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퀵바

에피루스 [email protected]

표지

불야성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12
최근연재일 :
2018.01.29 15:1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160
추천수 :
1
글자수 :
35,639

작성
18.01.29 15:18
조회
181
추천
0
글자
8쪽

불야성 10화

DUMMY

낮게 헛기침을 한 이지현이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은행에 갔더니 그쪽은 약속해줄 수 없다고 해서요.”


“우리한테 원하시는 것이 뭡니까?”


싸늘한 표정의 신준이 다그치듯 물었다.


“내가 몇 번이나 약속을 해드렸을 텐데요. 그렇게 믿을 수가 없던가요?”


“아니,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


“마치 주객이 전도된 것 같지 않습니까? 그쪽이 채권자같이 행동하시는데···.”


“저는 다만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그래서 내가 각서라도 써내야 합니까?”


그러자 이지현이 시선을 내렸다. 아버지는 자신이 한일상사에 찾아온 것을 모르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도 아버지는 한일상사와의 신용있는 거래관계를 강조하면서 자신을 안심시켰었다.


신준이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약속을 어긴 적은 없습니다. 지금 댁은 나를 모욕하고 있는 겁니다.”


“미안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지현은 숨을 멈추고는 침을 삼켰다. 갑자기 목이 메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짧은 인생에서 이런 모욕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 * *




“그 여자, 매력 있더군.”


신준이 방안으로 들어선 고광도를 향해 웃었다.


“볼수록 색다른 향기 같은 것이 배어 나온단 말이야.”


“나갈 때 인상은 아주 구겨져 있던데요.”


“당연하지. 내가 잔뜩 기를 죽여놓았으니까.”


그가 조금 전까지 이지현이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몸매도 일품이었어.”


“뒷조사를 시킬까요?”


“너하고는 손발이 맞는다.”


이를 드러내고 웃는 신준에게 다가간 고광도가 테이블 위에 봉투를 내려놓았다.


“10억입니다, 전무님. 1억짜리 열 장으로 가져왔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신준이 봉투를 열더니 수표 한 장을 꺼냈다.


“고부장, 1억 받아라.”


고광도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무슨 돈입니까?”


“집에 돈이 필요할 텐데, 실직한 매형이 올라왔다면서?”


“그, 그건 어떻게?”


“네 뒷조사는 따로 시킬 수밖에 없지 않겠어?”


신준이 어서 받으라는 듯이 수표를 흔들었으므로 고광도가 두 손으로 받았다.


“감사합니다, 전무님.”


“넌 내가 유일하게 진면목을 보이는 인간이다. 따라서 나에겐 소중한 존재야.”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능력이 없을 때는 배신해도 좋아.”


신준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물론 그때는 내가 먼저 떠나겠지만 말이야.”




* * *




신준이 다가가자 양선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입술끝에 옅은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지만 조금 굳었다. 크리스탈 호텔의 라운지 안이었다.


“바쁜 하루였어.”


털썩 의자에 앉은 그가 양선영을 향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선영 씨는 언제 봐도 소녀티가 나. 신선한 분위기를 풍긴단 말이야.”


오사카에서 헤어진 지 일주일 만인 것이다. 양선영이 시선을 들었다.


“웬일이세요? 바쁘실 텐데 저하고 식사할 시간을 내시다니···.”


“당신 같은 여자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


상체를 그녀 쪽으로 굽힌 신준이 정색을 했다.


“보고 싶었어.”


종업원이 다가와 주문을 받고 돌아갔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라운지의 분위기는 아늑했다. 드문드문 앉은 손님들은 밖의 실업 한파와 물가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술과 안주가 날라져왔을 때 조금 불안한데다 들떴던 양선영의 가슴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분위기에 적응되었다. 양선영의 잔에 포도주를 채운 신준도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회사 분위기도 안정이 되어 간다더군.”


“그래요, 모두 생기를 찾았어요.”


술잔을 든 양선영이 그의 시선을 받았다.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데 인원이 부족해요. 관리자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내일 관리자가 갈 거야.”


한 모금 술을 삼킨 신준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일본 사람들인데 앞으로 그 사람들이 회사를 맡아 하게 될 거야.”


눈만 깜박이는 양선영을 향해 그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이또상사가 상일전자를 인수했어. 사장은 물론이고 관리자는 대부분 일본에서 오게 될 거야.”


“그러면···?”


“고멘사 오더는 그 사람들하고 상의해서 진행시키든지 말든지 해야겠지. 하지만 오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 이또상사가 책임지고 돌릴 테니까.”


“팔았어요?”


얼굴이 하얗게 된 양선영이 갈라진 목소리로 묻자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상일을 위해서도 잘된 일이야. 이또상사는 전자부품 생산회사를 필요로 했으니까.”


“······.”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노조원들이 동요한다면 양선영 씨가 무마해줬으면 하는데···.”


“······.”


“난 당신을 믿고 있어. 이또상사 쪽에도 당신이 협조적일 것이라고 이야기도 했고···.”


“계획적이었군요.”


입술을 달싹여 그녀가 말했지만 신준은 들을 수 있었다. 그가 한 모금 포도주를 삼켰다.


“회사나 직원들을 위해 더 잘된 일이야.”


“강성 노조원들을 해직시킨 것도 이또상사와 짜고 한 짓이군요.”


“이봐, 양선영 씨.”


“나에게 접근한 것도, 모두···.”


“나는 당신을 좋아해.”


그 순간 양선영이 들고 있던 술잔을 신준의 얼굴에 뿌렸다. 얼굴에 술벼락을 맞은 신준이 우선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이쪽의 소동을 본 사람은 없다. 휴지를 집어든 그가 얼굴을 꼼꼼히 닦았다.


“보수는 지금보다 나을 거야. 직원들은 오히려 좋아할텐데···.”


“너는 사람이 아니야.”


“내일 직원들을 안정시켜줘. 일본 사람들이 갈 테니까 회사를 대표해서 맞아줘야 할 거야.”


“복수할 테야.”


눈에 가득 눈물을 담은 그녀가 노려보자 신준이 머리를 끄덕였다.


“회사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했지 않아? 노조원들이 반발하면 회사는 문을 닫는 수밖에 없어. 우리야 돈을 받았으니 손해 볼 건 없지만 회사가 문을 닫으면 국가적으로 손해지, 안 그래?”


신준이 휴지 몇 장을 그녀 앞으로 밀어놓았다.


“그리고 직원들도 직장을 잃게 될 테고, 일본회사면 어때, 안 그래?”


자리에서 일어선 양선영을 보자 그는 입맛을 다셨다.


“아직 식사도 오지 않았는데 그냥 가면 어떡해?”




* * *




“아이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요.”


조성희가 말하자 신윤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석 달이 겨우 넘었는데 무슨···?”


“어머, 정말이에요.”


눈을 커다랗게 뜬 그녀가 다가오더니 그의 앞에 배를 내밀었다.


“만져 보세요.”


“이놈아, 비켜라.”


오늘도 신윤수는 조성희의 집으로 퇴근했다. 요즘은 사흘 건너 하루씩만 저택에서 묵는 셈이었다. 상처한 지 10년이 넘은데다 본래 전에도 외박을 밥먹듯이 했던 사람이었다. 속만 끓이던 아내가 두 자식을 남기고 간 후로 집안 살림은 가정부들이 다 해왔다.

오늘은 신윤수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으므로 조성희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과일접시를 내려놓은 그녀가 건성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신윤수에게 물었다.


“기분 나쁜 일 있으세요?”


“없다.”


“안마 해 드릴까요?”


“됐어.”


텔레비전의 음량을 잔뜩 줄였으므로 집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밤 11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이윽고 신윤수가 신문을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큰놈을 집에서 내보내야겠다.”


긴장한 조성희가 잠자코 있었으므로 그가 말을 이었다.


“집에 두었더니 오히려 돈을 더 쓰는데 차라리 식구들과 격리시키는 게 낫겠다.”


“너무 심하신 거 아네요?”


조심스럽게 조성희가 묻자 그는 입맛을 다셨다.


“너는 모른다.”


“······.”


“그놈은 혼자서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놈이다.”


“······.”


“내가 받쳐주지 않으면 아마 제 명대로 살지도 못할 놈이야.”


“설마 그럴라구요.”


“그놈의 인생을 위해서 하는 일이야.”


조성희가 가늘게 숨을 뱉었다. 얼굴에는 분위기에 맞게 수심이 배어 있었다. 본래 조성희는 한서은행 행장실의 비서였다. 은행의 최대고객인 신윤수에게 돈 심부름을 하다가 옷이 벗겨졌는데 재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은행원 출신답게 계산도 치밀했다. 절대로 거부감을 일으키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야성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불야성 10화 18.01.29 182 0 8쪽
9 불야성 9화 18.01.29 134 0 8쪽
8 불야성 8화 18.01.29 146 0 8쪽
7 불야성 7화 18.01.29 163 0 8쪽
6 불야성 6화 18.01.29 167 0 8쪽
5 불야성 5화 18.01.29 169 0 8쪽
4 불야성 4화 18.01.29 203 0 8쪽
3 불야성 3화 18.01.29 183 0 8쪽
2 불야성 2화 18.01.29 290 0 8쪽
1 불야성 1화 18.01.29 523 1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이원호'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