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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773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3.10.13 23:10
조회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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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진천 - 235화

DUMMY

안타깝게도 구지근의 마지막 외침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다.


죽음을 맞은 화경의 고수가 내지른 울림은 믿기 어려울 만큼 웅장했지만 수백만 그루에 달하는 거목들에 가로막혀 반경 30리를 넘지 못했다.


물론 그 안에 심마니나 나무꾼들은 있었겠지만 지근거리에 있는 자들은 그 내력을 견디지 못하고 귀가 터지거나 정신을 잃었을 것이고, 그걸 견딜만큼의 거리였다면 정확히 내용을 분간 못할 울림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로 인해 염광이 일을 서두르게 됐고, 때마침 마영을 찾아간 광영의 서신으로 인해 진천도 싸움을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위현까지 시기 적절하게 찾아와 마음에 쏙 드는 계획을 내놓자 전의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진천은 근 며칠간 손이 근질거려 참을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은 꼭 왔으면 좋겠군."


눈에 다시 시커먼 탁기가꽉찬 진천의 말에 위현의 뒤쪽에 섰던 가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멀지 않을 것 입니다."


"크흐, 그래야지. 그러고 보니 가후 네놈은 한번도 전장에 나간적이 없구나. 이번에 한번 나서 볼테냐?"


"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다만 병력간의 전쟁이 아닌 고수들의 전투는 원래가 눈 깜짝할 새에 끝나는지라... 군사가 할 일이 딱히 없지 않습니까. 다음 기회에 참전하겠습니다."


반보 앞에서 진천의 마기를 흩어주는 위현덕에 멀쩡히 서있던 가후가 멋쩍은 웃음을 짓자 지어보이자 진천도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꽉 움켜쥐었다.


"흐흐흐! 겁쟁이 같으니라고. 그래, 허면 본좌가 염광의 목을 잘라오는 것을 기다려라. 내성의 본문 가장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을거야."


사아아아-


진천의 눈에 한층 더 짙은 살기가 번들거리며 가후가 메스꺼움을 느끼기 시작한 그때.


"교주님."


"음?"


"천마 1대장 장적소가 뵙기를 청하옵니다."


"... 들여라."


"존명!"


"크흠."


염광측이라 생각하고 엉덩이가 들썩였던 진천이 다소 실망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자니, 장적소가 금세 경쾌한 경공으로 대전을 가로질러 태의 밑에 멈춰섰다.


"신 천마 1대장 장적소, 천마신교의 지존을 뵈옵니다."


"새삼스레 뭔 예를 차리십니까. 편히 하십시오."


"신 장적소, 오늘은 천마대의 대장으로 찾아뵌 것입니다. 지존께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합니다."


"...흠."


말이야 정중했으나 장적소에게서 교주에 대한 존경이나 어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천의 표정과 말투도 스승에 대한 예우는 없는 없었다.


"천마대 전대 출정 준비를 마쳤습니다. 염귀 총대장이 아직 명상을 마치지 못해 제가 찾아뵈었나이다."


"음."


장적소는 그간 진천에게 그 어떤 보고도 올리지 않았다.


그는 마영의 서신은 물론 십만대산에서 호북까지 내달린 광영이 보낸 서신을 받은 그 긴 시간동안 진천을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 사마의. 시간이 촉박하니 어서 가서 천마대에게 최종계획을 설명해라. 숙지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겠나."


"존명."


사마의가 고개를 숙이자 장적소가 조심스레 진천을 바라봤다.


"저, 교주님."


"음."


"속하 진위 여부를 아직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으나 소교주도 염광의 일을 도우는 듯 합니다."


"..."


"!!!"


진천의 탁한 기감이 더욱 사나워지며 그의 노기가 눈은 물론 얼굴 전체로 번져나갔다.


그에 사마의와 가후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지자 위현이 팔을 작게 휘저어 진천의 기감을 한층 더 강한 힘으로 분산시켰다.


"죄송합니다. 시일이 조금 지난 첩보이나 만약 사실이 아닐 경우 큰 혼란이 생길터라... 허나 이제 출정이 임박한 시점이라 꼭 말씀을 드려야 할 듯 합니다."


장적소의 말이 끝나자 힘이 잔뜩 들어간 눈으로 대전 어딘가의 허공을 노려보던 진천이 입술을 이죽였다.


"출처는?"


"... 마영입니다. 마영과 황재성 또한 염광의 진영에 합류했으며, 얼마전 제게 천마대를 이끌고 합류할 것을 제안하는 서신을 보내 왔습니다."


"..."


"마, 마영 대장이...!!"


이번에도 진천은 별 말이 없었으나, 사마의는 그렇지 못했는지 경악성을 내지르며 몸을 휘적였다.


"대, 대장님. 그 무슨... 마영 대장이 배신이라니요.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아닙니까??"


사마의는 지금 진천의 아들인 진호보다 마영의 배신에 더욱 놀랐다.


원래의 성정도 올곧았거니와 진천이 처음 마교에 들었을 때 부터 그의 사범으로 시작해 진천이 교주위에 오른 이후에도 온갖 잡다한 역사들을 함께 치룬 그였기에, 호법원의 마인들조차 귀감으로 삼으란 말이 내려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내가 마영의 필체를 못알아볼리가 있겠나. 사실일세."


"맙소사... 이, 이건... 교주님..."


혹여나 진천이 대노하여 당장 어디론가 튀어나가지 않을까 공포를 느낀 사마의가 덜덜 떨며 진천을 바라봤다.


"... 됐다. 내 아들놈까지 그리 가 붙었다는데 뭘 그리 호들갑이야."


"..."


어찌 된 일인지 분명 방금전까지만 해도 분기가 들어찼던 진천의 얼굴은 순식간에 평온해져 있었다.


대신 그의 눈에 번들거리는 탁기가 더욱 짙어져 사마의와 가후의 숨통을 더욱 조이기 시작했다.


그에 위현이 또 한번 지금까지 보다 강한 힘으로 진천의 마기를 흩어내자 진천이 말을 이었다.


"오히려 잘되었다. 소교주가 그곳에 있으니 염광놈이 함부로 악야의 목숨을 쥐고 흔들지 못할것 아닌가."


"교, 교주님."


"사마의, 악야의 수색과 구출에 배정했던 천마 5대의 계획을 수정해라. 한놈이라도 더 칼을 휘둘러야 싸움도 빨리 끝날테니."


거침이 없고 명확하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분기에 휘둘려 제 멋대로 하다가 일을 망치거나 반대로 소심해져 사마의의 계획을 그대로 따랐을 진천이지만, 이제는 타인이 조언이 없어도 명확하게 가야할 길을 똑바로 밀고 나간다.


흔들리지도, 의심하지도 않는다.


어떤 장애물이 얼마나 있건 모두 밀어내고 앞으로 나아 가겠다는 진천의 굳은 의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건 언제나 염광 단 하나였다.


"가후의 말대로 싸움은 금방 끝날 것이다. 계획을 수정할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라. 각 대장들에게도 한시 빨리 숙지하라 이르고."


"존명."


"1대장만 남고 모두 나가라."


진천의 명에 아직 당혹감이 가시지 않은 얼굴의 사마의와 위현, 가후가 우르르 대전을 빠져나갔다.


이제 장적소와 둘만 남게된 진천이 상체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팔걸이에 굽힌 오른주먹에 볼을 괴고 장적소를 가만히 바라봤다.


"어... 아."


진천은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다 순간 뭔가를 상기시킨 듯 다시 입을 닫고는 육성대신 전음으로 장적소에게 말을 건냈다.


[어째 더 할 말이 있으신 듯 합니다.]



***



섬서의 화산파.


아니, 정확히는 예전에 화산파였던 폐허가 맞는 표현이겠다.


여기저기가 무너지고 먼지가 가득 쌓인 화산파의 연무장엔 야행복을 입은 이백여명의 무인들이 모여 각자 명상을 하거나 병기를 수입하고 있었다.


"대장님. 며칠간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습니다. 변변치는 않으나 이곳의 주방시설이 아직 멀쩡하니 속하들이 멧돼지나 사슴이라도 잡아 올리겠습니다."


"됐다. 며칠이 아니라 몇달을 안먹어도 멀쩡하니 너희나 챙겨 먹어라."


마인이 아닌 무인에게 대장 대접을 받는 것이 영 껄그러운 마영의 퉁명스런 답에 멋쩍게 몸을 돌린 무인이 방의 문을 닫고 나갔다.


다시 혼자가 된 마영은 퀘퀘한 묵은내와 먼지가 가득한 널찍한 방안을 둘러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화산의 장문인이 쓰던 방이 이렇게까지... 귀신 소굴이나 안되면 다행이군."


다른 문파와 달리 구름을 아래로 둔 기암절벽의 7부 능선에 있는 화산파는 원래부터 무공이 없는 자가 드나들기엔 불가능에 가까운 곳이었기에 마도천하 이후로는 누구도 찾는 이가 없어 너무도 빨리 스산한 폐허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을 여기저기 새겨진 고풍스런 매화의 흔적들을 바라보던 마영이 뭔가 기묘한 느낌을 받은 것은 이미 자정을 넘긴 깊은 새벽.


"..."


탁.


방을 나선 마영이 수하 중 하나에게 말했다.


"잠시 명상을 하고오마. 이곳은 도사의 흔적이 많아 집중이 잘 안되는군."


"엇, 대장님 허면 저희가 호위를 서겠습니다."


"됐다. 잡념을 떨치려 가는것이니 누구도 따르지 마라."


"허, 허나..."


방앞을 지키던 무사 대여섯이 곤란한 표정을 짓자, 마영이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흐. 왜, 아직도 이 노부를 감시해야 하느냐?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믿음이 없구나."


"아, 그런건 아니지만..."


"잊지마라. 이 작전은 너희 무영문과 우리 천마신교, 아라사군의 연합이다. 내 입장에선 너희도 감시의 대상이야. 이 늙은이만 객식구 취급하는 것은 영 달갑지가 않군."


"윽..."


마영의 말에 약간의 살기가 담기자 무사들은 더욱 당황하며 식은땀을 흘렸고, 마영은 곧바로 살기를 거두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꿔 그들을 다독였다.


"너희는 지금 내 대원이고, 곧 생사를 건 싸움을 함께 해야할 전우다. 헌데 이리 믿음이 없으면 내 어찌 너희에게 뒤를 맡기고 검을 쓰겠느냐?"


"...네, 대장님."


"따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허나 그것이 순수한 호법이 아닌 감시의 의미라면 글쎄... 내가 굳이 너희와 계속 함께할 의미가 없는 듯 한데."


"죄, 죄송합니다. 지금 이곳의 수장은 대장님이십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저희가 먼저 대장님을 신뢰하겠습니다. 편히 다녀오십시오."


"음."


처음 마영과 황재성이 무영문에 합류했을 때 부터, 명문정파인 청성파 출신 화경의 고수인데다 떠벌떠벌 여기저기 친분을 쌓은 황재성과 달리 마영은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사소한 잡담 한번을 꺼내지 않는 과묵함을 보여왔기에 무영문의 무사들에게 마영은 함부로 다가가지 못할 공포의 마두였다.


특히 지금은 마교 교주를 잡기 위해 전대가 소수로 흩어져 각각 다른 길로 진군을 하고 있는 상황.


그런 와중 마영의 밑으로 편제된 무사들은 처음엔 본전투가 끝나기 전에 마영의 손에 몰살당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밤잠도 못자고 행군을 하던 차였다.


그러나 시일이 지날수록 마인이라기 보다는 우직한 장군 같은 의외의 모습을 보고 조금씩 생각이 바뀐 이들도 많았다.


그런 마영이 이렇게 대놓고 먼저 '신뢰'를 꺼내니, 직책은 둘째 치고 무위로도 한참 떨어지는 무사들의 입장에서야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할 방법이 없는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멀리 가진 않을것이다. 어두운 만큼 내 명상중에 기감이 느껴지면 사고가 생길수도 있으니 혹 나를 찾으려면 호출 신호를 써라."


"네, 대장님."


"음."


무인 하나의 포권을 받은 마영이 곧장 마당을 박차고 밤하늘 위로 떠올랐다.


후웅!


그리고 순식간에 작은 점이 되어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린 마영의 신형.


"후- 진짜 괴물이구만."


"정말로 안쫓아가도 되나? 저대로 마교로 가기라도 하면..."


"됐다. 저만한 고수가 작정하고 내달리면 우리가 어떻게 쫓아. 그리고 이제와서 정보를 빼낸다고 한들 대비할 시간도 없을거다."


"그렇긴 한데... 젠장. 마교엔 저보다 더 강한 괴물들이 득실거린다지 않냐. 어떻게 저만한 고수가 교주가 아니냐 이말이야."


"아, 시끄러워. 전투 직전에 그딴소리 하지마. 그리고 우리쪽도 만만치 않아. 화경도 아니고 무려 현경의 고수가 셋이나 있는데."


"그러니까 그게 다 마교의 고수들이잖아?"


"... 지금은 우리편이다. 그걸로 만족해야지."


그렇게 마영이 떠난 화산파의 앞마당에서 새삼 자신들의 처지를 안타까워 하는 무인들의 대화가 끝날 즈음.


그 짧은 시간에 거의 10리를 넘게 날아 끝없이 펼쳐진 화산의 봉우리들을 내려다보던 마영이 순간적으로 어느 한 방향으로 몸을 쏘아 내렸다.


쉬이이이익!!!


타다다닥!!!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거의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 봉우리 위로 발을 디딘 마영은 이미 그곳에 발끝을 세우고 서있었던 사내의 어깨를 덥썩 움켜쥐었다.


"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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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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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진천 - 245화 (에필로그) 23.10.23 61 2 10쪽
245 진천 - 244화 (1부 完) 23.10.22 62 0 21쪽
244 진천 - 243화 23.10.21 56 0 14쪽
243 진천 - 242화 23.10.20 61 0 13쪽
242 진천 - 241화 23.10.19 53 0 15쪽
241 진천 - 240화 23.10.18 47 0 12쪽
240 진천 - 239화 23.10.17 50 0 11쪽
239 진천 - 238화 23.10.16 54 0 9쪽
238 진천 - 237화 23.10.15 54 0 9쪽
237 진천 - 236화 23.10.14 54 0 13쪽
» 진천 - 235화 23.10.13 64 0 12쪽
235 진천 - 234화 23.10.12 46 0 11쪽
234 진천 - 233화 23.10.11 54 0 15쪽
233 진천 - 232화 23.10.10 56 0 12쪽
232 진천 - 231화 23.10.09 64 0 12쪽
231 진천 - 230화 23.10.08 54 1 10쪽
230 진천 - 229화 23.10.07 50 0 13쪽
229 진천 - 228화 23.10.06 66 1 13쪽
228 진천 - 227화 23.10.05 55 0 13쪽
227 진천 - 226화 23.10.04 62 0 12쪽
226 진천 - 225화 23.10.03 65 0 11쪽
225 진천 - 224화 23.10.02 64 0 9쪽
224 진천 - 223화 23.10.01 74 0 12쪽
223 진천 - 222화 23.09.30 69 0 11쪽
222 진천 - 221화 23.09.29 65 0 9쪽
221 진천 - 220화 23.09.28 64 0 11쪽
220 진천 - 219화 23.09.27 73 0 10쪽
219 진천 - 218화 23.09.26 77 0 10쪽
218 진천 - 217화 +3 23.09.25 84 1 11쪽
217 진천 - 216화 23.09.24 8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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