경공으로 대전의 입구로 든 사마의가 몸을 가누고 조심스런 걸음으로 대전 안으로 들자 바로 뒤로 가후가 따라 붙었다.


"천마신교의 지존을 뵈옵니다."


"천마신교의... 지... 끄륵."


픽.


"...??"


사마의를 따라 진천의 앞으로 부복하던 가후가 눈깔이 뒤집히며 그대로 얼굴을 바닥에 떨구며 꼬꾸라져버렸다.


그걸 보고 잠시간 말을 잃었던 진천은 훤히 드러난 가후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헛... 우학, 봐줘라."


"존명."


스윽-


진천의 명에 살며시 몸을 일으킨 우학이 가후의 어깨를 짚어 몸을 일으키니 새파랗게 변한 얼굴이 보였고, 그의 입엔 진득한 게거품까지 올라와 있었다.


툭.


우웅-


우학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뭉쳐졌다가 가후의 가슴께로 빨려들어가자 금세 트인 가후의 호흡.


"파하!! 헉! 허억..."


"흐! 총군사. 저놈이 죽을 병이라도 걸렸던가? 음?"


진천은 그제서야 사마의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있는 것을 보고는 이번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자넨 또 왜 그래? 둘이 뭐 잘못 먹었나?"


진천의 물음에 사마의는 곤란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머뭇거렸다.


그 옆에 있던 우학이 가후의 목뒤를 받쳐 올리며 대신 답했다.


"저, 교주님.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교주님의 기감이... 군사들이 견디기엔 많이 버거운 듯 합니다."


"본좌 때문이라고? 그간 멀쩡하던 놈들이 갑자기 왜... 아아."


후욱!


그제야 뭔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진천의 명치를 중심으로 짙은 바람이 한차례 부는 듯 했다.


"자, 이제 좀 괜찮으냐?"


"... 가, 감사합니다 교주님."


사마의가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자 대충 정신을 차린 가후도 곧장 부복하곤 진천의 눈치를 살폈다.


정확히는 눈치라기 보다 진천의 안색을 살핀 것인데, 그의 전신에서 흩뿌려지던 흉흉한 기감이 갈무리 된 대신 그의 눈엔 더욱 짙은 마기가 들어차 흰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 공포스런 외형에 가후의 목뒤로 서늘한 소름이 번지자 곧 진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본좌가 명상이 조금 길었구나. 곧장 염광을 칠까 했는데 부교주가 재밌는 일을 벌였더군."


"네. 설마 부교주가 그런식으로 나올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속하의 불찰입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뭘 다들 제 잘못이더냐. 본좌도 설마 그놈이 인질을 잡을 줄은 몰랐으니 됐다. 그래, 어쩌면 좋겠나?"


진천의 질문에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돌린 사마의의 곁눈질을 느낀 가후가 답했다.


"총군사에게 듣기로 부교주의 평소 성향은 그런 일을 할 자가 아니라 했습니다. 여러 정황상 역시 염광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됩니다."


"음."


"풍전 태상장로 또한 특정 시기 이후로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보아 그들 모두가 염광과 금영진과 함께하고 있는 듯 합니다."


가후의 말이 끝나자 진천이 사마의에게 물었다.


"사마의, 네 생각도 같나?"


"네. 부교주는 절대 인질을, 그것도 무인이 아닌 여인과 아이를 인질로 잡을 성정이 못되니 분명 이를 지시한 이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썬 중원에서 교주님께 적대할만한 자는 염광 밖에 없겠습니다. 이유는 구학영 어... 전대 교주에 대한 복수심이겠지요."


"...쯧."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찬 진천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교주는?"


"백방으로 수소문 하고 있으나 아직 위치를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쪽으로 집중해라. 제 어미와 가족이 인질이 되었는데 알고는 있어야지. 연통이 닿는 대로 교로 들라 이르고."


"존명."


"허면 본좌는 마저 할 일이 있어서. 늦어도 이달 안에는 돌아오마."


"네??"


몇달간의 명상 끝에 나와 자신에게 반하는 모든 고수들이 연합을 형성했을 수도 있는데다가 악야까지, 그것도 부교주에게 인질이 되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었다.


사마의가 화들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상체를 반쯤 올려 반문했고, 그 옆에 있던 가후와 우학도 놀란건 매한가지였다.


"본좌가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이 있다. 후에 설명해주마. 우학, 너는 가서 아까 말한대로 대원들을 충분히 휴식케하라. 10일 이후엔 언제든 출정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존명."


"음."


후우욱!!


순식간에 멀어지는 진천의 신형을 보는 가후와 사마의의 표정을 썩 밝지가 못했다.


진천에게 또 다른 변화가 생긴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생소하면서도 도저히 예상이 안되는- 그만의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 듯 한 태도가 그들을 영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교주님께서 어떤 변화를 겪으셨는지 알아야 한다.'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한 듯한 두 군사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동시에 대전의 입구를 향해 튀어나갔다.



***


하지만 아쉽게도 진천이 겪은 또 한번의 변화는 겨우 이급고수도 못되는 사마의와 가후가 유추하기란 불가능한, 아주 깊고도 다차원 적인 무(武)에 대한 영역이었다.


50일 전.


범요와 한차례 날을 세운 진천은 범요가 떠난 후 연공실로 들어 명상을 시작했는데, 마땅히 깊게 되짚을 문제가 없었음에도 그는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진천의 세상이 깊은 암흑속으로 가라 앉았고, 모든 감각이 차단된 그 공허 속에서 한없는 고요에 잠기던 진천의 귀에 별안간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는가.]


'...'


[인사도 없나? 섭섭하군.]


'네놈이 날 부른건가?'


[흐흐. 나는 없다. 네가 말하는 나는 너지.]


'...말 장난은 집어치워. 나를 부른 이유가 뭐냐.'


[크크크, 아니. 아니라니까. 내가 너를 부른 것이 아니라 네놈이 스스로 나에게 찾아 온 것이다. 허니 그 이유도 네놈이 알겠지.]


'...'


[아직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군. 좋아. 내 답을 먼저 주마.]


'답?'


[흐흐, 자, 네 기억 중의 일부다.]


우우우웅-


그 순간, 단 한 조각의 빛도 없는 완벽한 어둠속으로 번진 옅은 안개가 점차 형상을 갖추며 진천의 시각과 청각이 활성화 되기 시작했다.


우웅- 우웅- 우우웅-


진천의 앞에 펼쳐진 것은 호문에게 받은 길고도 길었던 기억의 편린.


탁한 주황빛 대지 위에 짙은 흑연 두덩어리가 나란히 서있었는데, 그것들은 점차 사람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각자 하나의 몸뚱이가 되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우우웅-


목 위로는 머리 대신 머리만한 크기의 흑연 소용돌이가 휘몰아쳤고, 둘은 음성대신 기묘한 진동을 울리며 서로의 의사를 교환했다.


'...이것은 태고의 인간들이 나눈 대화의 일부. 무슨 의미지?'


우우웅-우웅-


그것은 언어도, 몸짓도 아니었지만 진천은 아주 자연스럽고 명확하게 그 둘의 '대화'를 해석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의 자손들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날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제 생을 연장하기 위해 만드는 대리(代理)적 존재. 부모는 자손으로 인해 영원토록 존재한다.]


[맞다. 허니 우리는 언젠가 자손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언제든, 자손들이 스스로 그것을 원한다면.]


[선대는 자손을 낳음으로써 자신의 생을 이어가고, 자손은 선대가 없어짐에 비로소 하나의 주체가 된다. 언젠가 우리가 오래된 고인(古人)이 되는 날 우리는 준비된 후손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아아 맞아. 이런 얘기도 있었지. 그래서 동족 수장이 사도들의 반란에 목을 내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이게 뭐 어쨌다는거야?'


진천의 짜증섞인 의문에 다시 들려온 어둠속의 목소리.


[둔한건 미덕이 아니다. 네가 아무리 범이라도 이빨과 발톱이 빠졌으면 꾀를 부려야 살아 남는다. 언제까지 왕처럼 살텐가?]


'...'


[자존심 부리지 말라. 네놈이 날 받아들인 순간 그런건 부차적인 걸개일 뿐. 네 목표에 꼭 필요한 일에만 집중하고 솔직해져. 동족 수장을 제거 하는건 사도들 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죽여라. 염광을 죽여야 육신과 정신이 산다.]


잠시 답이 없던 진천은 깊은 한숨과 함께 마기로 탁해진 두눈에 섬뜩한 노기를 띄웠다.


'어떻게? 네놈 말대로 난 이빨이 다 빠진 호랑이야. 놈을 잡을 방법은 없다.'


[없기는. 네놈이 염광보다 먼저 생사경에 들면 될 일 아닌가. 그 방법은 네놈도 이미 알고 있을 터.]


'흐! 개소리. 내가 그걸 알았다면 진작...'


[겁쟁이.]


'...'


[알고 있으면서도 겁이 나 모른척 하는군. 네가 아직 날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증거겠지. 버티지 마라. 나는 너. 내게 흠뻑 젖는것만이 네 목표를 가장 빨리 이루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기괴한 목소리는 점점 더 진천의 목을 죄여오듯, 그리고 어루만지듯 스물스물 전신을 감싸안았다.


'생사경에 드는 방법이 뭐지?'


[아둔한 놈! 일평생 쌓아온 무(武)를 버리고자 결심했을 때야 비로소 현경으로의 문이 열린다. 허면 생사경은 무엇을 버려야겠나.]


순간, 진천은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입을 움직여 마치 신음과도 같은 한단어를 흘려보냈다.


'...생(生).'


[크흐흐... 그래, 그래. 생을 버려야지. 자. 단전을 부쉈듯 너의 심장을 뜯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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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진천 - 245화 (에필로그) 23.10.23 61 2 10쪽
245 진천 - 244화 (1부 完) 23.10.22 62 0 21쪽
244 진천 - 243화 23.10.21 56 0 14쪽
243 진천 - 242화 23.10.20 61 0 13쪽
242 진천 - 241화 23.10.19 53 0 15쪽
241 진천 - 240화 23.10.18 47 0 12쪽
240 진천 - 239화 23.10.17 50 0 11쪽
239 진천 - 238화 23.10.16 54 0 9쪽
238 진천 - 237화 23.10.15 54 0 9쪽
237 진천 - 236화 23.10.14 54 0 13쪽
236 진천 - 235화 23.10.13 63 0 12쪽
235 진천 - 234화 23.10.12 46 0 11쪽
234 진천 - 233화 23.10.11 54 0 15쪽
233 진천 - 232화 23.10.10 56 0 12쪽
232 진천 - 231화 23.10.09 64 0 12쪽
231 진천 - 230화 23.10.08 54 1 10쪽
230 진천 - 229화 23.10.07 50 0 13쪽
» 진천 - 228화 23.10.06 66 1 13쪽
228 진천 - 227화 23.10.05 55 0 13쪽
227 진천 - 226화 23.10.04 62 0 12쪽
226 진천 - 225화 23.10.03 65 0 11쪽
225 진천 - 224화 23.10.02 64 0 9쪽
224 진천 - 223화 23.10.01 74 0 12쪽
223 진천 - 222화 23.09.30 69 0 11쪽
222 진천 - 221화 23.09.29 65 0 9쪽
221 진천 - 220화 23.09.28 64 0 11쪽
220 진천 - 219화 23.09.27 73 0 10쪽
219 진천 - 218화 23.09.26 77 0 10쪽
218 진천 - 217화 +3 23.09.25 84 1 11쪽
217 진천 - 216화 23.09.24 8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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