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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12
최근연재일 :
2018.01.29 15:1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3,010
추천수 :
15
글자수 :
35,639

작성
18.01.29 15:17
조회
180
추천
1
글자
8쪽

불야성 9화

DUMMY

“내가 빌딩 한 채로 만족할 줄 알았다면 크게 착각한 거지.”


“짠돌이 영감이 그만큼 해준 것도 큰맘 먹은 거야. 백억대 빌딩을 가진 사람이 어디 많은 줄 알아?”


“자식이 셋이니 최소한 삼등분을 해야지.”


조성희가 긴 재가 매달린 담배를 건네주자 천준수가 받아 재를 떨고 돌려주었다.


“그럼 천억쯤 되나?”


“멍청아, 그 다섯 배도 넘을 거야.”


천준수가 정신이 나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재산이 1조5천억이 넘는단 말이야?”


“내가 계산한 것만 해도 그래. 게다가 비밀 금고에 든 돈은 계산에 넣지도 않았어.”


“어이구.”


“제 자식한테도 비밀로 한 재산들이 많아. 이번의 중도금 50억도 비밀 금고에서 빼온 돈이야.”


“관 속으로 갖고 가려는 겐가? 제 자식한테도 비밀로 하게.”


“자식도 못 믿는 게지. 특히 둘째자식은 제 애비보다도 독종이야.”


몸을 돌린 천준수가 그녀의 다리 사이를 부드럽게 쓸었다.


“큰아들은 의절당했다니 그럼 재산은 둘째한테 넘어가겠군 그래.”


“아마 그렇게 안 될걸?”


천준수의 애무를 즐기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은 조성희가 두 다리를 벌렸다.


“영감이 그놈을 잔뜩 경계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전혀 믿지도 않아. 이용하고 있을 뿐이야.”


“그럼 도대체 그 많은 재산을 누구한테···.”


“그건 아직 몰라.”


조성희가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올라와. 달았어.”


“이봐, 애한테는 괜찮을까? 너무 자주···.”


“쓸데없는 소리말고, 애는 걱정없어.”


이미 조성희는 다시 달아올라 있었다. 천준수가 올라오자 그녀가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닮아서 애가 건강해. 그리고 8개월까지는 걱정없대.”




* * *




신준이 집에 들어온 건 일주일 만이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 형수인 윤정화가 반색을 했다.


“그동안 왜 전화연락도 하지 않으셨어요?”


“바빴습니다.”


“저녁식사 차릴까요?”


“먹고 왔습니다.”


신현 부부는 뒤쪽의 별채에서 살고 있지만 집안 살림을 맡은 윤정화는 안채도 관리한다. 그가 벗어던진 저고리를 든 채로 윤정화가 앞쪽 소파에 앉았다. 가정부가 다가와 탁자에 녹차를 내려놓고 돌아갔다. 안채는 건평이 150평의 이층양옥이었는데 가정부가 둘이었다.


“장경아 씨한테서 여러 번 전화가 왔었어요.”


그녀가 흘낏 그의 눈치를 보았다.


“무슨 일 있었어요?”


“끝냈습니다.”


녹차잔을 든 그가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서로 잘 즐기다가 끝낸 건데 뭔가 손해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지요?”


“도련님도 참···.”


이맛살을 찌푸린 윤정화가 눈을 흘겼다.


“좋은 분 같던데, 집안도 좋고···.”


“형수님은 금방 속아 넘어가는 게 문제예요.”


소파에 등을 기댄 신준이 다시 웃었다. 정부 고급관리의 딸로 신현과 연애결혼한 윤정화는 밝은 성품이었다. 신현이 의절을 당했으면서도 한집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윤정화의 덕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신윤수가 그녀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안주인이 없는 저택의 안살림을 신윤수는 그녀에게 맡긴 것이다. 또한 신준에게 잔소리를 하는 유일한 여자가 윤정화였는데 나이는 동갑이었다.


“나는 아직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가 결론짓듯 말했을 때 문이 열리더니 신현이 들어섰다. 텁수룩한 머리에 수염도 깎지 않아서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먹어 보이는 모습이다.


“너, 오랜만이다.”


털썩 앞자리에 앉은 그가 윤정화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나가 있어.”


윤정화가 잠자코 일어서서 방을 나가자 신현이 흐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 주위가 붉은 것이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


“야, 5억만 만들어 내라. 급하게 쓸 데가 있다.”


눈을 치켜뜬 그가 신준에게 상반신을 굽히자 역한 술냄새가 맡아졌다.


“내, 차용증 쓸 테니까. 영감이 죽고 나서 유산받으면 갚아줄 테니.”


“벌써 몇 번째야? 나한테서 가져간 돈만 해도 8억이 넘어.”


이맛살을 찌푸린 신준이 목소리를 낮췄다.


“아버님이 알았다간 나도 무사하지 못한단 말이야. 공금을 빼 돌렸어.”


“이 자식아, 넌 몇 백억을 주무르고 있지 않어? 그쯤도 못한단 말이냐?”


“못해. 이젠 몇 천만 원도 안 돼.”


“개새끼.”


신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넌 영감하고 똑같은 놈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제발 정신 좀 차려. 벌써 몇 번째 영화사를 차리는 거야?”


신준도 그를 쏘아보았다. 형제지만 신현은 어머니를 닮아 보통 키에 뼈가 가늘었고 선이 가는 얼굴이었다. 그가 뱉듯이 말을 이었다.


“그놈들이 형을 돈 때문에 이용하고 있다는 걸 지금도 모르겠어? 도대체 그 쓰레기 같은 영화를 만들어서 뭘 하겠다는 거야?”


순간 신현이 휘두른 주먹이 상체를 비튼 신준의 코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아, 참.”


자리에서 일어선 신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꼭 형이 만든 영화의 주먹질 장면처럼 어설프구만 그래.”


“이 개새끼, 뱀 같은 놈.”


따라 일어서던 신현이 중심을 잃고 다시 주저앉았다.


“신윤수나 네놈이나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아버님 오실 때 되었어. 이 집에서라도 쫓겨나지 않으려면 얼른 별채로 돌아가.”


응접실을 나왔을 때 신준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윤정화를 보았다. 빈손이었고 얼굴에는 일그러진 웃음기가 배어져 있다.


“올라가시려구요?”


말없이 머리를 끄덕인 그는 이층의 계단으로 향했다. 아마 윤정화는 문밖에서 엿들었을 것이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닌 것이다.




* * *




“무슨 일이냐?”


신윤수의 표정은 싸늘했다. 한일상사의 사장실 안이었다. 어젯밤 같은 집에서 잤고 아침식사도 같이했지만 회사에는 다른 차로 출근했다. 그러나 남을 보는 것 같은 시선이다.


“다름이 아니라 형 때문에···.”


소파 구석자리에 앉은 신준이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표정에는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이맛살을 찌푸린 채 잠자코 있는 신윤수를 향해 그가 말을 이었다.


“형이 다시 영화사를 차리는 모양입니다. 어젯밤 저한테 10억만 빌려 달라고 해서요.”


“그 미친놈.”


신윤수가 눈을 부릅떴다.


“그놈은 내 자식이 아니다. 더 이상 이야기할 것 없다.”


“하지만 사정이 딱한 것 같습니다. 이미 일을 벌여놓아서 이번에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간 돈을 날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날리라고 해!”


버럭 소리친 신윤수가 손바닥으로 의자의 팔걸이를 내리쳤다.


“절대로 회사 돈을 내줄 수 없다.”


신윤수가 신현을 안 만난 지는 꽤 되었다. 별채에 사는 신현은 안채로 들어오지 못하게 금족령이 내려져 있었는데 신윤수가 없을 때만 안채를 오간다. 그것도 가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아버님, 이번 한 번만 형을 도와주시는 것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신윤수를 바라보았다.


“형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도와주시지요.”


“그런 놈은 차라리 내 눈앞에서 없어지는 것이 낫다.”


뱉듯이 말한 신윤수가 머리를 돌렸으므로 신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아버님,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 * *




이지현이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는 오전 10시 반이었다. 신준과는 두 번째 만나는 것인데 그녀는 한동안 소파 앞에 서 있었다. 수화기를 귀에 댄 신준이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머리를 들었을 때는 5분쯤 지난 후였다.


“앉으시죠.”


소파를 눈으로 가리킨 신준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물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 따위는 없다. 넥타이의 매듭을 당겨 내린 그가 앞쪽에 앉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 지난번 당좌연장에 관한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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