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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사

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26
최근연재일 :
2018.01.29 15:31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6,791
추천수 :
113
글자수 :
36,413

작성
18.01.29 15:29
조회
740
추천
13
글자
8쪽

조폭사 2화

DUMMY

언젠가 배국청이 말해 주었을 때 고석규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버님, 폭군이 뭔가요?”

“포악한 왕이지. 제 마음에 안 들면 가차 없이 죽이는 무서운 왕이다.”


배국청의 설명에 고석규는 만족했다. 배국청이 엄격한 수련일과표를 알려 주었을 때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다시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한 달 안에 외우도록 해라.”


배국청이 던져준 책은 얇았지만 한문이 가득 쓰인 주역책이었다.


“모르는 한자는 내가 설명해 주겠다.”


아침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은 주역과 역술의 공부였고 오전에는 무술, 오후에는 초등학교 전 과목의 공부였다. 그렇다고 배국청이 세 아이에게 항상 붙어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열흘이나 보름에 한번 꼴로 한나절도 더 걸리는 산 아래의 마을로 내려가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하동 군내의 평촌이라는 곳에 가서 필요한 주부식과 책, 생필품을 사왔는데 꼭 하룻밤은 묵고 돌아왔다.

봄이 가고 여름이 되었을 때 경철은 키가 부쩍 자랐고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을 겨우 마친 터라 한글을 겨우 읽는 정도였던 것이 반년도 되지 않아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모두 외웠을 뿐만 아니라 한문 실력도 늘어났다.

배국청의 혹독한 수련방법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과목이건 간에 암기부터 시켰는데 그것이 자신의 노고를 더는 방법이기도 했다. 경철은 주역을 술술 외우게 되었지만 뜻은 거의 몰랐다.

배국청의 설명을 이해할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여름날의 오후, 무술 훈련을 마친 경철이 계곡의 물웅덩이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있을 때 고석규가 바위위로 나타났다.


“너, 밤에 주술을 외우지 마라.”


고석규가 내려다보며 말하자 경철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형.”

“아버님이 뭘 물어도 모른다고 해라.”

“그럴게, 형”


경철이 선선히 대답한 때문인지 고석규는 바위 뒤쪽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되면 배국청에게 심한 매를 맞게 될 것이었다. 배국청은 세 아이에게 오래된 주술을 외우게 했는데 열흘 만에 한번 꼴로 내용이 바뀌었다.

오늘은 귀신을 집밖으로 내모는 주술을 외우는 날이었다. 웅덩이에서 나온 경철은 벌거벗은 몸을 바위 위에 누워 말렸다. 고석규는 자주 그런 일을 시켰고 며칠 전에는 배국청에게 태껸의 시범을 보일 적에도 동작을 빼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배국청에게 산꼭대기까지 뛰어갔다 오라는 벌을 받았지만 오히려 그편이 고석규의 말을 듣지 않고 보복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오빠?, 저녁준비 해야지.”


아래쪽에서 미나가 소리쳐 말했다.


“벌써 다섯 시 반이야.”

“알았어.”


상반신을 일으킨 경철은 서둘러 옷을 꿰었다. 식사당번은 고석규와 경철이 둘이서 번갈아 맡고 있었지만 거의 경철의 몫이었다. 고석규가 배국청 모르게 일을 떠넘겼기 때문인데 미나는 자주 경철을 도와주었다.

그것이 고석규를 더 화나게 만들었지만 미나에게 화풀이는 못했다. 배국청이 양딸 미나를 아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미나는 경철이 어머니를 따라 배국청이 속세를 떠나는 일행에 참가했을 때 대구의 어느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였다. 배국청은 고석규와 짝이 맞는 여자아이 천사를 필요로 했고 그래서 고아원에 장집사를 보내 그림으로 그린 것처럼 예쁜 양미나를 데려온 것이다.

양미나는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마음씨도 고왔다. 그래서 배국청은 물론이고 모든 신도들의 사랑을 받았다. 갈수록 기도가 격렬해지면서 거친 성격을 내보이는 배국청도 양미나를 보면 진정이 되었던 것이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한 교리에 따라 양미나는 여신도들과 함께 행동했는데 경철의 어머니 오미영을 제일 따랐다. 경철은 작년 봄에 양미나가 오미영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는 놀라 가슴이 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너는 전생에 왕비를 지냈고 다섯 번은 공주 신분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배국청이 양미나를 바라보며 말했었다.


“두 번은 무당이었지만 한번은 불에 타서 죽었구나.”


그렇게 배국청이 말했을 때는 작년 여름이었다. 그러자 양미나가 맑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아버지, 그럼 그 왕은 누구였어요?”

“꼭 네 앞에 나타나게 되어있다.”


엄숙하게 말한 배국청이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가 곧 밖으로 향했다.


“그것이 나 일수도 있고 석규나 경철이가 될 수도 있지. 전생의 인연은 후생에서 꼭 부딪치는 법이다.”


그때부터 양미나는 사람들을 유심하게 관찰하는 버릇이 붙었다. 행동도 더 조신해져서 고석규도 감히 장난을 걸어오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자를 따서 청모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에 은거한 후부터 배국청은 전혀 종말일 따위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어디에다 숨겨 놓았는지 성경책이나 화려한 인도자의 제복 등도 보이지 않았으며 기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 대신으로 읍내에서 가져온 역학이나 주술 책을 탐독했으며 특히 자신이 개발해 낸 무술에 전념했다. 그것은 택견과 중국의 태극권을 혼합시킨 것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신비롭게 보였다.

그는 두 사내아이에게 대련을 시켜 보이고는 잘못된 것을 고치거나 새로운 동작을 찾아내었는데 그것이 고석규와 경철의 수련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그들도 청모술이라고 이름지은 이 새 무술의 공동 개발자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깊은 산중이어서 1년에 두어 번쯤 길을 잃은 등산객이나 약초꾼들을 만나는 생활이었으나 세 아이는 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성장했다. 4년이 지났을 때 배국청은 세 아이를 데리고 읍내로 내려가 중학 과정 검정고시를 치르게 했고 모두 합격했다.

세 아이에게는 4년 만에 속세로 내려온 셈이었다. 그리고 다시 1년 반이 지났을 때 그들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다음 대입 검정고시에 나란히 합격했다. 경철이 18세, 고석규가 19세, 양미나가 17세가 되었던 때였으며 청모골 생활 7년째였다.

7년째의 늦 가을날 오후, 그날은 청모골의 겉으로는 잔잔했던 평온함이 깨진 날이었다. 산에서 마른 나뭇짐을 잔뜩 지고 내려오던 경철이 벽바위를 지나 청모골이 바라보이는 산길로 들어섰을 때였다. 풀숲 사이에서 불쑥 고석규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너 왜 빨래를 하지 않은 거냐?”


눈을 치켜 뜬 고석규가 한 걸음 다가서더니 들고 있던 목검으로 경철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고석규는 1미터 80에 가까운 키에 넓은 어깨의 늠름한 체격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곧은 콧날 밑의 엷은 입술은 마치 붉은 색 물감을 칠한 듯이 반질거렸다. 그가 흰 창이 많은 눈을 더욱 크게 뜨고는 목검 끝을 경철의 목에 붙였다.


“맞아 죽고 싶어서 말을 안 듣는 거냐?”


그때 경철이 나뭇짐을 선 채로 벗어 던지고는 허리를 폈다. 그러자 경철의 전신이 제대로 드러났다. 키는 고석규보다 주먹하나 높이만큼 더 큰데다 어깨도 더 넓다. 그리고 짙은 눈썹 밑의 두 눈빛은 강했으며 콧날과 입술의 선도 굵었다. 고석규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형 일은 형이 해. 난 형의 종이 아냐.”


경철이 다부지게 말했을 때, 고석규가 엷은 입술 끝을 치켜 올리면서 웃었다.


“반항하는 거냐?”

“제 할 일은 제가 하자는 거야.”


그 순간 고석규의 목검 끝이 와락 밀려왔다. 얼굴엔 그대로 웃음기를 띠고 있었지만 고석규의 목검 끝은 살기로 가득 차 있다. 경철이 목을 틀었으므로 목검의 검신이 세 뼘 가량이나 경철의 목에 붙어 미끄러졌다.


“이놈이!”


이제는 눈을 와락 치켜 뜬 고석규가 무릎 끝으로 경철의 사타구니를 차 올렸으나 내려친 경철의 주먹에 맞아 닿지 않았다. 그러자 고석규가 목검을 비틀어 경철의 머리를 내리쳤다.


“죽어라!”


그 순간 경철이 옆으로 뒹굴면서 나뭇짐의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고석규의 다리를 옆으로 후렸다. 모두가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동작들이었다. 헛 칼질을 한 고석규가 다리에 나뭇가지를 맞아 휘청거렸을 때 경철이 퉁기듯이 일어섰다. 눈빛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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