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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사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26
최근연재일 :
2018.01.29 15:3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6,774
추천수 :
113
글자수 :
36,413

작성
18.01.29 15:30
조회
539
추천
11
글자
8쪽

조폭사 6화

DUMMY

되물었던 고석규가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올 가을부터다. 그년이 꼬리치는 바람에 내가 넘어갔어.”


힐끗 경철에게 시선을 주었던 고석규가 말을 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그년은 점퍼를 벗어 깔라고 하더구만. 나하고 하기 전에 그년은 이미 아버지한테 길이 나 있었어.”


어깨를 늘어뜨린 경철이 앞에 놓은 배낭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차츰 가슴이 가라앉아 가면서 온몸에도 기운이 풀려 갔다. 이윽고 경철이 머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우리 둘이 돈을 훔친 줄 알겠지?”

“그년의 심중쯤은 알고 계실 거야.”

“하지만 이제 돌아갈 수는 없잖아.”


배낭의 끝을 쥔 경철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형, 나 떠날 거야.”

“어디로 말야?”


경철이 주머니에서 미나에게서 받은 만 원권 한 장을 꺼내 보였다.


“아무 데나. 돈은 이것 밖에 없어.”

“그럼 나도 떠난다.”


따라 일어선 고석규가 주머니를 뒤지더니 돈 뭉치를 꺼내었다.


“그 년이 옷 사 입으라고 50만원 주더구나. 반으로 나누자.”


돈 뭉치를 반으로 나눈 고석규가 경철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었다.


“잘 살아라.”

“형도 잘 살아.”


발을 떼었던 경철이 문득 몸을 돌려 고석규를 보았다.


“형, 10년 후에 이날 이 시간에 만나자.”

“어디서?”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던 고석규가 곧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서울에서. 서울 시청 앞에서.”

“10시 정각이야, 형.”

“그럼 2009년 12월 17일 10시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고 곧 몸을 돌렸다. 눈발이 드문드문 보이는 흐린 날씨였다.





2장 새 세상으로




“네가 경철이라구?”


눈을 커다랗게 뜬 오석만이 경철의 위아래를 다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눈에 물기가 맺혔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닳았다. 닮았어.”


오석만은 경철의 외삼촌이었다. 경철이 어머니를 따라 배국청의 종말교에 들어가기 전에 오석만은 거의 매일 찾아와 말렸던 것이다. 오석만이 들고 있던 연장을 내려놓고는 문밖을 바라보았다.


“네 엄마는 어디 있느냐?”

“죽었어요.”

“죽었어?”


갈라진 목소리로 되물었던 오석만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길게 숨을 뱉었다.


“언제 죽었냐?”

“제가 10살 때, 산 속에서.”

“산에서? 어쩌다가?”

“그냥 아파서요.”


그러자 오석만이 소매로 눈을 훔치고는 턱으로 앞쪽 의자를 가리켰다.

오석만의 간판 제작소 안이었다. 경철은 7살 때 간판제작소를 운영하고 있는 오석만에게 어머니와 함께 찾아와 본 적이 있다.

역에서 내려 큰길로 쭉 내려갔다가 오른쪽에 커다랗게 써 붙여진 ‘서울간판’이라는 글자가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서울 간판 집이었지만 오석만의 간판 집은 수원이었다. 오석만이 물기가 남은 눈으로 경철을 바라보았다.


“그럼 너는 그 동안에 뭘 했어? 네 나이가 지금 열여섯인가?”

“열여덟입니다.”

“그럼 칠 년 동안 어디에 있었어?”

“산 속에서 살았어요. 인도자님하고.”

“그 사기꾼하고 말이냐?”


오석만이 눈을 치켜떴다.


“그놈이 널 키웠어?”

“예, 하지만 도망쳐 나왔어요.”

“잘했다.”


다시 길게 한숨을 내려 쉰 오석만이 웅얼거리듯 말했다.


“잘 찾아 왔구나.”


오석만은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이었다. 아버지가 네 살 때 돌아가신 후로 오석만은 자주 서울의 어머니에게 찾아왔는데 무뚝뚝한 성격이었지만 경철에게 줄 과자는 꼭 사왔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종말교에 빠지자 매일 찾아와 다투었으므로 경철에겐 무서운 외삼촌으로 기억되었다.

오석만이 작업복을 벗더니 윗도리를 걸쳤다. 아직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을 그만 할 모양이었다.


“집에 가자. 네 외숙모도 만나야지.”


오석만은 가난한 살림이어서 수원에서 오산쪽으로 내려간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허름한 벽돌집이었지만 마당도 있었고 개도 있었다.


“아니, 얘가 경철이라구요?”


눈을 둥그렇게 뜬 외숙모가 경철을 바라보더니 오석만한테서 사연을 듣고는 혀를 찼다. 경철은 외숙모를 어렸을 때 자주 보지 않아서 기억에도 없는 터라 서서 머리만 만졌다.


“얘를 우리가 데리고 있어야 겠어.”


오석만이 부러지게 말하자 외숙모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어쩌겠수.”

“그런데 넌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겠구나?”


오석만이 묻자 경철은 머리를 저었다.


“대입 검정고시에도 합격했어요.”

“어허, 그 사기꾼 놈이 공부를 시켜 주더냐?”


놀란 오석만이 물었다.


“하지만 넌 아직 열여덟이야.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제대로 학교에서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야 돼.”

“대학 가르칠 돈이나 있소?”


외숙모가 부루퉁한 얼굴로 묻자 오석만이 눈을 부릅떴다.


“내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사내자식이여. 잔소리 말어.”


오석만은 딸 하나를 두었는데 작년에 시집을 보낸 것이다. 경철이 흰머리가 반쯤은 덮인 오석만과 기미투성이 얼굴의 외숙모를 번갈아 보았다.


“저, 외삼촌 일을 거들게요. 제가 기운이 세거든요.”

“아니다.”


머리를 저은 오석만이 감정이 북받쳤는지 손등으로 눈을 닦았다.


“이놈아, 너희 모자를 내가 얼마나 찾아 다녔는지 아냐?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애 옷부터 사 입혀야겠네.”


외숙모도 뒤끝이 없는 성격인지 금방 누그러지더니 경철에게 끝 방을 가리켰다.


“저 방을 써라. 시집간 네 누나가 쓰던 방이여.”


경철이 영신종합고에 편입한 것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었다. 오석만이 동분서주 뛰어다닌 덕분이었는데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한 것이 참작되어 3학년에 편입되었다. 영신종합고는 수원에서 10여 킬로 떨어진 시골의, 정원이 4백 명도 안 되는 남녀공학 학교로 집에서 가까웠다.

학생 대부분이 졸업 후에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지만 오석만의 노력이 없었다면 경철의 편입은 어려웠을 것이다.


“넌 열여섯에 대입검정고시도 합격한 놈이다. 이제 다시 해 봐라.”


학교에 다녀온 날 저녁에 오석만이 술기운으로 벌게진 얼굴을 펴고 말했다.


“네가 와서 집안이 아주 달라졌다.”


그러자 처음에는 마땅치 않게 여겼던 외숙모도 웃었다. 집에 있던 석 달 동안 경철은 한 시간도 가만있지 않았다.

남의 간판은 잘 만들었지만 집의 대문도 고치지 않았던 오석만이었는데 경철은 집안 수리를 다 했다. 청모골에서 흙벽돌로 집도 지었던 경철이다 그는 가게에서 도구를 가져와 변소를 새로 지었고 슬레이트로 지붕도 새로 덮었다.

또 장독대를 시멘트로 만들었으며 부엌 바닥도 고쳤다. 외숙모를 기쁘게 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2월 한 달 동안 수원의 공사장에 나가 번 돈 150만원을 고스란히 외숙모에게 바친 것이다. 그래서 외숙모는 이제 경철을 보면 복덩이가 굴러왔다고 한다.

경철은 깔끔하게 머리를 깎은 데다 입성도 산뜻해서 처음 왔을 때의 산적 같은 분위기는 가셔졌다. 그러나 1미터 85센티의 키에 육중한 체구여서 올해로 열아홉이 되었다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경철이 밤이 깊어지면 뒤쪽 산비탈로 나가 청모술을 연습하는 것을 본다면 오석만 부부는 놀라 자빠질 것이다. 경철은 이곳에 오고 나서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련을 해 온 것이다.

이미 청모골에 있을 적에 무술은 다 익혔지만 거듭할수록 새로운 기예가 나타났고 그럴 때면 배국청과 고석규, 그리고 미나의 얼굴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것은 그리움이었고 경철이 수련을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3학년 2반에는 학생수가 54명이었는데 신장순으로 매긴 경철의 번호는 1번이었다. 그래서 제일 뒷자리에 배정 받았고 옆자리는 2번인 강현태였다.


“너, 검정고시 출신이라며?”


두툼한 입술에다 붕어눈이어서 험상궂은 인상의 그가 경철을 바라보았다.


“중학교는 어디 나왔냐?”

“그것도 검정고시다.”

“웃기는 자식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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