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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야성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5:12
최근연재일 :
2018.01.29 15:18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3,003
추천수 :
15
글자수 :
35,639

작성
18.01.29 15:16
조회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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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불야성 7화

DUMMY

“알았어. 끝내자구, 신준.”


“술 한잔할래?”


신준이 양주병을 집는 시늉을 하자 장경아가 머리를 저었다.


“됐어.”


“어쨌든 열받게 해서 미안해.”


“아냐, 그냥 갈라서기엔 꺼림칙해서. 그래야 뒷맛이 개운하거든.”


자리에서 일어선 장경아가 머리를 한번 끄덕여 보였다.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정직한 인격이지, 그렇지?”


“맞아.”


몸을 돌린 장경아가 방을 나갔다. 방안이 다시 조용해지자 옆자리의 여자를 그가 바라보았다. 긴 생머리에 두 눈이 또렷한 미인이었다.


“애인이에요?”


“멍청한 년 같으니.”


대뜸 욕을 얻어먹은 여자가 새침해졌다. 그러나 일어서지는 않는다. 그녀는 가끔 텔레비전에서 얼굴을 보이는 CF모델이었다. 하룻밤만 같이 지내면 두둑한 용돈이 벌리는 판이니 이쯤 수모야 견딜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술잔을 든 신준은 한모금에 양주를 삼켰다. 허영덩어리인 장경아와 끝낼 때가 되었던 것이다. 돈은 들지 않았지만 자극이 떨어졌고 육체의 매력도 시들해졌다. 대학총장 딸에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간판은 그에게는 참으로 웃음거리일 뿐인 것이다. 그가 여자의 가슴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저년은 내가 쥔 돈을 좋아한 거야.”


가슴이 아픈지 여자가 이맛살을 찌푸렸으나 손을 털어내지는 않았다.


“물론 너도 마찬가지겠지만.”


“아파요, 살살···.”


그는 한손을 여자의 스커트 밑에 넣었다.


“나는 내 애비 같은 얼간이는 아니란 말이다.”




* * *




“네 매형이 다녀갔다.”


어머니의 말에 고광도가 혀를 찼다.


“여편네 놔두고 서울에는 뭐 하러 자주 오는 거요?”


“아주 서울로 올 모양이여.”


퍼뜩 눈을 치켜뜬 고광도가 털썩 소파에 앉았다. 신림동의 연립 주택 안이었다. 15평형이어서 한 발짝 옆이 현관이고 주방이다.


“서울로 오다니? 직장 잡았다는 거요?”


“아니여.”


“그럼 뭐 하러? 집은 얻었대요?”


“아니여.”


“뭐가 자꾸 아니여여!”


고광도가 버럭 언성을 높이자 어머니가 길게 숨을 뱉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돌아가셨으니 고광도의 남매는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났다. 지금 어머니는 연립주택에서 고광도가 주는 돈으로 호강하며 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파출부일을 했다.

그러나 창원에 있던 고광도의 매형이 석 달 전에 실직을 한 것이다. 철강회사 노동자였던 매형은 회사가 다른 회사에 흡수되자 직장과 함께 살고 있던 회사의 임대아파트도 나와야 하는 입장이었다. 어머니가 흘낏 고광도의 눈치를 보았다.


“내가 여기로 들어오라고 했다.”


고광도의 시선을 피한 채 그녀가 서두르듯 말을 이었다.


“너는 딴 데 있으니 나 혼자 적적하기도 하고 내가 가끔 몸도 아프지 않냐? 그래서 영옥이가 옆에 있는 것도 낫겠고 그리고 손주딸이 보고 싶기도···.”


“어, 시끄러!”


고광도가 버럭 소리쳤다.


“그놈의 새끼, 맨날 술만 처먹고 다녀서 짤린 거여. 술 처먹고 여편네나 두들기더니 이젠 처갓집으로 기어들어와? 안 돼. 내가 다리몽댕이를 부러뜨릴 테여.”


“인자 술도 안 먹는단다.”


“안 돼.”


단호한 고광도의 말에 어깨를 늘어뜨린 어머니가 다시 긴 숨을 뱉었다. 연립주택의 주인은 고광도인 것이다. 회사에서 융자를 받아 산 고광도의 재산목록 1호이다. 자식의 성깔을 아는지라 어머니가 몸을 일으켰다.


“저녁 먹었더라도 국수 해주랴?”


“안 먹어.”


고광도는 저고리를 벗어던졌다. 모처럼 집에 들렀다가 기분만 잡친 것이다.




* * *




다음날 아침, 회사에 출근한 고광도는 대기실에 두 남녀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중 사내는 낯이 익었는데 대양컴퓨터의 이병호 사장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선 그가 여직원에게 물었다.


“대양 사장하고 전무님이 약속이 있나?”


“약속하지 않고 오셨습니다.”


자주 있는 일이었으므로 여직원은 태연했다. 자금에 몰린 기업주들은 얼굴만 뵙고 가겠다면서 약속도 하지 않고 찾아오는 것이다. 머리를 끄덕인 고광도는 무거운 몸을 의자에 내려놓았다. 신준은 아직 출근 전이었다.


“그런데 같이 온 여자는 누구여?”


“모르겠는데요.”


옆모습만 보았지만 미인이었던 것이다. 간혹 술좌석에서 신준에게 여자를 상납하는 기업주가 있었다. 대개 돈을 주고 고용한 여자들이었는데 아침부터 회사로 끌고 들어온 경우는 처음 본 것이다.

사장 비서실장 김승환이 사무실로 들어섰다. 40대 중반의 그는 회계사 출신으로 신윤수의 측근이 된 지 10년이 된다. 그가 고광도의 옆으로 의자를 바짝 붙여 앉았다.


“이봐, 고부장. 사장님이 오후에 도고온천에 가셨다가 월요일에 오실 거야.”


“혼자 가시는 거요?”


“혼자는, 무슨 재미로.”


“그럼 대치동?”


머리를 끄덕인 김승환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번은 꽤 긴데, 사장님이 예전과는 달라지셨단 말이야.”


“맛이 좋은 모양이오.”


“전무님은 그 여자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으셔?”


“아버지 여잔데 어떻게 감히···.”


“에이, 설마.”


“그러고 이쪽도 여자 문제는 말할 입장이 못 되지요. 여자가 하나둘이 아니어서···.”


“허긴.”


쓴웃음을 지은 김승환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무님께 결재 올릴 것 있으면 오전중에 올리라고 말씀드려줘.”




* * *




“얘는 제 딸입니다. 저를 돕겠다고 회사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병호가 옆에 앉은 이지현을 소개했다.


“오늘은 지나다 들렀는데 불시에 찾아와 실례를 했습니다.”


“아닙니다. 잘 오셨습니다.”


신준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화를 여러 번 주셨다는데 제가 바쁘다 보니 연락도 못 드렸습니다.”


이병호가 찾아온 이유는 한일상사에서 갖고 있는 당좌수표 때문이었다. 15일 후인 4월 말로 되어 있는 당좌의 기간을 연장 받으려는 것이다. 녹차잔을 든 신준이 한 모금을 삼켰다. 요즘들어 이병호는 여러 번 전화를 해왔다. 불안해진 것이다. 이병호가 입을 열었다.


“전무님, 다름아니라 제가 오늘 당좌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이지현이 무릎 위에 놓은 가죽가방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6월 말로 날짜를 적었습니다.”


신준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니 자신이 갖고 있는 4월말짜리 당좌를 돌려 달라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시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대양의 당좌는 지금 은행에 들어가 있습니다. 회사 사정으로 담보로 넣었는데···.”


그가 얼굴을 굳힌 이병호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4월 말에 현금을 넣는 한이 있더라도 당좌는 돌리지 않게 할 테니까요.”


“전무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 당좌는 4월 말에 받도록 하지요.”


신준이 눈으로 탁자 위의 봉투를 가리켰다.


“신경쓰지 마세요. 우리는 4월 말이면 자금이 꽤 들어옵니다.”


“저어···.”


이지현이 입을 열었으므로 신준이 머리를 들었다. 시선이 마주쳤으나 그녀는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그 은행에 가서 확인을 받았으면 좋겠는데요.”


“그만둬라.”


당황한 이병호가 정색을 했으나 이지현이 내처 말했다.


“전무님께서 은행에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은행에 가서 확인을 받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신준이 선선히 머리를 끄덕였는데 여전히 웃음 띤 표정이다.


“제가 오늘중으로 지점장한테 연락할 테니까 내일쯤 확인하시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니, 천만에요.”


다시 찻잔을 든 신준이 녹차를 맛있게 삼켰다.




* * *




호텔로 돌아온 양선영은 가방을 방에 두고는 아래층 커피숍으로 내려왔다.


오후 5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다. 커피를 시킨 그녀는 조금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댔다. 고멘사의 간부들은 호의적이었다. 특히 사사키 사장은 환율이 올랐는데도 예전 가격 그대로 오더를 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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