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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웅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4:52
최근연재일 :
2018.01.29 14:57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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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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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9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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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대영웅 9화

DUMMY

그가 충혈된 눈으로 김영을 바라보았다.


“내가 형들처럼 낭중이나 시랑 하다못해 낭장도 마다하는 것은 비겁하기 때문이다. 언제 뒤집혀질까 겁이 나기 때문이지.”


“······.”


“너도 마찬가지. 나이 열아홉이 되었는데도 몽골 계집처럼 말을 달리고 성 밖에서 군사들과 술을 퍼마시는 미친짓도 내일이 무섭기 때문일 것이다.”


연못에서 붉은 등의 잉어가 뛰어올랐다. 김충이 연못에 술병을 던졌다.


“나는 형이 부럽다.”


형은 김준의 장남 김주를 말하는 것이다.


그의 벼슬은 동지 추밀원사 겸 대장군이니 김준의 후계자이자 정권의 이인자라고 볼 수 있었다. 김영이 머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상장군이 대감댁 셋째 아들을 사위로 맞을 모양이에요.”


“알고 있다. 이재만은 곧 중랑장이 될 게다. 아버지는 든든한 사돈을 갖게 되시는 게지.”


상장군 겸 이부상서 이도명은 문무겸전한 사람으로 북계 병마사를 지냈다. 이도명은 왕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 몇 안 되는 장군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이재만은 첩이 두 명이나 있습니다. 스물세 살의 나이에 말이요”


혼잣소리처럼 김영이 말하자 김충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전란으로 남자의 씨가 부족한 세상이다. 아예 독점할 생각은 버려야 옳다.”


“난 가지 않겠어.”


“그렇다면 지난번처럼 또 미친 짓을 할 작정이냐?”


자리에서 일어선 김영은 부교를 건너 안채로 들어섰다. 늦은 오후여서 종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부엌 종과 내실의 종, 집사 휘하의 사내종들에다 위사들까지 섞여 있어서 안채는 활기에 찼다. 그리고 안채의 모퉁이에 서 있는 윤의충이 보였다.


교위가 되었다지만 그저 무명 저고리에 가죽 덧옷을 입은 간편한 차림이다. 김영은 그에게로 거침없이 다가갔다. 그러나 다음 순간 눈을 치켜떴는데 윤의충이 몸을 돌렸기 때문이다.


분명히 시선이 이쪽을 스치고 지난 것을 김영은 보았다. 그와의 거리는 삼십보 정도였으니 불러도 되었지만 김영은 어금니를 물었다. 내실의 종들이 스치고 지나면서 인사를 했으나 그녀는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김영은 자신의 얼굴이 굳어진 것을 깨닫고는 걸음을 늦췄다.


“윤교위.”


그러나 십 보쯤 앞의 윤의충은 들은 것 같지가 않다. 김영은 이제 뛰듯 걸었다.


“윤교위.”


바짝 따라붙은 김영이 부르자 윤의충이 멈춰 섰다. 창고 옆이었다. 앞에 다가와 선 김영의 얼굴에는 찬 기운이 가득 덮여져 있었다.


“얼룩이를 왜 죽였는지는 묻지 않겠다. 틀림없이 어딘가 상해 있어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을 테니까.”


“······.”


“왜 대답이 없느냐?”


윤의충이 머리를 숙였다.


“그 말은 죽일 수밖에 없었소이다.”


“거짓말. 넌 귀찮아서 죽인 것이다.”


“아씨가 혹독하게 다룬 때문이오. 짐승이라도 그렇게 다루시면 안 됩니다.”


“이놈이.”


얼굴이 하얗게 질린 김영이 한 걸음 다가섰다.


“교위가 되었다고 안하무인이로구나. 감히 누구를 훈계하려 드느냐?”


“난 필요 없는 살생은 하지 않소이다.”


순간 김영이 손을 날려 윤의충의 뺨을 쳤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뿐이다. 윤의충이 머리를 젖혔으므로 헛바람을 일으키며 팔이 휘둘려졌고 김영이 휘청거렸다.


“이놈!”


김영이 고함을 치자 위사 서너 명이 달려왔다. 그러나 둘을 보더니 주춤 물러섰다.


“이놈을 당장에 포박해라.”


이제는 얼굴을 빨갛게 붉힌 김영이 윤의충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이놈이 날 겁탈하려고 했다.”


위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미 그들 주위에는 집안의 종까지 십여 명이 무리를 이루며 서 있었다.


“모두 돌아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선 것은 종민이다. 그녀는 김영을 향해 웃어 보였다.


“아씨가 잘못 생각하신 것이다. 내가 다 보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당신이 나설 일이 아니야.”


눈썹을 세운 김영이 소리쳤지만 상대는 첩이지만 엄연한 아비의 부인이다. 기세가 죽어 있었고 사람들도 제각기 몸을 돌렸다. 다가선 종민이 윤의충과 김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전히 얼굴에는 웃음기가 번져 있다.


“대감이 들으셔도 아마 믿지 않으실 거야.”


“잠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나 믿고?”


쏘아붙인 김영이 바람을 일으키며 몸을 돌렸다. 종민이 윤의충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윤교위, 난 대감의 넷째 부인 종민이다. 알고 있겠지?”


“······.”


“모르고 있었다면 알아 두는 게 나을 게다. 관직이 높아지고 싶다면 더욱.”


종민이 힐끗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주위는 어두워져 있었고 이쪽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내일 저녁에 북쪽 미륵골로 나오너라. 해질녘이 딱 좋다.”


몸을 돌린 종민이 창고의 벽을 돌아 사라졌다. 윤의충이 숙사 근처로 다가갔을 때 송합이 다가왔다. 그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아씨의 말을 때려 죽이다니 화를 내실만도 하다.”


그는 소동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겁탈하려고 소리를 쳤다니 과연 소문대로인 모양이야.”


그들은 막사 뒤쪽의 돌담 옆에서 마주 보고 섰다. 돌담 앞쪽은 연못이다. 사저의 곳곳에 매달린 등불이 연못 위에 수십 개의 붉은 줄을 긋고 있었다.


“조금 전에 개경 유수병마사한테서 파발이 왔다. 야별초지유 오탄이 살해당했어.”


송합이 목소리를 낮췄다.


“오탄은 병마사 박황과 같이 대감의 심복이다. 그런데 거리에서 대낮에 군사 다섯 명과 몰살했어.”


“누구한테 말이냐?”


“신의군 복장을 한 세 놈인데 아마 위장했을 것이다.”


윤의충이 잠자코 그를 바라보았다. 몽골의 침입에 따른 강화 천도로 경기지방에는 행정의 공백 상태가 계속되어 왔다. 다른 도에는 안찰사를 파견하여 관리해 왔지만 경기지방은 그것이 불가능 했는데 왜냐하면 개경과 강화도가 몽골군의 표적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 인근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다. 전란이 잠잠해 진 지금 병마사와 야별초를 파견하였으나 별로 나아진 점도 없다.


백주에도 약탈과 살인이 공공연히 자행되었고 몽골에 투항한 반역자 무리가 횡행했다. 더구나 쿠빌라이는 원종에게 조서를 내려 몽골에 투항했던 고려인은 사면하여 다시 백성으로 받아들이라고 했던 것이다.


반역자 무리가 기승을 부리는 것도 당연했다. 송합이 길게 숨을 뱉었다.


“반역자들은 왕이 출륙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놈의 세상,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


“하나라도 더 베어야지.”


자르듯 말한 윤의충이 연못에 시선을 주었다.


“대륙을 떠돌던 십칠 년 동안 나는 반역자를 스무 명도 더 죽였다. 어려서 힘이 닿지 않았을 때는 자는 사람의 목을 베었고 음식에 독약을 넣기도 했다.”


“······.”


“내 아버지, 두 형과 누이가 내가 보는 앞에서 칼에 베이고 창에 꿰었다. 어머니는 날 업고 몽골까지 갔지만 결국 놈들에게 윤간을 당하고 죽었다.”


“······.”


“너는 이제 내가 사는 이유를 알 것이다.”


“조심해라. 도처에 밀정이 있어.”


“지난번 네가 죽인 자는 그중의 한 놈일 뿐이다. 누가 보낸 놈인지도 밝혀지지 않았고.”


“살려서 잡을 걸 그랬군.”


쓴웃음을 지은 윤의충이 송합을 바라보았다.


“교정도감의 사저에서도 목소리를 낮춰야만 하다니.”


“너는 아씨도 적으로 만들었다. 조심해야 돼. 미친 것처럼 행동하지만 영악한 여자다.”


“사람은 때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모양이다.”


“······.”


“대륙에서 송나라 도인의 제자가 되어 있을 때 지금과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 날 변방의 야만인이라면서 비웃고 매질을 하던 여자가 있었어.”


“······.”


“사숙의 부인이었으니 숙모뻘 되는 여자였는데 난 숙모와 사숙을 모두 베어 죽였다. 그리고 도망쳤지.”


윤의충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군 그래. 상황도 조금 더 복잡하고.”




* * *




미륵골은 강화성 북쪽 해안가의 얄은 골짜기였다. 인가도 없이 마른 잡초만 무성한 황지(荒地)였는데 수백 년 전 골짜기에서 미륵보살을 보았다는 전설에 따라 그렇게 불려져 온다.


저녁 무렵, 맑은 날씨여서 바다는 검게 물들었지만 수평선 위의 하늘에는 아직도 구름의 윤곽이 보였다.


해안의 바위를 치는 파도 소리는 골짜기로 들어와 굵은 울림이 되었다가 사라져 간다.


잡초 위에 앉은 종민은 볼 위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밑으로 쓸어 넘겼다. 엷게 분을 바른데다 가슴에 사향주머니를 차고 있어서 은은한 향내가 풍겨 나온다.


송나라에서 들여온 비단 저고리에 바지 차림이었는데 바지 밑은 알몸이었다. 본래 음기가 충만한 종민이다. 중랑장 박용의 첩이었을 때는 숱한 남자를 거느리고 살다가 김준이 들여앉힌 후로는 낭장 두천이 고작이었다.

종민은 옆에 놓인 술병을 들어 병째로 한 모금 곡주를 삼켰다. 이열치열이다. 뜨거워진 몸을 술로 식히는 것이다.


윤의충의 건장한 알몸을 떠올릴 때마다 아랫도리가 짜릿해지고 갈증이 난다. 낭장 두천과는 분명 다른 남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도 한번 맛을 들이면 다른 남자처럼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뒤쪽에서 풀숲이 헤쳐지는 소리가 났으므로 종민은 술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두 다리를 길게 뻗고 상체만을 비틀어 뒤쪽을 바라보았다. 골짜기는 무성한 숲으로 덮여져 있었는데 개울은 말랐다. 윤의충이다.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것이 다소 이상했지만 사람의 이목을 피하려면 그럴 수도 있다. 풀숲을 헤치는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종민은 저고리의 앞깃을 조금 당겨 넓혔다.


골짜기는 어두웠다. 그 순간 바로 두 칸쯤 앞에서 풀숲이 갈라지더니 불쑥 머리를 드러낸 것이 보였다. 호랑이다. 입을 쩍 벌린 호랑이의 한치나 되는 송곳니와 부릅뜬 두 눈을 보는 순간 종민은 벌렁 뒤로 넘어졌다가 다리로 허공을 차면서 일어섰다.


“끼야악!”


저절로 입에서 골짜기가 떠나갈 듯한 비명소리가 터졌고 그 다음에 그녀는 선 채로 부들부들 떨었다. 두 다리 사이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것을 의식할 정신은 없다.


호랑이가 그녀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끼야악!”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뒹굴었던 종민은 네 발로 엉금엉금 기어가더니만 후닥닥 일어섰다. 두 눈에는 초점이 잡히지 않았고 입가에 침이 흘렀어도 몸이 움직이기는 한다. 종민은 두 팔을 내두르며 뛰기 시작했다.


두 다리가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자세가 되었으나 달리고는 있다.






“사람 살려!”


파도 소리도 컸지만 이제 겨우 그녀의 입에서 말이 되어 나온 목소리도 컸다.


“사람 살려!”


“곡주가 있구나.”


술병을 든 송합이 만족한 듯 웃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호피를 땅바닥에 던졌다.


“자, 우선 목이나 축이자.”


윤의충이 해안 쪽을 바라보았다. 종민은 몽골말보다 빨랐다. 어느새 산모퉁이를 돌아간 그녀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난 가겠다.”


송합이 술병을 내밀었으나 그는 머리를 저었다.


“오늘 밤 안에 개경에 도착할 예정이다.”


술을 한 모금 삼킨 송합이 입맛을 다셨다.


“네놈은 떠날 때마다 사건이 있군. 이번에는 음녀를 쫓았다.”


창고에 있던 호피를 뒤집어쓰고 종민을 쫓았던 것이다. 어쨌든 김준의 첩이다. 그녀의 원한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송합의 주장이었다. 윤의충은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개경이다. 다시 김준의 밀명을 받은 것이다.



악귀상륙








개경은 태조 2년에 정도(定都) 한 후로 5부방리(五部坊里)를 정하여 5부, 35방,344리의 제를 만들어 통치한 고려의 수도였다. 그러나 고종 19년, 개경의 5부 제도를 강화도로 옮긴 후 개경에는 유수병마사를 두었지만 잇따른 몽골의 침입으로 존립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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