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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사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26
최근연재일 :
2018.01.29 15:3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6,790
추천수 :
113
글자수 :
36,413

작성
18.01.29 15:30
조회
627
추천
10
글자
8쪽

조폭사 3화

DUMMY

“내 실력을 보여 주지.”


그가 길이가 다섯 자쯤 되는 나뭇가지를 한 손으로 쥐고는 한 걸음 다가섰다.


“이제까지 져 주기만 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군 그래.”

“뭐라구? 이 새끼가!”


금방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된 고석규가 목검을 고쳐 쥐었다. 그러나 선뜻 공격해오지 않는다. 경철은 다시 한 걸음 다가서는 듯 하는 순간에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배국청의 청모술로서 다음 단계는 몸을 옆으로 틀면서 상대방의 어깨나 허리를 치는 살수였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막아 내려면 몸을 굴리는 방법밖에 없다.

같이 수련을 한 터라 고석규는 풀숲 위로 몸을 굴리면서 목검을 가슴에 눕혔다. 경철이 땅에 닿는 순간 내 찌르려는 것이다. 그 순간 하늘을 덮듯이 경철이 내려왔고 고석규는 누운 채로 목검을 뻗어 올렸다. 그의 눈은 승리감으로 반짝였다.

지난번의 대련 때에도 이 방법으로 경철의 복부를 찔렀던 것이다. 그 때에는 대나무 봉 끝에 두껍게 솜뭉치를 감아 놓았어도 경철은 배를 움켜쥐고 한동안 숨도 쉬지 못했다. 다음 순간 고석규는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내지른 검 끝은 빈 하늘을 찔렀고 가득 덮여오던 경철이 옆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나뭇가지가 머리를 강타하는 바람에 깜박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고석규가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10분쯤 후였다. 머리를 흔들며 상반신을 일으킨 그는 곧 뒷머리에 밤알만한 혹이 생긴 것을 알았다. 눈의 초점이 잡혔을 때 그는 나뭇짐을 세워놓은 경철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졌다.”


고석규가 뒷머리를 쓸며 깨끗이 인정했다. 그가 웃음 띤 얼굴로 경철을 올려다보았다.


“목검에서는 네가 이겼지만 맨손으로는 안 될 거야.”


그러자 정색한 경철이 머리를 저었다.


“형은 이길 수 없어, 이제까지 나는 형한테 일부러 져 주었으니까.”

“그럴 리가 없어”


이제는 고석규도 정색했다.


“아버님의 눈을 네가 속였단 말이냐?”

“아버님도 알고 계셔.”


나뭇짐을 진 경철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내가 일부러 지는 수단을 보시고 새 기술을 만든 적도 있었으니까.”


나뭇짐을 진 경철이 지나가는데도 고석규는 눈만 끔벅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이것으로 청모골에 새 질서가 잡혔다. 고석규는 분담된 일을 이제는 제 스스로 했으며 대련 때에는 경철에게 백전백패를 했다.

그것을 배국청은 당연한 듯 보았으므로 고석규의 가슴은 더 가라앉았다.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라디오도 TV도 없는 청모골 생활이었지만 배국청은 읍내에 내려가면 지난 신문을 모두 가져와 읽었으므로 세 아이도 그것으로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알았다. 사설은 물론이고 광고란까지 샅샅이 읽고 또 읽어 외울 정도였다.

크리스마스 세일 광고가 열흘 분 신문에 모조리 박혀있던 12월 중순 무렵의 아침이었다. 이제 어느 곳을 짚어도 줄줄 외울 수 있는 관상학 공부를 마치고 물웅덩이로 물을 길러갔던 경철은 뒤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몸을 돌렸다. 미나가 따라 오고 있었던 것이다.

물지게를 진 채로 서 있는 경철에게 다가온 미나가 시선을 들었다. 산에서 자랐지만 미나의 피부는 희고 윤기가 났다. 어렸을 적에는 천사처럼 곱기만 하던 얼굴이 17세가 된 지금에는 윤곽이 뚜렷해진데다가 젖가슴과 엉덩이의 곡선이 두드러졌다. 키도 165센티가 벌써 넘어서서 여자의 체취가 물씬 풍겨 났다.


“웬일이냐?”


경철이 묻자 미나가 힐끗 뒤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오빠, 나 오늘 밤에 도망칠 테야.”


“뭐라고?”


물지게를 내려놓은 경철이 한 걸음 다가섰다.


“무슨 일이야?”


“아버지가 며칠 전부터 내 방으로 와.”


숨을 삼킨 경철을 미나가 똑바로 바라본다.


“아버지가 오늘 읍내에 다녀오는 사이에 도망칠 테야.”


경철의 시선이 분주하게 주위를 훑었다. 청모골 생활을 하면서 배국청은 처음 3년 동안은 미나와 같은 방을 썼다.

아직 10살 밖에 되지 않았던 미나여서 따로 방을 내 주는 것보다 그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13살이 되었을 때 배국청은 미나에게 방 하나를 수리해서 내 주었는데 미나가 같은 방을 쓰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미나는 배국청의 침구를 펴놓은 뒤에 부엌으로 가서 자던가 창고에서 쪼그리고 자다가 자주 배국청에게 얻어맞았던 것이다. 미나의 고집에 배국청이 꺾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침을 삼킨 경철이 미나를 바라보았다. 이런 말이 셋 중에서 나온 것은 처음이다. 아마 이런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배국청에게 맞아 죽을 것이다


“어, 어디로 가려고 그래?”

“서울로.”


거침없이 말한 미나가 경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빠, 같이 안 갈 테야?”

“내가?”


경철이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은 어떻게 하고?”

“큰오빠도 아버지하고 똑같아. 내가 혼자 있으면 자꾸 날 만지려고 해.”


얼마 전부터 경철은 그런 분위기를 눈치 채고는 있었다. 미나가 옆을 지나갈 때나 혼자 있을 적에 바라보는 고석규의 시선이 야릇했던 것이다. 미나가 바짝 다가섰으므로 옅은 살냄새가 맡아졌다.


“오빠, 같이 가.”

“난 안 돼.”


머리를 젓는 경철이 상체를 뒤로 젖혔다.


“난 갈 곳이 없어.”

“나도 그래, 하지만···.”


미나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난 아버지가 돈 숨겨 놓은 곳을 알아.”


“다녀와서 청모술 24반 모두를 펼쳐 볼 것이다.”


배낭을 걸치면서 배국청이 말했다.


“밤을 새워 연습해야 뒬 거야. 만일 수에 어긋나면 벌을 받는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고석규가 공손하게 대답하자 배국청의 시선이 경철에게로 옮겨졌다.


“넌 내공술을 외어 두어라.”

“예, 아버님.”


머리를 끄덕인 배국청이 마당으로 나가더니 부엌 앞에 서있는 미나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네가 읍내에 가서 장을 보도록 해라. 오빠 한 사람을 데리고 가면 되겠지.”


미나가 놀란 듯 눈만 크게 뜨자 배국청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이제 너희들도 속세와 접할 때가 되었다. 내가 아는 건 거의 다 가르쳐 준 것 같으니 말이다.”


배국청이 아래쪽 산비탈을 돌아 보이지 않게 되자 고석규가 경철과 미나를 둘러보았다. 눈을 둥그렇게 뜬 얼굴이었다.


“우리를 속세에 내놓으실 모양인가? 그럼 이 청모골을 떠난단 말씀 아냐?”

그러자 미나가 머리를 저었다.

“아냐. 아버지는 이곳에 도장을 세울 생각이셔. 이미 이 골짜기의 땅은 모두 사 놓으셨어”

“이곳에 도장을 세운다구?”


놀란 고석규가 미나에게 다가가 섰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서류를 보았거든. 설계도도 보았어. 내년 봄부터 공사를 시작할 거야.”

“이 산골까지 누가 오려고 할까?”

“길도 닦으실 거야.”


미나의 시선이 힐끗 경철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오빠 둘은 사범이 되는 거야. 청모 도장의 사범.”

“그것 괜찮은데.”


머리를 돌린 고석규가 경철을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었다.


“어떠냐? 멋진 것 같은데.”


그러나 시선을 돌린 경철이 지게를 어깨에 걸치고는 도끼를 집어들었다.


“난 나무하고 오겠어.”

“관심이 없다는 말이냐?”

“그래, 뭘 하건 난 관심 없어.”


마당을 나온 경철은 미나의 시선을 느꼈지만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랐다. 그러나 아침에 미나의 제의를 들었을 때부터 흔들리던 마음이 도장을 세운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굳어졌다. 경철이 산등성이의 나무숲에 앉아 빈 도끼를 휘두르고 있을 때, 예상했던 대로 아래쪽에서 미나가 올라왔다.

이렇게 미나와 하루에 두 번 씩이나 은밀하게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3년 전에 미나가 사춘기가 되고 나서부터 경철은 물론이고 고석규도 사흘에 한 번이나 말을 붙였을 정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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