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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어아......나란 사람 비겁한 사람.

 기차역에서 표를 끊고 기차를 기다리는 대기실로 이동했는데... 천사를 보았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대기실 문 안 쪽에서 두 살쯤 되어 보이는 겁나게 무진장 귀여운 사과머리 귀요미 꼬마 아이가 문에 매달리듯 붙어서는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저렇게도 귀여운 생물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이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문 앞에 멈춰 서서 수동 버튼을 누를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천사다. 이건 인간이 아니라 천사야! 동글동글 한 얼굴에 노란색 바탕에 원숭이가 그려져 있는 수면바지를 입고 분홍색과 은색반짝이가 섞인 깜찍한 신발에 엄마와 커플로 맞춘 듯한 카키색 야상까지!!! 그것만으로도 이미 완벽 그 자체였는데도!!! 마지막 하이라이트!!! 둥근 머리 위로 치솟은 안테나!!!! 사과머리였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로 완전히 정말로 대박!!!!!!!! 귀요미 ㅠ

낯을 가리지도 않는지 대기실 안에 있던 사람들에게 싱글싱글 웃어주며 활보를 하는데 너...너무... 정말... 사랑스러웠다. 쇼핑백 같은 것을 할아버지가 붙잡고 놔주질 않자, 손을 놓으라는 듯 신경질을 내며 끼야아아아! 하는데... 거 참 보기보다 성깔 있는 아이네 하면서도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 쇼핑백을 들고 엄마 것인 거 같은데도 막 근처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에게 막 주고서 미련 없이 돌아서는 모습이 참 시크한 아이였다. 덕분에 30분이 지겹지 않았다.

쥐고 있는 내 핸드폰 배터리가 거의 사망 직전이었기에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행복한 일을 선사해 줄 것이라고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아이는 기차를 타러 떠나갔고 대략 3분 후 내가 탈 기차도 도착했다.

하필 맨 끝 차라니... 내릴 때 계단에서 겁나 먼데 ㅠㅠ

그러면서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제 달린 술 때문에 피곤이 몰려온 나는 노래를 틀지도 않은 채 이어폰을 귀에 꼽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눈을 뜨고 있기에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그냥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한참을 갔을까? 어디선가 격앙된 목소리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들으려고 하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크게 떠드는데, 게다가 노래도 틀지 못 한 상태에다 다 들리라는 듯이 말하는데 안 듣는 것이 더 힘들었다.

 “야, 뭐?” 로 통화는 계속되었다. 시끄러워서 잘 수가 있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단어를 남발하며 흥분한 듯 큰 소리를 들으니 말투며 뭐며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겼을까 싶을 정도로 어리게 느껴졌다. 아무도 조용히 하라는 소리를 안 하다니. 만약 내 옆에 있었으면 뭐라고 주위를 주기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입이 거칠었다. 물론 가서 말할 수는 있었지만-요즘 아이들에게 괜히 그랬다가는 역관광 가기 십상이라는 것도 있었고 지금의 몸 상태가 귀찮아서 겸사겸사 나란 사람 비겁한 사람..-그냥 무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들려오는 것들이... 구사하는 단어들은 대충... ㅆ은 물론이고 ㅈㄴ, ㅈㄲ 등 듣기에 매우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들뿐이어서 점점 짜증이 치밀어왔다. 

 나 방금 전에 아기 천사 만나고서 기분 완전히 좋았는데 누군지 모를 저 사람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통화 내용은 차마,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이야기들이었고 그런 것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고 있었기에 생략. 그냥 그 아이가 만약 내 동생 같았으면 뒤통수를 백만 대를 북처럼 두들겨줬을 정도의 그런 내용이었다. 괜히 귀를 기울였다고 생각한 나는 오늘따라 늦게 달리는 것만 같은 기차 안에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렇게 하루만에 천사와 악마를 모두 보았다.

 


댓글 6

  • 001. 가는바람

    14.02.24 17:14

    ^^ 듣는 것 만으로도 부모님 미소가 지어져요 :)싱긋!
    쿨럭! 20살이 어리다니... 전 잔여울님께서 고등학생이신 줄 알았어여 ㅠ.ㅜ 누님/횽님이셨쿤여! ㅎㅎㅎ

  • 002. Lv.52 김윤우

    14.02.24 17:15

    아? 진짜요...? 아..그때 ooo교회 편을 읽으신 분이라면.. 그거 귀찮아서 그냥 학생이라고 했던 거였어요..ㅋ 제가 보기보다 나이가 꽤 있습니다.

  • 003. Lv.7 월하몽

    14.02.24 20:06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다녀오셨네요^^;;
    우리 모두 나이 얘긴 하지 말아요오오오오~
    잊어요~ 그런거~ ㅠㅠ

  • 004. Lv.52 김윤우

    14.02.24 20:25

    ㅜ ㅜ ...

  • 005. Personacon [탈퇴계정]

    14.02.25 12:24

    음음...요즘 같은 세상은 좀 참견하기 무서워요. 일단 뒤에 서포트를 얻고 나서 참견하는 게. 흑흑..orz 저란 사람 비겁한 사람.

  • 006. Lv.52 김윤우

    14.02.25 12:57

    사과머리 꼬맹이 덕에, 까재님이 말씀하신 것과 합쳐서 35화를 탄생시켜 보려고 생각중..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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