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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웅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대체역사

이원호
작품등록일 :
2018.01.29 14:52
최근연재일 :
2018.01.29 14:5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2,668
추천수 :
22
글자수 :
52,848

작성
18.01.29 14:53
조회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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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대영웅 2화

DUMMY

“업어라. 어서.”


검집을 한 번 두드려 보인 두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대정, 네가 도방까지 호위해 드려라.”


김충을 들쳐 업은 윤의충은 초당을 나왔다. 그와 나란히 걷던 송합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네놈은 운이 좋다.”


“하늘이 맑도다.”


등에 업힌 김충이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몽골의 하늘은 어떻더냐?”


“푸르기는 고려 하늘이 더 푸르지요.”


윤의충이 힐끗 하늘을 바라보았다.


“허나 몽골 하늘은 높습니다. 끝없이 초원이 깔려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낭장 두천은 너를 베려고 했다. 가만 서서 목을 바칠 작정이었더냐?”


문득 그가 물었으므로 옆에서 걷던 송합도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베지 못했을 것입니다.”


윤의충이 낮게 말했으나 그들은 다 들었다.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정적이 잠시 흐른 후에 윤의충이 다시 입을 떼었다.


“낭장께서는 망설이고 계셨소이다.”


“마악 벨 것 같았는데도.”


“허세였소이다.”


“허어!”


“살기로 소인을 자극하셨지요. 제가 흔들렸다면 칼을 날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네 목이 떨어졌을까?”


“검기가 대단한 장군이셨소이다.”


그것은 대답이 아니었으나 김충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윤의충의 어깨에 두 팔을 얹었다.


“어디, 내 아비 앞에서 다시 겨루어 보아라. 두천과는 전혀 다른 종자니라.”




* * *




교정별감(敎正別監) 김준은 최충헌의 종의 아들로 태어나 최씨 가문의 후광으로 출신한 인물이다. 그는 풍모가 사내다웠고 그릇이 컸다. 또한 궁술이 능한 데다 호협한 친구들을 사귀면서 재산을 모으지 않았으므로 최의에 의해 등용이 되었다.






그러다 고종 45년에 최의를 죽이고 집권하였으니 최씨 가문은 그로 인해서 끝이 난 셈이다. 기른 개가 주인을 문 셈이 되었으며 무신정권 하에서는 반복되는 일이었다.


김준은 도방 안쪽의 사저에 있었다. 방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보료에 기대 앉은 그의 얼굴은 붉다. 오늘도 낮술을 마신 것이다. 그가 괴이하다는 표정으로 다가온 세 사내를 바라보았다.


“업힌 놈은 내 자식 충이로구나.”


큰 목소리였고 그땐 가신(家臣) 낭장들이 마당에 다 모여 그들을 둘러쌌다.


“애비는 낮술에 취했고 자식놈은 미쳐서 어린애 행세를 한다. 잘 되는 집안이다.”


“아버님, 이 자를 거두어 주십시오. 몽골에서 돌아온 윤의충입니다.”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김충이 말했다.


“요긴하게 쓰실 수 있을 겝니다.”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김준이 마루에 나와 섰다. 늠름한 풍모였고 어느덧 술기운이 가셔진 얼굴이었다.


“좌별초에서 기마병이 다녀갔다. 낭장 두천은 아직도 이놈을 의심하고 있어.”


“제가 사람을 볼 줄 압니다.”


“내가 최충헌의 종의 아들이다. 최항을 집권하게 한 것도 나였다.”


그가 마당에 둘러선 가신과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최의를 베고 최씨 가문을 말살했지. 이놈이 주인한테서 그걸 배우면 어쩐단 말이냐?”


하고 김준이 웃었으므로 장수들이 제각기 따라 웃었다. 그러나 웃음소리는 금방 사그라졌다. 김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기 때문인데, 그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시종이 서둘러 보료와 팔받침을 가져와 내려놓았다.


“네 이름과 본관을 대라.”


윤의충에게 묻는 말이다.


“예, 장군. 본관은 모릅니다. 그저 윤의충이올시다.”


“어디 태생이냐?”


“충주(忠州) 근처의 산골입니다. 아비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무예는 누구한테 배웠느냐?”


“아홉 살 때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와 각지를 떠돌며 배웠습니다.”


김준이 시동을 돌아보았다.


“활을.”


김충이 한 걸음 나섰으나 김준의 기세를 보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을 둘러쌌던 제장들이 일제히 옆쪽으로 비켜선 것은 김준의 의도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김준은 시동이 건네준 활을 받아 쥐었다.

손잡이에 강철을 붙인 강궁으로, 아직도 오십 보 안에서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김준이다. 그는 활에 살을 끼우고는 시위를 힘껏 당겼다. 살촉이 윤의충의 가슴을 겨누고 있다.


“피해봐라.”


말을 마친 순간 ‘팽’ 하는 소리와 함께 활시위가 퉁겨졌다. 십 보도 안 되는 거리이다. 송합이 숨을 멈췄고 김충은 이를 악물었다.


윤의충은 움직이지 않았고 화살도 시위를 떠나지 않았다. 표정 없는 얼굴로 활과 살을 내려놓은 김준이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너는 살을 보지 않고 내 눈을 보고 있었다. 내 눈에 살의(殺意)가 보이지 않았더냐?”


“읽을 수 없었습니다. 대감.”


윤의충이 반쯤 허리를 굽혔다.


“알았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담대한 놈이로다.”


김준이 얼굴을 폈고 주위의 가신들도 한 사람씩 흩어져 갔다.


“가까이 오라.”


마음이 놓인 김충이 윤의충과 함께 마루 밑에 다가가 서자 김준이 손을 들었다. 낭장 한 사람이 다가와 섰다.


“도방 감옥에서 이 자와 비슷한 체형의 사형수를 찾아 죽여라.”


“예, 대감.”


“그리고 이 자의 옷을 입혀 바다에 버려라.”


“예, 대감.”


“그리고 이 자는 당분간 내 마방(馬房)에 둔다. 마방 청소를 맡기도록.”


낭장이 물러가자 김준이 머리를 들어 송합을 바라보았다.


“국왕 전하께서 몽골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다. 도망자를 받아들였다면 심려가 크실 게야. 또한 몽골에 밀통하는 놈도 있을 것이고.”


“그렇습니다, 대감.”


“좌별초 낭장 두천에게는 은 열근을 내리겠다. 밀항자를 잡은 공로다.”


당연하신 처분이외다.”


“너는 사려가 깊다.”


김준이 가늘게 뜬 눈으로 송합을 바라보았다.


“두천이 베려는 것을 말렸다고 들었다. 내 도방에 들어오는 것이 어떠냐?”


“황공하신 분부 오이다, 대감.”


“그럼 되었다.”


머리를 끄덕인 김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월에 김준은 왕으로부터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니 교정별감을 겸한 직책이다. 작년 12월 임술일에 몽골에서 돌아온 왕은 대대적인 포상을 베풀었는데 몽골과의 화전(和戰)에 고무된 때문일 것이다.

쿠빌라이는 연도(燕都 - 북경)에 도착한 원종을 환대하여 두 번이나 친히 연회를 베풀고는 따라간 신하들에게까지 비단을 나눠 주었다고 했다.


윤의충을 안채에 데려간 사람은 집사인 이독(李獨)이다. 백발에 허리가 굽은 그가 안채의 마당에 서서 한쪽을 가리켰다.


“마방은 저곳이다. 말은 모두 쉰 두필이 있는데 열 세필은 대감 집안의 소용이고 나머지가 도방 수비대 기마용이다.”


이독이 힐끗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넌 신의별초에 보내졌다면 그곳에서 목이 잘렸을 것이다. 왕은 이제 신의별초군을 몽골에 대한 제물로 삼으려고 한다“


그들은 마방의 끝 쪽으로 다가가 섰다.


“이곳이 네 침소다. 마구간 지기가 이제 너까지 여섯 놈이 되었다.”


“신의 별초군을 제물로 한다니요?”


윤의충이 묻자 그가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굴종하고 이제 곧 출륙해야 되는 형편이야. 몽골에서 도망쳐 나온 신의별초군이 죄인 취급을 받고, 몽골에 붙은 배신자들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세상이란 말이다.”


“······.”


“며칠 전에 임명된 신의별초 별장 홍탁은 몽골의 추천을 받은 놈이야. 대감도 손을 쓸 수가 없어.”


“이 자가 새로 온 말똥 치우는 자야?”


그들은 몸을 돌렸다. 남장 여인이다.


다가선 여인은 여우털 저고리에 몽골군처럼 넓은 가죽띠를 맸고 바지 밑을 묶은 승마복 차림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인이었지만 눈매가 날카로웠다.


“아씨, 승마나 가시렵니까?”


이독이 허리를 굽히면서 윤의충의 소매를 끌었다.


“인사 올려라 내실 아씨시다.”






허리를 굽힌 윤의충의 어깨에 채찍이 가볍게 닿았다.


“네가 말똥 치기냐?”


“예, 아씨.”


“말을 탈 줄 아느냐?”


“모릅니다.”


“상놈이니 당연하지.”


머리를 끄덕인 그녀의 시선이 윤의충의 아래위를 쓸었다.


“얼룩이가 여물을 먹지 않는다. 창고에 가서 당근 대여섯 개를 가져다 먹여라.”


“예, 아씨.”


“말굽을 깨끗이 닦아.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여인이 사라지자 이독이 윤의충을 바라보았다.


“영(影) 아씨는 충 나리의 바로 아래 동생이시다. 맞지 않도록 조심해라.”


고려 말의 남녀관계는 자유로운 편인데 전란을 겪고 난 다음에는 더욱 활발해졌다. 김준도 최의의 애첩 안심(安心)과 간통을 했다가 고성에서 수년간 귀양살이를 하고 돌아온 전력이 있다. 남녀가 내외하는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의관을 차려 입은 김준이 도방의 집무소에 들어서자 우별초 별장 김손일과 신의별초 별장 홍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장군으로 홍탁은 몽골로부터 무명장군(武明將軍)의 직함까지 받은 신분이다.


“대감, 조복서가 아침에 신의별초 병사 한 명을 죽였소이다.”


말을 꺼낸 것이 김손일이다. 그는 삼십대 중반으로 서경 출신 무반의 자식이었다. 경별초(京別秒)의 낭장이었던 아비는 몽골군과의 싸움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목이 잘렸다.


“그놈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소이다.”


홍탁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병사는 죽을 짓을 했소이다.”


“조복서의 말을 때린 것이 죽을 짓이란 말이오?”


“그 말은 지난번 왕께서 연경에 가셨을 때 대몽골 황제께서 내리신 말 중의 한 마리오.”


김손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홍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부하가 칼에 맞아 죽었으니 제가 나서야 한다. 그리고 조복서가 누구인가? 일찍이 북계(北界) 병마록사의 휘하에 있던 아전으로 몽골군이 쳐내려오자 모시고 있던 낭장과 별장을 죽이고 몽골군에 투항했던 역적이다.


그런데 지금은 몽골의 사신을 따라 들어와 궁궐 출입을 제 집 안방 드나들 듯 하고 있는 것이다. 김준이 머리를 들었다. 그는 짙게 자란 수염을 손끝으로 쓸어 내렸다.


“조복서는 몽골의 중서성 소속 관리가 되어 있어. 문서로 항의 하는 것이 옳다.”


“대감.”


김손일이 눈을 부릅떴으나 역부족이다. 그가 어깨를 늘어뜨리자 김준이 홍탁을 바라보았다.


“또한 별장이 단단히 꾸짖는 것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별장은 몽골의 무명 장군이란 직함도 있지 않은가?”


“시행하겠습니다.”


머리를 숙인 홍탁이 다시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과연 현명하신 분부시옵니다, 대감.”




* * *




홍탁이 신의별초의 주둔지에 들어섰을 때는 신시(辛時)경이다. 강화섬의 서쪽 황해를 향해 세워진 곳이어서 바람이 강했다. 통나무에 이엉을 엮어 흙을 바른 막사에는 흐린 불빛이 흘러 나오고 있을 뿐 주위는 적막했다.


지나치는 그를 보자 순시를 하던 병사들이 읍을 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막사의 가운데에 세워진 초당으로 들어섰다. 그와 막료들이 기거하고 회의를 하는 장소였다.


초당의 안쪽 별방(別房)에는 조복서가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십 대 후반쯤의 그는 고운 수염을 가진 준수한 용모의 사내였다. 대를 이은 아전 집안으로 녹만 먹고 살아온 때문인지 살결도 희다.


“조 어사. 김손일이 문제를 거론했지만 김시중은 중서성에 문서로 항의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소.”


홍탁이 도포를 들치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날더러 당신을 꾸짖어 달라고 하더군.”


“어서 꾸짖어 주십시오.”


조복서가 해사한 웃음을 흘렸다.


“삼가 달게 받겠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병사를 벤 것은 과격했소. 여긴 내륙 땅이 아니란 말이오. 아직도 별초군의 반동 감정은 강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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