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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웅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4:52
최근연재일 :
2018.01.29 14:57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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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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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글자수 :
52,848

작성
18.01.2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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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대영웅 3화

DUMMY

“김씨 일문의 감정일 뿐이오. 백성들은 그저 의식주 걱정 없이 편하게 살기만을 바랍니다. 반동은 무신 일족들이 정권을 장악하려는 수단일 뿐이외다.”


조복서의 목소리가 컸는지 홍탁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 어사는 이제 대몽골의 관리가 되어 있지만 나는 아직 아니오. 위험한 말씀은 삼가 주시오.”


몽골 민족을 통일한 영웅 칭기즈칸이 금과 요와 서역을 멸망, 통합시키고 터키와 러시아, 유럽을 유린한 후에 지금은 대몽골제국의 기반이 중국 대륙에 뿌리를 내리는 시기였다.

칭기즈칸의 사후(死後) 오고타이(태종), 구유크(정종), 몽케(헌종)를 거쳐 5대째에 들어선 쿠빌라이는 작년에 아리크부가를 굴복시켜 형제간의 싸움을 끝내고 바야흐로 전 중국의 장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겨우 잔명만을 보존하고 있는 남송(南宋)만이 유일한 잔존 국가일 뿐 고려는 이미 복속을 약속해 놓은 상황인 것이다. 조복서가 목소리를 낮췄다.


“김시중은 출륙할 사람이 아닙니다. 왕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이곳을 떠나지는 않습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내가 신의별초를 맡은 것도 그것 때문이 오몽골에 반역하고 돌아온 고려인은 이제 갈 데가 없어질 거외다.”


홍탁이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신중해야 될 거 아니겠소? 만일에 신의군 병사들이 이 사실을 알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은밀하게 진행시켜야 합니다.”


“때가 늦으면 대몽골 황제께서는 대군을 동원하실 거요. 그렇게 되면 고려인은 씨가 없어집니다.”


조복서가 혀를 찼으나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홍탁은 쿠빌라이로부터 직접 관작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개경 사람으로 아비가 안찰사를 지낸 홍윤이었다. 지난번 왕과 함께 연경에 가서 쿠빌라이를 알현한 후로 그는 왕과 함께 출륙의 뜻을 굳히고 있다.

조복서가 그에게로 바짝 다가앉았다.


“황제 폐하의 어명이오. 장군.”




* * *




“얼룩이가 설사를 한다.”


한 걸음 다가선 김영이 채찍을 휘둘러 윤의충의 얼굴을 쳤다. 채찍 끝의 가죽끈이 목에 감겼다가 풀리면서 피부에 여러 가닥의 핏줄기가 돋아났다.


“잘 돌보라고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다시 채찍이 날아와 뺨의 피부를 벗겼으나 윤의충은 잠자코 서 있었다. 그것이 김영을 더욱 자극한 모양이었다.


“이 잡종놈.”


그녀가 채찍을 한껏 치켜 들었을 때 윤의충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하긴 칼을 먼저 뽑은 무장이 언제나 이겨왔지. 넌 너무 서둘러.”


윤의충의 옆으로 다가온 사내는 김충이었다. 여전히 남루한 차림이다. 그가 겨우 채찍을 내린 김영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너는 언제나 오늘 하루만 살다 죽을 것처럼 보인다.”


“오라버니가 상관할 일이 아녜요.”


그녀가 차갑게 대답하자 김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네가 남자였다면 아버님의 대를 충분히 잇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김충의 말에는 대꾸도 없이 김영이 윤의충을 흘겨보았다.


“여물을 끓여라, 당장.”


“아씨, 여물로 나을 병이 아닙니다.”


그러자 김영이 한 걸음 다가섰다. 눈썹을 치켜 세운 그녀의 눈에는 칼날 같은 독기가 서려져 있다. 입맛을 다신 김충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방 안이어서 말대가리 십여 개가 보일 뿐이다.


“여물로 나을 병이 아니라니?”


“말의 내장이 조금 상했습니다. 아씨.”


“그걸 네놈이 어떻게 알아?”


“말똥과 걸음걸이를 보면 압니다.”


“건방진 놈.”


“아씨는 박차를 한쪽으로만 하셨습니다, 그것도 위쪽으로”


“······.”


“며칠 지나면 낫습니다. 그 동안은 말을 타지 않으셔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영은 몸을 돌렸고 곧 얼룩이가 끌려나왔다. 말과 함께 그녀가 마방 밖으로 사라지자 김충이 쓴웃음을 지었다.


“정실 후실 합쳐서 집안에 5남 1녀가 있는데 나하고 저 애 둘이가 광인이다. 나는 거지 행세를 하고 저 애는 집에 있으려고 하질 않는다.”


그가 한 걸음 다가와 섰다. 정색을 한 얼굴이었다.


“둘 다 겁쟁이기 때문이야. 아버지가 최의를 베었듯이 언제 그 칼날이 돌아올지 모른다. 저 애도 그걸 겁내고 있어.”


윤의충이 시선을 내렸다.


“나으리, 소인은 마방의 종일뿐이오”


“내가 사람을 조금 본다. 너는 범상한 놈이 아니야.”


“······.”


“그것을 대정 송합이, 낭장 두천이 알았고 아버님도 간파하셨어.”


김충이 문득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저 애도 범상한 애가 아니야. 가무와 시가에 뛰어났지. 아마 저 애도 그것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방의 입구에 인기척이 나더니 곧 집사 이독이 들어섰다. 그는 김충을 보자 허리를 꺾어 절을 하고는 윤의충의 앞에 와 섰다.


“새 옷으로 갈아 입고 날 따라오거라. 대감께서 부르신다.”


“무슨 일이냐?”


김충이 묻자 그가 공손하게 말했다.


“소인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구간 지기를 대감이 부른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김충이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내가 너에게 대장군 겸 추밀원 부사 임연이 말부리는 군사 출신이라고 말해 주었더냐?”


“말씀 안하셨소이다. 나으리.”


“명심하거라. 그리고 기회를 놓치지 말고.”






안채의 대문을 들어서자 넓은 마당이 펼쳐졌고 앞쪽은 열 칸이 넘는 마루방이었다. 정면으로 드러난 본채의 양 옆에 세로로 길게 세워진 부속 건물이 있었으나 뒤쪽은 알 수가 없다. 집안은 깊은 적막에 덮여 있어서 인기척도 나지 않았다.

이곳이 고려의 집권자 김준의 사저인 것이다. 마당에서 멈춰선 이독이 윤의충을 돌아보았다. 눈빛이 깊다.


“오른쪽으로 곧장 가거라. 널 맞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턱으로 본채와 부속 건물 사이를 가리켰다.


“어서.”


이독이 몸을 돌려 나갔고 곧 대문이 밖에서 닫혀졌다.


윤의충은 큰 보폭으로 발을 떼었다. 짚신에 밟힌 잔 자갈이 걸음마다 소리를 전하고 있다. 본채의 옆면은 창문 하나 없는 돌벽이었다. 그러나 부속채에는 세 걸음에 창이고 여섯 걸음마다 문이다.

본채와 함께 뻗쳐진 부속채의 길이는 백 보 가깝게 되어 보였는데 건물 전체가 무거운 적막에 덮여 있었다.


어깨를 조금 낮춘 윤의충은 천천히 발을 떼었다. 짚신 바닥에 깔리는 잔 자갈의 형태가 느껴졌고 이제 부속채 마루 밑의 지린내도 맡아졌다.


어디선가 그릇을 나무판 위에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는데 돌벽 안쪽의 본채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보이는 건 없다. 그 순간이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돌벽에 화살 한 대가 맞아 퉁겨났는데, 윤의충이 허리를 젖혀 피했기 때문이다.

그는 몸을 날려 부속채의 옆으로 다가붙었다.


그러자 그가 선 좌우의 문이 열리더니 다섯 명의 위사(衛士)가 쏟아지듯 나왔다. 모두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린 김준의 위사들이다.


그들은 제각기 검과 창을 쥐었고 한 명은 양손에 두 개씩의 수리검을 펴들었다. 벽에 등을 댄 윤의충 앞으로 다가온 그들의 대형은 반월형이다. 윤의충은 두 손을 가볍게 들어올렸다. 맨손이다.


김준이 고용한 위사들은 대정(隊正)급으로 모두 무술이 뛰어난 자들인 것이다. 창은 우선 길이로써 우위에 있다. 창을 쥔 위사가 마보의 자세를 취하더니 곧장 수평으로 창을 찔러왔다. 마보단평창(馬步單平槍)의 자세이다. 윤의충이 몸을 틀면서 창자루를 잡았다.

그 순간 옆쪽 위사가 한 걸음 내디디며 검을 내려쳤으나 윤의충이 치켜 올린 창날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동시에 바람을 가르며 날아온 수리검이 윤의충의 귀를 스치고 벽에 박혔다. 다시 칼끝이 곧장 찔러 왔는데 모두 일사불란한 동작이다.


윤의충은 창자루를 밀어 던지면서 발끝으로 땅바닥을 차 올렸다. 힘이 실린 발끝에 퍼올려진 잔자갈이 앞쪽으로 뿌려진 순간 그는 몸을 날렸다. 어느 사이에 한 손에는 수리검을 뽑아 쥐고 있었는데 날아온 다른 한 개의 수리검을 쳐내면서 검을 쥔 사내에게 바짝 붙어 섰다.


사내는 자갈 세례에 주춤한 상태였다. 윤의충의 주먹을 명치끝에 맞은 사내가 허물어지듯 주저앉았고 발길에 차인 다른 사내는 본채의 벽에 부딪치며 넘어졌다.


몸을 튼 윤의충은 다시 날아온 수리검 하나를 손으로 낚아챘다. 그리고는 막 수리검을 치켜 올렸을 때 앞쪽 부속채의 문 하나가 열렸다.


“그만.”


처음 들려온 말소리였다.


내실은 넓었다. 그리고 어두웠는데 사방이 막힌 안쪽의 밀폐된 방이었기 때문이다. 김준은 벽을 둥지고 앉아 있었다. 종이갓을 씌운 등 두 개가 벽의 좌우에 붙여져 그의 상반신만을 비추고 있었다.

윤의충을 안내한 대정(隊正)이 소리 없이 물러가자 윤의충은 내실 밖의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들라.”


“황공하옵니다.”


무릎걸음으로 문지방을 넘어 다시 엎드리자 김준은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방안에서는 향 냄새가 났다. 고려는 불교의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이번 달만 해도 왕은 봉은사와 현성사, 건성사, 복령사,보계사, 왕륜사의 여러 절에 다녀왔다. 이윽고 김준이 입을 열었다.


“몽골은 대국이다. 고려는 한줌밖에 안 되는 소국이지. 참으로 역부족(力不足)이다.”


“······.”


“쿠빌라이는 곧 대도로 도읍을 옮길 것이다. 남송의 명이 끊어지는 것은 그 다음이고.”


머리를 든 윤의충과 김준의 시선이 마주쳤다. 다시 그의 말소리가 방을 울렸다.


“이제 고려왕은 몽골식 변발을 하고 몽골 옷을 입고는 몽골 황제의 신하가 되어야 할 것이다.”


“······.”


“그렇게라도 해야 백성이 살아남지 않겠느냐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


“항몽 30여 년 우리 무신들이 기대했던 것은 중원 땅의 변수였다. 그러나 대세는 이제 몽골제국으로 기운 것 같다.”


길게 숨을 뱉은 그가 상반신을 조금 굽혔다.


“대세가 기울었다고 해서 무장(武將)이 타협하러 나설 수는 없다. 그것은 왕이 나설 일이지. 그리고 그것으로 고려국의 기개도 보여질 터.”


그의 말에 힘이 실려졌다.


“난 칼을 맞는 순간까지 항몽한다. 알아들었느냐?”


“예, 대감.”


“내 시체를 밟고 서서 왕은 쿠빌라이로부터 사은품을 받을 것이다.”


김준이 상체를 꼿꼿이 폈다.


“고려국의 아전이었던 놈이 지금 몽골 중서성의 어사가 되어서 객사에 와 있다. 그놈이 곧 강화도를 떠날 터인즉 따라가 베어라.”


“예, 대감 .”


“시종무사가 십여 명이다. 또한 몽골의 사신 탈무아가 데리고 있는 무사가 백여 명이고 혼자 힘으로 되겠느냐?”


“예, 대감.”


“개경에 몽골의 무덕 장군(武徽每軍) 왕창국이 군사 이천을 거느리고 있다. 놈이 그들과 합류하기 전에 쳐야 될 것이다.”


“예, 대감.”


그러자 김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마치 이웃집에 심부름 가는 것처럼 대답을 하는구나.”


“······.”


“실패하면 돌아오지 말아라. 그때는 이미 네 용모가 알려져 있을 터인즉 나도 모르는 척할 테니.”


“예, 대감 .”


김준이 보료 옆에 놓인 주머니를 들어 그의 앞에 던졌다.


“남송 금자다. 써라.”






김준이 정청에 들어서자 장군들이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교정도감에 소속된 장군들이다. 상장군 및 대장군으로 구성된 그들은 무신정권 수립 이후로 고려국을 통치하는 명실상부한 실력자들이었다.

상좌에 김준이 앉는 것을 기다려 그들은 좌우로 벌려 앉았다. 모두 눈부신 관복 차림이었으나 허리에 찬 검은 도방 입구의 위사(衛士)에게 보관시켜야 입장이 된다.

스무 칸 정청의 상좌에 앉은 김준이 벌려 앉은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한단 높은 그의 자리에서는 그들이 모두 내려다보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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